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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건강한 교회(1) (행 4: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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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교회 (행 4:32-35)

      
TV를 잘 보지 않지만 제가 빼 놓지 않고 보는 프로그램이 하나 새로 생겼습니다. 그것은 ‘명의’라고 하는 프로그램인데요. 한국의 의사 선생님 가운데 어떤 특정 분야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유명한 의사 선생님 이야기입니다. 질병의 원인과 그것을 어떻게 치료하는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인데요. 조금씩 몸이 안 좋아 질 때 그런 프로그램을 보게 되면 의사 선생님이 얼마나 고마운 분인가를 깨닫게 되고 건강을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암에 대한 국내 최고의 권위자들, 의사 선생님을 보면서 병에 대한 이해와 어떻게 하면 예방을 하고 치료할 수 있는가도 보게 됩니다. 

제가 그 프로를 보면서 느낀 점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질병이 생기는 데는 그 병이 발생되는 적합한 조건이 만들어 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한 병이 생기려면 그 병이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과 유전적인 요인이 갖추어 지게 되면 영락없이 그 병에 걸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어떤 질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걸리지 않게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 준다면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야채나 과일 등을 잘 먹지 않고 매일 고기만 많이 먹는다고 한다면 병에 걸릴 확률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음식을 먹을 때 골고루 먹고 물도 많이 섭취하고 야채 과일도 많이 먹고 또 적당한 운동과 수면 등을 잘 맞춰주게 되면 건강해 질 수 있지요. 환경과 조건이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건강에 관해서만 이런 것들이 적용이 될까요?

한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정이 건강한 가정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행복한 건강한 가정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 갖추어 질 때 가능합니다. 가정은 건강해지고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가장이 돈은 많이 벌어다 줍니다. 경제적으로는 행복이나 축복을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그러나 돈만이 가정의 행복과 건강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요소가 잘 맞을 때 가정이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한 영혼의 건강도 마차가지입니다. 내 영혼이 건강해지려면 내 영혼이 건강해 질 수 밖에 없는 영적인 어떤 일들이 조건과 환경이 맞아야 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무리 그 나라에 인적 자원이 많고 부전자원이 많다할지라도 국가와 민족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나아갈 때 국가와 민족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또 어떤가요?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 초대교회 예루살렘교회가 건강 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요인이 나옵니다. 초대교회는 지금처럼 커다란 건물이 있던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2,30명이 들어갈 수 있는 가정교회가 여럿 있었고 그런 가정교회들이 모여서 약 한 5,600명 많아야 1,000명 내외 초대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교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 성령 받고 그들이 길거리로 뛰쳐나가 복음을 증언하고 또 교회 안에 모여서 믿음 생활하는 아름다운 성장과 발전과 진보를 할 수 있는 환경들이 이루어지게 되자 초대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몇 백 명밖에 되지 않았던 초대교회가 베드로와 사도들이 설교하게 되면 하루에 몇 천 명씩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런 놀라운 능력이 있었을까요? 여기에는 초대교회가 성장할 수밖에 없는, 건강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요소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초대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어서 2,000년 동안 전세에게 수 백만개의 수십억의 교인을 만들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요인, 건강해 질수밖에 없는 요인!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첫 번째, 건강한 교회는 온 성도가 ‘한 마음 한 뜻’을 지닌 교회입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32절 상)

온 교우들이 한 마음과 한 뜻이 될 때 교회가 건강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워렌 목사님이 쓰신 ‘목적이 이끄는 교회’란 책을 보면 어느 교회든 건강한 교회 성장하는 교회 행복한 교회는 반드시 목적이 그 교회를 이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그 교인들 개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똑같이 있을 때 그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왜 존재할까요?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

모든 교인들의 가슴속에 똑같이 자리 잡고 있을 때 그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 합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조직이 아닙니다. 교회는 여러분과 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켜 교회라고 합니다. 그 말은 여러분과 제가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기만 하면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세 사람이 모이건 몇 천 명이 모이건 간에 관계없이 교인들의 가슴 속에 내가 왜 존재하는가? 교회는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뚜렷한 인식이 똑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우리는, 교회는 존재합니다.

보이지 않지만 이 자리에 하나님이 임재 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이 자리에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만드신 목적은 우리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조물인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통하여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배란 무엇인가요? 예배는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 귀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가 예배 입니다. 간혹 가다 어떤 분들이 이야기 합니다. “예배 봅시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무엇을 드리는 것인가요? 여러분의 정성을 드리는 것입니다.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고요 여러분의 재능과 시간과 눈물과 땀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 시간을 잘 지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우리가 정성스럽게 예물을 준비해야 하고 정성스럽게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다짐하고 이 자리에 와서 앉아 있어야 합니다. 

몸은 여기에 와 앉아 있으나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습니다. 예배 마치고 놀러 갈 것, TV 볼 것, 누구 만날 것, 만약에 예배 자리에 앉아 있어도 몸은 앉아 있지만 마음과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껍데기만 이 자리에 와서 앉아 있는 것이지요. 교인들이 성도들이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무엇입니다. 교회를 구성하고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뭡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삶을 허락하시고 가정을 주시고 일터를 주시고 교회를 주신 살아계신 하나님께 가장 값진 것, 귀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이 예배를 드리는 것, 이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교회가 존재하는 첫 번째 목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예배의 삶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세상 적인 말로 한다면 예배에 성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배를 드릴 때 마다 정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가 될 때 교회는 존재하는 첫 번째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교회의 존재의 목적은 교회 안에 모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 되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는 여러분이 앉아 계시지만 만약에 여러분의 입술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고백 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 예배는 무의미합니다.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하여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너무 편향적이고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 이 다원화된 보편화된 세계에서 독선적이고 너무 배타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런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불교의 부처를 잘 믿고 이슬람교의 모하멧을 잘 믿고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으면 종교는 달라도 교주는 달라도 결국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에 심취하고 그 신을 잘 믿게 되면 결국에 가서는 구원을 받게 된다.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더 쉬운 말로 이야기 하면, 산 정상을 정복하려면 A코스 B코스 C코스가 있는데 코스는 다 달라도 어느 코스로 올라가건 간에 정상에 올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도 부처도 마호메트도 다 괜찮다는 것입니다. 어느 종교건 간에 다 교주를 신실하게 믿게 되면 구원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유독 기독교만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시고 메시야다. 라는 것은 기독교의 독선이고 배타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이런 종교다원주의를 이끌고 가는 종교가 있지요. 바로 천주교와 불교가 그렇습니다. 이 사람들은 무엇을 의미하냐하면 바로 부처만도 아니고 하나님 만도 아니고 모하멧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얼 믿든지 간에 결국 잘 믿다 보면 하나님 은혜 가운데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4:12에 보면 베드로 사도가 여러 유대인들 앞에서 설교 하는 가운데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이름을 하나님이 주신 적이 없습니다. 부처도 괜찮고 모하멧도 괜찮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배타적이라고 이야기 하든 독선적이라고 이야기 하든지 관계없습니다. 진리는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두 번째 목적,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고 신앙 고백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 바로 이것이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는 두 번째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좋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예수만이 구세주시고 예수만이 희망이라는 사실을 전달할 때 하나님은 그 예수를 통하여 세상을 건강하게 만들 줄 믿습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 분명한 인식에 대하여 온 교우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것입니다. 

추구하는 목표를 위해 온 교우들이 한 마음 한뜻을 모을 때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추구하는 목표는 뭔가요? 훈련받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자. 이 일을 위하여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자. 세계 선교에 앞장서고 지역사회를 위하여 앞장서고 모든 교우들을 평신도 지도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훈련받은 교회가 되자. 우리는 아름다운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추구하는 이 목표가 저나 장로님들이나 부교역자나 권사님 집사님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든 교우들의 가슴 속에 공히 똑같이 구체적인 목표가 자리 잡을 때 그 교회는 한 방향으로 나아가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요즘 우리나라 사회를 바라보면서 너무너무 안타까운 것이 많습니다. 교육계를 바라보면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 그렇지 않은 보수적인 성향이 당선된 지역,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얼마나 혼란에 빠져있나요? 교육계만 그런가요? 천안함 사태에 관해서도 진보와 보수가 나뉘어 있고, 4대강 개발 문제와 세종시 문제도 그렇고 우리나라는 남과 북이 나뉘고 동과 서과 나뉘고 지역이 나뉘고 계층 간에 나뉘고 보수와 진보가 나누어지는 4분5열의 이 나라 이 백성 이 민족, 5천만 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땅 덩어리에서 왜 이렇게 나누어져 있을까요?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수없이 많은 외침을 받아오면서도 우리는 힘을 모아 그 난국을 극복한 위대한 민족입니다. 전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우리의 지적인 능력은 탁월합니다. 근면하고 부지런하고 강인한,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힘을 모으는 위대한 민족이 아닙니까? 그런데 4분 5열 된 이 나라 이 백성 이 민족에게 정말로 앞날이 있을까요? 단결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민족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위정자를 중심으로 온 교회가 백성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으기만 하면 우리 민족은 위대한 백성, 위대한 나라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이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표가 분명해 온 성도가 온 나라 온 백성이 하나로 모아질 때 위대한 교회 위대한 민족이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 건강한 교회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임을 고백하는 마음입니다.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32절 하반절)

이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자기 것을 자기 젓이라 주장하는 이가 없었다는 말은 내 것은 다 남의 것이다. 라는 말은 아닙니다. 오는 본문에 보면 초대교회 교인들은 소유의 재물을 가리켜 내 이름으로 되어 있으니까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참 뜻은, 나는 소유자가 아니고 관리인이라는 인식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누리고 있는 이 생명은 누구에서 왔나요? 우리가 누리는 건강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우리의 재산은 누가 우리에게 준 것입니까?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과 저의 생명과 재산과 건강,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과 일터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소유자가 아니고 관리인 일 뿐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야고보서1:17)

여러분과 제가 가지고 있는 온갖 좋은 은사, 온갖 좋은 선물은 다 빛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소유자가 아니고 우리는 관리인일 뿐입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습니다. 우리는 돌아갈 때 빈손으로 갑니다. 그 말의 뜻은 살아있는 동안에 있는 모든 것들, 재산이든 생명이든 건강이든 재능이든 가족이든 모든 것들이 다 내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것을 우리는 관리할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가 왜 건강 했냐하면 모든 교인들이 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나는 내가 주인이라고 소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이 재미있는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한 부자가 농사를 잘 지었습니다. 너무너무 소출이 많아서 그가 스스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곡간을 헐고 다시 짓자 그리고 모든 소출과 내 모든 물건을 그 안에 다 가득 채워 넣자 그리고 그가 자기 영혼에게 이야기하기를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쓰고 먹을 것이 풍족하니 이제 먹고 즐기자. 라고 이 사람이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아시고 난 다음에 이 부자야! 이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 네 영혼을 내가 도로 가져가면 네 소유가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잘 들어보세요. 하나님이 오늘밤 네 영혼을 도로 찾아가면 네 소유가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나님이 말씀 하십니다. “네 영혼을 도로 찾아가면..” 영혼이 누구의 것이라는 말입니까? 생명이 누구의 것이라는 이야기입니까? 생명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애당초부터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도로 가져가시면 우리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생명! 애당초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가져가시면 우리의 재산은 누구의 것이 됩니까? 자식들의 것이라고요? 아닙니다. 생명도 건강도 재산도 모두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나눌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건강한 교회는 ‘나누는 교회’입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32절 중)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35절)

초대교회가 건강해 질 수 밖에 없었던 세 번째 이유는 각자의 물건을 자기만 쓰지 아니하고 나누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나누는데 어려움을 겪을까요? 나누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데 왜 사람들은 나누기를 어려워하는 것일까요?

첫 번째는 포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것을 누군가에게 주려면 포기를 해야 합니다. 내 것이라고 주장하면 절대 우리는 그것을 남에게 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두 번째 말씀드린 것처럼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누지 못하는 것은 포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렇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말했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뭔가를 나누길 원한다면 당신의 마음에 상처가 와야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상처가 온다는 말은 아픔과 고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떼어주는 아픔과 고통이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떼어주는 아픔과 고통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장기를 기증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남에게 내 장기를 떼어주려면 아픔과 고통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런 아픔과 고통을 경험하지 않으면 우리는 남들에게 뭔가를 나누어 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시간 재산 우리의 재능을 떼어줘서 내 안에 아픔과 고통이 있을 수 있으나 떼어주는 순간 하나님은 나에게 떼어져 나간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하나님은 되 갚아 주십니다.

두 번째, 사람들이 나누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이것을 할 때 내게 보상이 돌아올까? 여기에 대한 의심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는 이렇게 했는데 나는 이렇게 나누어주고 도와 줬는데 내게 어떤 보상이 돌아올까? 여기에 대한 의문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나누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공짜가 없으신 분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나누는 삶, 떼어주는 삶을 하게 되면,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들에게 되갚아 주시고 그 보다 더 많은 것으로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 사람들이 나누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이렇게 도와줘 봤자 얼마나 커다란 도움이 될까? 라고 생각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배가 고프고 굶주렸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돌려보내자고 합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너희가운데 먹을 것이 있으면 가지고 오라. 어린아이가 먹으려고 했던 점심 도시락,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로 가지고 오면서 예수님이 뭐라고 이야기 했습니까? 이것이 얼마나 소용이 될까요? 이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너무너무 적은데 그런데 우리가 주님께 가져갈 때에는 하나님은 양을 보시지 않습니다. 아무리 적은 것 같지만 주님 손 안에는 적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정성과 감사의 마음이 담겨져 있기만 하면 

주님은 그것을 100배 천 배로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왜 우리가 나누어야 할까요? 그것은 기적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누는 삶은 그 사람과 나를 끈으로 묶는 것입니다. 나누는 삶은 내가 거기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누는 것은 내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빚이 없어야 나도 여유가 있어야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고요?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논리입니다. 초대 교회는 힘들고 어려운 교회였습니다. 부자들이 모여 있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초대교회는 나누는 아름다운 공동체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초대교회를 건강한 축복의 공동체로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왜 전도해야 합니까? 왜 구제하고 왜 선교해야 합니까? 그것은 나누는 삶이 배가가 되어 결국은 나누어 주는 자의 삶을 축복으로 기적으로 하나님이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로, 건강한 교회는 그렇기 때문에 희생과 헌신을 하는 교회입니다.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희생과 헌신은 34절에 나옵니다.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34절)

사도들, 교회 앞에 가져다 놓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한테 집 팔고 땅 팔아 교회에 바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그 정신을 우리가 이어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왜 건강한 축복의 교회가 되었냐 하면 교인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팔아서 아버지 하나님께 가져왔습니다. 오늘날 제가 집 팔고 땅 팔아 교회에 내십시오. 라고 한다면 아마 이단으로 몰릴 것입니다. 그 뜻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희생과 헌신의 자세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돈 벌기 위해서 하루에 12시간도 일합니다. 놀기 위해서 밤새껏 재능을 허비하고 시간을 허비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재미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열과 재산을 투자합니까? 그런데 주님을 위하여 얼마나 희생을 하였습니까? 주님을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보고 얼마나 많이 시간과 재능을 바쳐왔습니까? 교회가 건강해 지려면 남은 짜투리, 찌꺼기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재산과 재능과 관심과 눈물 중에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힘에 겹도록 주님을 위해 할 때 하나님은 그 가정과 그 교회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 건강한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이 확실하게 전파되는 교회입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33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실하게 증언함으로 교인들이 은혜 받는 교회가 될 때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만이 변화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분 읽어보면 누가 길거리에 나가서 복음을 증언했냐하면 누가 세계 선교를 위하여 박차고 나아갔냐 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 두 번째는 성령 충만한 사람만이 길거리에 나가 복음을 증언했고 선교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이 확실한 믿음의 경험이 있는 사람, 은혜를 받아 본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바로 믿음의 확신이 있는 사람만이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에서 위대한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역사를 이끌어 가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지역 복음화를 위하여 117년 전에 세우신 위대한 교회입니다. 아름다운 교회와 많은 성도들과 좋은 시설, 긴 역사, 우리에게는 자랑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외향적인 하드웨어가 한 분 한 분의 가슴속에 여러분의 영혼이 건강하지 않으면 우리는 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리재단을 건강한 교회로 만들어 지역사회와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사용하시려고 우리를 지금 준비시키시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교회가 돌아가야 될 모범은 바로 초대 예루살렘일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과 우리 모두가 다 건강한 영혼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재단을 통해서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앞장서게 하시고 우리를 사용하시는 위대한 교회로 우리를 만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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