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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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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4-7)


2010년이 눈 깜짝할 사이 8개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저에게 1~3월의 안식월은 가장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매주 성경 1독을 하면서 조용히 주님 앞에 벌거벗은 몸으로 서는 시간이었습니다. 4월 교회로 돌아오던 날은 부활절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성경을 차근차근 강론해 가던 일을 잠시 접고 금년 남은 8개월은 제목 설교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테마가 있는 설교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4월은 “선교의 달”로 정하고 “선교”에 대해 설교하였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선교하는 성도들 곧 삶이 선교이기를 소망합니다. 5월은 “축복의 달”로 정하고 “복”에 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신령한 복, 물질의 복, 건강과 명예의 복을 받고 다른 이들을 축복해주는 복 있는 성도들이기를 소망합니다. 

6월은 “전도 열매 맺는 달”로 정하고 “전도”에 대한 설교를 하고 총동원전도주일을 지키며 교회에 전도에 대한 회복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더 풍성한 전도의 열매들이 성도들에게 맺혀져서 신앙인의 자긍심과 주님 앞에서의 기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7월은 “평화와 기쁨의 달”로 정하고 경제적 근심, 건강의 근심, 본질적 근심에서 벗어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근심에서 벗어나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8월은 “감사 회복의 달”로 정하고 “감사”에 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한센 병에서 고침 받은 열 명 중 감사하는 한 사람에 대한 설교, 암울한 환경이 오는 것은 죄 때문이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기까지 행복을 누리고 살았음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에벤에셀의 기념비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감사하는 삶은 하나님의 뜻임을 말씀 드리면서 감사할 수 있을 때 감사하고, 감사할 수 없을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하자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염려 거리 때문에 행복(감사)이 사라진 성도들에게 행복(감사)을 되찾는 방법을 깨우쳐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면서 오늘 즉시 염려가 사라지고 감사가 회복되어 행복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염려가 없이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밝혀 주시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에도 “항상 기뻐하라”, 18절에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감사와 함께 기뻐하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왜 기쁨이 사라졌을까요? 감사가 사라졌을까요? 

5절에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는 말씀에서 그 원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좁아진 사람은 관용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기쁨도 감사도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좁아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입니다. 자기의 유익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마음이 항상 상해있습니다. 언짢은 것 투성입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에 늘 2% 모자란다는 생각이 기쁨과 감사를 빼앗아 가버리고 원망과 불평, 마음의 상함이 있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그랬습니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켜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사위로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마음에는 기쁨도 감사도 없었습니다. 번뇌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언제나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왕이기에 무엇이나 언제든지 최고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소아적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나라가 망할 상황이었는데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므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요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라”라는 말이 거슬렸습니다. 그리고 한번 좁아진 마음은 오직 충성밖에 모르는 다윗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일어나서 나라를 다스리는 판단력이 흐려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가 흐트러져서 결국은 사단의 노리개로 전락하고 망했습니다. 

6절에 보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라는 말씀에서 그 원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염려는 믿음이 떨어진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 사람을 향한 믿음, 환경을 향한 믿음이 있을 때는 기쁨과 감사가 저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약해지는 순간부터 염려가 찾아와서 내 마음을 어둡게 만들고 기쁨과 감사를 도적질해 가버립니다.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지나친 염려는 삶의 의욕을 빼앗아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에게서 어찌 기쁨과 감사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엘리사 시절 아랍 왕이 군대를 보내서 도단성에 있는 엘리사를 체포하려고 하였습니다. 포위된 상황에서 엘리사와 그의 사환의 모습이 전혀 다르게 표현되었습니다. 엘리사는 평안한 모습이고 그의 사환은 공포에 떠는 모습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엘리사는 포위된 환경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에 염려가 없었고 그 사환은 환경을 보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기에 염려에서 지나 공포에 떨게 된 것입니다. 


둘째, 어떻게 하면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아주 중요한 한 가지를 지적하시고 해결의 방법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핵심은 바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7절에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는 말씀입니다. 내 마음과 생각을 무엇이 지키고 있습니까? 의심입니까? 미움입니까? 염려입니까? 두려움입니까? 불안입니까? 그것이 내 마음에 자리 잡고 내 생각을 움직이기에 나는 그것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기쁨이 없습니다. 감사가 없습니다. 매사에 염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쁨거리도, 감사거리도, 다 염려 거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결해야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6절에서 명쾌하게 답을 주셨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염려 거리가 있을 때 염려하지 않고 싶습니까? 그러면 염려하는 그 시간에 기도와 간구를 하십시오. 

어느 것이 더 행복한 일입니까? 어느 것이 근본적 해결의 방법입니까? 기도와 간구를 할 때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하십시오. 감사거리를 생각하십시오.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감사 헌금을 드리십시오. 하나님이 근심거리를 주셔서 나로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기도 응답으로 역전의 은혜를 주시기 위함이니 감사합니다. 이때 그 기도가 믿음으로 내게 다가와서 내 생각이 평안으로 채워집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을 지키고 내 생각을 지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들이 항상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지금 당장 그렇게 기도합시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서 염려거리를 감사거리로 바꾸어 기도와 간구를 합시다.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 기쁨과 감사가 있는 행복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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