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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 손은 약손 (막 1: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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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손은 약손 (막 1:40-45) 

  
저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 도시에 살던 저는 여름방학이 되면 마음이 설렜습니다. 왜냐하면 시골의 외할머니 댁에서 가서 여러 날 지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산과 들, 그리고 바다에 가서 마음껏 놀 수 있었습니다. 다 좋은데 물을 갈아 먹어서 그랬는지 배가 아플 때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할머니가 무릎 앞에 눕히고는 아픈 배를 손으로 쓸어주셨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할머니에게 여쭈었습니다. “와~ 신기하다. 할머니 손에 뭐가 있어요?” 그러면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응, 할머니 손은 약손이거든!” 정말 그랬습니다. 할머니 손은 약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도 할머니를 닮았습니다. 배가 아프면 배를 쓸어주고, 한밤중에 열이 나서 머리가 펄펄 끓으면 이마를 짚어주곤 했습니다. 그러면 정말 신기하게 배가 편안해지고 열이 내렸습니다. 마음도 편안해졌습니다. 어린 저는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손도 약손이야?” 

오늘 성경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손도 약손입니다. 아주 큰 ‘왕(王)약손’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애 내내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신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에도 한 나병 환자를 고쳐주신 사건이 나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나병(癩病 leprosy)은 문둥병으로 불렸는데 최근에는 환자들이 싫어해서 존대하는 의미로 ‘한센병’(Hansen 病)으로 부릅니다. 노르웨이 사람 ‘한센’이 처음 이 병을 발견했다고 해서 한센병이라 명명한 겁니다. 

나병은 현대에도 불치병으로 알려져 있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불치병일 뿐 아니라 하나
님에게 저주받은 천형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신체 부위가 문드러지고
고통스럽지만, 사람들에게 괄시와 천대를 당하는 정신적 고통도 엄청 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손문이 들려왔습니다. 예수라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인데, 놀라운 기적을 행한다
고 하더라, 불치병도 고치고, 죽은 사람도 살려내고 하더라, ... 나병 환자는 그 소문을 듣
고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그래? 정말이야? 그러면 그 예수님이란 분만 만나면 나도 이 
지긋지긋한 나병에서 고침 받을 수 있단 말이야? 그래서 그는 예수님에게 달려왔고 엎으
려 절하며 고쳐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나요? 41절~42절 보십시오.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예수님이 그에게 손을 대셨습니다. 그러자 즉시 나병이 떠나갔습니다. 그는 그 지겨운 질병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정말로 예수님의 손은 약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손이 닿으면 우리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와 고통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얼마나 고달픕니까? 혼자서 전전긍긍해 보지만 항상 힘에 부칩니다.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그런 우리에게 정말 예수님의 손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약손으로 어루만져 주시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손길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매일의 삶 속에서, 일생 동안 예수님의 손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 연구해 보면, 예수님의 손은 3가지 면에서 우리 인생에 큰 축복이 됩니다. 

[1] 사랑의 손 : 위로와 기쁨을 주시는 예수님

구약 시대에,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도 이스라엘 사회에 여러 가지 금기사항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손을 대지 말아야 하는 금기사항이 있었는데, 두 가지입니다. 시체를 만지거나 나병 환자를 만지면 안 됩니다. 만지면 부정해진다는 겁니다. 어떻게 하다 혹시 손을 대게 되면 복잡한 제사 절차를 통해 정결의식을 거쳐야 다시 정결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나병 환자를 마치 벌레 보듯이 피해 다녔습니다. 나병 환자 본인도 일반 사람들을 피해 다녀야만 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도 컸지만, 사회적 냉대로 인해 정신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아예 율법에 이런 규정까지 있었습니다. 

레13:45~46 “45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46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일단 나병으로 진단이 내려지면 가정과 사회로부터 격리됩니다. 동네 밖으로 쫓겨나가 혼자서 혹은 나병환자들끼리 모여 살아야 합니다. 혹시 이동을 해야 될 경우에는 찢어진 옷을 입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치며 다녀야 했습니다. 평생 이렇게 비참하게 살다가 인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게 바로 그 당시 나병 환자들의 운명이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나병 환자도 그런 비참한 운명의 굴레를 쓰고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 예수님의 소문이 들려온 겁니다. 그의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벅찬 흥분이 마음속에서 솟구쳤습니다. “아!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러면 내가 그분을 만나기만 하면 이 천형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이야?”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율법 규정을 어기고 일반 사람들에게 접근하면 자칫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야 그러지 않으시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을 텐데 걱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놓칠 수 없는 기회였기에 용기를 냈습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어쨌든 예수님을 만나보자 이렇게 마음먹고 단숨에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막상 가까워지자 멈칫했습니다. 거리를 두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 저를 고쳐 주세요!”

과연 예수님이 어떻게 나오실지 궁금하고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몸에 손을 대신 겁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파격 중의 파격이었습니다. 율법의 규정까지 무시한 파격! 그의 육체가 치유되기 전에 먼저 그의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동안 숱한 세월 괄시와 천대를 받아왔던 그였습니다.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벌레만도 못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천형을 받은 죄인의 몸에 손을 대시다니! 육체의 병이 낫기 전에 이미 그의 마음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녹았습니다. 큰 위로와 기쁨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위로와 기쁨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사람은 육체로만 살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삽니다. 육체의 병보다 마음의 병이 더 심각합니다. 열왕기상 19장을 보면 엘리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를 쳐부수고 난 후 이세벨 왕비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용맹스럽던 엘리야가 이상하리만치 두려워하며 혼비백산하여 도망갑니다. 그리고 로뎀 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주십니다. 그 천사는 성육신(성탄) 이전의 예수님입니다. 왕상19:5,7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엘리야)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 ” 천사의 손길이 그에게 큰 힘이 됐습니다. 그는 위로를 받고 용기를 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귀족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이었는데, 중년에 회심을 경험했습니다. 그 후 변화된 인생을 살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눈보라가 치던 겨울 날 거리를 지나가는데 걸인이 구걸을 합니다. 그런데 마침 호주머니에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너무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그러자 걸인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마워합니다. “아닙니다, 나리. 이렇게 천한 인간의 손을 잡아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돈 몇 푼보다 다 좋은 마음의 위로를 받은 겁니다. 

일본의 유명한 암 전문의 구로과와 토스오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강의할 때나 회진할 때나, 심지어 길을 걸을 때에도 항상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녔습니다. 겨울철에는 주머니에 따뜻한 물주머니를 넣고 손으로 만지작거리기도 했습니다. 이를 이상히 여긴 학생이 물었습니다. “박사님! 박사님은 어째서 항상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십니까?” 그러자 그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나의 환자는 거의 암환자이죠. 의사는 손이 따뜻해야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손이 차다고 진단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따뜻한 손으로 만져주면 환자의 마음이 따뜻해지고, 환자는 병을 이겨내리라는 희망을 불태우게 되죠.” 

이러한 이야기들처럼 험한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 인생에 정말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위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때로는 가족조차 진정한 위로가 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사랑의 손으로 참된 위로를 해 주십니다. 마음의 상처를 싸매주시고,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그 위로의 힘으로 우리는 좌절했다가도 또다시 삶의 용기를 얻게 됩니다. 장차 하늘나라에 들어가면 그 사랑의 손으로 우리 얼굴에서 모든 눈물을 완전하게 닦아 주실 겁니다. 이 사랑의 손길을 날마다 느끼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2] 권능의 손 : 치유와 승리를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손으로 우주만물을 창조셨습니다. 그 놀라운 손으로 나병 환자의 환부를 만져주시자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썩어문드러지던 그 육체가 깨끗하게 완치된 겁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체나 나병환자를 만지면 자신이 부정해진다고 믿었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정해진 게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을 깨끗이 고쳐주신 겁니다. 인간의 손은 연약한 손이지만, 예수님의 손은 권능의 손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의병을 고쳐주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8:14~15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예수님의 손으로 만져주시니까 무서운 열병이 치유된 겁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건강해져서 예수님께 수종을 들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손은 죽은 자도 살려내는 권능의 손입니다. 마가복음 5장을 보면, 회장당 야이로의 딸이 병에 걸려 죽었는데 다시 살려낸 사건이 나옵니다. 막5:41~42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험한 인생을 살아갈 때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습니까? 그때마다 우리를 붙잡아주시는 하나님(예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사41:10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여기서 오른 쪽은 공간적 방향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권능을 상징합니다. 권능의 오른 손으로 우리를 붙잡아 주시면 담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닿으면 우리의 질병이 치유됩니다.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든지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한번은 집에 전기가 나갔습니다. 두꺼비집을 열어보고 아무리 살펴봐도 도저히 고칠 수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전기 기사를 불렀는데, 잠시 점검해 보더니 한두 군데를 손으로 만집니다. 감쪽같이 고쳐냈습니다. 그래서 기사의 손이 역시 다름을 느꼈습니다. 이와 같이 손이 다릅니다. 예수님의 손과 인간의 손이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손으로 만지면서 오히려 망가뜨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만져주시면 온전해 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권능의 손인 예수님의 손이 있습니다. 부디 예수님의 권능 손을 날마다 체험하심으로 질병에서 치유 받고, 문제도 해결 받고, 항상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3] 속죄의 손 : 죄사함과 자유를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손은 속죄의 손입니다. 이 세상에 십자가 대속을 우해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속죄의 손으로 연약한 인생들을 어루만지며 죄를 사해주십니다. 영혼의 자유를 주십니다. 

예수님이 나병 환자에게 손을 대시고 고쳐주신 후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44절.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레위기 14장 참조) 아무에게 말하지 말라는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육체의 질병이나 고치는 분으로 오해할까봐 그런 겁니다. 십자가 지시는 게 주목적인데, 사람들이 몰려와서 병을 고쳐달라고 하면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에게 보이고 모세의 명한 것을 드리라는 말씀을 무슨 뜻입니까? 레위기 14장에 나오는 내용인데, 당시 제사장이 나병을 진단하게 한 것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나병을 죄로 인한 천형으로 인식한 겁니다. 치유된 후에도 제사장이 진단을 내리는데, 그로써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됨을 선언하는 겁니다. 나병 환자는 이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게 된 겁니다. 마음껏 성전에 출입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죄 사함을 받으면 영혼에 참 자유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영생이죠. 천국까지 이어지는 겁니다. 롬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죄는 하나님과 인간을 원수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을 받기 전까지는 영혼이 곤고합니다. 불편합니다. 그래서 십자가 대속이 중요한 겁니다. 예수 믿으면 평안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영혼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풍성한 삶이 펼쳐집니다. 이 땅에서 저 천국까지!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유명한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탕자가 가출했다가 회개하고 돌아올 때의 장면이 아주 감동적입니다. 눅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를 얼싸안고 손으로 어루만집니다. 모든 것을 다 용서하다는 뜻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와서 제일 좋은 옷 입히고, 가락지 끼우고, 신발 신기고, 살진 송아지 잡아 잔치를 베풉니다. 아들은 다시 아버지 집에서의 참 자유를 맛보게 됐습니다. 

시각장애인이신 안요한 목사님(새빛맹인선교회 대표)을 아시나요? 80년대 초 개봉되었던 영화「낮은 데로 임하소서」의 실제 주인공입니다. 그분은 본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자라면서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고 너무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목사인데 너무 가난한 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당신의 종을 이렇게 가난하게 방치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아버지에게 교회에 반감을 갖고 대적했습니다. 

그러다 서울로 올라가서 대학을 다니게 되자 방종하며 마음껏 지냈습니다. 대학을 절업한 후 아버지에게 내려갔는데, 신학교에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무 심각하게 말씀해서서 거역할 수 없어서 일단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신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오히려 의심이 커지고 갈망만 커졌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교수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고 신학교를 박차고 나옵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결혼도 하고 이제 모든 부담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모든 일이 잘 됐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의 한 기관으로부터 초청을 받게 됩니다. 

출국 며칠 전 갑자기 아내와 두 딸의 얼굴이 흐릿해지며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청천벽력입니다. 백방으로 노력해 봤지만 시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실명됩니다. 그 후 가족들과 갈등이 심해져 가출하게 됩니다. 떠돌아다니다 간 곳이 서울역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넝마주이 아이들, 껌팔이 아이들을 만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버렸지만 이 아이들은 그를 보살펴줍니다. 그는 그들을 통해 복음을 받고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렇게 부정했던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비로소 체험하게 된 겁니다. 

어둠 속에서 새 빛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아무도 잡아주는 이가 없었는데, 예수님의 손이 그를 잡아주었습니다. 그는 참 자유를 맛봅니다. 그리고 신학을 다시 시작하고 목사가 됩니다. 그 후 30년 동안 시각장애인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최근 출간된 그의 책 「낮은 데로 임하소서, 그 이후」를 보면 예수님의 손이 닿음으로 한 인생이 얼마나 위대하게 변화될 수 있는지 정말 놀랍습니다. 

영화 「낮은 데로 임하소서」주제가가 생각납니다. 그의 인생을 대변해 주는 노래입니다. 가수 윤복희 권사님이 작사 작곡하고 직접 불렀습니다. “그는 나를 만졌네, 내 영혼을. 나는 그를 느꼈네, 그 숨결을. 주의 사랑 있으면 나 외롭지 않네. 주의 사랑 안에서 나 두렵지 않네. 그는 나를 떠나지 아니하고, 나는 그를 떠나지 아니 하리.”

여러분! 이처럼 예수님의 손이 닿으면 다 됩니다. 우리 영혼도 육체도 구원받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질병이 치유되고 고난 가운데 승리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의 손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겠습니까? 40절~41절. “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moved with compassion-KJV)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나병 환자는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믿음의 간구입니다. 예수님은 그 간구를 들으시고 손을 내밀어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나병 환자처럼 큰 믿음으로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약손으로 치유되고 회복되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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