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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정 (눅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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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눅 5:1-7)


예수님의 제자들은 영광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무엇을 먼저 보셨을까요. 오늘 직장에서 사원을 고를 때 먼저 외모와 배경과 학벌을 봅니다. 그래서 속는 것입니다. 사람의 귀한 것은 자질입니다. 그런데 그 자질은 모두 내재적인 것들입니다. 진정 소중한 것은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내면을 보지 않고 외모를 중시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모두 외모를 가꾸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외모가 아름답다고 내면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외모도 좋고 내면도 좋고 실력도 있고 은사도 있고 배경도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불공평하십니다. 외모와 실력과 조건과 내면까지 다 갖춘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선택하러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예루살렘 대학으로 가야 합니다. 가서 엘리트를 뽑고 지성인을 뽑아야 합니다. 성적이 아주 우수한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그런데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그곳은 실패한 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베드로 일행을 골라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갈릴리로 가셨을까요. 그리고 왜 그 시대에 뒤쳐진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셨을까요. 거기에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를 우리는 제자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겸손 

어부들은 삶에 실패를 경험하였거나 가난을 경험하고 낙오를 경험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 경험이 참 중요합니다. 이 경험은 유사시에 무한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군생활의 경험, 실패의 경험, 중병의 경험, 배고픔의 경험 등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순간마다 작용을 합니다. 이 경험들이 인생을 엄숙하게 만들고 겸손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소중히 여기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제자의 첫 번째 조건은 겸손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 겸손이 중요하냐 하면 거기에서 순종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제자의 길을 걷는데 가장 중요한 자질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교만해서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엘리트다”라고 여기는 사람도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목회자 가운데 뛰어난 엘리트가 없습니다. 간혹 목회자 중에 엘리트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그 엘리트들은 큰 목회를 못하고 있습니다. 1세대 목회자들을 보면 대부분 엘리트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기도하며 하나님 중심 신앙으로 목회를 하여 성공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엘리트 목회자들은 기도하는 목회를 하지 않습니다. 재주와 지식과 방법으로 목회를 합니다. 그러니까 능력 있는 목회를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세상은 지성인과 엘리트와 똑똑한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개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셔서 제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겸손한 자를 택하기 위해서 입니다. 

집념 

베드로 일행이 밤새워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일행은 밤새워 빈 그물을 던지고 또 던졌습니다. 본문은 밤새워 새벽녘까지 그물을 던졌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멀찍이에서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셨을 것입니다. 마침내 제자들은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물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다가가셔서 깊은 데로 한 번 더 던져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고기가 잡힌다 해도 만사가 귀찮았을 때입니다.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또 그물을 들고 가서 던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물 가득히 잡히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때 주님은 속으로 “저들이라면” 하고 만족해 하셨을 것입니다. 제자에게는 이 자질이 필요합니다. 집념이라는 것은 참 중요한 의지력입니다. 우직함은 너무나 중요한 제자의 자질입니다. 특히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이 자질이 필요합니다. 제자가 가는 길에는 숫한 장애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무너지면 그리고 포기하면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베드로 일행은 제자로서 충분한 자질을 갖춘 인재들이었습니다. 이 집념이 참 중요합니다. 

옛날 중국에 우공이라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의 집 앞에는 큰 산이 있어 집에 드나들기에 아주 불편하여 마침내 산을 옮기기로 하였습니다. 우공은 자손들에게 산을 옮기자고 하였습니다. 파낸 흙은 발해에 갖다 버리자고 하였습니다. 거기서 발해를 다녀오는데 6개월이 걸립니다. 그런데도 개의치 않습니다. 한 노인이 지나가다가 우공을 보고 당신은 늙었는데 언제 그 산을 옮기려고 무모한 짓을 하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우공은 내가 죽고 떠나면 아들들이 있고 손자들이 있고 또 손자의 손자들이 있으니 언젠가는 집 앞이 평평해질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이야기가 하늘에 전달되어 마침내 상제가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하나님을 상제라고 부릅니다. 상제께서 그 우공의 우직함과 충성심을 보시고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거인 두 명을 보내 그 산을 모두 옮겨주었습니다. 그것을 “우공이산”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이 우직함과 뜨거운 집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한 사역에는 더더욱 이 같은 우직함이 필요합니다. 사역을 하다 보면 반드시 고난도 어려움의 과정도 주어집니다. 교회일 하다보면 크고 작은 시험들이 많이 발생합니다. 그때마다 포기하고 싶고 중단하려고 하면 사역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한번 세워놓은 뜻을 이루기 위해서 전념하는 집념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자에게는 집념도 우직함도 요구됩니다. 

열정  

베드로 일행이 밤을 새워가며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 모습을 주님께서 멀찍이에서 보셨을 것입니다. 그때 밤새워 그물을 던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시며 주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아마 저들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하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고기를 잡는 어부가 아니고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어부가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섰다고 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부친과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따라 나섰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열정이고 결단력입니다. 이것이 제자의 자질입니다. 

제자의 삶에서 우유부단은 최대의 악입니다. 그런 점에서 베드로 일행은 만족했습니다. 주님은 그래서 갈릴리로 가신 것입니다. 가서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엘리트들에게는 이런 열정이 없습니다. 때로 목숨을 내 걸고 정열을 불태우는 열정이 없습니다. 엘리트는 목숨을 내 놓기를 꺼려합니다. 앞장서지도 못합니다. 제자는 때로 목숨을 내 놓아야 할 때 내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때가 되니 목숨을 내 놓았습니다. 다니엘도 목숨을 내 놓았습니다. 사자굴 속에 들어갈 각오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던 대로 기도하였습니다. 그 기도는 살려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기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피땀 흘리며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옮기시옵소서”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기도는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잘 지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것이 제자입니다. 형통만 복이 아닙니다. 건강만 복이 아닙니다. 평안만 복이 아닙니다. 그것을 감당하는 것도 복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고 형통입니다. “나는 완벽한 자다, 나는 엘리트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런 희생을 하지 못합니다. 엘리트는 결정적일 때 몸을 사립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용기도 열정도 없습니다. 

예수의 제자에게는 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트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베드로는 누군가 “주님이다”라고 말할 때 생각할 것도 없이 바다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기적은 일을 즐기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몰입하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열정적인 자에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히딩크 감독은 “훈련을 훈련으로 생각하지 말고 즐기는 마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삶에는 기쁨과 즐거움과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 갱년기를 맞아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갱년기의 증세는 우울증으로 나타납니다. 이 갱년기의 우울증이 언제 오는가 하면 결혼 초가 아니고 중년의 때가 지나갈 때 옵니다. 그 때가 가장 한가해지는 때입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삶이 안정되고 시간이 많아집니다. 그때 갱년기의 우울증이 나타납니다. 사람은 한가해 지고 생각할 시간이 많아질 때 그때 인생의 허무를 느낍니다. 그때 정신이 해이해지고 몸 여기저기가 쑤시기 시작합니다. 

그때 삶이 재미가 있어야 하고 보람과 분주하게 열정을 다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때 기쁨으로 자선을 하고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의학자의 말에 의하면 아이 5명을 기르는 주부는 정신질환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정신이 없는데 병 걸릴 여유가 있느냐고 말합니다. 열정의 삶은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삶입니다. 그리고 찾아올 수 있는 모든 시험들을 이기며 자신 있게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 삶이 원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입니다.   

엊그제 신문에 70년대 초 미국 유학파 1호 미용사였던 그레이스 리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인생이 기구하였습니다. 그분은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곧 결혼하였는데 실패하고 위자료 2천불을 받아들고 미국으로 가 미용사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여 미용업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미국에서 세계적인 머리 디자이너가 되어 “그레이스 리”라는 이름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미용업계에 신화를 일으켰습니다. 올해 78세인데 오늘 암에 걸렸는데 암도 그냥 암이 아니고 특별한 암에 걸렸습니다. 

2001년 가을 어느 날 문득 가슴을 만져보니 뭔가 집히는 것이 있어 진단해 보니 유방암이었습니다. 그래서 잘라냈습니다. 2년 후 배가 아파 진단해 보니 위암이었습니다. 그래서 또 잘라냈습니다. 6개월 후 또 배가 아파 진단해 보니 대장암이라고 해서 또 잘라냈습니다. 얼마 전 또 배가 아파 진단해 보니 암이 온 몸에 퍼졌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이분이 하나를 더 잘라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52년 동안 단발머리를 고집해 왔는데 단발머리를 잘라낸 것입니다. 왜 잘라냈는가 하면 암이 해도 너무한다고 해서 이번에는 암과 일전을 벌리기 위해서 잘라냈다고 합니다. 

그분이 암을 이기는 비결이 몇 가지 있는데 하나는 그냥 껄껄껄 웃는 일입니다. 속으로는 힘들지만 겉으로 징징거리는 것이 딱 질색이라 쿨한 인생을 살기 위해 껄껄 웃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술을 돈 벌려는데 사용하지 않고 미용발전을 위해 번 돈을 투자하고 후진 양성에 매진을 다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몸은 아프지만 매일 열중해서 머리를 자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 암은 자꾸만 소외되어 잊어버리게 되니까 암이 기를 쓰지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열정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삶의 모습입니까. 

베드로는 “주님이시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물로 뛰어들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이 마지막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옥합을 깨트려 머리에 부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열정이 있습니까. 오늘은 이 열정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오늘은 열정이 상실된 시대입니다. 제자의 삶은 열정의 삶입니다. 본문을 보면 베드로 일행에게 주님은 “나를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 버리고 따라나섰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제자의 자격입니다. “우물쭈물, 머뭇머뭇, 매사 계산” 이것은 제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제자에게는 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 일행에게는 이 열정이 있었습니다. 

가능성 

열정만 있다고 다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잠재력이 또 필요합니다. 제자들은 처음에는 모두 미약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매번 실패만 거듭합니다. 어떻게 저들을 제자로 삼으셨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놓고 가셨습니다.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당부를 남기고 가셨습니다. 가신 후에 제자들은 한동안 우왕좌왕 하였습니다. 다급하니까 다락방에서 10일 동안 기도하고 마침내 성령을 받고 참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다시는 밀리지 않는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결국 다 성공하고 다 순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었습니다. 

도마는 회개하는 심정으로 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하였습니다. 바돌로매는 성경에 보면 이름만 나오는 사람인데도 터키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가죽이 벗겨져 순교를 하였습니다. 야고보는 참수형을 받아 제일 먼저 순교하였습니다. 주님은 아무나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조건이 좋다고 부르지도 않으십니다. 가능성을 보십니다.   

오늘 목회자들도 처음에는 다 미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목회자들은 처음에는 하나같이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초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부름 받고 훈련받고 오늘 다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공한 사람들도 대부분 처음에는 다 미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을 볼 때 먼저 외모를 보고 조건을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외모나 조건을 보지 않으십니다. 외모나 조건을 보신다면 우리 모두 여기에 앉아 있지도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고 생각을 보시고 내면을 보시고 자질을 보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많은 인물들이 나오는데 그들은 처음에는 하나같이 초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아주 유능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언변이 아주 서툴었습니다. 설교를 아주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설교를 듣다가 어느 청년이 졸아 2층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져 죽는 사고가 났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과 결단력과 집념이 대단하였습니다. 

모세도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인지라 애급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한사코 가지 않겠다고 버티었지만 하나님은 말 잘하는 아론을 붙여주면서까지 함께 가라고 애급으로 보내셨습니다. 다윗은 8형제 중 가장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키가 작고 얼굴이 아름다웠다는 표현으로 보아 그는 왕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선택하여 한 나라의 주인을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스라엘의 32명의 왕들 중에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두 내면이 충실했던 것입니다. 모두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후에 다 성공한 것입니다. 

주님은 외면도 보시지만 더 우리의 내면을 보십니다. 이것이 사람이 보는 관점과 다른 점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내면을 보시고 생각을 중시하십니다. 이것의 하나님께서 보시는 제자의 조건입니다. 저는 이제까지 40년간 목회하면서 교회에 미인이나 미남이나 탁월한 엘리트들이 들어오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미인들은 교회에 오지 않습니다. 절세미인이나 탁월한 엘리트들은 가는 곳이 다릅니다. 세계관이 다르고 살아가는 삶의 형태도 관심도 취미도 종교관도 다릅니다. 

이렇게 적당히 생긴 것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께서 부르셔서 사용하시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겸손과 열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름 받은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하나같이 초라하고 조건이 별로 화려하지 않지만 그런데 나중에는 위대한 인물들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12제자들이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미약하고 초라하고 실수만 거듭하는 것 같았지만 나중에는 역할을 다하였습니다. 그것이 예수 안에서 일어나는 기적들입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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