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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집으로 가는 길 (요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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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요 14:1-6)  
 
 
1.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는 수년 전에 상영되었던 영화 <집으로...>의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77세의 외할머니와 도시에서 자란 7살짜리 외손자가 외딴 시골 할머니 집에서 함께 살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엮은 이야기입니다. 외할머니는 손자의 투정을 무조건 다 받아줍니다. 버릇없게 굴어도 그냥 이쁘게 받아줍니다. 그러나, 손자는 서서히 할머니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갑니다. 헤어질 때 쯤에는 할머니를 사랑하게 됩니다. 

이 영화를 보면, 집이란 어떤 곳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집은 무엇이든 용납되는 곳이며, 그래서 평안한 곳입니다. 
20세기 위대한 영성가 헨리 나우웬은 천주교 신부이면서 심리학자였습니다. 미국의 노트르담 대학교, 예일대학교, 하버드대학교에서 심리학교수로 일하면서 나름대로 만족스런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수로서의 직업이 자신의 소명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겸손에 대해 강의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의식하는 것입니다. 그는 평안하지 못했습니다. 길을 잃은 심정이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강단에서는 제법 잘 했지만, 자신의 마음 속에서는 늘 그렇게 잘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고민 끝에 하버드대학교 교수직을 그만두고 정신지체장애인들의 공동체인 라르쉬 공동체에서 아담이라는 장애인을 돌보는 일을 했습니다. 아담은 혼자 옷을 입지도, 벗지도 못하고, 혼자 목욕을 할 수도 없고, 화장실에 갈 수도 없는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나우웬은 잃어버린 집을 찾아갑니다. 내 아버지 집을 찾습니다. 거기서 참 평안을 얻습니다. 

2. 우리 인생은 “내 아버지 집”으로 가는 여정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곧 제자들을 세상에 남겨두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 없는 제자들은 과연 어떻게 될 것입니까?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신앙공동체를 유지해갈 수 있을 것인지, 예수님의 바통을 이어받아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역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 몹시 의문스런 것입니다. 
한편, 지금까지 의지해온 스승을 잃은 제자들의 마음은 몹시 혼란스럽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막막하고, 걱정 근심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했던 나날은 집에 있는 것처럼 평안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떠나가시면, 집을 잃은 사람들처럼 방황할 것입니다. 불안과 외로움이 밀려올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1절)고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2-3절)
내 아버지 집, 하나님이 계신 집, 예수님과 함께 사는 집, 그 집이 있으니 근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3. 그런데, 예수님이 떠나가시면 집을 잃게 됩니다. 근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안과 염려가 생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근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믿음이 있으면 근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으면 근심하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확실하게 붙잡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이제 떠나가시면 제자들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보는 것처럼 확실히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천국에 이르기까지, 내 아버지 집에 도달하기까지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예수님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을, 보는 것처럼 붙잡고 사는 것, 이것이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는 삶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 4절을 봅시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도마가 대답합니다.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주님께서는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제자들이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도마는 모른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그 길을 아십니까? 

많은 사람들, 아니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 길을 안다고 하면서도 엉뚱한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많이 벌고 많이 가지고 누리면 그것이 천국에 이르는 길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잘 되면, 천국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칭찬하면 천국에 이르는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가진 것, 하는 일, 남들의 평가- 이것들은 결코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가지고 있다가 때로 가진 것을 잃기도 합니다. 많은 일을 하다가도 그 일을 그만 두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소유에 의해, 자신의 일에 의해, 남들의 평가에 의해 자신이 누구인줄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날 주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지었고, 모태에서부터 너를 조직하였다.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내 품의 그늘에 너를 숨겼다. 나는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였고, 너의 머리털까지 다 헤아릴 정도로 너에게 관심이 많다. 나는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 하였고, 너를 지켜주었다. 너는 내게 속하였다. 너는 내 아내요, 내 자식이요, 내 연인이다. 네가 어디에 있든지 나도 거기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너와 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녀임을 믿고 사는 것, 이것이 천국에 이르는 길을 걷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4. 어떤 조각가가 커다란 대리석 덩이를 놓고 망치와 정으로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켜보던 한 어린 소년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몇 주 후에 아이가 작업실에 와 보니 놀랍게도 전에 대리석이 서 있던 자리에 크고 힘센 사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소년은 몹시 흥분하여 조각가에게 달려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대리석 속에 사자가 있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조각가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대리석 속에 사자가 있는 걸 안 것은 대리석 속의 사자를 보기 전에 먼저 내 마음 속에서 사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헨리 나우웬, 영성수업, p.33-34)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다듬어 가시는 조각가 이십니다. 
거장 하나님의 마음 속에 늘 우리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 속에 있는 그림대로 우리를 만들어 가십니다. 
필요없는 부분은 깎아내십니다. 깎일 때, 고통스럽습니다. 
내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에는 반드시 고통이 찾아옵니다. 
그 고통을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마십시오. 
고통을 대면하고 몸으로 고통을 살아가십시오. 
암을 이기는 길은 암을 친구로 삼고 같이 살아가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5. 몸으로 고통을 살아가는 것,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집으로 가는 길의 길잡이가 되어주십니다. 
낯선 곳을 찾아갈 때, 길을 물으면 대답하는 사람의 유형이 둘 있습니다. 
“똑바로 가서 첫 번째 네거리에서 좌회전하고 계속 가다가 두 번째 신호등에서 우회전하고, 첫 번째 골목에서 우회전하여 들어가다가 다시 두 번째 골목에 들어가면 됩니다.”

듣기는 들었는데, “네,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하고는 다 까 먹어버립니다. 
두 번째 유형은 “저를 따라오세요.”하면서 직접 목적지까지 안내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번째 유형의 사람은 길잡이일뿐 아니라, 그가 곧 길입니다. 
그만 따라 가면 됩니다. 그가 길이니까.
예수님이 바로 이런 분입니다. 주님이 길이십니다. 주님만 따라가면 됩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붙잡고 살면 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주님이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집으로 가는 길, 잘 걷고 있습니까? 
혹시 길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조용히 자신을 돌아봅시다. 내가 집으로 가는 길에 제대로 서 있는지.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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