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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요 3: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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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요 3:22-30)


(요3:22-30) 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1. 지난 6월 28일 미국 경제 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명인 100명 중 1위인 흑인여성 오프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는 세계를 움직이는 10대 여성 가운데 하나이며,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과거를 돌아보면 미래를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성장 환경과 생활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생아로 태어나 9살에 사촌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14살에 출산과 동시에 미혼모가 되었고, 아이는 태어난 지 2주 만에 죽었고, 그 충격에 가출하여 마약복용으로 하루하루를 지옥같이 살았던 굴절된 삶으로 시작된 사람이 오프라 윈프리였습니다. 이렇게 치명적인 과거의 아픔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미국에서 가장 돈 많은 흑인’(약3조 4천억원), 전 세계 144개국에 방영되며 미국에서만 매주 4400만명의 시청자들에게 즐거움과 깨달음과 용기를 북돋워 주고 있는 ‘오프라 윈프리 쇼’ 진행자로 성공했습니다. 

그녀는 미시시피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초라하고 불행한 흑인 소녀로 시작했지만 미국 방송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조지 포스터 피바디 개인 성취상을 수상했습니다. 윈프리는 출판 및 언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되어 국민에게 독서열을 고취시키고 서적 판매에 공헌한 공로로 출판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황금 메달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밖에도 오프라는 탁월한 토크쇼 진행자로서 ‘에미상’을 무려 30여 차례나 수상했습니다. 

그 외 ‘밥 호프 인도주의상’, UN이 선정하는 ‘올해의 세계 지도자상’ 수상자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단순히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 아니라, 텔레비전 문화와 미국 문화를 바꿔버린 새로운 문화의 창조자로 불리울 정도로 대학 총장이나 정치인 등 어떤 지도자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삶의 롤 모델(a role model)은 ‘모세’,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사명을 받은 ‘모세’ 라고 말했습니다. ‘과거가 미래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없다.’면서 가난함도, 부유함도, 꿈도, 근심도, 자신에게 부닥치는 모든 것을 사명으로 받아 들였고 이 사명감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자서전 ‘이것이 사명이다.’에서 그녀는 자신의 인생철학을 네 가지로 말했습니다. 

첫째,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둘째, 남보다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셋째, 남보다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넷째, 남보다 부담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짐이(문제) 아니라 사명이다. 

부닥치는 모든 것을 사명으로 받아 들였고 이 사명감이 오늘의 오프라 윈프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2. 오늘 본문의 세례 요한은 자신을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말로 소개합니다. 이는 세례 요한이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밝히는 말입니다. 세례 요한은 분명한 사명을 띠고 예수 그리스도 탄생 6개월 앞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출생 과정은 이렇습니다. 세례 요한의 부모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입니다. 이들 부부는 모두 영광스러운 제사장 가문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진정한 의인일 뿐만 아니라 당시 모든 사람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경건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 부부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아니하고 주어진 사명을 묵묵히 감당해 갔습니다. 그 가운데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제사장 사가랴가 때마침 성전에서 기도드리고 있을 때 천사로부터 ‘요한’이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게 되리라는 수태고지(受胎告知)를 받게 됩니다. 

(눅1:11-17)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는 말씀처럼 사가랴가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 천사로부터 수태 고지를 받은 것입니다. 더욱이 태어날 아들이 온 인류를 구원하러 세상에 오시는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 ‘주 앞에서 큰 자’로 선택되었다는 영광을 얻음으로써 지금까지 그 어떤 부모도 얻지 못한 큰 은혜를 입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의 탄생은 사가랴의 개인적인 기쁨만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기쁨이 될 것을 알렸습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아니한 태아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요한이 성령 충만하여 엘리야의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례 요한은 분명한 사명을 띠고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태어났습니다. 이 세례 요한이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시자 ‘광야의 소리’가 되어 엘리야의 심정으로 회개하라 외치며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떠하신 분이신가를 세상에 소개합니다. 

(마3:1-13)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 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세례 요한이 세상에 소개한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며 장차 심판주로 오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자기 자신은 그에 비하면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도 없다.’며 자신의 위치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어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요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며 인류 구원을 위한 어린양 희생 제물로 세상에 오시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이후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예수께서도 유대 땅으로 가셔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세례 요한보다도 예수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더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또한 요한의 제자와 예수의 제자들 사이에 변론이 있었는데(본문 25,26절) 그 내용은 “이제 너희 선생, 요한의 시대는 끝났고 지금은 예수의 시대가 되어서 요한의 제자들 다수가 예수를 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 수는 점점 쇠하여지고, 예수의 제자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세례 요한의 대답은 분명하고 유쾌하였습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본문 29절) 이 시대 역사의 주인공은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자신은 그의 들러리에 불과한 친구로서 “그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요한의 사명은 이스라엘과 예수를 함께 만나게 하는 것, 그리고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인 이스라엘 사이에 혼인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명이 완성되어 다 끝났을 때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그의 기쁨이요 행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흥하여야 하겠고 자기는 쇠하여야 되겠다.’는 것은 질투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자기 사명을 다 하는데서 오는 충만한 기쁨이었습니다. 기쁨이 충만한 세례 요한의 삶은 먼저 자신의 위치를 아는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당시 세례 요한은 수많은 제자들의 존경과 신망을 한 몸에 입고 있었고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한 종파의 지도자로서의 권세와 명망을 휘날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에 관해 의구심을 나타내는 제자들의 시기섞인 말을 일축하고 오직 예수만이 흥해야 한다는 감격적인 증거를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먼저 예수와 자신을 비교할 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구세주이시며, 자신은 그 예수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하기 어려운 미천한 존재임을 자각한데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당시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가 어떤 분이신가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관계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로 가는 것에 대해 의구심과 시기가 가득한 눈빛을 보냈던 것입니다. 예수에 대한 자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것입니다. 모름지기 인간은 예수를 바로 알 때만이 비로소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바로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명령하셨습니다. “(창2:16-17)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그런데 간교하기 그지없는 사탄이 하와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창3:1)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와가 대답합니다. “(창3:2-3)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그러자 사탄이 이렇게 반박하며 유혹합니다. “(창3:4-5)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그래서 하와가 사탄의 말을 듣고 그 나무를 보니 과연 “(창3:6)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습니다.” 

결국 하와는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니까 아무 말도 없이 받아 먹었습니다. 분명 하와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사실을 지적하고 회개하도록 권면한 것이 아니라, 낼름 받아먹은 것입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벌거벗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치마를 만들어 몸을 가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부터 지닌 순수하고 고귀한 영적 순결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수치를 가리고자 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날이 서늘할 때에 하나님께서 동산에서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두려워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셔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임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했던, 그래서 범한 죄를 회개하고 인간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 길을 잃어버린 어린양과 같은 인생들을 찾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는 말씀은 “사람아(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지금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예수께서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15:3-7입니다. 

(눅15:3-7)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그러므로 인생은 세상에 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여 하나님 앞에 돌아올 때 자신의 존재 가치와 목적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하나님께서 자식을 약속하셨지만 오랫동안 잉태되지 않자 자신의 몸종 하갈을 남편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주어 자녀를 얻고자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군말하지 않고 아내의 뜻을 받아들여 하갈이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갈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 교만하여 자기 여주인을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사라의 학대를 받다가 도망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사자가 하갈에게 나타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고 물었습니다. 하갈이 ‘내 여주인을 피하여 도망하는 중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하나님의 사자가 ‘너는 네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복종하라.’ 며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명령합니다. 주인의 자식을 잉태하게 되었다고 해서 몸종이 주인의 아내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갈이 있어야 할 위치는 사라의 몸종이고, 아무리 사라가 학대한다 할지라도 그 위치를 벗어나지 말고 사라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설사 주인의 자식을 낳았다고 할지라도 종이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지혜서 잠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30:21-23)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배부른 것과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간 것과 계집 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인생은 날고 뛰어도 어디까지나 피조물입니다. 아무리 학식이 높고, 가진 것이 많을지라도, 그리고 하늘을 찌를듯한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해도 피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만들어진 피조물입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인생은 죄를 용서하시는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 존재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존재의 목적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그 존재 의미와 목적을 이렇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1:3-6입니다.

(엡1:3-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모든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우리를 자기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분이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은혜와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그런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된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모든 영적인 축복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저 주신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의 십자가를 통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인에게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해도 죄인의 삶은 허무와 저주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하루를 살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은 한 줌의 재나 흙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지닌 가치있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언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요1:6-8)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자신의 존재 의미와 목적을 바로 깨닫고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삶을 산 요한을 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세례 요한처럼 수태고지를 받아 태어난 것보다 더 훨씬 전에, 곧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하시는 신령한 복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성도 여러분에게 그러한 신령한 복을 주셨습니다.(엡1:3-6) 이를 베드로는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는 말씀으로 성도 여러분에게 주어진 사명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희생하신 아름다운 덕을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명을 다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He must increase) 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이 흥왕해야 나라 백성이 흥왕해진다는 것입니다.(The nation and people must be increase)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태초에 천지만물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창조의 ‘생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말씀’으로 하늘과 땅, 바다에 생명으로 충만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흥왕해야, 다시 말해 ‘말씀’이 흥왕해야 창조의 생명이 나타나고 삶이 흥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큰 은혜로(왕상3:6) 왕이 된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번 예배를 드렸더니 다음과 같은 복을 받았습니다. 열왕기상3:11-14입니다. 

(왕상3:11-14)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솔로몬이 구하지 아니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는 축복의 조건은 그 아비 다윗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말씀대로 행하여 전무후무한 지혜와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점차 부귀영화에 도취되어 하나님 말씀이 희미해져 하나님 말씀이 ‘쇠미’(decrease)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날로 우상숭배가 성행(盛行)하기 시작하자 나라 백성도 ‘쇠미’(decrease)해졌습니다.(He must increase, but I must decrease.) 열왕기 상11:1-13입니다. 

(왕상11:1-13)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국민에게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와 서로 통하지 말며 저희도 너희와 서로 통하게 말라 저희가 정녕코 너희의 마음을 돌이켜 저희의 신들을 좇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저희를 연애하였더라. 왕은 후비가 칠백인이요 빈장이 삼백인이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또 이족(異族) 후비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저희가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저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하사 다른 신을 좇지 말라 하셨으나 저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결국 솔로몬은 하나님 말씀이 흥하지 못하여 나라 백성이 쇠미해져 남북으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은 이러한 선왕과는 달리 우상을 타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흥왕하게 하였더니 나라 백성이 흥왕하게 되었습니다. 열왕기 하18:4-7입니다. 

(왕하18:4-7)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히스기야 왕은 등극해서 제일 먼저 우상숭배로 더럽혀진 성전을 성결케 하기 위해 모든 우상들을 철저히 척결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예배를 회복시켰습니다. 성전을 더럽히고 예배를 폐하였기 때문에 나라 백성들이 전쟁에서 패하여 죽임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해 이방인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하29:6) 우리 조상들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그분을 저버렸으며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또 그들은 성전 문을 닫고 등불을 끄고 성소에서 분향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불로 태워 바치는 번제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분노하셔서 우리를 두려움과 놀라움과 조소의 대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여러분도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전쟁에서 죽임을 당했고 우리의 자녀들과 아내들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 왕은 거룩한 제사장들을 세워 모든 예배와 절기를 회복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에 힘쓰게 하여 전국에 걸쳐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대하30:5-6,12, 대하31:4) 다시 말해 하나님 말씀이 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과거 솔로몬 때 이후 누리지 못한 큰 기쁨과 축복을 받아 나라 백성이 흥왕하게 되었습니다.

(대하30:26) 예루살렘에 큰 희락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희락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

(대하32:22-23)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거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로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열국의 눈에 존대하게 되었더라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명으로 사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이 성도 여러분 가정에 흥왕하여 영육간에 주어진 모든 삶이 흥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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