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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 (창 3:20-24, 마 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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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What Is the Kingdom of God?)
성경 : 창 3:20-24, 마 6:9-13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의 모습을 기록한 예화가 나옵니다. 사람 속에는 하늘과 땅의 요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네 가지 천사적인 요소가 있고 네 가지 동물적인 요소가 있다 했습니다. 천사적인 요소에는 말할 수 있는 것, 지혜, 곧게 서서 걷는 것, 그리고 눈빛이 있습니다. 동물적인 요소에는 음식 먹는 것, 배설하는 것, 생식하는 것, 그리고 죽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이 천사적인 요소를 사모하고 그렇게 살면 영원히 살게 되고, 그것을 잊어버리고 동물적인 요소에 살면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물론 탈무드는 성경이 아니니까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만, 재미 있는 교훈입니다.

파스칼은 인간을 천국과 지옥의 중간적인 존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요소가 아닌 동물적 현실적인 것들에 빠져 있습니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더 많이 알고 더 깊이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왕국(kingdom, 바실레이아) 입니다. 왕국은 왕이 지배하는 영역입니다. 서울에는 과거에 왕이 거주하던 도성으로서 동대문, 남대문 같은 문들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사랑하는 대구에도 옛날의 성의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남쪽에 있던 성인 남성을 허물고 거기에 길을 냈기 때문에 남성로라 부릅니다. 동성로, 북성로, 서성로라는 울타리 속에 예전의 대구가 존재했고, 대구 성주의 지배를 알뜰히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지배하시는 거룩한 영역 안에 속해 있는 삶입니다. 이곳에 참된 평안이 있고 주님이 주시는 거룩한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복음주의 기독교 내에서는 하나님 나라가 지금 가시적(可視的)으로 나타날 것에 대한 기대감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재림하셔야만 비로소 그분의 나라가 이땅에 세워질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복음주의 진영의 하나님 나라 개념은 아직도 매우 소극적이고 패배주의적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마귀가 점점 더 득세하여 대부분의 교회가 타락하고 매우 연약하게 될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이를 통해 마귀는 점점 온 세상을 점령하여 마침내 잠시 동안이지만 세상을 통치하게 될 것으로 알았습니다. 모든 것을 거의 다 잃은 것처럼 보일 때 갑자기 예수께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지난 20세기의 교회는 미국 교회에서 크게 유행한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의 영향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수동적이고 왜소하고 패배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악이 증가하는 것을 하나님의 허락하신 뜻으로 여기도록 가르침을 받았고, 사탄이 점차적으로 모든 것을 접수할 것이라는 가르침을 받아왔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흑암이 온 땅을 완전히 덮기 전에 이 악한 세상에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애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역사적으로 우리 선조들이 믿어 왔던 것처럼, 전투적이고 승리에 찬 마지막 시대(end-time)의 교회를 꿈꾸며 이를 위해 진군해야 합니다. 18, 19세기의 미국의 대각성 운동(the Great Awakening)을 비롯해서 모라비안 교도들, 종교 개혁자들, 그리고 청교도들은 모두 승리하는 교회관을 굳게 붙잡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때에 큰 갈등의 시대가 오겠지만, 그 시대는 패배의 시대가 아니라 모든 장애를 무릅쓰고 하나님의 나라가 진군하는 그런 시대가 될 것이라고 그들 모두는 확신했습니다. 환난과 갈등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심해지겠지만, 그들은 마지막 시대에 교회가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땅을 정복하고 전세계적인 대추수를 하게 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때까지 이땅에서 우리의 주된 임무는 하나님의 나라를 힘차게 진군시키는 성령님과 동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먼저 우리 안에서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런 후에 그 나라가 우리를 통해 밖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나라를 더 알아야 하고 이 나라의 권세와 능력을 더 받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Alan Vincent의 ‘Heaven on Earth’에서 많은 부분을 참조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넓어지기를 바라고 그 나라의 권세와 능력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기를 바랍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입니까?


1. 태초에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 (= 에덴동산, 아담과 하와, 실낙원)

창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 3:23-24=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땅을 아름답게 만드시고 그 땅에 에덴 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8절). 아담과 하와를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은 에덴에 완벽한 평화(샬롬)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 나라의 백성인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은 지적, 도덕적, 영적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지적인 하나님의 형상은 동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지혜를 말합니다. 도덕적인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 속에 선한 것을 좋아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는 양심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영적인 형상은 인간 속에 있는 신앙심, 하나님을 찾는 본능적인 마음을 의미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 형상으로 만물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권세가 주어졌지만 그것은 위임된 권세였고, 그들이 하나님께 완벽하게 순종하는 동안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무제한으로 그들에게 흘러 들어와서 생명의 능력으로 가득하게 되어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만물을 성공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 전에는 참된 안정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는 아기가 엄마의 품에 안겨야 울음을 그치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품 안에서 참된 만족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품 안에 포근히 안겨서 만족을 누리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최초의 조상들은 에덴에서 완전한 질서 속에 머물렀습니다. 만물은 하나님 나라 안에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심히 좋고 아름다웠습니다. 거기에는 타락도 악도 미움도 죄도 질병도 죽음도 없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그곳은 낙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은 이 나라 밖에 있었고 들어올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사탄의 영역 밖이어서 사탄은 이를 만질 수도 없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런데 어떻게 에덴동산이 실낙원(失樂園)이 되고 말았습니까? 인간 범죄와 타락을 기술하고 있는 창세기 3장의 기록에 의하면 뱀이 인류의 조상을 유혹하여 하나님이 금하신 규정을 어기도록 했다고 했습니다. 사탄의 전략은 하나님께서 땅을 다스릴 권세를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을 때 그들을 장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사탄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나오도록 해야만 했습니다. 이를 위해 사탄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존재, 즉 스스로 통치하는 존재가 되도록 유혹하고 설득했습니다.
사탄은 아담 부부가 죄인이 되도록 직접 초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신에 교활하게도 그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내적 잠재력을 발휘하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암시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도록 유혹했습니다. 

먼저 하와가, 그 다음엔 아담이 이 거짓말을 듣고 타락했고, 하나님 나라에서 나와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자유케 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힘으로 보다 더 온전히 하나님처럼 되리라 기대했습니다. 이 얼마나 비극적인 결정이며, 이에 따르는 고통과 불행 속에서 얼마나 큰 대가를 치루어야만 했습니까! 이는 그들 뿐만 아니라 그들 자손들, 이땅의 모든 인류의 운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들이 이처럼 비극적인 결정을 했을 그때 하나님의 첫 번째 외침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였습니다. 그것은 지금 하나님과 그의 피조물인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깨어진 관계와 분리에 대한 고통의 외침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고도 순결하고 부끄럼 없이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전처럼 기쁨으로 그분의 임재 앞으로 달려나가는 대신에 거룩하신 하나님에게서 도망하여 숨었습니다.

하나님은 중대한 결정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사탄과 그의 졸개들을 멸망시키고 사탄의 왕국을 파괴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경우 죄를 범한 인류를 동일하게 심판하셔야 했기 때문에 사탄의 심판을 연기하시고 아담 종족을 구속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구원의 문은 마지막 심판 날까지 만민에게 계속해서 열려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기꺼이 그분의 나라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이땅에 그분의 나라의 영광을 세우기로 작정하는 모든 자들과 화해하시기로 정하셨습니다. 이제 인류는 이땅에 사탄의 통치와 하나님의 통치 중 하나가 세워지는 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섭리 기간 동안에 이 땅은 문자 그대로 두 왕국의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시기 전 수 천년동안 사탄은 온 땅을 활보하며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독립적인 ‘자유의지’를 사용하고 그들의 욕망을 따라 살며 이 세상의 풍습과 정욕을 따르도록 유혹하여 수많은 자들을 속박해 왔고, 그들을 죄와 사망의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가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는 자들을 찾으신 하나님은 임시이긴 하지만 그들을 통해 세상에 빛을 보이셨고, 그 결과 잠시 하나님 나라와 비슷한 모습을 가져왔지만, 그 어느 것도 지속되진 못했습니다. 태초에 시작된 하나님 나라는 이처럼 훼손되어 이제 새로운 시작을 가져올 ‘한 사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시작 (= 성육신, 십자가와 부활)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이 되시기 위해 친히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셨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예수님은 아담이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 전에 순전한 상태에서 살았던 바로 그 인성(人性)을 입으시고 이땅에 머무셨습니다. 아담을 통해 유전되던 죄성(罪性)을 끊기 위해 예수님은 남자의 씨 없이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모든 의를 이루시기 위해 예수님은 인성의 한계 가운데 사셔야만 했습니다. 비록 온전히 하나님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신성의 능력에 의해 사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이땅에서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이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셨고, 자신을 성령님께 온전히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온 삶을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살기로 결단하셨습니다. 한순간이라도 결코 독립적인 존재가 되지 않으셨고, 그 나라의 통치와 능력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그 결과 악한 자(= 사탄, the Evil One)는 그분의 인생을 결코 만질 수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첫사람 아담의 삶과 예수님의 삶은 어떻게 달랐습니까? 두분의 삶의 가장 큰 차이는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에 대하여 그들이 가졌던 결단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하며 살기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전생애를 통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 가운데 머무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독립적으로 살기로 선택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나와서 자가 공급을 하며 살기 시작했을 때 그는 즉시 하나님 나라의 보호와 능력을 상실해 버렸고, 대신에 사탄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땅에 하나님 나라가 새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육체를 입으시고 죄의 모든 빚을 친히 감당하셨습니다.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모든 아담 종족을 대신하여 그 빚을 갚으셨습니다. 주님은 친히 인류를 위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다 짊어지셨는데, 이는 인류를 사탄과 죄의 노예된 상태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으로 오셨을 뿐 아니라, 그분의 삶의 또 다른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공생애 초기부터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고 그 나라를 가르치고 보여주기 위해 시간과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미래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도 말씀하셨지만 오히려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더 많은 강조를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들에게 회개와 더불어 독립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삶에서 돌아와 그분처럼 살도록 초청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자신을 즐겁게 하는 삶을 버리고 대신 예수님처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일단 회개하기로 결단하고 주께 나오면 십자가 보혈과 부활의 능력을 통해 그들의 모든 죄를 사하고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는 구원을 허락하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친히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주님의 공생애 사역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주님께서 능력으로 귀신을 추방하고 병들을 고치시며 능력을 행하심으로 함께 한 무리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직접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위대한 능력을 전수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 10:1).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을 통해 나타났던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능력은 이제 오늘 우리에게까지 확장되어, 우리 또한 예수 이름을 믿음으로 이 능력을 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믿는 모든 자에게 주님께서 주신 이 위대한 약속이 성도 여러분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3. 그리스도인, 하나님 나라의 존귀한 백성 (= 백성의 특권과 의무)

이제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우리들에 대해 함께 살펴봅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존귀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백성 된 우리에게는 엄청난 특권과 동시에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새로이 시작하였음을 확신하여 예수님을 자신의 영원한 주님으로 영접한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믿고 회개함으로써 실제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신약성경의 모든 기자들과 전도자들이 ‘하나님의 나라’ 라는 주제에 대하여 부여한 우선순위에 주목하십시오. 그들은 언제나 예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를 전했습니다.

세례요한을 보십시오. 유대광야에 나타나서 백성들에게 외친 그의 최초의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입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선포하며 두가지를 말하는데, 첫째는 회개에 대한 촉구이고 다음은 성령과 불세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첫 번째 문제는 진정한 회개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회개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누구나 진정한 회개의 관문을 거친 자입니다. 회개는 죄를 슬퍼하는 것과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회개란 완전한 마음의 변화를 의미하며, 이로 인해 실제로 우리의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적 단어인 회개는 너무나 급진적이고 너무나 온전한 마음의 변화를 의미하며, 이로 말미암아 라이프스타일(lifestyle)이 영구히 변하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자동차의 주인이 예수님께 “저는 결코 이 차를 잘 몰지 못합니다. 제 차를 완전히 받아주십시오. 지금부터 저는 그저 승객이 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이제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제 차를 운전해 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일이 생길 때까지 우리는 전정으로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죄를 슬퍼하는 것은 아직 회개가 아닙니다. 내가 변화되길 바라면서 우는 것도 아직 회개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회개에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의 통치하에 맡긴다는 근본적인 결정을 하기 전까지는 진정한 회개라 할 수 없고, 또한 하나님 나라에 진정으로 들어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 공동체와 하나님 나라의 교회를 낳을 수 있습니다. 대구 땅에 하나님 나라를 가져올 수 있는 자는 오직 하나님 나라에 이미 들어온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가지신 큰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사탄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우상의 세력이나 타종교의 도전도 진정한 문제는 아닙니다. 주님에게 있어서의 주요 도전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일을 중단하고 무조건적으로 주님의 뜻을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이 달성되기만 하면 마귀와 그의 흑암의 나라를 다루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문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존귀한 백성 여러분!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완벽한 정의를 내리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구해라고 하셨고, 심지어 우리의 필요를 구하기 전에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라는 말씀으로 정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절대적으로 순복한다는 원리를 우리가 받아들이기만 하면, 죄의 근원인 독립적인 삶은 완전히 절단됩니다. 그리고 일단 참된 회개의 문제가 해결되면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것이 예수께서 지상에서 사셨던 삶의 방식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인성을 성령님이 소유하시고 통제하시도록 완전히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은 그분의 나라를 이땅에 다시 세우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이땅의 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우리 자신을 드린다면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이땅에 하나님 나라를 힘차게 진군시키신 것처럼 우리를 통해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단지 죄 사함만을 전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 사함은 중요한 문제이지만 중심 이슈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와서 너의 삶을 온전히 통치하길 원하느냐?“ 라고 물으십니다. 이것이 진짜 이슈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이 질문에 ”예“ 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여러분에게 임했는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이 시간 다음과 같은 단순한 질문을 자신에게 해 보고 정직하게 대답해 보십시오.


* 나의 매일의 삶에서 실제로 결정자는 누구인가? 나인가 아니면 하나님이신가?
* 나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시간을 사용하는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대로인가?
* 나의 현재 직업은 어떤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정해주셨는가 아니면 내 스스로 결정했는가? 
* 돈은 어떤가? 십일조와 다른 헌금을 하나님께 드릴지 모르겠지만 그 나머지 돈은 어떤가? 모든 돈은 주님의 것이며 주님이 이를 다스리셔야만 한다고 믿고 있는가?
* 하나님께서 참으로 현재 교회의 상황 가운데 나를 두셨고, 나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 안에 들어와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항상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될 것입니다.
(대구서현교회, 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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