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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시하심을 받아 (마 2: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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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하심을 받아 (마 2:19-23)


교회에 출석하는 기독교 교인 한 분이 어려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다 난생처음 대단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면 그 길로 가겠다고 작정한 것입니다. 하나님 뜻을 어떻게 물을 것인가 생각하던 중 성경에서 하나님 뜻을 찾기로 했습니다. 성경을 펼쳐 거기에 나오는 성경구절이 지시하는 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뜻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한 후, 성경을 펼치자 마가복음 14장이 나왔습니다. 거기에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주려고 대제사장에게 가매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막14:10~11) 라는 구절인데, 아무리 보아도 자기가 할 일이 아니다 싶어 다시 한 번 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마태복음 27장이 나왔습니다. 유다가 은을 성서에 던져놓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27:5).. 이 역시 아무리 보아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하는 삼세판이라 생각하고 다시 성경을 열었는데 이번에는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10:37)라는 구절이 나왔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이 틀림없기만 하다면 그 길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그 길을 선택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 길을 가르쳐 주시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인도해주시기만 하면 인생이 참 쉽겠지만 그것이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정말로 철저합니다. 얼마나 잘 인도하시는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내 인생도 이렇게 되기만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마다 일마다 하나님께서 길을 지도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았습니다. 별을 보니 하나님께서 위대한 왕이 태어나셨다는 계시를 주셨습니다. 이 계시를 받은 동방박사들은 별만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먼 길을 왔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헤롯왕이 자기 자리가 위태하다고 생각하여 어떻게 하든 간에 태어난 아기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동방 박사들을 불러 “그 분을 만나면 나한테도 가르쳐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 드리겠습니다.” 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예수님께 경배 드리러 온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역할을 할 지경이었습니다. 큰일 날 뻔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동방박사들에게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12절) 이렇게 인도해주시니 참 편합니다. 

또 헤롯이 어떻게 하든 간에 그 아이를 죽이려고 하자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13절) 라고 지도해주셨고, 헤롯왕이 죽은 후에는 일어나 그 아기와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라 (19절)라고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지시하였습니다. 

당시에 인터넷이 있습니까? 신문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세상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로 돌아온 요셉은 헤롯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아들은 아버지 헤롯 못지않게 포악한 왕이라는 소문을 듣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러면 구태여 유대로 갈 필요가 없다. 북쪽 갈릴리로 가거라.” 라고 지도해주셨습니다. 이처럼 순간마다 지도해주십니다. 이렇게 지도함을 받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라기는 이 자리에 계시는 여러분의 인생이 이렇게 하나님의 편안한 지도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사랑하는 가족들 그중에서 자녀들이 이런 인도함을 받을 수 있도록 많이 기도해주십시오. 이렇게 되면 인생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모습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꿈을 통해서 지도하시기도 하고,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지도해주시기도 합니다. 다윗이 성전을 짓기만 하면 좋은 줄 알고 성전을 지으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종 제사장을 통해서 성전을 짓지 말라고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일은 자주 있습니다. 우리도 이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무엇을 압니까? 여러분들보다 훨씬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입니다. 때때로 여러분들이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종에게 물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도 하십니다. 

또, 다른 사람을 통해서 길을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아내를 통해서, 여러분의 부모님을 통해서, 여러분의 자녀를 통해서, 교회 교우들을 통해서 여러분의 길을 지도해주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겸손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귀를 열어놓으실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어떤 방향으로, 어떤 통로를 통해서 우리 길을 지도하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환상을 통해서 하시기도 합니다. 백부장 고넬료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일은 참으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욥바에 가면 베드로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분을 모셔라” 라고 환상 중에 말씀하셨습니다. 또 베드로에게도 환상을 보이셨습니다. 하늘에서 보자기가 내려오는데 그 속에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잡아먹으라.’ 라고 하였으나 베드로는 세 번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그릇은 곧 하늘로 올려져 갔습니다. 베드로가 이 환상이 무슨 뜻인지 의아해할 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그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유대인으로서는 만날 수 없는 이방인들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때서야 베드로는 그 환상의 뜻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인 아닌 이방인이라도 만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우리로서는 힘들지만 병을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병이 있을 때 혹시라도 이 병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지 않는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지도하십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때가 없었다고 생각될 그때 오히려 하나님께서 아주 좋은 길을 준비하시고 여러분을 그 길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장애도 있습니다. 장애되는 일, 여러분 앞길을 막는 장애 같은 사람이 여러분을 힘들게 할 때,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길을 지도하시기도 합니다.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아시아에서 전도가 잘 되고 일이 잘 풀렸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많은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는데 몸에 병이 나고 풀리던 문제가 풀리지 않고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유럽에서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서야 바울은 자신의 병이, 일이 풀리지 않는 장애들이 바로 이런 것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곧바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유럽으로 가게 됩니다. 

아주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별이 동방박사들을 인도했습니다. 또 점성술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을 인도하는가? 여기에 대해서 마음을 좀 넓혀야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 기독교인들만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각과는 달리 의외로 이방인들도 인도하십니다. 저 사람들은 전혀 하나님 뜻을 모른다,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인도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 사람들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어찌하든 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정말로 인생이 편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보십시오. 일일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보면 인생이 그렇게 쉬울 수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하는 고민이 없어집니다. 자녀 키우는 것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지도를 받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냥 술술 인도하시는데 내가 하려고 하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사업도 그렇고 우리의 갈 길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면 참 좋습니다. 너무너무 황홀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주의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될 때 정말로 주의를 기울여야할 것은 정말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 라는 것입니다. 아닌 것을 두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잘못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분별해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항상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겸손한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말할 때가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조아리며 자꾸 하나님께 물어보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에 있어서 먼저 우리가 알아야할 기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입니다. 온 땅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늘 지켜보시고 필요하시면 인도하십니다. 때로는 강권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 하기도 하시고 혹은 막아버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는 일일이 간섭하시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지도 선택권도 아무 생각도 없는 로봇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꼭 생각해야합니다.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로봇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택을 행사할 수 있도록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것을 맨 처음 보여주신 것이 창세기의 선악과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철조망으로 가려놓지 않았습니다.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따먹든지 따먹지 않든지 마음대로 하는데, 나는 따 먹지 말라고 했지만 만일 따먹으면 그 결과는 네가 책임져야 할 것이고, 내 말을 듣고 따 먹지 않으면 복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 있어서 ‘꼭 이렇게 해야 한다.’ 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 교인들이 하나님께서 꼭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지 자주 질문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대체로 선택해도 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겸손하게 묻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지 하나님께서 일일이 간섭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 책임져야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미리 답을 주셨습니다. 이 성경 말씀에 따라서 살면 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믿고 따라가면 됩니다. 

또 하나는 신자들이 하나님 뜻을 분별할 때 실패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 때문에 하나님 뜻을 잘못 알고 실패할까요? 자기 소원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내 소원이 너무 강해서, 빛이 너무 강해서 하나님께서 ‘얘야, 이 길이다.’ 라고 보여주시지만 내가 너무 강하게 소원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답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합니다. 문제는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소원을 내놓기는 하되 너무 강렬하게 요구할 것은 아닙니다. 너무 매달릴 것은 아닙니다. 

요즘 기독교회에 ‘간절한 매달림’이라는 용어와 서적들이 나오는데 말은 좋지만 조심해야합니다. 그것이 기독교적인 부분도 없진 않지만 기독교를 넘어가는 부분이 참 많습니다. 간절하게 매달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것을 기독교에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 외에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썩은 줄에 바짝 매달리면 바로 옆에 바른 줄이 있음에도 그걸 붙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밧줄을 타고 한참 올라갈 때는 괜찮지만 그러다 뚝 부러지는 낭패를 당하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조심해야할 것이 있는데, 신자들에게 있는 확신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위험합니다. 더구나 기독교 신앙을 덧입힌 확신은 얼마나 위험한지 모릅니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는데, 영토분쟁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전쟁보다 더 많은 전쟁이 종교분쟁입니다. 신앙으로 덧입혀놓으면 양보하지 않습니다. 젊은이들 말대로 철모를 쓰고 다른 것은 하나도 보지 못하는 독일병정 같습니다. 오로지 내가 생각하는 그 쪽으로만 가게 됩니다. 이 확신이라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착각하게 합니다. 거기다 신앙이라는 것으로 덧입혀 놓으니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잘못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것은 나의 고집이지 하나님의 확신이 아닙니다. 아집일 가능성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것 때문에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고집부리지 말아야합니다. 정말로 고집부리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물론이고 사람 앞에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이런 생각이 있는데 어떻습니까?’ 이정도가 좋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의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순종하려는 마음입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라면 나는 순종하겠다는 그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당신의 계시를 순종하지 않을 사람에게는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순종할 사람에게만 당신의 뜻을 보여주시고 길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순종이 있을 때, 순종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 있습니다. 

순종을 결단하거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특별히 순종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정말로 놀라운 복이 따릅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복이 왔는지 나도 잘 모르고 다른 사람도 깜짝 놀라는 일이 있습니다. 참으로 큰 은혜를 주시는데 먼저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마음먹고, 이런 저런 일에 순종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 길을 하나하나 인도해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이때는 이렇게, 저때는 저렇게 인도해주십니다. 나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 남편, 내 자녀의 길을 인도해주십니다.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는 그 길을 축복해주십니다. 가는 걸음마다 잘되게 해주십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어떻게 이스라엘에게 믿음의 아버지가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뜻을 잘 알아야합니다. 당시에는 오로지 고향, 친척, 일가, 가족들밖에 없었습니다. 법이 그러했고 뭐든지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여러 가지가 부족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으므로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은 곧 죽음과 같은 시대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일어나라 그리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방향도 제대로 가르쳐 주시지 않고, 길도 가르쳐 주시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브라함을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셨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최고의 믿음의 아버지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동방박사들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니 그 먼 길을 별을 보고 지금은 어떻습니까? 성탄절마다 노래로 연극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하를 받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치하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별을 보라고 했더니 그것만 보고 따라온 사람들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참 많습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을 노래하고 연극할 때 알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저 사람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별들만 보고 하나님을 순종해서 따라왔는데 내 인생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때로는 주의 종을 통해서 때로는 아내를 통해서 또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데 과연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했는가? 생각할 필요가 많습니다. 

이제 본문의 요셉을 봅니다. 요셉이 하나님께 얼마나 순종했습니까? 약혼녀 마리아가 임신을 했습니다. 자기는 동침한 적이 없었으므로 마리아가 죄를 지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임신했다고 꿈에 사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든 일입니까? 이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한번이라도 있었다면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이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요셉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마1:24)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곧바로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쉬운 일 같습니까? 참 어려운 일입니다 .

또 헤롯이 아이들을 죽인다는 소식을 아직 알지 못하는 때였습니다. 주의 사자가 밤중에 나타나서 에집트로 피란하라고 말씀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기 그리고 연약한 아내를 데리고 교통편도 없는데 그 먼 길을 갔습니다. 요셉이 어떻게 순종했는지 14절에 꿈에서 본대로 즉시 일어나서 밤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각적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에집트로 떠났다고 말씀하시는데, 이런 순종, 아주 바보 같고 자기 생각은 없는 것 같은 순종을 하는 요셉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하시는지 한 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그 모든 일들이 끝나고 난 후, 하나님께서 다시 꿈에 사자를 통해서 너 돌아가도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다가 유대왕 헤롯의 아들은 그 아버지보다 훨씬 더 포악한 사람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떨렸을 것입니다. 아마 책망 잘 하시는 분들, 야단 잘 치시는 분들이 이때의 요셉을 보았으면 ‘지금까지 그렇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으면 하나님을 믿고 나가야지 왜 그리 의심이 많은가?’ 라고 책망하고 핀잔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순종한 요셉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성경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마치 “요셉아, 겁이 나느냐? 그래 겁이 나지. 나라도 겁이 날 것이다. 너 유대로 가는 것이 겁이 나면 갈릴리로 가면 어떻겠니?”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그렇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은 고집부리지 않습니다. 꼭 이렇게 하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순종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각별한 사랑이 있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으십시오. 예수를 믿으려면 이런 복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힘들고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을 살아갈 때 내가 일일이 생각하고 살아가려면 얼마나 힘듭니까? 하나님 사랑을 듬뿍 받고 살아가면 됩니다. 여러분 자녀들도 하나님 사랑을 받고 순간순간마다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가도록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하는 것이 잘 키우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하는 것을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순종을 했습니다. 인간이신 예수님이지만 그래도 하늘에서 오신 분이 어떻게 그런 기도를 할 수 있습니까? “할 수만 있으면 제가 십자가를 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무도 고통스러운 것을 아셨기 때문에 이렇게 기도했지만 그 다음에는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위대한 순종, 이 순종의 결과 예수님은 온 인류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상당한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어마어마한 고통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다. 그 순종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우리들의 순종은 훨씬 더 값지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들 결단하십시오. “하나님, 저에게 어떤 길을 인도하시고 지도하신다면 저는 따르겠습니다. 힘들더라도 따르겠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여러분들이 진심으로 이런 결단을 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들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축복해주십니다. 순종으로 선택하신 그 길이 가장 안전한 길이 되게 하시고 가장 행복한 길이 되게 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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