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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한 거짓말 (행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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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한 거짓말 (행 5:1-11)


우리는 지난 주일에 사도행전 4장에 마지막 부분을 통해서 건강한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를 알아보았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교역자와 온 교인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교회다.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초대교회는 12사도를 비롯하여 초대교회 교인들이 뜻과 생각을 하나로 묶어서 성령 충만한 교회, 건강한 교회를 지향하는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아진 교회였습니다.

두 번째 건강한 교회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는 자기의 물건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지 않고 그것을 팔아서 가난하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나누어주고 교회를 위하여 자기의 재산이나 또 자기의 건강이나 자기의 모든 것들을 바치는 등 희생과 헌신하는 교회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건강해 질수밖에 없는 요인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초대교회의 모습을 통해서 전 세계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가 지향해야 할 건강한 교회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대교회는 건강한 교회와 행복한 교회 성장하는 교회 즉 천국교회의 모형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현대 지상에 있는 교회는 어떤가요?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모습과 현재 지상에 있는 교회를 비교해 보면, 현재의 교회도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천국교회의 모형을 닮아 가고 있을까요?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사도행전 마지막 부분에 나타난 천국교회의 모형, 건강한 교회의 모형,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형을 보여주면서, 그런데 이런 교회 안에 교회의 순수성과 교회 건강을, 천국 교회의 모습을 해치는 잘못된 사탄의 계략이 교회 안에 들어와 교회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 오늘 5장 앞부분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니까 4장 마지막 부분과 5장 전반부는 내용면에서 서로 깊이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왜 현재 세상에 있는 지상 교회는 천국교회가 되기 어려울까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라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부부의 모습을 가만히 보면 초대교회에 나온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4장 마지막 절에 보면 교인들이 각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팔아서 아버지 하나님께 가져와 교회 앞에 바치면서 이것 가지고 하나님의 일과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고 하나님께 바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바나바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자기의 밭을 팔아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내어 놓았다고 4장 마지막 절에 기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초대교회 안에는 이런 아름다운 부부들, 가정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가 왜 천국교회의 모형이 될 수 있었냐 하면, 왜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었냐 하면 이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했던 많은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목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성령 충만 받고 은혜 받고 기쁜 마음으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신하고 봉사하고 바쳤던 것입니다.

교회가 건강해 지려면 이런 부부들이 많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건강한 교회는 재산을 모두 다 팔아 땅 팔아 교회에 바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자세입니다. 태도지요. 정직하게 진실되게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가진 것을 아끼지 않고 나누는 삶을 살았던 신앙인 부부들, 그런 가정들이 많았기 때문에 초대교회는 건강해 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 바나바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자기의 밭을 팔아 교회 앞에 바쳐 참으로 교회로부터 아름다운 칭송을 받았던 것을 알고 있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라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자기네들도 한 번 그렇게 해 보자. 해서 자기들의 재산을 팔았습니다. 아마 밭이었겠지요. 그것을 팔아 바치려고 하는데 아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부가 조용히 따로 만났습니다. “여보, 이번에 밭을 팔았는데 돈이 이정도가 남았어. 그런데 교회에 다 바치지 말고 일부분만 바칩시다. 그리고 난 다음에 사도들이 물으면 이게 다입니다. 이렇게 말합시다.” 이렇게 거짓말을 꾸민 것입니다. 부부가 거짓을 하기로 공모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남편이 사도들 앞에 그 판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사도님 이것이 다입니다.” 그런데 아나니아가 이 재산을 바칠 때 베드로에게 그 순간, 주의 성령이 베드로에게 계시를 허락하셨지요. 이 아나니아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다입니까?” “예, 이것이 다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야기 합니다. “아나니야씨 당신이 가지고 있던 재산은 팔기 전에도 당신 것이고 팔고 난 다음에도 당신 것입니다. 당신이 그것을 다 바칠 수도 있고 적게 바칠 수도 있고 그것은 당신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거짓말로 주의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입니까?” 이 말을 하고 나자 주의 성령께서 아나니야를 심판하셔서 그의 영이 떠나갔습니다. 난리가 났지요. 옆에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긴장을 했겠고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교회 안에 있던 젊은 사람들이 이 죽은 아나니야의 시체를 메고 나가 장사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3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 부인인 삽비라가 이 사실을 모르고 또 다시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다시 물었습니다. 정말로 당신들이 교회에 낸 헌금이 이것이 다 입니까? 삽비라가 그 때 똑같이 이야기 합니다. “예, 그것이 다입니다.” 아나니야가 거짓말을 했으면 부인이라도 정직해야 하는데, 기회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부인도 똑같이 공모를 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합니다. “예, 그것이 다입니다.” 그때 베드로 사도가 똑같이 이야기 합니다. 당신 두 사람이 하나님을 성령을 속이기로 공모하고 꾀하여 거짓말을 했으니 당신 남편을 장례 지내고 온 그 사람들이 들어오니 당신도 죽게 될 것이다. 결국 그 자리에서 부인 삽비라도 죽어 들어왔던 그 사람들이 메고 나가 장사를 지냈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오늘 본문 5장 11절에 보면 교회 있는 많은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했더라.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불행한 이야기 입니다. 부부가 갑자기 이렇게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두 사람의 이름을 먼저 보고 싶습니다. 아나니아라고 하는 그 당신에 흔하게 사용하는 아주 좋은 말이었습니다. 아나니아라는 말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라는 뜻입니다. 삽비라는 본래 청옥이라는 보석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삽비라’ 라고 하는 이름을 지을 때는 그 사람이 보석처럼 아름답다는 뜻에서 이름을 삽비라 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보석처럼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정말로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이 두 부부는 어찌하여 이런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였을까요?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4장의 마지막 부분과 5장의 첫 반부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인의 모습은 이런 것이어야 하는데, 만약에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교회도 그 영혼도 망할 수밖에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누가는 이 본문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면 이 부부는 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을까요?

첫 번째, 우리는 본문 2절 상반 절을 통하여 이 부부가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생각을 깨닫게 됩니다. 이 부부는 물질에 대한 지나친 소유권과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2절 상)

이 부부는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 가운데 일 부분을 감추었습니다. 왜 감추었을까요? 우리는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이 부부는 세상에 있는 자기가 소유한 모든 것들이 다 자기 것이라는 물질에 대한 소유권에 지나친 관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 드렸지만 여러분과 제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 생명 시간 재산 건강 사랑하는 가족 일할 수 있는 일터, 이 모든 것들은 다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에 올 때 빈손으로 왔고 하나님의 나라에 갈 때도 우리는 빈손으로 갑니다. 우리는 쥐고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은 다 어디에서 왔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에 이것을 관리할 뿐입니다. 우리는 청지기 일 뿐입니다. 우리는 사용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는 밭을 팔고 난 다음에 그것의 일부분을 몰래 감추었습니다. 밭은 본래 누구의 것이었나요? 그것은 하나님이 이 부부에게 살아있는 동안에 쓰라고 주신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다시 팔았으면 하나님께로 드리는 것이 당연하지요. 그런데 이 부부는 그 중에 일부분을 숨겼습니다. 감췄습니다.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의 생명과 재산과 재능과 눈물과 땀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이 부부는 지나친 욕심이 있었습니다. 내 것이다. 이것은 줄 수 없어. 이것은 당신에게도 사람에게도 하나님께도 드릴 수가 없어. 이것은 내 것이라는 욕심이 있었던 것이지요. 

사람이 그것이 권력이든 명예든 쾌락이든 스포츠든 그것은 관계없습니다. 어떤 것에 지나치게 집착을 하게 되면 반드시 그 사람은 그것 때문에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보면 이 부부는 하나님께 당신의 재산을 바쳐야 됩니다. 라고 하는 어떤 요청을 받은 적도 없고 강요된 적도 없습니다. 베드로는 이야기 합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었던 밭은 팔기 전에도 당신 것이고 팔고 난 다음에도 당신 것이다.” 누가 어느 누구도 팔아서 교회에다 바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 말은 모든 것들의 소유권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감추면서까지 일부분을 자기네 것으로 만들고 나머지를 바칩니다.

재물에 대한 지나친 욕심 때문에 비극을 맞이했던 이 두 사람!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것 중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속입니까? 하나님께 헌금 낼 때도 거짓말로 속이고 떼어 먹고 도적질 합니다. 시간도 얼마나 많습니까? 주를 위하여 얼마든지 봉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핑계로 주를 위해서는 자투리 시간만 내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모든 것들을 자기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께는 하지 않고 자기의 만족을 위해 사용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재능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눈물과 땀은 어떻습니까?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수도 없이 쓰면서 하나님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고 모두가 다 하나님의 것을 일부를 도적질 하고 감추고 속이는 것 아닙니까?
  

두 번째, 이 부부는 함께 거짓을 공모했습니다.

“그 아내도 알더라”(2절 중) 이 부부는 서로 공모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9절 상) 

교회를 다니는 부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고 공모를 할 일 이 따로 있습니다. 무슨 일을 위하여 부부가 힘을 모으고 생각을 모으고 의견을 나누어야 할까요? “여보, 우리 교회를 위해 어떻게 하면 힘을 모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선교하는데 힘을 모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락방 발전을 위하여, 신도회를 위하여, 교회 부흥과 발전을 위하여 우리 내외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신앙생활을 잘 하는 부부라면 적어도 부부가 함께 모여 교회 부흥과 발전과 이웃의 도움을 위하여 함께 머리를 맞대어야 하는데 이 부부는 무엇을 위하여 머리를 맞대었습니까? 어떻게 하면 거짓을 말할까! 어떻게 하면 사도 베드로를 속일까! 어떻게 하면 목사를 속일까! 어떻게 하면 교인들을 속일까! 속이기 위하여 부부가 공모를 하였습니다. 

며칠 전 어느 한 약사가 죽었지요? 그 약사를 죽인 범인이 잡혔는데 동네에 있는 중국집 직원이었다고 합니다. 두 젊은이가 공모를 해서 연약한 여인을 죽이고 이 끔찍한 사건, 이 두 젊은이가 공모를 했다고 하는데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습니까? 이 젊은이들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요? 이 두 젊은이가 만약에 우리 어떻게 해서든 사업을 해 보자. 힘을 모아 보자. 어떻게든 한 번 살아보자. 이렇게 두 사람이 마음과 뜻을 모았다고 한다면 뭔가를 했겠지요? 교도소에서 나온 두 사람, 서로 나쁜 짓에 뜻을 모으니 결국은 사람을 죽이는 살인범이 됩니다.

1967년에 상영되었던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다. 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보니파커와 클라이드 보로라는 실존하는 강도의 이야기를 가지고 만든 영화였지요. 1930년대 미국의 경제 대공황이 있었을 때 미국 전 지역을 다니면서 살인과 강도짓과 도둑질을 일삼았던 이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실제 영화였습니다. 

보니파커는 텍사스에서 태어났는데요.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어려서부터 도적질을 했던 친구였습니다. 스무살때부터 도적질을 하던 중 클라이드라는 여자를 만났습니다. 

이 여자와 공모를 하면서 미국 전 지역을 다니면서 은행을 텁니다. 주유소를 털고 은행을 털고 식료품점을 털고 사람을 죽이고 갱단을 조직합니다. 결국 4,5년 동안 갱 조직을 만들어 도적질과 강도짓을 하다가 나중에 경찰들의 총에 맞아 죽지요. 이 두 사람이 차에 앉아 있고 경찰 6명이 쏜 총에 맞아 죽을 때 맞은 총알 숫자가 40발이었습니다. 나쁜 일을 도모하고 나쁜 일에 공모하고 꾀하는 것의 비극!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부부가 함께 공모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뜻을 나누는 것은 주의 일을 위하여 이 세상에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어떻게 하면 재산을 모으고 힘을 모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땀과 노력을 함께 모을 수 있을까! 여기에 관심을 갖고 함께 노력을 할 때 하나님은 우리들을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이렇게 힘을 모으는 부부, 성경에 이런 부부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부부는 얼마나 주를 위하여 헌신한 사람입니까? 하나님은 이런 아름다운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지 않습니까? 

저는 우리교회 모든 부부가, 여러분의 가정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힘을 모으는 축복된 가정일 줄 믿습니다.
  

세 번째, 이 부부는 거짓된 행동으로 교회에서 인정받으려고 했습니다.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2절 하)

사도들의 발 앞에 자기들의 재산을 두었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재산을 가져왔으니 알아주십시오. 라는 뜻 아닙니까? 바나바가 재산을 팔아 하나님의 교회에 바친 것을 보고 이 부부는 우리도 바나바처럼 인정을 받아보자.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가 재산을 바쳤을 때는 뭔가 숨겨진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알아 달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교회 안에서 어떤 힘을 발휘하거나 능력을 갖거나 어떤 지위를 가지고자 재산을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재산을 바친 배경은 바로 이것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교인들은 교회에서 권사를 뽑거나 장로는 뽑는다 하면 갑자기 안하던 헌금을 합니다. 갑자기 안하던 봉사를 하고요. 사람들을 만나면 인사하고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지요. 숨겨진 의도가 있습니다. 감춰진 목적이 있지요. 하나님은 그렇게 바쳐진 헌금, 그렇게 바쳐진 헌신과 봉사, 하나님은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종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지요. 얼마를 바치든 정성을 다하여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재산을 바칠 때, 우리의 헌신과 시간을 바칠 때 하나님은 그것을 기쁨으로 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베드로를 속이고 교회 지도자를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액수가 아니라 진실이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이 부부의 거짓된 행동은 사탄이 마음속에서 조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사탄이 들어가게 되면 그 사람을 조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음모를 만들고 나쁜 일을 꾀하게 만들어서 사람을 타락하게 만드는 것이 사탄입니다. 이 부부는 재산의 일부분을 감추고 사람들을 속이려는 마음을 갖는 순간 바로 사탄이 이 사람들을 조종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이간질 시킵니다. 사탄은 교회 안에 들어와 교회를 어지럽힙니다.

워렌 위어스비(Warren Wiersbe) 목사는 이 부분을 강의하면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사탄은 교회 바깥에서 교회를 공격해 들어갈 때 교회가 강해져서 사탄의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교회 스스로 보호하게 되면 사탄은 전략을 바꾼다. 바깥에서 교회 안에 들어가지 않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을 공격해서 교회를 망가뜨린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더럽게 만들고 교회를 부정한 존재로 만듭니다. 그것은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고 사람을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만들게 되면 그런 사람이 있는 교회는 내부적으로 문제가 생겨 교회를 어지럽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사탄은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모습, 천국공동체를 해치기 위하여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속에 들어갔습니다. 그에게 거짓말을 유포하고 그에게 속임수를 가져다주고 그에게 하나님과 성령님을 속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천국공동체인 초대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했던 것은 바로 사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돈이 없으셔서 이 부부에게 재산을 바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진실입니다. 숨겨지지 않은 깨끗한 진실한 마음을 원하시지만 사탄이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 거짓을 유포하고 속임수와 위선을 유포함으로 말미암아 교회를 어지럽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일을 한다고 하지만 만약에 이런 거짓말과 음모와 속임수가 우리 마음속에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사탄의 도구로 쓰임받아 교회를 어지럽히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다섯 번째, 사탄이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게 되면, 그 영혼은 성령을 속이는 죄를 짓게 됩니다.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3절하)

우리는 사람을 속일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속이는 순간 그 사람은 성령을 속이고 동시에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의 현실 가운데 하나님은 보이지 않게 우리와 함께 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저 사람을 속이면 저 사람이 넘어가겠지! 그 사람은 넘어가겠지만 그 자리에 임재 해 계시는 하나님은 넘어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동일하게 존재해 계십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외과 의사가 있습니다. 이 분이 주로 폐를 수술하시는 분인데 이분이 교회를 전혀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이 분이 제가 목회 했던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완전히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1년간 미국 연수를 마치고 이제 고국으로 돌아갔는데 그 분이 신앙생활을 잘 하면서 제게 편지를 한 통 보내왔습니다. “목사님, 전에는 수술을 제가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주님을 알고 난 다음부터 저는 혼자 하지 않습니다. 제가 수술 방에 들어가면 저는 늘 셋이 있습니다. 환자와 저와 그리고 하나님이 옆에 계십니다. 전에는 수술만 하면 담배피고 술을 먹었는데 이제는 다 끊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는 환자가 오게 되면 수술하기 전에 신앙을 이야기 하고 하나님을 이야기해서 사람들에게 평안한 마음을 가져다주고 그래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그런 믿음 생활을 권유한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끝으로, 사람을 속이고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는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하나님은 내 옆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사람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 자리에 임재 해 계시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 된 신앙인은 사람에게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감춰진 의도를 숨겨진 의도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교회를 어지럽히고 교회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은 다른 이유가 아니고 이런 거짓말을 했던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을 속이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워렌 위어스비(Warren Wiersbe) 목사님이 이 부분을 강해하면서 또다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의 돈을 훔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훔쳤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수 있는 분입니까? 그 분은 교회 안에만 계시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우리의 삶의 모든 현장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람을 속이면 다 넘어가겠지! 돈을 훔치고 거짓말하고 사람을 속이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훔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만홀히 하나님을 가볍게 하나님을 우스운 존재로 여기게 되면 하나님은 너무너무 상처를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으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 부부가 갑작스런 죽음으로 비극을 맞이합니다. 초대교회 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급작스럽게 이 부부에게 강한 심판을 내리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순수하게 보존해야 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초대교회를 건강하게 진실되게 깨끗한 교회로 만드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이런 잘못된 것을 용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만약에 이렇게 거짓말하고 사람을 속였던 모든 사람을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영혼을 가져가셨다고 한다면 아마 저나 우리 모두가 이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살아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진실된 사람이 되라고 깨끗한 사람이 되라고 사람을 속이는 더러운 존재가 되지 말라고, 이 사탄의 조종을 받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 안에 들리는 깨끗한 존재가 되라고 하나님이 기다리시고 계시기 때문에 오늘까지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교회는 순결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깨끗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깨끗한 교회, 순결한 교회, 진실된 교회는 누구에 의해 만들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깨끗한 성도들, 여러분 때문에 만들어 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지 않고 사람을 속이지 말고 진실되게 성실하게 바르게 헌신하고 봉사할 때 주님은 여러분의 모든 것들을 귀하게 여기시고 여러분의 삶을 더 좋은 것으로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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