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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과정 (막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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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과정 (막 1:9-15) 


가을입니다. 여전히 덥고 태풍이 불어도 가을은 가을입니다. 하늘은 높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어느덧 들판에는 누런 기운이 돌고 더러는 벼를 벤 곳도 있습니다. 예년에 비하여 이른 추석이라지만 열흘 앞으로 성큼 다가왔습니다.
     
가을은 추수의 계절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쌀입니다. 쌀은 한자로 쌀 미(米)자를 씁니다. 이것은 이삭에 쌀알들이 촘촘히 달려있는 모습을 본 따 만든 글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쌀 미(米)자를 풀어 숫자 팔(八)과 십(十), 그리고 다시 팔(八)이 합쳐진 글자라고 합니다. 이것은 벼 씨앗을 뿌려 거둘 때까지 여든 여덟 번 손을 써야 한다는 데에서 쌀 미(米)자가 나왔다는 속설에 바탕을 둔 이야기입니다. 쌀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농민의 손이 그만큼 많이 가야 한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벼농사는 논 갈기에서 시작합니다. 논 갈기 전후해서 갈을 주거나 거름을 주는 것도 중요한 과정입니다. 

다른 한편에는 못자리를 만들기 위하여 볍씨를 뿌리고 모판을 만듭니다. 그리고 비로소 논에 모를 냅니다. 모를 내는 것으로 농사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 해서 김매기를 하고 비료도 주어야 하고 농약도 합니다. 그리고 뜨거운 여름을 지내서 벼가 익으면 거두어 들립니다. 그 후에도 말리고 도정하는 과정을 거쳐 밥상에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쌀이 요즘 식탁에서 천대받습니다. 쌀 소비량이 줄어들면서 농민들의 시름이 늘어납니다. 많은 사람이 쌀도 수입해서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든 여덟 번이라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게 되었습니다. 과정을 무시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장관의 자식이라고 해서 과정을 무시하고 특채하여 사회의 큰 짐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과정을 건너뛰고 생략하고 빨리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과정을 밟지 않는 것이 능력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돌을 명령하여 손쉽게 떡이 되게 하려는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정을 거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영적 성장도 속성과로 마치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생각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과정을 생략하려는 유혹은 죄악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활동하시기 위하여 어떤 과정을 거치셨습니까?


첫째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그 분의 아들이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이신 복음이라고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사람들은 비로소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을 힘입을 수 있습니다. 각 사람의 마음속에 성령님이 계셔서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실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광야에 외치는 자를 두셨습니다. 사람들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듣고 회개하여야만 복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고백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소망하여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유대광야 인근의 요단강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자라나신 곳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일부러 세례 받으시기 위하여 찾아오셨습니다. 복음 그 자체이신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있으셨습니까? 
     
여기에 대하여 마태복음은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시려는 예수님을 말리는 세례 요한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 3:14)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
     
예수님은 자신의 세례 받으시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인간의 모든 죄를 지고 가시는 분으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를 인정하셨습니다. 세례의 중요성을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1. 예식을 치르셨습니다.
     
결혼예식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결혼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결혼예식을 통하여 결혼의 의미를 생각하고 결혼하는 결심을 합니다. 또한 결혼예식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 앞에서 부부됨을 알립니다. 그래서 결혼 생활에서 예식도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장례예식을 하지 않았다고 죽은 것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장례예식 없이 하관을 한다고 해도 고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장례예식을 통하여 고인을 추모하고 이별의 아픔을 나누고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다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례 받지 않았다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 받는다는 것이 구원의 조건도 아닙니다. 그러나 세례를 통하여 자신의 신앙적 결심을 공개적으로 밝힙니다. 이것은 교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는 조건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없이하는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라는 예식을 통하여 사람에게 인정받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과정을 밝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과정을 생략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만 드러나는 예식을 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10절 말씀입니다.
: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처럼 세례를 받으셨지만 그 결과는 남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속에서 막 올라오시는데,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임재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성령 세례를 주시기 전에 먼저 성령으로 충만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11절 말씀입니다.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하늘로부터 음성이 있었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례를 받으시는 성자 예수님께, 성령님께서 임재 하셨고, 성부 하나님의 인증이 있으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나님께서 일체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하늘에서 선포되었습니다.
     
2. 하늘에서 공인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통하여 사람의 인정뿐만 아니라, 하늘의 음성을 통하여 하늘의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굳이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렇다고 하늘의 음성이 반드시 필요한 분도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드러나셨습니다.
     
여러분, 사람에게는 칭찬받고, 하나님께는 인정받으시는 과정을 통하여 세상에 드러나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예수님은 또 어떤 과정을 거치셨습니까?


둘째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임하신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여기에서 몰아내다[ejkbavllw/에크발로]는 문자적으로 ‘쫓아내다’, ‘내던지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 과정이 끝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혼자서 외롭게 시련을 겪으시면서 공적 사역을 준비하시는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1. 광야를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광야에서 지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경험하신 광야는 어떤 것입니까? 13절 전반절은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라고 하였습니다. 
     
1)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지내셨습니다. 성경에서 사십은 어떤 일을 고난을 통하여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에서 사십 년을 지내며 훈련되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사십 일을 지내고나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엘리야는 사십 주야를 걸어 호렙산에 도착하여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하여 철저하게 준비하는 광야를 경험하셨습니다. 
     
2)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여기에서 사탄은 ‘적대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험하다[peiravzw/페이라조]는 것은 실족케 하려는 유혹(temptation)이자 성숙하게 하려는 연단(test)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사역을 포기하게 하려는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연단의 과정이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유혹을 받으시고 이것을 이겨내는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3) 예수님은 광야에서 들짐승과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나운 야생 짐승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계셨습니다. 유대광야에는 실제로 표범이나 여우와 같은 들짐승의 위험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시는 영적 시험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들짐승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경험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금식의 배고픔, 영적인 유혹, 들짐승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기에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히 4:15).
     
시련과 훈련의 과정이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쉽게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쉽게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싸구려일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싸구려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과정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험에 독특한 것이 있습니다.

13절 후반절입니다.
 :13b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예수님께서 광야 사십 일을 지내실 때 천사들이 시중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수종하다[diakonevw/디아코네오]는 말은 집사라고 번역되는 말입니다. ‘종이 되다’, ‘수행원이 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천사가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이것은 사십 일 내내 천사가 섬겼기에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긴요하게 필요할 때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섬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과 천사의 섬김을 함께 경험하셨습니다. 고난과 함께 영광도 경험하셨습니다.
     
2. 영광을 경험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복음송이 있습니다.
당신은 영광의 왕 당신은 평강의 왕 / 당신은 하늘과 땅의 주 당신은 정의의 아들 // 천사가 무릎 꿇고 예배하고 경배 하네 / 영원한 생명의 말씀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주
    
예수님은 천사가 예배하고 경배하는 영광을 하늘에서 이미 누리시던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광야에서 그 영광을 다시 경험하셨습니다. 광야에서 뿐만 아니라 골고다에서도 십자가의 고통과 함께 부활의 기쁨을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치욕과 영광을 두로 경험하셨습니다. 
     
성도들이 즐겨 암송하는 말씀 중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 바로 앞의 말씀은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비천과 풍부, 고난과 영광을 경험하는 과정을 통하여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비결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고난을 이기는 능력뿐만 아니라 하늘의 영광을 또한 경험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장차 천국에서 천사들의 섬김 받을 사람들입니다(히 1:14). 그러니 이 땅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뿐만 아니라 하늘의 영광을 누려야 합니다.
     
용팔이가 정신병원 앞을 지날 때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 났습니다. 볼트를 풀고 펑크 난 타이어를 빼냈습니다. 여분의 타이어를 끼웠습니다. 이제 볼트를 조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아뿔싸 옆에 가지런히 두었던 볼트를 건드려 하수구 속으로 빠트렸습니다. 용팔이는 속수무책으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그때 정신병원 담장 너머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환자가 말했습니다.
     
“여보세요 그렇게 서있지만 말고 남은 세 바퀴에서 볼트를 하나씩 빼서 펑크 난 바퀴에 끼우고 카센타로 빨리 가세요.”
     
용팔이는 ‘정말 굿 아이디어’ 라는 생각이 들어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런데, 당신 같은 분이 왜 정신병원에 있죠?” 
     
그러자, 그 환자는 목소리를 깔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미쳤기 땜에 여기 왔지! 너처럼 모자라서 온 것이 아냐! 임마!”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아는 것을 넘어서 경험하여야 합니다. 더욱이 바른 마음,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쁨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어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인생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기쁨을 모르는 사람도 인생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에는 고난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영광만 계속되는 것도 아닙니다. 밤과 낮이 함께 있는 것처럼 고난과 영광이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광야에서 도우시는 천사의 손길을 만나는 경험을 하여야 합니다. 고난 중에도 견디고 영광 중에도 겸손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과 영광이라는 과정을 지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통하여 사람에게 인정받고, 하늘의 음성을 통하여 하나님께 공인받으셨습니다. 광야에서는 사탄의 유혹이라는 고통과 천사의 시중이라는 영광을 함께 경험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셋째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복음 전파를 과정이라는 면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였습니까?
     
14절 말씀입니다.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예수님은 ‘요한이 잡힌 뒤에’ 즉 요한이 헤롯에게 잡히어 감옥에 갇힌 후에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1. 요한 이후에 시작하셨습니다.
     
갈릴리의 분봉왕 헤롯 안디바는 그의 이복동생인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이것은 회개를 외쳤던 세례 요한에게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근친상간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을 심하게 질책하였고, 헤롯은 세례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눅 3:19-20). 이렇게 세례 요한의 사역은 마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옥에 갇힌 후, 한 시대가 마감된 후에야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급하다고 다른 사람의 시대를 침범하지 않으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해야 할 일을 감당하도록 예수님은 묵묵히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시대가 끝나자 비로소 시작하셨습니다.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미루는 것도 잘못입니다. 하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은 일을 서두르는 것도 잘못입니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때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때를 아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미루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을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내용으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까?
     
15절 말씀입니다.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은 하나님의 복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2. 회개하고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 이후에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메시지에서 시작하셨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신약성경에 복음서가 다섯 개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그리고 ‘내가복음’ 내가 마음대로 해석하는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셨는데 우리가 감히 제 마음대로 내가복음을 전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느 시대나 변하지 않는 복음의 본질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데서 시작합니다. 회개할 때 성령께서 일하십니다. 성령님께 순종할 때 변화가 있습니다. 변화 받아 이웃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 첫 번째 과정이 회개입니다. 회개 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회개에서 복음을 시작하셨습니다. 회개가 없이는 성령도 없고 하나님 나라도 없습니다.
     
여성분들! 화장을 지우지 않고 그 위에 화장을 덧칠하면 어떻게 됩니까! 필요할 때 약간씩 화장을 고치는 경우는 있습니다. 그러나 저녁에는 깨끗하게 지우고 아침에 새로 그립니다. 그런데 화장은 지우고 새로 할 줄 아면서 마음은 새롭게 할 줄을 모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회개란 하나님 없이 살아온 과거의 삶이 죄임을 깨닫고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삶 속에서 맺어야 합니다. 이것을 도우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일에서 신앙을 시작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시대가 앓고 있는 심각한 병은 모든 것을 건성으로 쉽게 하려는 것입니다. 과정을 건너뛰고 대충하려는 것은 심각한 병입니다. 신앙생활도 쉽게 하려는 심각한 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정을 생략한 결과는 부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의 과정을 무시하면 부실한 신앙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과정을 밟으셨다면 우리라고 예외이겠습니까! 

철저한 회개를 통하여 능력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 가시를 능력 주시는 성령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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