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듣고 본 것에 대하여 (계 1:9-20)

  • 잡초 잡초
  • 263
  • 0

첨부 1


듣고 본 것에 대하여 (계 1:9-20)


밧모섬, 그 섬은 전설 속에 있는 섬처럼 느껴졌다. 상상의 섬이라 느껴지던 그 섬을 수 년전에 다녀왔다. 그리스의 피레우스 항에서 배를 타고 가는데 그 뱃길이 순탄치 않았다. 작은 배를 타고 가는데 바람이 거세어 파도가 일렁거렸다. 배 안에 싣고 가는 화물은 기우뚱거리는 갑판 경사면을 따라 미끄러지면서 오르내렸다. 몸을 가눌 수 없는 가운데서 바닷물이 갑판 위를 뒤덮었다. 그런데 무섭기보다 은혜가 되었다. 초대 교회의 요한이 귀향을 가는 길이라 생각하니 은혜가 되었다. 요한의 심정, 밧모섬에 가서 거기에 갇히게 된 요한의 고독과 외로움, 두려움을 생각하였더니 은혜가 되었다.

밧모섬은 작은 섬이다. 에게 해의 3,000개 섬 중의 하나인 이 섬은 아테네로부터 250Km, 터키의 해안으로부터는 60Km 떨어져 있다. 밧모섬은 개미섬이다. 남북의 길이는 16Km가 되지만 섬의 중간 부분의 동서는 1Km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허리가 잘록하고 우리나라 울릉도의 반 밖에 안되는 이 섬은 들어오면 혼자 나갈 수 없는 섬이다. 이 섬에서 요한은 주일에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섬에 갇혀 있는 요한은 뒤에서 나는 큰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전에 보지 못하던 장면을 보았다. 

그것이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을 읽어보면서 질문을 던져보자.  

1. 무슨 음성을 들었는가?

그것은 일곱 교회에 메시지를 써서 보내라는 소리였다. (계1:10)

계1:10을 보라.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라고 하였다. 이어서 나오는 계1:11의 말씀은 들은 음성을 두루마리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것이었다. 일곱 교회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였다. 

요한은 기록해야 할 사명을 받았다. 귀향의 섬에서 종이가 없던 시절, 양피지 두루마리에 계시의 환상을 기록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계시록은 보여준 것에 대한 기록이다. 보지 못한 것을 상상으로 그려낸 장면들이 아니다. 성령에 감동되어 있던 주의 날에 요한의 눈이 열려 본 것을 자세하게 기록하여 보여주는 기록들이다. 

계1: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계시록은 시각적 그림을 기록하여 전해주는 것이다. 본 것은 사라지기 쉽기 때문에 문자로 남겨 전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록은 중요하다. 역사도, 신앙도, 목회 생활도 써 놓는 것은 중요하다. 더군다나 계시를 기록하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2. 무엇을 보았는가?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이다. (계1:20)

계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그렇다. 요한이 본 것은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다. 그런데 이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바로 인자 같은 이, 주님이시다. 요한은 주님을 본 것이며 계1:13에서 그 주님이 일곱 금 촛대 사이에 있는 장면을 보았다. 또 계1:16을 보면 주님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는 장면을 보았다. 

주님과 일곱 금 촛대, 일곱 별은 따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촛대 사이에 주님이 계시며 촛대 사이를 주님은 거닐고 계신다. 또 일곱 별도 따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계2:1을 보면 일곱 별을 주님의 오른손으로 붙잡고 계신다. 이는 하나의 장면이다. 주님에 의해 다스려지며 주님이 관할하시고 주님이 머리이시고 중심이시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엎드려 기도하는 중에 일곱 별의 환상을 보았다. 그 일곱 별은 주황빛깔을 띄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주의 모습, 아니 지구본의 형상을 하는 그 주위를 돌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그 지구와 함께 일곱 별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황홀하고 장엄한 장면을 기억해낸다. 한 평도 되지 않는 작은 기도실에 엎드려 있는 내게는 떨리는 시간이요, 또 흥분되는 시간이었다. 요한 사도처럼 인자 같으신 이가 이 별을 오른손에 잡고 있는 것을 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은 분을 보았더라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감사하고 감사한 것은 일곱 별을 보았다는 것이다. 

요한 사도는 주님과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를 다 보았으니 귀향을 온 것이 감사했을 것이다. 형벌 받은 것이 감사했을 것이다. 무엇을 본들 이 본 것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광야가 광야가 아니다. 모든 것이 충만이다. 귀와 눈이 충만이다. 너무 충만해서 주님을 볼 때에 그 발 아래 엎드러졌다. 죽은 자가 된 것같이 되었다. 너무나 놀라운 주님 앞에서 졸도할 수 밖에 없었다.

  
3. 듣고 본 바의 비밀은 무엇인가?

이 모든 성령 안에서의 일들은 영적 생활의 승리를 위한 것이다. (계1:20~2:1)

계1:20을 보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그런데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를 하라는 주님은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라고 하였다. 주님이 교회의 사자를 붙잡고 계시고 일곱 교회 사이를 오고 가신다는 것이다. 주님이 교회의 사자를 붙잡는다는 것은 다음을 말해준다.
  
① 교회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교회는 천국 지점이다. 은혜의 장소요 살리는 장소다. 교회는 세상 조직과 다르게 진리의 터요, 영적인 기관이다. 사탄은 이 교회에 도전한다. 교회를 잠들게 하고 교회를 무능하게 한다. 그래서 교회는 교회를 돌보는 사자가 있다. 또 그 사자를 주님이 붙잡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교회를 중요시 여기면 주님이 이렇게 하시는가? 사자란 영어로 「Angel」이다. 독일어 「Schutzengel」이다. 이 사자는 하나님의 피조물로 만들어진 영적 존재의 사자일 수도 있고 주님이 교회에 파송하여 보낸 사자, ‘아포스토로스’ 사람일 수도 있다. 교회를 돌보고 책임지도록 목양을 맡기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사자를 주님이 붙잡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교회가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② 주님이 교회의 중심이 되시는 것을 말해준다.

교회가 어떤 유형의 교회이든지 일곱 가지의 교회 사이를 주님이 거니신다는 것은 주님이 돌보시는 일을 직접 하신다는 말이다. 개체 교회의 독립성을 유지하시되 주님이 각 교회의 감독자가 되심을 나타내고 개체 교회들의 중심이 됨을 나타낸다. 

교회의 중심은 사람이 아니다. 교회의 중심은 잘 믿고 오래 믿은 유력자가 아니다. 창립자도 아니다. 교회의 중심은 오직 주님이시다. 주님이 거닐지 않는 교회는 참 교회가 될 수 없다. 주님이 붙잡지 않는 사자는 사자가 될 수 없다. 사람의 생각과 의지로 내가 붙잡는 주의 종, 내가 붙잡고 돌보는 교회는 힘이 없다. 주님이 교회의 중심이 되셔서 교회마다 거니시고 돌보면 교회의 거룩한 능력이 나타난다. 

내 마음에 주님이 거닐게 하라. 내 손을 주님이 붙잡도록 하라. 내 하는 모든 일에 주님이 관할하도록 하라.  

③ 영적 생활의 승리를 요구하심을 말해준다.

주님이 일곱 금 촛대를 거니시고 일곱 별을 붙잡는다는 것은 결국 성도를 위한 주님의 사랑이다. 성도들이 쓰러지지 말고 영적 도전을 싸워 이겨내라는 것이다. 신앙 생활이란 영적인 것이고 반대자 사탄이 있기에 성도의 승리를 위해서 붙잡고 계신 것이다. 계12:9을 보면 사탄은 옛 뱀이라고도 불리고 마귀라고도 하며 그의 부하인 귀신들도 있다. 온 천하를 꾀는 자로서 교회를 공격하고 무너뜨리려 한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사탄의 공격 앞에 서야 되는 영적 생활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붙잡고 계신 사자, 주님이 버리지 아니하신 교회라면 주님이 성도도 붙잡고 돌보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파괴하려는 세상의 유혹과 어려운 도전을 이겨내라는 것이다. 교회를 내가 붙잡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사자를 내가 붙잡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붙잡고 계신다. 겁낼 것이 없다.

‘사탄을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주님이 붙잡고 계시기에 다만 믿음을 가지고 싸우기만 하면 된다. 음부의 권세와 맞대결 하면 된다. 성도는 주님이 붙잡고 계신 교회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이기도록 되어 있는 것을 믿음이 없어 물러나고 포기하고 무릎을 꿇어서는 안된다. 

계2:7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에베소 교회만이 아니고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디게아 등 모든 교회도 이기면 주시는 것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기는 성도에겐 상급이 있다. 변치 않는 약속이 있다. 축복이 있다. 신앙 생활을 똑바로 해서 주님이 교회를 떠나지 않게 하라. 은혜로 교회를 지켜주시는데도 성도들이 잠자고 게으르고 범죄하고 우상 숭배하면 촛대를 옮기는 교회가 되고 만다.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지 않고 내 힘으로만 해보려고 한다면 사탄에게 미혹을 당한다. 주님도 어느 날 그 교회에서 손을 거두고 만다. 회개하고 자신을 날마다 새롭게 하여 영적 생활에 깨어 있는 성도가 되자. 주님이 붙잡고 계시고 거닐고 계심을 믿을 때 영적 생활이 이루어지고 항상 이기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