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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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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 3:1)


히브리서는 본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기록한 서신이었습니다. 그 근거로서 저자가 모세의 율법과 구약의 제사제도에 관해서 아무런 추가 설명이 없이 깊이 있게 언급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조상 적부터 메시아를 고대해 왔고 구약성경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나사렛 예수가 율법과 예언자들이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아시라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저자는 예수님의 탁월하심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1장과 2장에서는 예수님이 구약의 모든 예언자들보다 탁월하실 뿐 아니라, 하늘의 모든 천사들보다 탁월하시다고 증언하며, 3장에서는 예수님이 구약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종인 모세보다도 탁월하시다고 증언합니다. 4장에서 마지막 장인 13장까지도 동일한 논조를 지속하면서 예수께서 행하신 속죄 제사의 완전무결함을 증언합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설명 드리면,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아론의 후손 제사장들이 백성을 대신하여 드렸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아론의 후손들도 일반 백성과 다름없이 죄와 허물을 가진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백성의 중보자들이 온전하지 못했으므로 그들에 의해 드려진 제사 역시 온전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인성을 취하시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시므로 죄와 허물이 없으십니다. 따라서 인류를 위한 온전한 대제사장의 자격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는 사람의 죄를 속하기 위해 양이나 염소나 소의 피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것도 수천 년 동안 매년 똑같은 형식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0장 4절에 이르기를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고 했습니다. 곧 그 드린 제물이 온전하지 못하므로 구약의 제사로는 완전한 속죄를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류를 위한 속죄 제사를 드리실 적에 짐승의 피가 아닌 자기의 피로써 단번에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피는 한없이 고귀하여 무한한 속죄의 효력이 있습니다. 이로써 속죄는 완성되었고, 더 이상의 속죄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히 10:18). 

저자는 이와 같은 이치를 설명하면서 유대인 성도들에게 더 이상 율법이나 구약의 제사법에 집착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위대한 속죄의 은총을 받아 누릴 것을 당부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히브리서가 유대인 성도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은 본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이지만 실은 시대와 민족을 초월하여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것이듯이, 히브리서 역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은혜로운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 시간 저는 히브리서 3장 1절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은 특별한 신분 때문에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는 예수 믿는 성도들을 일컬어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먼저 생각해 볼 것은 “함께” 라는 표현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었으나 신약시대에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성도들은 자연스럽게 교회라는 믿음의 공동체에 속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정받는 진실한 교회를 의미합니다. 

신약시대에는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곧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더 이상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9장 6절에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라고 하였듯이, 신약시대에는 유대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며, 유대인이건 헬라인이건 상관없이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속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간혹 보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다고 하면서 교회를 등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는, 그 같은 행동은 교만하고 무지한 생각에서 나온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하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교회를 세우신 분이 예수님이시며, 교회의 주인도 예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성도들이 주 안에서 하나가 되어 신앙생활을 잘할 뿐 아니라 복음 전파의 사명을 맡기시기 위함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우려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의 머리시며 주인이신 예수님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도 예수님 중심이 되고, 신자들도 예수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 중심이 되도록 서로를 격려하고 권면해야 합니다. 

혹 형제 중 누가 시험에 빠져 신앙생활을 등한히 할 때, 못 본 척 할 것이 아니라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 형제를 위해 기도하고 심방해서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 강림하시는 그 날까지 한 사람도 믿음의 대열에서 이탈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함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의 참 모습인 것입니다. 

그 다음, 성도들이 가진 특별한 신분은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은 곧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이는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고린도전서 1장 9절에 이르기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택하고 하나님을 부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아주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우리에게 무슨 자격이나 공로가 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잘남을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능력과 지혜를 자랑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아브라함과 같이 위대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저는 티끌과 재와 같습니다’(창 18:27)라고 고백하였고, 사도 바울과 같은 분이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다면, 우리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죄와 허물 많은 우리를 택하여 부르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요?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르기를 “…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 15:10)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그만한 자격이나 공로가 있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은혜가 아니라 우리가 당연히 받을 것을 받은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10)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 하신 대로, 자기의 자격이나 공로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 백성이 되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감사한 일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신 로마서 11장 29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신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때때로 실족하여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해서 주님을 멀리 떠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시고 다시 믿음을 회복하고 돌아오기까지 참고 기다려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의 삶속에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함으로써 신앙생활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가진 특별한 신분은 ‘거룩한 형제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흔히 성도라는 말을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합니다. 성도는 거룩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거룩한 것의 반대는 속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룩이란 속된 것으로부터 분리된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성도는 속된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성도들이 소위 말하는 성자(聖者)처럼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본디부터 거룩한 사람들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 부르신 자들을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 받은 사람들도 거룩해 져야 합니다. 그러면 무슨 방도로 우리가 거룩해 진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십니다.

에베소서 5장에 이르기를 “26)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이런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14)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15)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17)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19)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하며 진리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따라서 살아감으로 더러운 죄악과 세속으로부터 자신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둘째로,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십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이르기를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라고 하였고, 베드로전서 1장 2절에 보면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구절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성령께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무엇보다도 고린도전서 6장에 이르기를 “19)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의 몸이 성령의 전이라면, 당연히 거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룩하게 하십니다.

히브리서 9장에 이르기를 “11)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13)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14)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하였고, 히브리서 13장 12절에는 이르기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속죄란 우리의 죄와 부정한 것을 없이하고 의롭고 정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뿌림 받은 성도들은 거룩함을 입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특별한 신분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영광스러운 영적 신분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성도들은 예수님이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에 그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신앙의 사도이신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신약성경의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히브리서를 제외한 서신서들을 보면 사도라는 호칭을 예수님의 직 제자 열 한 명과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선택받은 맛디아와 다메섹으로 가는 길 위에서 주님의 부름을 받은 바울에게 사용하고 있지, 예수님께 대한 호칭으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는 사도라는 호칭을 오직 예수님께만 사용합니다. 

그러면 히브리서에서 예수님을 일컬어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라고 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사도란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국가에서 다른 나라로 파송하는 대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파송하신 하나님 나라의 대사이십니다. 대사가 하는 말과 행위는 그를 파송한 국가를 대표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그를 파송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달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10)고 하셨으며, 또 이르시기를 “38)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39)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 6:) 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하나님 아버지를 대신하여 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요, 그가 하신 표적 역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행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 받은 사도시므로 그의 말씀과 행동에 신적 권위가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에게서 산상수훈을 들은 사람들이 보인 반응을 이같이 언급했습니다. “28)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29)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의 말씀에는 한없는 권위가 있어서 그 한 말씀에 귀신들이 쫓겨 나갔으며,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소경의 눈에 손을 대신즉 소경이 밝히 보고, 문둥이에게 손을 대시니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자들도 살리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우리의 믿고 고백하는 도리의 사도이심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온전한 믿음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설교의 첫 부분에서 말씀한 대로,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소개하되 아론의 계열에 속하는 대제사장들보다 더할 수 없이 탁월하신 대제사장으로 소개합니다. 먼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인간적인 연약성과 죄와 허물을 가진 대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세마포 예복을 입고 금관을 쓰고 물로 몸을 씻고 제사를 드렸더라도 그 제사가 완전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론의 후손이 아니십니다. 아론은 레위 지파에 속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유다 지파에 속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에 의거하면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이 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론의 반차가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고 했습니다.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기를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였고, 아브라함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히브리서 7장 2-3절에 보면 “2)…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멜기세덱은 창세기 14장에 한 번 출현했다가 자취가 없이 사라진 신비한 존재로서 히브리서 7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과 같다고 증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아론의 계통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계통을 택하여 대제사장으로 오셨으므로 아론이나 그 아들들보다 탁월하신 대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구약시대 아론의 계통 대제사장들은 매년 한 번씩 이스라엘 온 백성을 위한 속죄 제사를 드리는 일을 반복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단 한 번의 속죄 제사로써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론과 그 아들들은 수명이 다하면 죽어 그 후손이 그 뒤를 이어 대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홀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영원하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할 때 그를 힘입어 흔들림 없이 끝까지 믿음의 도리를 지켜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설교가 좀 딱딱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젖이나 부드러운 음식만 먹기보다는 단단한 음식도 먹고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영적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오늘 설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믿음의 기초가 되시며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을 비롯한 모든 신령한 은혜가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인하는 마귀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조차 예외가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그만큼 영적으로 어둡고 타락한 때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강림이 가까워질수록 이 세상은 복음의 진리를 거부하고 신자들 가운데도 믿는 도리를 굳게 붙들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자들이 많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어김없이 이루어질 것이며,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면 언약하신 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구름을 타시고 강림하셔서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듯이 진실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과 거짓된 자들을 구별해 내실 것입니다. 세인들이 무엇이라 하든, 거짓된 신자들이 무엇이라고 하든지, 우리는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성도들로서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깊이 생각하라 함은, 예수님을 믿되 건성으로, 형식적으로 믿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관심을 가지고 주의를 집중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더 깊이 알려고 힘쓰라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권면하기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 3:18)고 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우리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함으로 더 큰 은혜를 경험하고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따르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기로 결심하는 성도님들과 함께 하셔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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