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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가 좋습니다 (요 1: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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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가 좋습니다 (요 1:14-18) 
 
 
좋은 것과 좋지 못한 것을 가려낼 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성령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좋은 것을 식별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옛날 영국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금광석을 돌처럼 여기는 원주민들에게 빵을 주고 그것을 바꿨다는 말이 있습니다. 구약의 이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존귀한 선물을 받고도 하찮은 것으로 취급해 버린 이스라엘 백성을 눈뜬 소경이라고 했습니다(사 6:9).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지만 그것이 좋은 줄 모르고 함부로 취급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롬 3:1).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최상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요 3:16). 사도 요한은 이를 두고 ‘은혜 위에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은혜야 말로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1. 은혜의 개념

‘은혜(Χάρις)’라는 말은 ‘값없이 받는 호의’라는 뜻입니다. 곧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값없이 조건 없이 거저 주는 혜택을 의미합니다. 

1) 값없이 받는 선물입니다.

6.25전란 이후 부모형제를 잃고, 집도 없이 거리를 떠돌아다니던 전쟁고아가 얼굴도 모르는 외국인에게 입양되어 훌륭한 인물로 성장한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거리에 버려진 아이를 자기의 자식으로 삼아 사랑과 정성으로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켜 준 것은 은혜입니다.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는 사람은 먼저 자기의 본래 모습을 정확이 인식하는 사람입니다. 조상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영원한 멸망에 이르렀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사실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은혜입니다. 로마서 3:23-24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 은혜의 출처는 하나님입니다.

은혜는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신적 산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쓴 편지의 머리말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하였습니다(엡 1:2). 본문 17절에도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누리는 모든 은혜의 근원자입니다. 하박국 2:8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옛날 다윗 왕은 그가 누린 모든 권세와 영화가 다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역대상 29:14에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3) 은혜의 결과는 평강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중에 그 어떤 것도 평강이 아닌 것은 은혜일 수 없습니다. 남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다고 좋아하다가도 그것 때문에 불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세상의 권력이나 재물이나 명예를 좋아하고 그것을 선호하지만 그것을 가지고도 참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은혜는 반드시 평안을 동반합니다. 성경에는 항상 ‘은혜와 평강’이라는 말을 동의어처럼 사용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은혜는 평강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4:27). 예수님은 이름 자체가 평강입니다(사 9:6).

2. 은혜의 내용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느 한 가지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은 없습니다. 사람은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마 5:36). 헤아릴 수 없는 은혜이지만 그중에도 일반적인 은혜와 특별한 은혜로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일반적인 은혜입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가 지으신 피조물에게 적절하게 내려 주신 조건들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과 만물까지도 그의 창조하신 목적에 맞도록 생육하게 하셨고 인간에게는 그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창 1:28). 사도행전 17:25에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28절에는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호흡하고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사 2:22). 건강을 주시고 건전한 사고력을 행사하게 하시고 활동영역을 주시고 가정을 주시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신 것이 은혜입니다. 자연과 필요한 자원을 주신 것도 은혜입니다. 사회적 안정과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부의 기능도 일반적인 은혜에 속합니다. 
 
2) 특별한 은혜입니다.

일반적인 은혜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자연적이고 일반적인 은총에 해당합니다. 한편 특별한 은혜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기 백성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구원 경륜에 속하는 특수한 영역입니다. 똑같은 아담의 자손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보배처럼 존귀하게 여기며 사랑하십니다(사 43:4). 또 직분을 맡기시고 하나님의 동역자로 삼았습니다(고전 3:9). 

바울은 지난날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던 자기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아 주신 것을 은혜라고 하였습니다(딤전 1:13).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겨 주셨습니다(고전 4:1). 무엇보다도 기업의 영광스러운 축복을 보장하였습니다(엡 1:17-19). 자격 없는 자를 부르시고 세우시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게 하신 것이 은혜입니다.

3) 은혜 중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본문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습니다. 16절에는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더라.”고 하였습니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경영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구속사(救贖史)적 경륜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그 일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민족이었기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의 대상이었습니다(신 7:6). 그들의 역사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이적들도 하나처럼 예수님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계시입니다(고전 10:4). 이와 같은 사실은 오늘날 지구촌 시대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하여 전개되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3. 효과적인 은혜를 위하여

고린도후서 6:1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은혜를 받고도 그 가치를 몰라서 이를 허비해 버리거나 오용하는 경우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히 12:16).

1) 은혜를 극대화해야 됩니다.

은혜가 좋은 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조금도 허비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최대한 즐기며 향유하는 것이야 말로 은혜를 은혜 되게 하는 비결입니다. 본문 16절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위에 은혜러라.”고 하였습니다. 은혜를 은혜 되게 하는 비결은 성령과 동행하는 생활입니다. 에베소서 5:15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5:18에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은혜의 가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은혜의 내용과 그 의미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면서 많은 사람이 같이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2)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은혜는 감사로 이어져야 됩니다. 은혜를 알면서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배은망덕하는 것입니다. 평소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한 바울은 그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다른 사도 보다 더 많이 수고한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5:10). 은혜에 대한 감사는 형통하고 좋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나 고난 중에 있을 때 더욱 그 은혜가 드러나고 실감되어져야 합니다. 욥은 극심한 환난을 겪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였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태에서 나올 때와 비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욥 1:21). 겸손한 마음으로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은 자기가 약할 때 더욱 넘치는 은혜를 실감하게 됩니다(고후 12:9).

3) 보답하는 생활입니다.

은혜에 대한 감사는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보답하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 그것으로 더 많은 사람과 나누며 재생산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는 주인으로부터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씩 은혜를 받은 종이 나옵니다. 그 중 둘은 그것으로 장사하여 배를 남겼고 하나는 그것을 그대로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준엄한 책망을 받았습니다(마 25:14-30). 은혜를 배가시키고 그것으로 많은 사람이 나눌 수 있는 것은 은혜의 생산성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은혜를 혼자 움켜쥐고 있거나 사장시키는 것은 배은망덕 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이웃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까지 베풀고 나누는 삶이야말로 은혜에 보답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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