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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표준이 될만한 좋은 교회 (빌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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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이 될만한 좋은 교회 (빌 2:1-11)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옛날에는 옷을 사 입기보다는 만들어서 입었습니다.  재봉 솜씨가 있는 과거의 어머니들은 광목을 사다가 염색을 하여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이 과정에서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빳빳한 종이로 견본(見本)을 떠서, 그대로 천을 잘라 옷을 만들었습니다. 요즘에 와서는 이것을 모델링이라고 합니다. 순수한 우리말로는 "본뜨기" , “표준” 혹은 “본”, “모델(MODEL)”이라 고 할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는 어떤 코치를 밑에서 훈련을 받느냐에 따라 그의 실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세계 피겨선수와 오셔 코치와의 결별 문제도 세계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그래서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체육관 출신인가, 또는 어느 프로팀 소속이냐에 따라 그 선수의 진로가 판가름 나기도 합니다. 음악도 어떤 스승 밑에서 레슨을 받느냐에 따라 실력이 달라집니다. 피아노를 치는 제스처나, 소리의 음질까지도 결정되며, 특히 성악 같은 경우는 그 선생님의 목소리를 거의 그대로 닮게 된다고 합니다.

이 모든 얘기는 한 마디로 우리가 어떤 모델링을 정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는 손쉬운 방법은 믿음의 모델링을 잘 선정하는 것 입니다. 신앙의 본뜨기를 잘 선정해야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건강한 믿음의 소유자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환난이나 역경과 불행이 닥쳐와도 건강한 믿음만이 모든 불행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요, 복의 근원이 되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고 순종하는 믿음의 모델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면 독생자 외아들 이삭이라도 번제의 제물로 바치려는 모리아산의 순종이 있었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으며, 종의 자식 이스라엘과 하갈을 내어 쫓았습니다. 이런 철저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은 오직 하나님만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이 순교할 수 있고 이런 믿음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위해서 일당 백, 일당 천을 감당하는 위대한 충서스러운 사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형식적인 믿음, 허울 좋은 믿음, 쭉정이 믿음의 모델을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겉은 그럴 듯하고, 직분도 가졌고, 사람이 선해 보이기도 하나 그러나 그것이 천국에 가는 조건이나 하나님께 인정받는 조건은 아닙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성도여러분들은 형식적인 쭉정이 믿음 그런 믿음의 소유자는 한 사람도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저는 믿음의 사람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대하여 소개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표준이 될 만한 것은 세상에서는 황금을 기준으로 평가하며, 미국의 달러는 황금의 저장량에 따른 화폐를 발행하기에 미국 달러를 기준하여 전 세계 금융을 평가합니다. 전 세계 금융의 표준이 황금인 셈입니다. 그러면 이처럼 교회도 황금 표준이 될 만한 교회, 좋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우리 교회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좋은 표준이 될 만한 교회의 기준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지 본문을 통해 소개하려고합니다.

서울이 좋은 것은 강남이 있기 때문입니다. 강남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가 좋은 교회가 된 것은 성도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만 되면 가장 황금과 같은 표준을 가진 교회라고 말 할 수 있는데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 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지난 주일 오후 교사헌신예배시간에는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 중에서 특별히 4장에 있는 말씀으로 좋은 교회를 만들고 세우는 교사와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갖추어야 하는가를 다섯 가지 말씀 드렸습니다. 

교회는 다양한 지체들로 구성되어야 하고,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헌신하여야 하며, 서로가 도움을 주고받는 지체로서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행하여야 하고, 성장하는 교회가 되도록 헌신하여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 표준이 될 만한 좋은 교회가 왜 필요합니까? 물건도 나쁜 물건은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건이 좋지 못하면 사람들은 외면합니다. 교회도 나쁜 교회는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기 쉽습니다. 교회 자체는 예수님의 몸으로 귀하지만 평가가 나빠지면 교회를 좋아하지 않게 됩니다. 좋아하지 않는 곳에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전도를 할 수 없습니다. 전도를 해도 사람들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교회를 세우며, 귀한 사명을 감당하는 건강하고 좋은 교회를 세우는데 헌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만큼 주님이 좋다면 교회가 좋다고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 속에서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표준이 될만한 좋은 교회는?

1. 모든 일에 하나된 마음으로 헌신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1-2절 말씀,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사단과 마귀의 뜻을 이루어 주고, 교회가 망하는 지름길은, 하나 되지 못하고 싸우면 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구원의 역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를 세우려면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가 한 마음, 한 뜻, 한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통해 신아의 권면을 할 때도, 위로할 때도, 교제를 하고 친교를 나눌 때도 마음이 하나가 되여야 합니다. 긍휼과 자비를 베풀 때에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즉 좋은 일을 할 때도, 선한 일을 할 때도 마음이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하더라고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한 모습으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구제를 하든지, 선교를 하든지 복음을 전하든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온 성도들의 뜻과 마음이 하나로 일치해야 합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공동의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고 교회도 하나가 되어서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부흥하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한 마음 한 뜻으로 헌신해야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는 복이 됩니다. 그리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에 바울이 왜 이 내용의 메시지를 썼을까요? 빌립보 교회가 칭찬 들을만한 아름다운 교회이지만 작은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이 성도들 간에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것입니다. 빌립보 1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4-5절). 

7-8절에 보면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이렇게 칭찬받는 좋은 교회이지만 4장에 2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고 하였습니다. 분열 된 것을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권명한 것입니다.

미국은 동부 13개 중심으로 연합하여 시작하였지만 50개 주가 연합된 국가입니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의 남부지역 연합이 연방 탈퇴를 선언하자 즉각 남부에 대한 해상봉쇄조치를 취하고 이적(利敵) 행위자들을 구속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상황이 시급하다며 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고 군사대응을 결정했습니다. 일각에서 ‘독재자’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뒷날 ‘관용의 정치인’으로 존경받는 링컨이지만 국가분열을 부추기는 세력은 강력히 응징했습니다. ‘미 합중국 수호(守護)’라는 그의 확고한 원칙과 신념이 없었다면 미국은 두 개의 나라로 갈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로마는 포용과 개방정책을 바탕으로 제국으로 발전했습니다. 속주 주민에게 시민권을 줬고 속주 출신 황제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로마 공동체가 지향하는 기본가치를 인정할 때만 시민권이 부여됐습니다.

제2차 포에니전쟁 때 로마는 카르타고 장군 한니발에 연전연패하면서 멸망의 위기에까지 몰렸지만 결국 승리했습니다. 외적과 맞설 때는 일치단결해 총력전에 나선 로마와, 한니발의 승리를 질시하는 지도층의 내분에 휩싸인 카르타고의 차이가 결국 최종적 승패를 갈라 로마의 승리를 안겨 준 것입니다.

국가 운영과 기업 경영에서 ‘열린 마음’은 덕목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원칙이 무너지면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사장은 ‘CEO, 역사에게 묻다’에서 “공동체의 통합과 번영을 위한 기본가치에 동의하지 않은 채 분열을 조장하고 번영을 해치는 집단은 개방과 포용,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대상”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위기가 닥쳤을 때 외부의 적과 내통해 공동체를 위협하는 내부의 적을 방치하는 것은 파멸을 부르는 지름길입니다. 

아무리 자신들의 주장하는 것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면 우리가 결단코 국가의 주권수호를 위해 결단코 용납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자기의 주장이 옳아 보여도 국민의 갈등을 조장하고 분열을 획책하는 일이라면 그 의견이나 진행는 일은 거둬들여야 합니다. 

정부정책에 대한 내용들을 주장할 때도 북한이 좋아하는 정책을 펼치기를 강조하거나 반대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반드시 접어야 합니다. 대의를 위해서 때로는 사사로운 자신의 생각을 접어야 합니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에서도 북한의 짓이라고 하는데도 우리나라 안에서 조작이라니, 또는 남한의 소행이라니 하며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장을 담당했던 윤덕용 카이스트 명예교수(포스텍 자문위원회 위원장)가 최근 과학적 시각에서 본 천안함의 진실을 소개한 것을 보았습니다. 

◇비접촉 파괴의 단서, `디싱`

가장 먼저 선저외판이 압력으로 접시처럼 우묵하게 눌린 이른바 `디싱(dishing)` 현상에 주목했습니다. 범죄 영화에서 수사관들이 피해자의 상처 부위 상태를 보고 흉기나 살해방식을 추정하는 것처럼 천안함 역시 배 밑부분의 디싱 흔적이 `비접촉`에 의한 파괴라는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윤 교수는 “배 사고를 접하는 전문가들이 누구나 아는 상식으로 디싱은 비접촉 파괴일 경우에만 발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함미 격벽이나 절단격벽의 변형 및 손상 상태도 비접촉으로 어뢰나 기뢰가 폭발했음을 증명했습니다.

◇흡착물은 알고 있다.

천안함 함수와 함미, 연돌 등에 붙어있던 흰색 흡착물도 결정적 단서였습니다. 원소 성분 분석결과 탄소(C) 성분이 높았습니다. 일부에서 이 흡착물이 부식물이라고 주장했지만 탄소는 부식이 아닌 폭발할 경우에 나오는 원소라는 게 윤 교수의 설명입니다.

X선 회절 분석기를 통해 `비결정체`로 결론이 내려졌는데, 이론적으로 폭발 시 급격하게 고온이 됐다가 급속 냉각되면 비결정체가 된다는 원리와 맞아떨어졌습니다. 이 흡착물은 RDX, TNT 등이 결합된 폭약성분으로 밝혀졌습니다.

◇버블제트가 아니라 `워터제트`

천안함 원인 구명 과정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버블제트`도 사실은 표현이 틀린데다 핵심이 아니라고 윤 교수는 정정했습니다.

수중 폭발 시 충격파가 빠른 속도로 퍼지면서 버블이 동그랗게 생기면 물을 밀어내 배를 들게 됩니다. 배 밑 가운데 부분이 깨지기 시작합니다. 이후 버블이 수축하면 가운데가 무게 때문에 밑으로 내려오면서 또 손상된다. 이미 이 상태에서 배는 붕괴됐다는 설명입니다.

윤 교수는 “완전히 수축한 뒤 버블 부근 압력이 굉장히 높아지면서 위로 올라와 해면의 버블이 깨지면 그때 `제트`가 생긴다”며 “그래서 버블제트가 아니라 워터제트라고 하는 게 맞다”고 말했습니다.

또 “천안함의 경우 제트가 안 생겼을 수도 있고 제트가 있었으냐 없었느냐는 원인 규명에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1번`은 호기심의 대상일 뿐=어뢰에 쓰여진 숫자 `1번`에 대해서도 윤 교수는 “대중의 호기심 대상일 뿐 이게 있거나 없거나 결론은 같다”고 말했습니다.

바다에서 건저 올린 어뢰가 `정말 천안함을 공격한 어뢰`인지, `북한 것인지` 등을 밝혀내는 데도 과학적 분석이 필요했습니다.

어뢰 프로펠러에 흡착된 알루미늄 산화물이 유독 많았던 것은 미세한 산화물이 물에 섞인 상태에서, 폭발 시 수직방향 프로펠러가 만든 난기류(터뷸런스) 때문이라고 윤 교수는 말했습니다. 

모터의 변형 상태도 망치 등으로 일부러 때려서 만든 것이 아니라 폭발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줬습니다.


의외로 어뢰는 조사단이 생각하기에 최후의 수단인 `쌍끌이 어선 특수 그물망`으로 수거했습니다.

뒤늦게 `원시적인 방법`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윤 교수는 “실재로 공군이 전투기 잔해를 이 방법으로 90% 이상 수거해 전투기를 복원한 사례가 있더라”며 “때로는 원시적인 것 같은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되지 못하는 국론 분열은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면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님의 마음과 정신으로 한 마음으로 뜻을 합하여 헌신해야 합니다. 선한 일이라도 악을 대적하는 일이라도 그 일을 하다가 오히려 분열된다면 우리는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마음과 뜻이 하나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1-2절 말씀에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고 하라”고 권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표준이 되는 좋은 교회를 만들려면?

2. 교인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여기서도 ‘무슨 일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자기를 드러 내기 위해서 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을 먼저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 신앙인마저 상대방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윗의 경우를 보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 겸 제사장인 사무엘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이 된 증표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끝까지 왕위를 지키려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찾아왔을지라도 사울 역시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되었던 자였기 때문에 그 사실을 귀중히 여기고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성도는 목회자를 존중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성도를 존중해야 합니다. 성도는 장로님들, 안수집사님들, 권사님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항존직 직분을 가진 분들은 일반 성도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존경의 나무는 감동을 먹고 자랍니다. 감동 없는 존경이란 없습니다. 서로가 감동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존경하게 됩니다. 

사무엘상 24장에 보면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니 어떤 사람이 왕에게 말하기를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스라엘 엔게디 광야에 가 보니까 물이 있지만 아주 험악한 지리 환경을 가지고 있고, 사해 바다 옆, 맛사다 지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습니다.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를 다르는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갔습니다.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었습니다.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다윗과 그의 일행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었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울을 발견하고서는 다윗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이때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면서도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고 하면서 다윗이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후에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말하기를 “내 주 왕이여!”하고 불렀습니다. 사울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 돌아보았습니다.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면서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9-10절). 그러면서 다윗은 다시 사울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 한 일이 없나이다”하고서 다윗은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12절 말씀에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사울 왕에 대한 처분을 오직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 보면 교회가 분열되고 교파가 나누어지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존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맡겨놓고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모든 직분자들을 존중하는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서로를 존중하는 사랑의 마음과 서로를 칭찬하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풍성한 성도, 그런 교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 구성원 전체가 서로를 존중하는 좋은 교회를 세울 수 있기를 부탁합니다. 표준이 되는 좋은 교회를 만들려면?

3. 남의 일을 잘 돌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4절에 보면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성도는 서로 섬기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남의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교회는 대부분 그런 삶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이 나타나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마음에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실재적으로 그렇게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감자탕교회” 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이 교회 이름이 감자탕이 아닙니다. 서울에 동봉구에 있는 한 건물에 감자탕 식당 간판에 가려 교회이름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빌딩 안에 세들어 있는 “광염교회”이야기를 할 때 별칭으로 부르는 이름이 감자탕교회입니다. 이 광염교회가 왜 이렇게 감자탕교회로 유명해졌는가 하면 그 교회의 비전과 남의 일을 자기의 일처럼 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빛과 소금되기 위해 삶으로 실천하기 때문입니다.

서울광염교회의 10대 비전이 이렇습니다. 
 1) 세계에서 전도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교회
 2) 국내외에 100개 이상의 교회를 설립하는 교회
 3) 100명 이상의 선교사를 지원하는 교회
 4) 1천만장 이상의 전도지를 전하는 교회
 5) 우리나라에서 구제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교회
 6) 100명 이상의 고아와 과부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교회
 7) 1만 가정 이상을 천국의 모형으로 만드는 교회
 8) 우리나라에서 예수님 닮은 인재를 가장 많이 양육하는 교회
 9) 100명 이상의 목회자를 양성하는 교회
 10) 100명 이상의 사회 각 분야 최고지도자를 양성하는 교회
 
교회에서의 경쟁을 지양하며 가난한 사람, 고난 받는 이웃, 외국인에 대한 장벽을 없앴습니다. 또한 새 신자에 대한 장벽을 없앰으로써 어느 조직에서나 있게 마련인 텃새를 근절하였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달려가는 교회가 광염교회입니다. 지난 해 아이티 지진이 발생했을 때 광염교회에서는 봉사대를 제일 먼저 보냈습니다. 우리교회는 어떻습니까? 구역식구 가운데 장례가 나면 잘 달려가서 돕습니까? 때로는 장례식장에 같이 참여할 사람이 없어서 담당교역자들이 전전긍긍할 때가 있습니다. 조금은 우리가 더 잘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물론 열심히 감당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지난 주간 목요일에 제 7회 순직경찰관 자녀와 투별 결찰관 자녀를 돕기 위한 바자회가 있었습니다. 성도 여럽누이 참여하고 도와 주시 당일 5,200만원의 수익급을 얻었고, 아나 6,00만원 이상의 장학금으로 경찰관들을 도울 수 있게 되어 협조하시고, 봉사해주신 우교회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보다 좋은 교회가 되려면 성도들끼리도 물론 도와야 하지만 어려운 이웃이 발생했을 때 남의 잘 돌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나의 가정도 중요합니다. 나의 가정이 어렵고 힘 드는데,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일을 할 수 있는 건강이 있고 물질이 있고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지요.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도울 때 천국 같은 교회가 됩니다. 남의 일을 잘 돌볼 때 좋은 교회가 됩니다. 야고보1:27절 말씀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를 수십 년 다녔다 할지라도 성도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를 섬기는 성도라 할 수 있겠습니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주님의 가르침을 받은 성도들이 어려운 이웃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면 진정 우리가 사랑의 삶을 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빌립교회는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때에 사도 바울을 도운 교회가 유일하게 빌립보 교회입니다. 빌립보4:14 -1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다른 사람이 어렵다고 하면 내가 비록 어려울지라도 남을 먼저 도울 수 있는 성도가 되십시오. 그런 교회가 우리 대구칠곡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수재가 나면 먼저 나서서 돕고 어려운 가정이 있으면 먼저 나서서 돕는 교회가 되도록 우리 모두 남의 일을 먼저 돌보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표준이 되는 좋은 교회를 만들려면?  

4.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5절에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6-8절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이 마음은?

1) 겸손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6-7절 말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여기서 ‘자기를 비어’ 라는 말을 유념해야 합니다. 스스로 비워야 겸손입니다. 비우고 생색내고, 비우고 후회하고, 비우고 아파하고, 비우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는 것은 진정한 비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모든 것을 비웠습니다. 그래서 겸손한 자만 은혜를 받고 겸손한 자만 그 은혜를 보존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서로가 존중하는 마음, 남의 일을 잘 돌보는 마음도 겸손함에서 나옵니다. 사랑함에서 나옵니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이 자리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자리 잡은 성도로 형성된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2) 복종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겸손하다면서 순종과 복종이 없다면 참 겸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복종으로 이어졌습니다. 8절에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으로서 이 땅에 내려오신 것만으로도 겸손이신데, 저주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심으로 겸손의 극치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실 때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 기도 속에서 복종하는 주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무슨 말씀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주님의 명령이라면 복종하는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적으로도 우리는 이런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교회여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이 앞서면 안 됩니다. 우리의 관습이나 전통이 앞서도 안 됩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우리교회가 복종하는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3) 희생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목숨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리고서 이제는 우리에게도 그 정신을 본받으라고 하십니다. 요한일서 3:16절 말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어서 17-18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자기를 비워야 합니다. 자기를 내어놓아야 합니다. 이런 사랑의 희생이 없이는 주님의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적어도 주님의 마음을 가졌다면 이런 자기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희생을 감사하고 기쁘게 감당할 때 좋은 성도가 됩니다. 좋은 교회가 됩니다. 아직 희생하는 것이 없습니까? 주님이 나를 위하여, 나의 죄를 위하여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놓으신 것을 생각하신다면 우리가 내어놓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좋은 성도가 되고 좋은 교회가 되면 좋은 열매가 주어집니다. 그 열매를 보고 좋은 성도, 좋은 교회라 여김을 받습니다. 그러면 그 열매는 어떤 열매입니까? 

9-11절 말씀을 봅시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즉 구원받은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도가 어렵고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가 좋은 성도가 되고 좋은 교회가 되기만 하면 믿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좋은 교회로 소문나면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을 보내주신다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가 되더라도 사단이 가라지를 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끝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좋은 교회를 찾아다니지 마시고 좋은 교회가 되는 데 헌신하는 자가 되십시오. 좋은 성도가 좋은 교회를 만듭니다. 좋은 교회를 찾아다니는 교인은 좋은 성도가 아닐 수 있습니다. 

존 웨슬레 목사님이 평소 친분이 있던 어떤 사람과 이야기 하면서 요즘은 믿음 생활을 잘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지금 다니는 교회가 좋지 않아서 믿음이 생기지 않고, 교회 다니기 점점 싫어지는데 어디 정말로 좋은 교회가 있으면 추천 좀 해 주세요. 그런 교회 가면 믿음 생활을 더욱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말을 들은 웨슬레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그런 교회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만일 그런 교회가 있다면 당신은 그 교회에 절대로 나가지 마세요.”   “왜요?” 

“그 교회라도 좋은 교회로 남아 있기를 바라니까요.”

좋은 교회를 위해 자신이 좋은 교인이 되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좋은 교회를 찾아다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런 교인이 가면 그 교회는 좋은 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좋은 교회를 찾아다니는 그 사람이 좋은 교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좋은 교인이 아닌 그 성도가 좋은 교회에 들어가면 좋은 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좋은 교인이 되십시오. 그러면 우리교회는 좋은 교회가 됩니다. 우리 모두 좋은 교인, 표준이 될 만한 좋은 교회가 되도록 헌신하는 지혜로운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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