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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족한 것 한 가지 (막 10: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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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것 한 가지 (막 10:17-22)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설교 중에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돈을 많이 벌여야 합니다!’ 청중들이 ’아멘‘
‘우리는 절약하고 저축해야 합니다!’ 역시 ‘아멘’
‘그리고 우리는 그 돈을 선하게 잘 사용해야 합니다! 그랬더니 ’조용‘했다고 한다. 왜 아멘 소리가 쑤욱 들어갔을까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신앙생활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헌금이다. 특히 처음에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분들에게 이것이 시험거리가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신자의 신앙을 평가하는 기본적인 기준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주일성수, 또 하나는 십일조헌금이다. 이 두 가지를 잘 지키면 객관적 입장에서 믿음을 인정하게 된다. 

왜 그런가? 주일성수는 하나님께서 날의 주인이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고, 십일조 헌금은 모든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되심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금하는 것 하나님이 가져가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잘 사용하는 것이 곧 하나님 앞에 드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을 잘 극복하면 신앙이 견고하게 잘 성장하게 된다.

특별히 재물은 우리 인간의 내면 속에 깊이 박혀 있어서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곤 한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도 결국 이 문제로 말미암아 실패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인간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본문 17절에는 ‘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1.예수님 앞에 엎드린 사람은 누구인가?

22절, ‘재물이 많은 고로’ - 부자. 관원(눅18), 젊은 청년(마19). 20절 계명 준수에 모범적인 신앙인이었다. 세상적으로 보면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인데 고민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영생에 관한 것이었다. 육신적으로 부족함이 없었으나 영적인 만족을 느끼지 못하던 차에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예수께로 달려와서 엎드렸다. 

막 10: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어느 철학자가 말하길,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생각하는 거지가 되라!’ 이 말을 성경적으로 옮긴다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의역한다면 너무 육신적인 것에 매달리지 말고 영적인 것도 힘써야 된다는 뜻이다.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육신의 욕구를 따라가는데 본문에 등장하는 이 청년은 양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영생에 대하여 많은 날들 고민해 왔다. 그러던 중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는 선생을 만난 것이다.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정확한 대답을 줄 수 있는 분이셨다. 그러나 그 청년에게는 잘못된 고정관념, 곧 선입견이 있었다.

1)예수님을 선한 선생으로 보았다.
이 청년은 자신의 고민을 유대교의 여러 선생들에게 털어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신통치 않았다. 이 청년은 더 나은 선생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자신의 고민을 풀어줄 위대한 선생이었지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하여 반쪽만 알았다. 그분의 하나님되심을 몰랐다. 

2)행위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게 계명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어릴 때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했다(20절). 그러니까 자신은 계명에 대하여 흠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부분이 부족하냐는 것이었다.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것은 당시 유대교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일반적인 신앙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선포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예수님의 답변

막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그를 아끼셨다. 외식주의 형식주의 율법주의에 빠져 있던 유대교인들만 만나다가 자신의 신앙에 대해 회의를 품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은 예수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만한 청년 만나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 청년을 유심히 바라보셨다. 진정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두 가지를 요청하셨다. 

1)너의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에게 있어서 부족한 한 가지가 무엇인가를 예수께서 아셨다. 그것은 바로 재물을 붙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자기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할 때 자신의 입으로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라고 대답한 것에 대한 진실성이 증명되는 것이었다.

계명의 진정한 의미는 사랑이다. 그는 사랑을 빼놓고 단지 소극적으로 계명에서 금하는 것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것을 다 지켜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단지 피해를 주지 않았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당시 유대교인들의 신앙의 문제점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의식도 없었다. 그러나 이 청년은 그 문제들을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이건 아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를 귀히 보신 것이다.

2)와서 나를 따르라
영생은 예수님에게 있다. 영생을 얻으려면 예수님에게로 와야 한다. 예수님에게 와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곧 영생을 얻는 길이다. 예수님께서는 앞서 제자들에게서도 똑같이 요구하셨다.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

그 청년에게 있어서 영생을 얻는 일에 가장 큰 장애물은 세상 재물에 대한 애착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셨다. 그것을 포기할 때 예수님을 따를 수 있고 영생을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와 같은 요구에 대해 그 청년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우리들은 때때로 중대한 결정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때의 결정이 운명을 좌우하게 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의 길을 제시해 주셨다. 이제 결정은 부자 청년에게 달려 있다. 만약 그가 주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그는 지금까지 그를 괴롭혔던 고민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부하게 되면 이전보다 그의 고통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3.청년의 반응

막 10: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을 누르고 있는 고민 덩어리를 벗겨주시려고 하셨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청년은 주의 말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혹 떼려 왔다가 도리어 혹을 하나 더 붙인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는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떠나갔다.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가? ‘재물이 많은 고로...’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재물은 중성적이기 때문에 선하고 악하고의 차원과 관계가 없다. 다만 재물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 가짐이 중요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재물이 적을 때는 욕심도 적다. 그러나 재물이 많아지면 욕심도 커지게 된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홍수로 인해 국토의 절반이 물에 잠겼어도 그것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재물을 잃었다고 목숨을 끊기도 한다. 왜 그런가? 재물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재물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재물이 사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패륜적인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의 영적 생활에서 재물은 종종 영적 시금석이 된다. 성경은 신자들에게 엄격히 경고하고 있다. 

약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청년의 실패의 원인은 계명 준수를 더 해야 하는 doing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내면에 뿌리 박고 있는 재물에 대한 욕구가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면서 돌아갔다. 그후에 회개하고 다시 돌아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성경은 여기까지만 기록하고 있다. 

본문이 주는 교훈

1.영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2.우리의 잘못된 고정관념들을 바로 잡아야 한다.

1)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고백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2)구원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3.말씀에 의지해야 한다

딤전 6: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럴 때 올바른 판단이 필요하다. 자기 생각, 사람의 생각보다 먼저 주의 말씀을 기준 삼아야 한다

4.올바른 가치관의 정립

마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돈의 가치는 바르게 사용할 때 나타난다. 부자 청년의 부족한 것 한 가지는 재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었다. 그것이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데 발목을 잡은 것이다. 

막 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 나의 영혼이 소중하다. 제자들은 주님을 따라가면서도 계속 다투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의 관심이 세상적인 출세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안으시고 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가르치셨다. 

소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하면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까지 하셨다. 성한 몸으로 지옥에 들어가느니 장애를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고 하셨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과정 중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탐욕, 욕심을 버릴 것을 버릴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그러나 제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예수님을 따름으로 인해 얻을 육신적 유익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 결과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부인하고 자기 살 길을 찾아 도망치게 된 것이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찬송가 94장

신앙생활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예수 믿는 목적이 무엇인가? 왜 이 자리에 나와 있는가? 만약 예수로 인해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한다면 예수님을 찾아나왔던 청년처럼 근심으 안고 실망하고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분을 나의 평생의 주인으로 삼고, 소망으로 삼고, 즐거움으로 삼는다면 우리의 삶에는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주일성수 문제, 십일조문제로 더 이상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왜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 청년을 지극히 사랑하는 눈으로 우리를 보셨던 것처럼 사랑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부족한 것 한 가지를 지적해 주신다. ‘네 욕심을 버리고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나의 욕심, 인간적인 생각을 버리고 우리를 영원한 나라로 확실하게 인도해 주실 주님을 더욱 의지할 것을 다시 한 번 결단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한다. 오직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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