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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 (행 1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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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 (행 18:1-11)
   

사도바울은 어떤 사도와 비교할 수 없는 초인적인 힘과 능력을 발휘하여 복음전파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었고, 성령에 충만한 사람, 사랑 충만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영혼을 구원하려는 구령의 열정에 불타는 사도였습니다.  우리 주님을 핍박하다가 주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보니, 남은 생애는 오직 복음전파를 위해 생명을 다하였습니다. 

이 성목사도 지금까지 걸어온 목회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을 따라 간다고 나왔는데, 주님과 함께 가다보니 참으로 멀리도 나왔고, 나로서는 갈 수 없는 길도 가기도 하였고, 할 수 없는 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나의 나된 것을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셨습니다.  고전15:·0에서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사도바울의 고백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 주어진 환경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하실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실과 최선 그것은 인생을 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빨리 가는 것이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어디로 가느냐 하는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향하는 방향이 있고, 우리가 가야하는 목적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 사람에게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면 이 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입니까?  우리에게 대략 80년이란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이 80년이란 시간을 놀면서 보내든지, 무엇을 연구하며 보내든지,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하든지,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보내야 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주어진 시간을 가지고 허송세월하는 사람도 있고, 최선을 다하며 정성스럽게 살아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은 지미 카터(Jimmy Carter)입니다.  그는 미국 대통령에 한번만 당선되고 재임을 못한 분입니다. 그는 청년 때에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하여 부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원자력 잠수함 개발계획에 참가하기 위하여 사령관 리코버(Rickover) 제독에게 부임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온갖 많은 질문 끝에 제독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습니다. 
“귀관은 해군사관학교 다닐 때 성적은 어떠했는가?” 
“제독님, 저는 820명중 59등이었습니다.”  

그는 자랑스럽게 대답하였고 칭찬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칭찬대신 또 하나의 질문이 되돌아왔다. “귀관은 그때 최선을 다했는가?” 잠시 생각한 후 카터는 마른 침을 삼키며 대답하였습니다.  “아닙니다, 장군님. 늘 최선을 다하지는 못했습니다.”  

한동안 카터를 바라보던 제독은 진짜 마지막 질문을 던지고 인터뷰를 끝냈습니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Why not the best?)”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에 카터는 충격을 받고 평생에 무슨 일을 하든지 “너는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아마 그 제독의 충고는 59등할 정도의 실력이라고 하면 좀 더 노력하면 30등도 할 수 있고, 더 노력하면 20등도 할 수 있고, 좀 더 노력하면 1등도 될 수 있는데, 왜 좀 더 노력하지 않았는가? 하는 말이었습니다. 아주 귀한 충고였습니다.  지미카터는 이 말,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라는 말을 평생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시골 땅콩 밭의 주인이었던 사람이었는데, 해군제독의 충고가 지미 카터 대통령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지미 카터는 그의 자서전을 "Why not the best?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카터 대통령의 자리를 물러난 후에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헤비타트 사역에 전념하였고,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특별히 북한과의 대화를 위하여 항상 앞장서고 있습니다.  

200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는데, 선정한 이유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 향상, 사회적 발전의 신장을 위해, 국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에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 차선에서 만족하고 항상 차선이 미덕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은 복음전파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신 사도바울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그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복음전파에 있는 것을 아신 분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주님에게 사로잡힌 사람, 주님에게 목덜미를 붙잡힌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에게 붙들렸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알고 살았습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하나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내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너무나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에게 아시는 바가 되었다는 것으로 감격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유럽의 관문이며, 동유럽의 최고의 도시인, 아덴에서 전도하였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중에 유럽으로 건너가 그리스의 빌립보에서 전도하여 교회를 설립하고, 데살로니가에서 3주간 전도하여 교회를 세웠습니다.  유대인들의 핍박이 일어나서 베뢰아로 가서 전도하였고 또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사는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좇아와 핍박하므로 베뢰아교회는 동역자인 실라와 디모데에게 맡기고 아덴으로 갔습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전도한 이야기는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에피쿠로스 학파의 사람들과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과 토론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였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몇 사람들이 바울과 가까이 하면서 기독교를 믿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광장의 관리인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지만, 많지 못하였습니다.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고린도라는 도시는 로마제국의 아가야 주의 수도이며, 총독이 거주하는 곳으로 그리스 남부에서 가장 큰 도시였습니다. 고린도라는 도시는 부유한 상업도시였으며, 부도덕성 때문에 악명을 떨치는 항구도시였습니다.  

고린도는 그리스 반도의 남단에 있는데, 동쪽에는 에에게 해의 겐그리아 항구가 있고, 서쪽엔 레기온 항구가 있는데, 잘록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고린도 운하를 통하여 동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중해의 중심도시로 발전하면서 수많은 인종들이 모여들었고, 상업과 무역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우상종교에 빠지고 음란에 빠졌습니다.  고린도에는 유명한 여신 아프로디테라는 우상의 신전이 산 위에 있었는데, 신전의 여사제들이 1천명이나 있어 고린도인들은 퇴폐와 타락에 빠져 있었습니다.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은 심히 약하고 두려워 떨었다고 했습니다.   고전2:3에 보면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 했습니다. 아덴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내지 못하고 고린도에 내려온 바울은 오직 예수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파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고전2:1-2에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가 말을 하는 것이나 전도하는 것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믿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도바울이 지금 이러한 도시에 내려와 복음을 전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마침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로마에 살다가 황제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들은 로마시에서 떠나라고 하는 칙령을 내리므로 아내 부리스길라와 함께 고린도에 와 있었습니다.  아굴라는 흩어져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지만, 부인 브리스길라는 로마의 여성이었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천막을 만드는 사람으로 바울과 직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게 되었고, 함께 일을 하면서 이 가정을 중심으로 고린도교회를 설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이미 로마에서부터 기독교로 개종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바울이 이들 부부를 개종시켰다거나, 믿게 했다는 말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통하여 복음적인 신앙으로 무장하게 되었고, 바울은 통하여 많은 은혜를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바울은 천막을 제조하거나 수리하면서 자비량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손수 일하여 먹을 것을 마련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였으니 정말 대단하신 분이며,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신 분입니다.  

아굴라와 부리스길라 가정은 사도바울을 위하여 참으로 소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아굴라와 부리스길라의 가정을 연구해보면 참으로 귀한 가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롬16:3-5에 보면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 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에 있는 많은 성도들을 문안하는 중에 가장 첫 번째로 말씀하는 가정이 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가정이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가정은 바울의 에배소 전도를 위하여 사전에 준비해주었고, 고린도의 교역자인 아볼로를 소개하여 주신 분들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있었을 때에, 동역자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와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혼자서 고군분투하였지만, 동역자들이 합류하면서 더욱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일, 교회를 돌아보는 일, 목회에 있어서는 팀사역이 아주 중요합니다.  담임목사 혼자로서는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유럽의 어느 곳을 가든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강론하면서 성경에 이미 예언된 메시아에 대한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안식일이 되면 바울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였습니다.  안식일에 회당을 찾아오는 헬라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유대교로 개종한 이
방인들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사역하였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붙잡혔다는 말은 ‘사로잡히다’는 말인데, ‘--에 집중하다’, ‘--에 헌신하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무엇인가에 집중하고 헌신하고 사로잡히고, 붙잡혀 있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를 돌아보면서 선교비도 적지 않게 가져왔으며, 교회들이 안정되게 성장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바울은 생업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말씀 전파에 힘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일어나 바울을 핍박하였습니다.   바울을 대놓고 면전에서 비방하고 나왔습니다.  바울은 옷을 털면서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6) 말씀하였습니다.  바울이 복음전파하면서 옷을 떨어버리고, 하나님이 물으신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돌리는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바울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행동을 취하였을까 하는 동정심도 가져봅니다. 

바울은 회당에서 나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디도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은 바로 그 회당 옆이었습니다. 회당에는 보통 세 사람의 회당장이 있어 돌아보게 하였는데, 회당장으로 있던 그리스보라는 사람이 예수를 믿고 바울을 따라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보의 가정 온 집안이 다 말씀을 듣고 믿어 세례를 받았습니다.  

유대인의 회당 옆에서 모임을 가져야 하고, 회당장의 한 분도 따라 나왔으니, 앞으로 유대인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괴롭힐 것이냐 하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을 있습니다.  

바울은 밤에 기도하고 잠에 들었습니다.  주님이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바울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9절입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는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아덴에서 전도에 성공하지 못하였고, 고린도에 와서 유대인들에게 많은 핍박을 받자 어느 정도 위축되어 있고, 소심해진 것 같습니다.  우리 주님은 먼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불신자요, 아직도 주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의 자리로 달려가는 이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10:28에 보면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두려워하지만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빌4:13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막9:23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고 하셨습니다.  

눅1:37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이런 말씀을 마리아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우리 주님은 이런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마19: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지혜가 있거나 똑똑하여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강하고 담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침묵하지 말고 말해야 합니다.   먼저 믿은 우리 선배들이 침묵하고 말하지 않았다고 하면 우리는 예수님에 대하여 전해들을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침묵은 결코 금이 아닙니다.  말을 할 때에, 온유함으로 하고 사랑함으로 해야 합니다.  

오늘 10절의 말씀을 통하여 힘을 얻어야 합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새번역으로 읽어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고 했습니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 이 말씀은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아직도 복음을 들어야 할 하나님의 예비하신 백성들이 많습니다.   아직도 복음을 접해보지 못한 영혼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인구는 우리 전 국민의 25%가 채되지 않습니다.  4명의 1명 정도만 기독교인이요, 3명은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을 들려준 선교사들 중에 앨버트 클레멘트 라이트 목사님이 계십니다.  1890년 3월에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짓는 사람인데, 선교의 소명을 느끼면서 대학과 신학교를 나와 호주 장로교회의 파송으로 한국에 오신 분입니다.    

1912년 우리 한국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결성되던 해에 입국하여, 부산과 진주와 마산 등지에 선교하였는데, 부인은 1927년 12월 한국에서 사망하였고, 1942년 일본에 의해 강제 추방되실 때가지 30년 동안 양산, 울산, 김해, 밀양, 동래 거창 등지의 70여개 교회를 돌아보면서 수많은 교회를 찾아 걸어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고, 세례를 주고 성찬을 집례하면서 성경학원을 운영하고 한 주간씩 성경을 가르치며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30년 동안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한국인들을 위해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배움의 동기를 부여하고 경남일원에서 가장 존경받는 선교사님으로 헌신하셨습니다.  

선교사님이 무엇 때문에 살기 좋은 호주에서 살 것이지, 왜 한국 땅으로 와서 복음을 전해준 것입니까?  한 영혼이라도 더 예수님에 대하여 듣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먹기만 하면 살아날 수 있는 명약이 있는데, 그 명약을 나만 가지고 있고, 나만 알고 있고, 그에게 나누어주지 않는다면 그에게 정말 못할 일이요, 그의 죽음은 곧 나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우리 주님을 모르고 죽어가는 우리의 친척, 형제,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의 영혼을 살리는 명약이 되십니다.  이 도시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주 많습니다.  저 죽어가는 영혼들은 오늘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복음을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입니다”라고 전파하여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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