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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 강한 영혼으로 사는 길 (시 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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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강한 영혼으로 사는 길 (시 138:3)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셨나이다”(시편 138:3). 

I. 본문해설 

본문 말씀은 전형적인 찬송시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시인은 신앙의 깊은 감격을 느끼며 하나님 앞에서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마도 찬송의 이유와 관련 있다고 생각되는 기도의 한 경험을 고백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이 자기의 경험을 토대로 밝히는 기도생활의 두 가지 유익을 말합니다. 

II. 기도의 두 가지 유익 

A. 응답을 받음 

첫째는 바로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야고보 선생은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 4:2)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안에는 모든 것이 있고 주님은 모든 일들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명하시면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뜻이 이루어져가는 것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기 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신을 경외하고 의존하는 가장 훌륭한 표로 기도를 꼽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벌하시기로 결정하신 때조차도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시도록 만들었습니다. 일은 바꾸시지만 뜻은 돌이킴이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뜻은 일정하시만 사람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뜻이 펼쳐지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로 나라의 위기를 넘기기도 하였고, 전쟁에서 승리하기도 하였고, 핍박과 고난에서 이기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생애는 기도의 응답으로 사신 생애였습니다. 기도가 하나님으로부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는 방편이며,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는 것을 아시고, 또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도록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 역시-특별히 신약 성경에서-기도를 통해 이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신 이후에 인간을 구속할 성령이 오실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모여 기도하는 작은 무리의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서 강림하셨습니다. 더욱이 성령의 역사가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축복이라고 굳게 믿던 때에 사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방인들도 그렇게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뜻을 기도하는 베드로와, 기도하는 교회를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고넬료와 베드로의 기도시간은 일치했고, 두 사람의 기도를 통해 성령은 이방의 세계에 물 붓듯 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전개입니다. 

우리 주위에 산적한 많은 문제들은 사실 우리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만약 우리가 마음을 모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더라면 가정과 개인은 물론이고 교회, 그리고 나라 안에 있는 많은 문제들은 이미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간절한 기도 속에서 하나님은 응답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만약에 기도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하나의 절대자이고 주관자일 뿐 실제 우리 삶 속에서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으시는 하나님으로서는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들은 주님이 매 순간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합니다.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기도하지 않던 사람은 운이 좋았다고 부지불식간에 입술로 말하지만, 기도했던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찬송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문제 앞에서 고민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기도에 쏟는 것입니다. 그러면 근심과 염려로 상했던 우리의 마음은 기쁨과 감격에 가득 차게 될 것이고, 번뇌하며 방황하던 우리의 삶은 분명한 푯대를 향해 걸어가는 당당한 삶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문제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문제와 해결 사이에는 기도라는 간격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해결의 열쇠를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오늘날 심각한 것은 불신자들의 무신론이 아니라 신자들의 무신론은 아닙니까?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의존하며 산다는 가장 확실한 신앙의 표현은 기도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단지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사실에 대한 동의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온 존재를 실어서 주님이 말씀하셨고 약속하신 바가 옳다는 고백이며, 그렇게 간구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의 삶 속에 역사하신다는 실천적인 신앙고백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으면 실천적인 무신론자가 됩니다. 이런저런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살아 계심에 고개를 끄덕일지 모르지만 그분의 살아 계심을 온몸으로 전율하듯 느끼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없습니다. 말씀을 적게 깨달아도 많이 기도하는 사람들은 깨달은 그 말씀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지만, 많이 깨달아도 거의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말씀의 지식이 지식의 창고에 드러누워 자신과는 상관없는 말씀이 되고 맙니다. 체험적으로 말씀을 깨닫고 자신에게 적용하며, 치열하게 살고자 하지 않고, 지성의 창고에 궤짝처럼 쌓아둔 그 말씀은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데 사용되기 일쑤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실천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의 자녀들 세대에도 밀려올 그 수많은 다원주의와 무종교주의, 무신론, 세속주의와 인본주의, 쾌락주의와 정욕주의를 이겨낼 수 있는 놀라운 힘도 아이들이 여러분을 통해서 기도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께로부터 기도의 영을 받아 기도의 즐거움과 달콤함을 아는 것입니다. 그 아이들은 기도를 통해 생생하게 자신을 만나주시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의 증거를 신뢰하며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B. 영혼을 강하게 하심 

둘째는 영혼을 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도대체 영혼이 강해진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구약에서 ‘영혼’이라는 단어는 단지 영혼 하나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영혼, 정신, 마음, 이 모든 것들을 총체적으로 가리킵니다. 그러면 강함은 무엇입니까? 강함은 상대적입니다. 하나만 있어서는 어떤 것이 강한지 아닌지 파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강함은 힘과 힘이 맞부딪쳐 겨룰 때 상대를 꺾고 누를 수 있는 힘인 것입니다. 

본문의 시를 쓴 다윗은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인물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혼의 아름다움과 정신의 강인함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소망 자체를 하나님께만 두었기 때문에 한 나라의 왕으로 세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높으신 그분을 바라봤습니다. 올곧은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 앞에 늘 깨뜨려지기를 잘하며 자기의 심령의 산 제사를 하나님께 올렸던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더욱이 그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단지 남에게서 배우고 들은 학습된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우주와 세계와 인간과 영혼과 역사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전 포괄적인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던 구약 최고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부패한 아담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범죄하고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여 주님이 보시기에 심히 악한 사람이 된 적도 있었습니다. 추루하고 더러워진 영혼으로 몸부림치며 울던 지극히 연약한 성도들 중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이때에 그의 영혼은 약하였습니다. 정신과 모든 마음이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연약해졌을 때에 그는 이렇게 범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혼의 강함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정신과 마음의 위대한 힘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선한 의지의 크기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사람들에게는 비록 그가 지금 악을 행하고 있다 할지라도 저 마음 한 구석으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진실한 소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은 단일한 의지로 죄를 짓고, 믿는 사람은 죄를 지을 때조차도 복합적인 의지로 죄를 짓는 것이니 하나는 육체의 욕심대로 살고자 하는 죄 된 의지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신령한 의지입니다. 영혼이 강하다는 것은 이런 육적인 의지를 영적인 의지로 누르고 이기는 영혼과 선한 의지가 큰 상태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아름다움은 그의 사회적 지위나 외모, 젊음이나 늙음, 육체의 아름다움이나 추함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한 인간의 아름다움은 영혼의 아름다움이고, 한 인간의 가치는 그가 영혼에 지니고 있는 선한 의지의 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향해 그런 올곧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는 얼마나 아름다울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것이 바로 영혼의 아름다움이고, 인간 존재의 가치인 것입니다. 그것이 본문이 말하는 영혼의 강함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나서 직업, 빈부의 차이, 외모 등은 모두 삶의 양상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시인의 영혼을 어떻게 강하게 하셨습니까? 영혼을 장려하심으로써 하셨습니다. 여기에 쓰인 히브리 동사는 성경에서 ‘거칠다, 무섭다, 거칠게 다루다’와 같은 형태로 번역이 됩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더니 연약했던 영혼이 강해졌는데 그 이유는 기도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시인의 영혼에 개입하셔서 역사하시고 튼튼히 하신 것입니다. 곧 간절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순수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기도가 이렇게 영혼을 강하게 하는 효과가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비가 많이 쏟아져도 뚜껑을 닫아 놓는다면 그 항아리에는 물이 고이지 않습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하고 굉장히 존경을 받는 사람들인데도, 결정적인 지점에서 신앙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굉장히 헌신적인 줄 알았는데, 자기의 이익과 관련되어 있을 때는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 뜻보다는 자신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일과 말이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관련을 맺고 계신 하나님만이 그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반석이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게 일하더라도 일하면서 주님을 닮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속으로 들어오는 신앙생활이 아니며,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 속에 스며들지 못합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섬김이든지 기도이든지 예배이든지 마음을 짜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내적 투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마음이 바른 것 같아도 하나님의 말씀의 비춤을 받고 간절히 기도하면 마음이 오그라들고 펼쳐지는 운동들이 일어납니다. 그때 그 속에서 보통 때에는 결코 다루어지지 않았던 마음속의 올바른 것들과 그렇지 못한 것들, 하나님을 향한 신실하고 거룩한 욕망과 정욕 사이에 분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그런 간절하게 마음을 드리는 기도 속에서만 자신의 마음이 다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면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서 자신이 깨뜨려지고, 다시 실수할지라도 뉘우치고, 회개하며 불순종하는 자신을 미워하는 자기 정죄와 자기 심판과 자기 처벌의 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간절함이 없이 어떻게 우리들이 변화될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시인이 얼마나 간절하게 부르짖었으면,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거칠게 다루어 강한 영혼이 되게 하셨다고 고백을 하게 되었겠습니까? 보십시오. 한때는 주님만을 위해서 살던 사람도, 어떤 때는 하나님 앞에 넘어지기도 하고, 어느 한순간 주님 앞에 아주 충성치 못한 사람으로 돌아서기도 합니다. 이것은 영혼의 약함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지금은 그 무엇보다도 강한 영혼으로 살아야 할 때입니다. 선한 뜻을 품고 주님이 맡기신 일들을, 시련과 고난, 환란,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무관심 속에서도 충성되게 하는 모든 비결은 이 영혼의 강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간절히 기도의 실천을 통해서 지금은 약한 영혼이지만 강한 영혼으로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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