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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도적으로 거룩한 변화를 일으켜라! (갈 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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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적으로 거룩한 변화를 일으켜라! (갈 6:6-10)


다윗은 시편 27편에서 그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사모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에 사는 것이 인생 최고의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그 축복의 자리에 오신 여러분을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호와의 전에서 지내는 하루가 세상에서의 천 날보다 귀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귀한 자리에 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비록 내가 가지고 온 인생의 짐들이 무겁고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면서 방긋 웃으십시오.  이곳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러나 세상에는 돈보다도 더 귀한 것이 있습니다.  권력이 최고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러나 권력이나 어떤 지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진리를 아는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침에 진리를 알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 진리를 안 사람들입니다.  우리 안에 그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셨습니다.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에 따라서 웃고 우는 어리석은 인생이 아니라 그 환경에 상관없이 절대적으로 행복하셔야 합니다.  영원한 진리가 되시는 주님과 함께 만족한 삶을 사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절대 홀몸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나에게 이길 힘을 주시며 늘 동행해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주간을 살아오면서 내가 좀 실수를 했습니다.  내가 좀 연약한 탓에 뭔가 내 뜻대로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망도 했고, 낙심도 했습니다.  때로는 원망과 불평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나를 떠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어리석은 믿음을 가지면 안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좋은 때에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쁠 때에도 함께 하십니다.  좋을 때에는 웃으시며 기쁨으로 함께 하시지만 나쁠 때에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들에게 힘을 주시면서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심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의 자기 정체성을 의심하면 안됩니다.

♬"주 언제나 나 함께 늘 동행해 주시네
주 날마다 내게 이김 주고 늘 동행해 주시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로 믿음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인가 내가 생각했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일 것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 우리는 종종 자기 믿음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내 생각과 그 사람의 생각이 다르듯이 하나님의 정한 때는 내가 생각한 그 때와 다를 수 있습니다.  

내 뜻이 곧 너의 뜻이 아니듯이 하나님의 뜻도 내 뜻과 다를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늘이 땅에서 높음과 같이 하나님이 예비한 것은 우리를 위하여 더 크고 더 아름다운 일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절대적인 의지와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따라 갈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가운데 보면, 그것이 내 감정을 가지고 내 뜻대로 안 되었다고, 내 생각대로 안 되었다고, 내 계획대로 안 되었다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어린아이처럼 아예 바닥에 누워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결코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 그것이 성숙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성숙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숙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면서 더욱 변하십시오.  이 시간에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십시오.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이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을 외우십시오.  그리고 이 말씀을 붙잡고 사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에서 무엇이 꼬여갑니까?
무엇이 잘 안됩니까?
무엇이 두렵습니까?
장래에 대한 것이 불확실합니까?
뭔가 아무리 봐도 내 생각대로 잘 안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꾀를 쓸까요?
속여 볼까요?
절망과 낙심 가운데서 아예 이불을 펴고 들어 누워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해 보십시오.  문제가 풀리지 않고 무엇이 자꾸만 꼬여간다고 생각이 될 때 하나님 앞에 나와 전심으로 그분께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합력해서 풀리는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비밀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있는 자만이 알 수 있는 진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 얽혔습니까?  묶었습니까?  자유가 다 떠났습니까?  불확실합니까?  두렵습니까?  도저히 내 힘으로 무슨 방법이 없습니까?  살아나려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빠져 들어갑니까?  일을 이루시는 여호와 그 일을 성취하는 여호와, 그 하나님을 사랑해 보십시오.

제가 보면서 느낀 것은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려울 때일수록 더 하나님을 사랑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짜 믿음들은 어려울 때 하나님을 떠나가더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신실한 믿음의 사람은 힘들고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을 만났을 때 더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짜 믿음은 힘들고 어려운 사건 앞에서 여지없이 자신의 쓴 뿌리를 드러내고 주저앉아버립니다.  그래서 빛 앞에서 어두움이 드러나듯이 어려움에 처할 때에 그 사람의 믿음이 참인지 거짓인지가 확연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비는 인간이 뽑아도 결정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계획은 사람이 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눈에 나타난 것으로 인생을 결정하지 마십시오.  눈에 나타난 것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아직도 눈에 나타나지 않은 깊은 세계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더 사랑하십시오.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을 만났을 때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십시오.

내가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솔직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문제를 만나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노력으로 뭔가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인생은 구덩이 속으로 점점 더 빠져 들어갈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 앞에 나와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로 위대한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고 할 이야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할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을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고 할 이야기가 없는 사람들은 교인이라고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교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증인이 필요하신 겁니다.  내가 하나님을 이렇게 믿었더니 고비 고비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셔서 이렇게 승리하게 되었다고 하는 할 이야기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목사인 저는 우리 교우 여러분들이 시간마다 때마다 하나님을 믿고 할 이야기가 더 많아지기를 축복합니다.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생명의 이야기, 은혜의 이야기, 축복의 이야기들이 많아지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기업이든, 어떤 조직이든 그 조직 안에 누군가가 한 발 앞선 사람이 있다면 그 조직은 살아납니다.  한 발 앞선 그 사람이 기업과 조직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앞서지 못하면 누군가 앞선 사람을 찾아내십시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한 발 앞서려고 해야 합니다.  어느 조직이든 누군가가 한 발 앞선다고 하면 그 조직은 운명이 바뀝니다.  그래서  저도 제 스스로 한 발 앞서려고 무지하게 애를 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뒤쳐지면 다 뒤쳐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변화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변화와 믿음의 힘이 곧 경쟁력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변화를 주도하십시오.  변화를 만들어내십시오.  변화나 개혁은 다 같은 말인데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좋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끊임없이 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주도적으로 우뚝 서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변화와 개혁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에 그 주도자가 누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들이 벌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주 이런 말을 합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맞는 말입니다.  윗사람이 본이 되어야 아랫사람이 따라서 할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변화와 개혁에 앞장을 서야 일반 사람들도 따라서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세상적으로는 지극히 합리적인 말입니다.  그렇지만 성서에서 본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세를 말할 때에는 그것은 옳은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그러나 그리 아니할지라도 아랫물이 맑으면 윗물도 맑아질 수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예수님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 당시에 사회적 지도층인 윗물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야말로 갈릴리의 이름도 없는 마을의 나사렛에서 올라온 그야말로 이름도 없는 아랫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도 없는 아주 작은 아랫물에 불과했던 예수님께서는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역사가 그랬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 예수를 믿었던 다수의 사람들은 고관대작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름 없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자유를 잃어버린 노예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가 봐도 윗물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작은 아랫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그들을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세상이 진동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세상이 뒤집어졌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위대한 불은 언제나 작은 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았을 때 이름 없고 보잘 것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교회가 세워졌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졌습니다.  교회의 부흥은 이름 있는 윗물이 아니라 이름 없는 아랫물의 헌신과 섬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주도적으로 거룩한 영적 변화에 앞장서십시오.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결코 어두운 분위기에 짓눌리지 말고 기도의 횃불을 들고 일어나 밝은 분위기를 창조하십시오.  아무리 어두운 곳이라도 작은 불씨만 들어가면 그 어두움은 물러갑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거룩한 믿음의 불씨를 들고 어두운 분위기 속으로 들어가면 그 어두운 분위기는 떠나갈 것입니다.  슬픈 분위기에 이끌려가지 말고 찬송의 나팔을 불면서 밝은 영적 분위기를 만들어 가십시오.

기도할 마음이 안 생긴다.  그 마음은 사단이 주는 마음입니다.  그럴수록 더 기도하셔야 합니다.  찬송할 마음이 아니다.  그 분위기는 사단이 주는 마음입니다.  그럴수록 더 찬송하셔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어두운 분위기, 슬픈 분위기, 낙심된 분위기는 사단이 우리들에게 던지고 간 가라지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거기에 넘어지면 안됩니다.  거기에 같이 휩쓸리면 안됩니다.  거기에 내 영혼이 짓눌리며 안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그런 분위기에 넘어집니까?  자기 감정에 충실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기 감정에 충실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에 충실하십시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사모하십시오.  그래서 거룩한 영적 변화에 주도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거대한 조직도 활력을 잃어버리면 금방 무너집니다.  아무리 화려한 조직도 그 분위기가 어두우면 금방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가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성령의 능력을 받아 활력을 얻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과 은혜가 철철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이 철철 넘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조직에, 내가 뼈를 묻고 섬겨야 할 이 하나님의 교회에 거룩한 영적 변화가 뜨겁게 일어나야 합니다.  부흥과 회복의 역사가 나로부터 시작되게 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만일 활력이 철철 넘치지 못한다고 하면, 그래서 그 조직의 분위기가 어둡다고 한다면 그 조직은 끝나는 것입니다.

만약에 활력이 철철 넘치지 못하면 금방 오는 싸인이 불신입니다.  불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이 철철 넘치지 못하면 불신과 불만과 권태가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나 다시 활력만 살아나면 불만도 없어집니다.  불평도 없어집니다.  권태도 없어집니다.  한 마디로 살 맛이 납니다.  일 할 맛이 납니다.  그렇게 되면 조직은 살아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돈이 있어도 그 조직의 사람들이 활력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교회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이 철철 넘치게 하십시오.  그래서 나로 인하여 이 교회에 생명의 바람이 불어오게 하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영적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주도적으로 일어나십시오.  주도적으로 일어나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부름의 상을 향하여 오직 앞만 바라보면서 나아가십시오.  그는 그대로 가게 하고 당신은 주님께서 주신 당신의 사명을 감당하십시오.

그렇다면 주도적으로 거룩한 영적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하나님 앞에서 스타가 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조직이든 그저 그렇고 그런 무난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곳은 망하고 맙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들의 제일 문제입니다.  뭔가를 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을 무난한 사람들이 잡아 내립니다.  그리고 죽여버립니다.  그러면 결국에는 누가 올라가느냐 하면 아무 소리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무난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우리 나라의 조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무난은 최상의 적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무난하지 마십시오.  요셉이 무난했습니까?  모세가 무난했습니까?  사도 바울이 무난했습니까?  아닙니다.  무난해야 한다는 것은 동양의 유교권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잘못된 정신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은 스타가 되어야 합니다.  스타는 스스로 타락한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타이밍을 맞출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일해야 할 때를 알고, 헌신해야 할 때를 알고, 섬겨야 할 때를 알아서 그 일을 감당하는 사람, 그가 이 시대의 스타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 스타가 됩니다.  스타란 남보다 앞서서 자기의 할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도적으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아내는 것이 스타입니다.  거룩한 영적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주도적으로 앞장서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무난한 사람들끼리 모여 가지고 무난한 짓이나 하는 사람들로는 결코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여호수아가 무난한 사람입니까?  요셉이 어디 무난한 사람입니까?  무난한 형제들 속에서 그들은 언제나 스타였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스타 의식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조직은 스타를 키워야 됩니다.  스타가 존경을 받아야 됩니다.  야구팀에 스타가 있어야 됩니다.  축구팀에도 스타가 있어야 됩니다.  골프도 스타가 있어야 됩니다.  한 명의 스타가 그 나라에 스포츠 바람을 불러일으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도 스타가 있어야 됩니다.  전도의 스타가 있어야 됩니다.  기도 잘하는 것도 중요하고 금식 잘하는 것도 중요하고 사람들을 모아놓고 무엇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도의 스타가 되십시오.  전도의 스타가 없는 무난한 사람들끼리 나약하게 모여있는 팀은 결코 부흥과 회복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스타는 무난한 사람들이 죽입니다.  무난한 사람들 속에서 스타를 발굴하고 스타를 키울 수 있는 그런 역량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미래를 향하여 한 발짝 앞서 걸어가십시오.  그리고 믿음의 스타가 되십시오.  결국 교회의 부흥과 가문의 부흥은 믿음의 스타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두 번째로, 주도적으로 거룩한 영적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한 마디로 말해서 모든 일에 하나가 되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조직 안에서 갈등이 일어나면 안됩니다.  그런데 그 조직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육적인 사람들만 있으면 갈등을 이길 길이 없습니다.  조직에 활력이 죽어 가는 것은 내부간의 갈등과 분열입니다.  책임전가입니다.  그런 조직 내부에 있는 갈등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하나가 되는 것은 인간적인 힘으로는 안됩니다.  돈을 많이 준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더 좋은 지위를 준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야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더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됩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들이 있어야 그 조직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영으로 사십시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명과 첫 은혜의 첫 사랑을 잃어버리고 나면 무엇이 나오는지 아십니까?  자기 일에만 관심이 있어집니다.  자기 자존심에만 관심이 있어집니다.  교회나 사명보다는 자신의 사생활에 더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끝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미쳐 살아야 합니다.  결국 인간의 응집력이라고 하는 것은 조직 전체의 사명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변화와 개혁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끝없이 바뀌어야 합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끝없이 변해 갑니다.  세상을 보십시오.  다 변해 갑니다.  기억하십시오.  굳어진 생명에는 내일이 없습니다.  굳어진 것은 죽은 것만 굳어집니다.  나무도 그렇고 돌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역사 하면 굳어지지 않습니다.  성령은 유연성이 있습니다.

종교를 붙든 사람은 아주 심각합니다.  종교를 붙든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에게서는 유연성이 없습니다.  그들에게서는 어떤 조화로움이 없습니다.  그들에게서는 딱딱함과 고집과 거만함과 독불장군만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에 붙잡힌 사람들은 유연합니다.  그들 안에는 하나됨이 있습니다.  서로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성과 조화로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 되기 위해서 힘쓰십시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세 번째로, 주도적으로 거룩한 영적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하나님 안에서 꿈의 전달자가 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든 조직이든 꿈이 없으면 망합니다.  꿈이 없으면 방자해집니다.  꿈이 없으면 휘청거립니다.  목표가 없으면 망합니다.  그런데 목표가 무엇입니까?  꿈이라고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있어야 됩니다.  목표는 아주 그림같이 구석 구석을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 목표는 모두가 원하는 것이어야 됩니다.  나 혼자만 원하는 것은 안 됩니다.  모든 사람 전체가 원할 수 있는 것이어야 됩니다.  그리고 이 목표는 실행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야 됩니다.  단계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목표는 아주 구체적이어야 됩니다.  그리고 그 꿈을 조직 전체에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품고 있는 거룩한 꿈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꿈을 감당하려고 중단 없이 달려갈 때 우리는 그것을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사명을 붙잡으십시오.  내가 그 조직과 구성원들에게 열정을 일으키려고 하면 제일 먼저 사명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사명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명을 위한 구체적인 꿈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거룩한 꿈을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끊임없이 전달해야 합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함께 달려가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부흥과 회복은 어느 한 날에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도적으로 그 공동체에 끊임없이 거룩한 영적 변화를 일으키려고 하는 믿음의 스타들이 일어날 때 부흥과 회복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중세시대에 유명한 브라더 로렌스라는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8세에 회심하였고, 처음에는 군인으로 지내다가 제대 후에 어느 부잣집의 하인 노릇을 했습니다.  1666년, 55세가 되던 해에 그는 파리에 있는 카르멜 수도회에 평신도 수도사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정식 수도사들의 밥을 지어주는 식모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식모는 식모였지만 그는 위대한 식모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지내던 밥 짓는 부엌을 천국으로 만든 식모였기 때문입니다.

수도회에 있는 동안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을 낮은 자리에 두었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을 주방에서 요리하며 보내는 삶에 만족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입은 상처로 다리가 불편함에도 신발 수선의 일을 맡아서 수도회 형제들을 위해 2백 켤레가 넘는 샌들을 만들고 기웠습니다.

그의 위대한 점은 그런 지극히 평범한 일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인재하심을 느끼고 헌신적으로 섬기는 일에서 인생의 궁극적인 행복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수많은 군중 앞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처럼 중요하게 여기고 기꺼운 마음으로 감당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주도적으로 거룩한 변화를 일으켰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수도원에서 원장을 뽑게 되었는데 선임 수도사들 중에서 원장이 나온 것이 아니라 이 평신도 수도사가 원장에 뽑히게 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브라더 로렌스는 나중에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 생애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발견은 아무리 초라한 오두막집에 거할지라도 거기에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임재하시게 함으로써 그곳을 지상 최고의 궁전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싸움을 피 흘리기까지 전심을 다해 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은 우리들이 있는 이곳 주님의 몸된 전을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임재하셔서 지상 최고의 궁전으로 만들기 위해서 전심전력을 다해 보셨습니까?
여러분은 거룩한 영적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어둠의 세력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보셨습니까?
혹여 다른 사람들에게 쓴 소리를 듣기가 싫어서 그저 그렇고 그런 무난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무난한 자세로는 결코 거룩한 영적 변화를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는 결코 하나님의 역사에 도구로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브라더 로렌스, 그는 죽는 순간까지 맨발의 수도사로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았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큰 일을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프라이팬의 작은 계란 하나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뒤집으십시오.  그래도 더 할 일이 없으면 바닥에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세상의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은 행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일어나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주도적으로 거룩한 영적 변화를 일으키십시오.

브라더 로렌스는 80세로 눈을 감기까지 희생과 사랑과 섬김이 주는 평안과 안락함을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는 깨어있는 전 시간을 하나님의 임재의 사랑 속에서 살면서 주도적으로 거룩한 영적 변화를 일으켰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목사인 제 꿈은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가 비록 작고 보잘 것 없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제일 존경받는 교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제일 존경받는 장로님, 한국에서 제일 존경받는 권사님, 한국에서 제일 존경받는 집사님들이 이곳, 언양영신교회의 권속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하나님의 영으로 일어나십시오.  일어나 깨어 있으십시오.  깨어서 주도적으로 내가 서 있는 그곳에서 거룩한 영적 변화를 일으키십시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이제 정말 존경받는 장로가 되리라!  존경받는 권사가 되리라!  존경받는 집사가 되리라!  존경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리라!  존경받는 교회를 만들어가리라!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리라!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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