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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방법 (롬 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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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방법 (롬 10:9-15)


예수 믿는 이유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외치신 첫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는 것입니다. 천국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구원을 받기 위함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9절에 보면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달리 말하면, 영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신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 이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혼의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또는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죄에서 건짐 받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우리가 죄에서 건짐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자체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마 1:21). 

인간은 구원이 필요한 존재

그리고 죄에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인이 아니고 의인이라면 구원을 받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 속에는 전 인류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이 모든 사람의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사람들은 죄인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죄인이라고 하면, 불쾌하게 여기면서 ‘당신은 죄인인지 몰라도 나는 죄인이 아닙니다’라고 대꾸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인인지 아닌지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넓게는 이 세상의 불의함과 타락상을 보면 알 수 있고, 좁게는 우리 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이 세상이 정의롭고 선하다고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 사회가 불의하고 악한 것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인간들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선한데 다른 사람들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악한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죄인인 사실은 누가 우리의 악함을 지적해 주어서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양심이 말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 속에 양심을 주셨습니다. 그 양심이 비록 때가 묻어 선악을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양심은 우리가 악을 행할 때 가책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기의 양심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가 죄인인 사실을 지적해 줍니다. 죄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것을 말합니다. 613가지의 율법 조항을 요약한 것이 십계명입니다. 그리고 십계명을 요약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계명 하나 하나를 지켰는지 따지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살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율법을 지켰는지 지키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비롯해서 모든 국가의 법률은 결과로 드러난 행위를 보고 판단합니다. 그러므로 법을 어기면서도 교묘하게 범법행위를 감출 수만 있다면 국가는 그 사람을 처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드러난 행위보다 마음의 동기를 더 중요시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죽이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마음으로 누구를 미워하면 이미 살인죄를 범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누구를 미워하는 것은 사랑의 계명을 어긴 것이기 때문에 죄를 범한 것입니다.

오늘날 빈부의 차이가 극심한 것은 우리 사회가 악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지구상에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3억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아이티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빵을 살 돈이 없어서 진흙 반죽에다 소금과 버터를 썩어서 말린 진흙쿠키를 먹고 삽니다. 이처럼 비참한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류가 악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잘 사는 나라들은 곡간에서 양식이 썩어 나가지만 가난한 나라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습니다. 이처럼 죄는 너무나 실제적이고 경험적이어서 우리 자신과 주위에서 얼마든지 죄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죄인인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무슨 복잡한 이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생각을 살펴보고 우리 사회의 불의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죄는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인간의 현실입니다. 사람들은 매일 같이 죄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죄를 지으면서 살아갑니다. 

죄의 심각성

그러면 죄가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죄는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명을 어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맙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것이 최초의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을 불순종하여 죄인이 된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명을 불순종하여 죄인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신 말씀이 이를 가리킵니다.

물론, 우리는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선악과를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다양한 죄를 지었고 또 짓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인이 아니고 의인이라면 죄를 절대로 짓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한결같이 선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전혀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에 이르기를 “10)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이 드러났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법에 의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죄를 지은 사람은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그 대신 하나님의 진노가 죄인 위에 항상 머물러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죄의 삯으로 우리 인생에게 내려진 죽음은 세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먼저, 영의 죽음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죄와 허물로 그 영이 죽은 상태에 있음을 말해 주며, 아울러 그리스도인은 그 영이 살리심을 받았음을 말해 줍니다. 

그 다음, 육체의 죽음이 있습니다. 만일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지 아니하고 생명나무의 실과를 따먹었더라면 육신의 죽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와 더불어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을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의 죽음이 끝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하신 대로, 죄인에게는 세 번째로 영원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계시록 20장에 보면, 최후의 심판과 죄인들의 영원한 운명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11)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12)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영원한 죽음은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영원한 형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불못의 고통 뿐 아니라, 영원히 하나님과 단절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구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방법

그러면 하나님께서 멸망당할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택하신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온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하게 하시는 방법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일서 4장에 이같이 말씀합니다. 

“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죄인들이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 인생들을 찾아오셨으며,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인생들을 위해서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파격적인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죽음을 당하셨기에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으며,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인정받고, 영생에 들어가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복음 3장에 이르기를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는데, 이 말씀 속에는 복음의 핵심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곧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구원의 길임을 보여줍니다. 구원은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고, 종교적인 수행이나 많은 선행을 통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나사렛 예수를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유일하신 주님이시며, 유일하신 구세주로 믿을 것을 요구합니다. 구원 받는 믿음이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세주로 믿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왜 예수 그리스도만 믿어야 구원을 받느냐 하면, 구원의 주체이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종교 다원주의자들은 이런 반대 논리를 폅니다. 

“산 정상에 올라가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서남북 어디로 올라가든지 정상에 다다르면 될 것이 아니냐?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외에도 구원의 길들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인간적인 생각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구원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구원의 방법도 하나님께서 정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종교다원주의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7)…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세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만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말을 듣기 싫어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같은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타종교를 비난하거나 대적하지 말아야 합니다.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보고 마귀의 자식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들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저들을 목자 잃은 양처럼 긍휼히 여기고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미워하는 것은 저들이 구원의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는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를 비난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을 적대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같은 심정으로 저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온갖 차별로 가득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복음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자유자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나 어른이나 아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유식한 자나 무식한 자나 차별이 없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에 관한 성경 말씀을 몇 곳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5절로 1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15)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죄인이므로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0장 9절로 13절에는 이같이 말씀합니다.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과 나란히 십자가에 달렸던 두 강도 중 한 사람은 고난당하시는 예수님이 구세주이신 것을 알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강도는 감히 자기를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말할 염치가 없었으므로 다만 자기를 생각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고 완전한 구원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바로 이처럼 구원은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받습니다. 

진실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 까닭

다만, 한 가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진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믿는 동기가 올발라야 합니다. 가룟 유다를 보세요.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열심히 주님을 따라다녔습니다. 돈궤를 맡아서 관리할 정도로 똑똑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주님을 따라다니는 동기가 진실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유대의 왕이 되실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면 나중에 한 자리 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임금이 되실 생각은 추호도 없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이라고 하시자,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은 30을 받고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오늘날도 자기의 의도에 맞으면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맞지 않으면 배반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믿음은 처음부터 진실하지 못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간혹 보면, 과거에 잘 믿은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에 잘 믿은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믿음을 인정받으려면 그 믿음이 현재까지 지속되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잘 믿었는데 지금은 믿음을 저버린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과거에 가졌던 그들의 믿음이 거짓된 것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 과거의 믿음으로 구원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현재의 믿음은 미래에도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진실한 믿음을 가져야 하고, 그 믿음이 오늘 뿐 아니라 내일도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중도에 믿음을 저버리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보면, 농부가 씨를 뿌리되 길 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떨기가 자리는 곳에도, 좋은 땅에도 뿌렸습니다. 그런데 길 가에 뿌려진 씨앗은 싹이 나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진 씨앗은 곧 싹이 나왔으나 흙이 깊지 않아서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여 해 빛에 타 죽고 말았습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나서 자라긴 했는데 가시떨기가 자라서 기운을 막아서 결실을 하지 못했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만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 비유에 나오는 네 종류의 밭은 복음을 듣는 네 종류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첫째로, 길 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그 사람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이 그 마음에 심기기도 전에 마귀의 방해를 받아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을 말합니다. 

둘째로,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간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를 말합니다. 이 사람은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갖기 시작했으나 그만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자 겁을 먹고 믿기를 포기했습니다. 이런 사람 역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셋째로,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한 동안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기도 하고, 열심을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여러 가지 유혹 특히 돈에 대한 유혹에 넘어가서 신앙을 포기하고 맙니다. 이런 사람 역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넷째로,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결실을 하는 자를 말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핍박이나 환난이 없거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따위가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같은 시험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그 모든 시험을 이겨내고 주님을 끝까지 믿고 따랐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기로 작정한 사람은 많은데 끝까지 믿음을 지켜나가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고 하였습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하는 까닭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믿는 이후에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하신 말씀과 같이 주님을 믿는데 힘쓰는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냐 나는 구원 받은 것으로 만족한다. 더 이상 주님을 섬기느라 열심내고 힘쓸 생각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생각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은 기차표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중세에 천주교는 면죄부라는 천국행 티켓을 팔았습니다. 면죄부를 산 사람들은 이제 천국에 들어가는 문제는 해결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문에서 면죄부는 휴지조각에 불과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천국행 기차표를 손에 넣은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천국행 기차표란 없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손을 잡고 천국까지 동행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믿음의 담대함을 발휘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갓난아기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 쉼 없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가 고의적으로 주님을 배반하고 떠나지 않는 한 주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보장해 주십니다. 

우리의 구원이 확실한 것은 우리 자신에게 그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신실하신 하나님께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7)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28)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고 하셨습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습니다. 유대인이건 헬라인이건 차별이 없이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 받는데 우리의 공로나 선행이나 노력은 전혀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의 진리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 이웃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서 구원의 주님을 만나게 된다면 이보다 더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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