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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기도 (느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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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기도 (느 1:4-11)

 
링컨은 나라의 위기 앞에서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으로 남북전쟁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1861년부터 1865년까지 약 4년에 걸친 노예해방 전쟁이었고, 전사자의 수는 무려 6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 처참한 전쟁터 앞에서는 남군이나 북군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남부 연합의 대통령은 제퍼슨 데이비스였고, 북부 연합의 대통령은 에이브러함 링컨이었습니다. 데이빗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남부 연합의 전체 백성들에게 ‘기도의 날’을 선포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야말로 전능하시며 만사를 주관하시는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다. 기도는 적들과의 싸움에서 남부 연합에 가담한 주들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방패가 되리라.” 
그는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예찬하면서 남부 백성들에게 기도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 링컨은 남부군이 흑인들을 노예와 종처럼 부리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아주 비판적으로 보았습니다. 링컨의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에서 자기 이속을 차릴 욕심으로 감히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한다는 건 정말 이상한 노릇이 아닐 수가 없다. 남과 북이 모두 똑같은 성경을 읽고 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상대방을 이기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양쪽의 기도가 모두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 어느 쪽도 소원하는 바를 완전히 이룰 수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분만의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 

링컨은 국가가 당면하는 위기 앞에서 거만하게 자신의 의를 과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내편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 편에 바르게 서있는가를 물어야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링컨은 대통령으로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수없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 말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지도자로서, 전쟁터의 사령관으로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기도하는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는 하나님의 편에 서있는 인물이었으며, 인간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믿음의 지도자였습니다. 

느헤미야는 민족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며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서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고 자기 민족이 이방 백성들에게 약탈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을 느낍니다. 그는 민족의 아픔과 슬픔이 자신의 아픔과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우리는 눈물이 날 때 보통 두 가지로 반응합니다. 먼저는 인간적인 탄식과 원망으로 멈춰 설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가슴 안에 맴돌다가 끝나버립니다. 가슴에는 미움과 분노가 한이 맺혀 남아있습니다. 세상을 저주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상관이 없는 별개의 존재처럼 여겨집니다. 반면 눈물이 날 때 변화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눈물을 기도와 합성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때 화학작용이 일어납니다. 눈물의 내용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전달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위로와 사명을 받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던 지도자들은 눈물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가슴에 고통과 아픔을 느끼지 못했던 무관심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가슴에는 눈물의 탄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기도로 승화시켰습니다. 인간적인 탄식으로 멈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그때 그들의 가슴이 뜨거워졌고, 가슴속에 치솟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명감이 그들을 붙잡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 1장 1절에서 2장 1절을 보면 느헤미야는 기슬르월에서 니산월까지 눈물을 흘리면서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약 3~4개월의 시간 동안 그는 아파하면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아파하며 기도하는 만큼 성숙한 지도자가 됩니다. 흘리는 고통의 눈물만큼 지도자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의 문제를 가지고 애통해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감이 그의 마음속에 생기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잠시 고통스러워하고 멈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눈물 흘렸던 3~4개월 동안의 아픔이 느헤미야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그는 모든 안락을 즐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민족의 고통이 자신의 아픔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민족의 헐벗음이 자신의 헐벗음처럼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느헤미야를 민족의 지도자로 세워주었고, 그가 가지고 있는 슬픔과 이 땅의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탄식과 원망의 울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낼 때 기도가 됩니다 

하시디즘의 우화집(The Hasidic Tales)에 예루살렘의 랍비였던 도비드 딘이라는 사람의 기도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어떤 남자가 아주 괴로운 일을 당했는데 너무나도 슬퍼서 이 랍비를 찾아왔습니다. 랍비는 그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마음속에 있는 슬픔과 괴로움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오히려 랍비에게 버럭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 랍비가 말합니다. 
“이보게 젊은이! 그렇게 화가 나면 나한테 소리 지르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쏟아내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남자는 하나님께는 화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화를 냈다가는 혼찌검을 당할지 몰라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직접 화를 내지 않고 하나님과 관계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화를 퍼붓고 있었던 것입니다. 랍비는 이 청년을 통곡의 벽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이 앞에서 하나님께 마음껏 화를 내고 소리질르며 부르짖어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한 시간이 넘게 통곡의 벽 앞에서 맺힌 것을 터뜨렸습니다. 한번 터진 눈물은 통곡이 되었습니다. 그 통곡의 눈물은 흐느낌으로 변했습니다. 흐느낌은 그의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되었습니다. 랍비 도비드 딘은 사람들에게 기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처럼 가르쳐주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체면을 차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음속에 하나님 앞에 터뜨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터뜨리셔도 괜찮습니다.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기분이 나쁘면 기분이 나쁜 대로, 분노하고 싶으면 분노하고 싶은 대로, 그동안 쌓아왔던 스트레스와 나를 얽어매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 앞에 터뜨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시고 귀 기울여 들어주실 것입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느헤미야 1:6)

느헤미야의 기도는 일시적으로 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가 눈물로 토로하는 것이 자기 민족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리는 모습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의 기도가 삶의 내용인 것입니다. 
기도가 왜 위대합니까? 인간의 문제를 하나님의 문제로 바꾸는 것이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땅의 위기를 하나님의 위기로 돌려드리는 것이 기도의 내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20세기 유대교 신학자였던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친히 볼 수는 없지만,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보여줄 수는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보여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참석하는 것이 하나님께 우리를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인간의 문제가 하나님의 문제로 바뀝니다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헤미야 1:5) 

느헤미야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은 크고 두려우신 분, 그러나 동시에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이 가지고 있던 위기를 하늘의 하나님께 아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외면하시는 것이 아니라 같이 아파하십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내 문제를 하나님 앞에 드려서 하나님의 문제로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위기가 닥쳐올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보다는 주저앉아 남의 탓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물질보다 영적인 결단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위기의 때에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눈으로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닫혔던 눈이 뜨이고, 막혔던 귀가 뚫립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크고 두려우신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하나님이 나에게 사랑과 긍휼을 베푸시는 분으로 다가오신다는 사실을 알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위대하다고 생각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아닥사스다왕 보다도 훨씬 더 위대하십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아닥사스다왕과 세상의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종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에 기도하기 어렵지만, 그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두렵기만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은혜롭기만 하면 하나님 앞에서 교만해집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크고 두렵기에 내가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기에 내가 감히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며 우리의 문제를 주님께 아룁니다.” 

필요한 것을 요청하기 전에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께 그대로 알리십시오

느헤미야는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면서 자기가 간구하는 요청을 드리기 전에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하나님 앞에 확인하고 있습니다. 기도란 내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부족한 인간일 뿐입니다. 나는 피조물일 뿐입니다. 나는 죄인일 뿐입니다. 하나님과 비교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은 하늘에 계신 분이십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은 능력이 많으신 분입니다.” 이것을 고백하는 것이 기도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몸이 건강할 때는 의사를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딘가 아프면 의사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의사 앞에 해야 할 태도는 내가 아픈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최고의 의사, 육체의 의사이자 영혼의 의사,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이끌어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할 태도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상처 그대로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마음속의 분노와 실망감, 좌절과 낙담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그대로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 앞에서 취한 태도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느헤미야 1:6~7) 

느헤미야는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했다고 고백하면서 지금 당하고 있는 위기와 고난이 남의 탓이 아닌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공동체의 위기를 자신의 위기로 아는 것입니다. 공동체와 민족의 죄악을 자신의 죄악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아파할 때 나도 아파하고, 공동체가 두려워 떨 때 나도 두려워 떨며 공동체의 문제를 내 문제로 여기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속에 사랑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때 용기가 생기고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그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사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을 때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이사야 6:5) 

이사야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들 중에 나도 함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자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위하여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공동체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는 믿음의 지도자가 되십시오

이 시대에 지도자들이 필요합니다. 정치적 지도자, 경제와 기업의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사회와 교육의 지도자, 법조계의 지도자들이 필요합니다. 이 시대의 문화와 모든 삶을 이끌어가는 삶의 지도자들이 필요합니다. 

이때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까요? 그 속에 있는 아픔, 곪아터진 죄악들을 나의 것으로 여기고 같이 아파하는 자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믿음의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 아픔이 번지는 지점까지 지도자가 됩니다. 

나에 대해서만 아파하면 나 자신의 지도자로만 멈춰 서게 될 것입니다. 가정에 대해서만 아파하면 가정의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교회의 문제를 아파하면 교회의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이 민족이 당면하는 위기와 문제를 내 아픔으로 알면 민족의 지도자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를 그렇게 사용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이 놓여있는 위치에서 기회를 달라고 말합니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느헤미야 1:11) 

그는 아닥사스다왕 앞에 은혜를 입어야 자기 민족을 위한 일들을 감당할 수 있기에 왕의 호의를 입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내가 서있는 자리, 내가 서있는 직장, 내가 서있는 직위, 내가 서있는 명예를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의 마음속에 사명감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역사까지도 허락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이 민족 가운데 하나님의 지도자를 요청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사회 속에, 우리가 몸담고 있는 대한민국 속에, 그리고 이 교회 안에 하나님의 지도자들을 요청하십니다. 우리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하면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역사에 동참하게 될 때 우리 교회와 사회가 바뀌고, 이 민족의 역사가 바뀌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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