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교회창립] 거룩한 씨로 남아있는 교회 (사 6:9-13)

  • 잡초 잡초
  • 289
  • 0

첨부 1


거룩한 씨로 남아있는 교회(사 6:9-13)  

  
허허벌판이던 분당을 내려다보면서 오포고개에서 기도하기 시작한 지 21년이 되었습니다. 
몇 사람이 모여서 설립예배를 드린 지 만 19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잠깐이었던 것 같았는데 이전의 일은 벌써 세월의 저편에서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역사와 추억이라고 말합니다. 

삶과 역사란 과거가 있음으로 인해서 현재가 있고 또한 현재가 있음으로 인해서 미래가 있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과거라는 것은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거에 매이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가는 진취성을 통해서 우리는 또한 새로운 시대와 역사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이전을 돌아보며 오늘의 모습이 있기까지 기도했고 수고하고 헌신했고 아름다운 삶과 사랑으로 주님과 교회와 성도를 섬겼던 모든 분들의 수고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와 같은 성도들의 수고로 말미암아 우리는 20주년, 혹은 3기사역이 마쳐지는 21주년을 각각 혹은 1년, 혹은 2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오늘 특별히 교회설립 19주년 기념 주일을 생각할 때 이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수고하고 애쓴 모든 성도님들, 땀과 눈물과 기도를 쏟았던 만큼 우리에게는 감격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헌신하고 그 사실을 잊어버려야 한다는 구호에 따라서 이전에 매이지 않고 새로운 헌신과 사역과 은혜의 지경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러하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역사와 사회에 기여하고 인물을 키워 세상을 바꾸는 구체적으로 우리가 그것을 실현해나가는 모습인 인류애실천의 역사를 이루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는 성도 한 분 한 분이 너무 소중하고 각각 한 분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은혜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조화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이루어질 것을 또한 믿습니다. 

역사란 출중한 인물이 전면에 등장하여 움직이는 이와 같은 열전, 소위 인물중심의 기록인 것 같으나 사실은 그 모든 역사의 장면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각 사람 사람을 어떻게 움직여서 그 역사를 완성해 가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초반부는 베드로행전, 후반부는 바울행전처럼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사역을 이루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익명의 성도들이 그 수고에 마음을 합하고 그 모든 삶에 애씀을 이루었는가를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해 현재에 이르렀으며 이것은 단지 우리가 이루어가야 할 목표에 관한 과정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종이 저 높이 매달려 있습니다. 
지금 그 종을 치기 위하여 그 종에 이르는 계단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까지 쌓은 계단은 계단을 쌓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계단이 완공되면 그 계단을 타고 올라가 매달려 있는 종을 침으로 우리의 사역은 하나님의 성취를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까지 우리가 진행한 것은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과 방법을 이루며 온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가야 할 목적이 있기에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가고 그리고 또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류애실천, 보다 구체적인 언어로는 빵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은혜의 사역을 이루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치유와 사랑과 함께 하심으로 그들에게 현실적 삶과 영원한 세계에 대한 동시적인 꿈을 주셨듯이 우리는 영원한 구원의 역사와 더불어 이 세상에서의 삶 역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을 비록 우리의 삶에 가능한 부분만큼이나마 실현해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인간을 사랑하되 특별히 우리의 도움이 필요로 되는 인간들을 사랑한다는 구체적인 길로 제시됩니다. 

요즘 사회는 각종 병리적인 현상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손가락질 하고 있는 저 멀리에 있는 사람들이 아님을 압니다. 그들이 내 자식이고 내 식구고 내 자신임을 또한 잊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야 될 사람도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사회의 병적인 요인들을 외면하고 피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처받지 않을 튼튼한 가슴과 영혼과 심정을 가지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리고 도피하고자 하는 약함이 아니라 사랑과 이해로 비록 시간이 걸려도 구체적인 치유와 극복을 이루어내는 은총의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이 시대의 성도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단순히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그 예배자를 모집하기 위하여 전도를 하고 그리고 성도들의 생명구원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고 우리가 위로받을 수준으로 믿음이 자라는 그와 같은 모든 것이 목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더하여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 시대와 세대와 역사 속에 우리에게 맡겨주신 고유한 분깃의 사명을 감당하는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하는 것이지만 특별히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요, 성도들의 존재의미요, 가치요, 사명인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것이 있기에 우리는 세상을 호흡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류애실천이라는 개념으로 정하였습니다. 또한 그것이 우리 각자 그리고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수고하고 애씀이 우리의 가치요 존재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과 그 성도들의 집합체인 교회는 사랑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밝히고 힘을 세우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살펴봄으로 어떻게 우리는 이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거룩한 그루터기 즉, 이 시대의 거룩한 씨로 남아 이 시대를 지켜가고 이어가고 회복시켜 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선지자로 불림 받은 이사야가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주신 큰 이상을 보게 됩니다. 그 이상을 보아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깨닫게 되고 이 시대를 향하여 마침내 그의 입을 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가 본 이상의 내용은 성전에 가득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옷자락이었습니다. 스랍 천사들이 그 여호와의 은혜와 은총가운데 얼굴과 발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함을 볼 때 이사야가 느끼게 된 것은 자신의 죄악된 모습과 부정한 입술로 인한 마음의 절망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은혜와 거룩함 앞에 인간의 누추한 죄악과 인간의 부정한 입술은 그에게 좌절과 절망을 심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그 때 스랍 하나가 제단에 핀 숯불을 들고와 그의 입술에 대며 그의 죄가 사하여짐을 공표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줍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며 도전하십니다. 
택함을 받은 이사야는 선뜻 대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께 정함 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9절부터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주신 메시지는 결코 선지자로서 감당하기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에게 비전을 심어주며 그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라는 허락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죄악에 대한 징계의 말씀으로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할 것이라는 재앙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이사야는 마음의 부담을 안고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이 시대가 어느 때까지 재앙의 고통을 당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백성에 대한 징계를 주실 때 그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패역한 세대에 대하여 더 이상 하나님의 심판 자리에 설 때 핑계할 것이 없게 하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경고를 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믿음을 지키기 위한 소수의 그루터기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돌아올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사야에게 이 세대의 멸망의 지경에 이를 것을 이야기하면서도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그루터기와 같은 믿음의 사람 거룩한 씨앗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대의 명목을 유지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건설하게 될 것을 말씀하실 때 새로운 시대의 비전과 소망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권고하실 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무관심하여 자신이 가던 죄악의 길을 그냥 가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한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더욱 더 패악하여져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죄를 향하여 치달아 가는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두 번째와 세 번째에 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백성들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죄악으로 무디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등을 돌리게 될 장면을 하나님은 이미 예고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사야를 통해서 세대에게 주는 마지막 경고를 주시며 이 세대가 황폐한 지경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의 재앙이 멈추지 않을 것을 말씀합니다. 성읍들이 황폐하여 검인은 없고 가옥에는 백성들이 없고 토지가 전폐되고 사람들이 여호와를 떠나 마침내 땅 가운데 패악한 것이 가득하게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에게 재앙을 멈추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이사야에게 소망의 말씀 역시 주십니다. 마지막 그루터기의 거룩한 믿음의 씨앗으로 말미암아 이 시대가 하나님의 은혜의 새로운 역사를 이룰 것을 동시에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와 같이 징계 속에 곤두박질 쳐가는 죄악의 시대가운데 그루터기의 거룩한 씨앗의 믿음이 우리 교회 그리고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이제 오늘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다 더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서 우리가 첫 번째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때에 우리에게 그루터기 즉, 거룩한 씨가 되기를 요구하실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악으로 인하여 이 세상의 모든 소망이 상실될 때입니다. 
모두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찬송 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시기가 아닐 때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아도 느끼지 못하는 영적인 무지와 패악의 시기입니다. 마침내 패악이 불러오는 하나님의 공의로 인하여 백성이 징계의 재앙을 맞고 마침내 성 가운데 검인을 찾아보기 어려운 패망의 시기입니다. 

이러한 절망의 시대에 하나님은 거룩한 하나님의 씨앗 믿음의 그루터기에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을 말씀하십니다. 햇빛이 비치는 대낮에는 아무리 등불을 켜고 심지를 돋우어도 그 등불의 밝음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해서 인간세계에 등불이 필요 없으므로 그 등불을 폐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삶속에는 항상 햇빛만 드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해가 지게 되고 달빛조차 그 모습을 감추게 되는 칠흑과 같은 어두움의 시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거룩한 씨 그루터기들은 바로 이러한 어두운 시기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며 그 모습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죄악으로 인하여 모두가 하나님을 모르고 죄악과 탐욕과 쾌락을 쫓아 등불이 빛을 잃은 어두운 시대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때 소망이 상실되는 시대 하나님의 그루터기와 같은 자들이 나타나 거룩한 씨앗의 빛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등불은 잠자고 있다가 시대의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빛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어두우니 그 등불의 존재가 더욱 더 빛나 진가를 발휘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 시대는 양심이 침묵하고 있다가 극적인 순간에 발휘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은 계속 그 빛을 발하고 있는데 어두워지니 그 양심의 빛이 더욱 더 빛이 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무엇을 요구하고 계시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나 개인적인 기복의 차원을 벗어나서 민족과 사회와 내가 처한 내 주변과 내 주변사회를 위한 공익적 사역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믿음을 주셨을 때 그 믿음이 나 하나를 넘어서 이 시대와 역사를 향하여 나갈 것이라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예수가 아니면 더 이상 양심도 정의도 바르게 살려는 의식도 세류에 휩쓸려 가버려 소망 없는 시대라고 생각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시대의 죄악과 참상을 상세할만한 믿음과 양심의 거룩한 씨 모두가 성령의 법을 외면하고 자신의 육신의 법을 쫓고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양심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이 시대를 살려내는 하나님의 놀라운 믿음의 역사를 위하여 살아갈 거룩한 믿음의 씨앗들을 우리들에게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거룩한 씨를 요구하시는 것은 또한 언제입니까? 남은 자들까지 베임을 당하며 환란의 위기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그루터기들에게 여호와의 빛을 발휘하기를 소원하고 계신 겁니다. 이 믿음의 그루터기에 거룩한 요구 때는 외적인 환경의 어려움뿐 아니라 실제적인 믿음을 가진 자들이 고통과 환란과 베임을 받는 직접적인 환란과 고통와 아픔의 때입니다. 기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그루터기들에게 여호와의 빛을 발휘하기를 소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쫓는다는 단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노력과 정직과 진실이 외면당하고 곡해 받으며 받아도 되지 않는 고통을 믿음과 맞바꾸어야 할 환란의 시기가 우리에게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한 그루터기-믿음의 씨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 가슴에 상처를 주고 핍박자로 다가오며 믿었던 사람이 어느 날 우리를 향하여 신앙 때문에 등을 돌리고 의지하고 믿었던 상황이 우리에게 무너져 내릴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 믿을 것 없고 의지할 것 없고 소망할 것 없을 때 우리는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절망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주의 빛을 발휘해야 합니다. 풀무는 불 가운데 은과 금을 정련해내듯 고통과 극한의 시기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요구하시며 헌신을 요구하시며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빛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 번째 어떤 성도가 그루터기 즉, 거룩한 씨로 남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깊이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이루어가는 성도입니다. 
뿌리가 깊이 내려질수록 나무는 줄기가 굵으며 그 굵은 둥지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마침내 굵은 둥지의 나무가 그루터기를 이루게 되고 믿음의 깊은 뿌리가 그루터기의 신앙을 이루게 됩니다. 

바람이 심하고 폭풍이 불게 되면 모든 것들은 뿌리째 뽑혀 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루터기가 되는 신앙의 인물은 그 뿌리가 깊고 거대한 뿌리를 이 지상에 내리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바람이 불어치는 시련이 다가와도 꿋꿋하게 그들의 신앙을 소멸시키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든든히 서 있는 것입니다. 

가물어서 은혜가 소멸되고 그리고 깊이 뿌리박지 못한 식물들이 모두가 말라죽는 시대에도 뿌리가 깊이 내려진 이와 같은 나무들은 수분과 양분을 흡수하여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게 되는 것입니다. 옆의 나무가 모두가 넘어짐을 당하여도 쓰러져가는 지경 가운데도 뿌리 깊은 나무는 자체 힘으로 주님께서 상황을 바꾸실 때까지 버티고 견디어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귀한 그루터기가 될 나무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시련과 고통과 시험을 주셔도 그것을 시험으로 받지 않는 포용력과 흡수력을 가지게 됩니다. 어떤 상처가 와도 그것을 상처로 여기지 아니합니다. 자체 흡수력으로 포용하는 귀한 능력을 가집니다. 오히려 곤고와 환란이 닥쳐오면 그것을 성장의 기회로 삼을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그루터기로 사용될 이와 같은 성도들은 그 자리에 오래 버티고 있는 큰 나무들입니다. 그루터기가 될 주의 백성들은 어느 순간까지 끝까지 자기 자리를 버티고 서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뽑으려고 해도 뽑히지 않습니다. 아무리 밑둥을 자르려고 해도 그 자른 자리에서 새로운 싹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 가운데 그루터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끝까지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고 지킵니다. 

성도들이 어떠한 때 그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게 됩니까? 
많은 환란과 비바람 가운데서도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떠나게 될 때에도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잃어버리지 않게 될 때 끝까지 자기 사명을 감당할 때 그는 스스로 감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버티고 있을 때 그 자리에 박은 뿌리로 말미암아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를 유지할 때 그루터기의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이런 생각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어떤 성도들이 그루터기의 성도들이 될 것인가, 어떤 성도들이 마지막까지 믿음의 씨앗들이 될까?’ 하는 것입니다. 
어려움과 혼란과 곤고 가운데도 흔들리지 않는 성도들입니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쉽게 변치 않고 자기의 위치를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지난 주일에 목사님 몇 분하고 스텝들하고 이렇게 같이 의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향후 10년, 길게 봐서 20년, 우리 짧게 봐서 10년 후에 한국교회에 어떤 모습이 있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같이 나누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저 말고 아홉 분의 목사님이 계시는데 모두가 다 하나같이 말씀하시는 거죠. 
“최소한 지금의 성도들보다 한국교회 전체적으로 많게는 30%, 적게는 20%정도는 성도수가 줄 것이다. 그 근거로는 점점 더 젊은 세대들이 하나님 앞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주변을 봐도 젊은 세대들은 점점 주님 앞에 나오지 않고 있어요. 
이것은 우리만의 사정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이 그랬던 거죠. 
소득이 높아지고 그들이 살기가 편해지면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더 나오지 않아요.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교회 성도수가 준다는 것은 기독교의 힘이 약해짐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고백이 더욱 더 약화되고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백성들이 더욱 더 위축되는 이와 같은 시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영적인 부흥과 은혜의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 속에 그루터기가 되어 새로운 역사의 기울어짐 속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로운 부흥의 역사를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어제 어떻게 지내셨는지 모르지만 저녁에 조금 늦게 갔더니 차가운 기운이 들어서 저는 어저께 난방스위치를 올리고 있었어요. 
좀 있었더니 따뜻해졌습니다. 
스위치 올리면 따뜻해지고 또 내리면 도로 서늘해지는 거겠죠. 

그래요. 우리 성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주시면 푸근해지고 그 은혜가 소멸되면 우리는 팍팍해지는 것이 우리의 삶이죠. 
하나님의 은혜의 손가락 하나에 의해서 울기도 웃기도 춥기도 덥기도 하는 것이죠.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가 문제입니다. 
그래요.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의도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이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루터기 신자가 된다는 것은 상황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어찌하던 내 주변이 어떠하던 어떤 시험이 오건, 어떤 상처와 시련이 오건 그것을 흡수하는 믿음이 될 때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자리를 지키게 될 것입니다. 

제가 오늘도 이런 말씀 다시 반복합니다. 
어떤 나무가 큰 나무가 될까요? 
어떤 나무가 거목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떤 성도가 믿음의 거목이 될 수 있을까요? 
큰 나무의 특징은 단 한가지입니다. 그 자리에 오래 있는 겁니다. 그 자리에 오래 있는 거예요. 그랬더니 저절로 큰 나무가 되는 겁니다. 
그 자리에 오래 있었더니 저절로 킅 나무가 되는 거예요. 
쉽게 움직이지 않는 겁니다. 아이들이 와서 침 뱉고 칼로 파고 자르고 꺾고 벼락 맞고 가지가 꺾여 나가도 그 자리에 오래 있는 겁니다. 
큰 나무 치고 성한 나무 없어요. 
오래 수백 년 수령을 가진 나무들은 다 흠이 많고 벌레 파먹고 벼락 맞아서 가지가 부러지고 그리고 힘이 없어서 밑에 지지대 받치고 그래도 수백 년을 거치면서 그야말로 거목이 되는 거죠. 

우리 모든 성도들 바로 그와 같은 믿음의 거목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교회도 그루터기 같은 신자는 그 자리를 버티고 서 있는 신자입니다. 마음이 들 때뿐 아니라 마음에 안들 때도, 은혜가 충만할 때뿐만 아니라 내 가슴에 은혜가 소멸되어 내 마음에 갈급한 심령의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며 그 자리를 지킬 때 그에게 또다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끝까지 버팁니다. 쉽게 뿌리를 뽑아 옮길 수도 없습니다. 그루터기의 신앙은 바로 깊게 뿌리를 박고 끝까지 자기를 지킬 수 있는 신자들의 믿음인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그루터기가 즉, 거룩한 씨가 될 수 있는 신자는 새로운 싹을 틔워 생명을 다시 이루어가는 성도입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그 생명을 유지하고 계승해 가는 것이 거룩한 씨가 되는 성도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그 둥지를 자를지라도 그 옆 부분에서 새로운 싹이 돋고 마침내 가지가 쳐지게 되고 새로운 잎이나 새롭게 성장하게 됩니다. 비록 그가 환란을 당해 베임을 당해도 그는 생명을 유지하는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환란과 곤고가 우리에게 닥쳐와도 우리는 그 어려움을 흡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지를 틔우고 그 가운데 잎을 무성히 하여 마침내 새로운 생명의 소생의 시대를 열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쌓이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놀라운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결단코 낙망하지 않는 성도들이요,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요, 어떤 순간에도 믿음과 사명을 놓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세상의 상황이 바뀌고 사람의 마음이 바뀌어도 우리는 마음에 깊이 잡고 있는 그루터기의 믿음의 신앙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씨앗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이루고 시대를 새롭게 열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유리창을 통해서 바깥을 내다보았습니다. 나무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부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나무가 흔들리고 나뭇잎이 흔들리면 바람이 부는 것을 압니다. 우리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 주의 영의 역사가 임하는 것을 압니다. 

내 마음에 뜨거운 사명의 열정이, 내 마음에 주의 복음에 대한 열정이, 내 마음에 주의 사랑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내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사역의 열정이 일어날 때 우리는 성령이 내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런 생각 자주 합니다. 

왜 나는 호흡하고 있는 것일까? 
왜 나는 이 자리에 있는 것일까? 
왜 나는 이 사람과 함께 교우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왜 나는 이 상황 속에 놓여져 있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하여 우리의 존재의 의미를 살펴야 하며 우리 존재의 가치를 살펴야 하며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사명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합니다. 
사명의 의미가 없다면 생명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살아서 호흡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사명이 주어짐이며 아직까지도 그 사명이 끝나지 아니하였음을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설립예배를 드릴 때 분명히 마음에 확신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수많은 교회 중에 간판하나 더 다는 교회되지 말게 하시고 이 시대와 세대와 역사 속에 우리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고유한 분깃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똑같은 의미 똑같은 일을 감당하고 굳이 이곳에 교회를 하나 더 세우지 않아도 될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왜 교회를 하나 더 세우셨겠습니까? 
그저 있는 교회 크게 만드셔서 그 성도들 관리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새로운 교회를 세우셨다는 것은 그 교회를 통하여 이룰 하나님의 고유한 분깃의 사명, 하나님의 독특한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이사야에게 보여주셨던 새로운 이상을 보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는 파악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위하여 그루터기의 믿음을 소유하기 위하여 날마다 우리의 기도 속에 새로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새로운 메시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많은 교회 많은 신자들이 있지만 참으로 이 시대가운데 저희를 향한 독특하고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용도대로 사용하실 것을 믿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그 일을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인류애실천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믿음의 역사의 길을 줄기차게 가고 가고 그리고 또 갈 것입니다. 

많은 환란가운데 십분의 일의 성도들이 남았다고 오늘 기록합니다. 
그들이 명맥을 유지할 겁니다. 
그러나 그들마저 베임을 당할 때가 있다라는 말입니다. 
그 때 마지막으로 거룩한 그루터기가 누가 될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어떤 시대에도 우리 사랑하는 분당중앙교회 성도들이 이 시대의 믿음의 그루터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이 거하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이 거하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역사가 꽃피워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고통과 환란을 당하는 고통의 순간에도 그것을 마음으로 수용하며 흡수하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지키는 주의 역사의 백성이 돼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간구하고 그 뜻을 이루는 그루터기의 믿음, 그 가운데 거룩한 씨앗이 되어 시대와 역사 속에 주님의 빛을 도래케 하는 은혜의 백성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