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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계시와 환상이 있는 사람 (행 27: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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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와 환상이 있는 사람 (행 27:18-25)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람들에게 나타내 주시는 방법을 계시(Revelation)라고 합니다. 인간의 상식과 자연의 현상을 통해서 나타내 주시는 일반적인 계시도 있고, 이적과 같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나타내 주시는 특별한 계시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꿈이나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듣는 등 초자연적인 계시에 익숙한 사람입니다(고후 12:1). 그가 처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도 이적이었습니다(행 9:3-9). 본문 말씀은 그의 마지막 전도여행인 로마로 향하는 길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바울을 호송해 가던 배가 풍랑을 만나고 모든 사람이 죽음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환상과 계시의 사인을 주셨습니다. 바울처럼 하나님께 요긴하게 쓰임받는 사람에게는 계시와 환상이 있습니다.

1. 고난의 의미를 아는 자입니다. 

바울이 탄 배가 그레데 해역에서 유라굴로라는 풍랑을 만났습니다. 276명이나 되는 선원과 승객들은 모두 큰 고난을 겪었지만 그 원인을 몰랐습니다. 성도에게 오는 고난은 이유가 있습니다. 고난의 의미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1) 자기의 과오로 인한 고난이 있습니다.

21절에 “어려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21절). 알렉산드리아 배가 무라 항을 출발하여 그레데 해역의 미항에 정박했을 때, 바울이 백부장에게 시기적으로 이번 항해가 매우 위험하니 거기서 겨울을 지내고 가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습니다(9-11절). 그 결과 유라굴로라는 광풍(狂風)을 만나 거의 파선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계시의 말씀에 불순종했던 결과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고난을 당할 때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됩니다. 자기의 과오로 인해서 오는 고난일 경우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2) 의를 위해서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성도는 세상이라는 한계상황 속에서 죄가 없이도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벧전 2:19). 그리스도인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당하거나 또는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불가피하게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럴 경우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였습니다(마 5:10-12). 죄와 마귀가 활동하는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고난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딤후 3:12). 우리의 앞서간 선지자들도 다 그 과정을 거쳐갔습니다(마 5:12). 그중에도 특별히 하나님께 부여받은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은 생명의 안전을 위협 받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행 21:13).

3) 더 나은 것을 위한 연단의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고난의 과정을 통하여 연단을 시키십니다. 베드로전서 1:7에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가졌거나 또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복을 받은 사람일수록 반드시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였습니다. 아브라함도 힘든 시험을 거쳤고(창 22:2), 야곱도 평생 동안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창 47:9). 욥도 견디기 어려운 많은 시련을 거친 다음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욥 42:10). 그리스도께 받은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도 고난을 통하여 연단을 받고 인내력과 담대함 얻게 되고 또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됩니다(빌 4:10-13).

2. 자기의 역할을 아는 자입니다.

배가 유라굴로 풍랑을 만나 표류하고 있는 동안 선장과 사공들은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화물과 배의 장비까지 물에 던져버린 것은 그들의 역할을 포기했다는 뜻입니다(18-19절). 그런 상황에서도 바울은 자기의 역할을 알고 이를 착실히 수행하였습니다.

1)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배 안에는 선장과 선원 그리고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배를 운항하는데 필요로 하는 사람들로 선발되었습니다. 거기 비하면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군인들에 의하여 호송되어 가는 입장일 뿐, 배 안에서 해야 될 역할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주권자 하나님에 의하여 특별히 선택된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선발된 사람과 하나님께로부터 선택된 사람은 차이가 있습니다. 바울의 경우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하고 선택의 주체가 하나님인 것을 강조하였습니다(갈 1:1). 인간은 무능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가 선택하신 자를 책임져 주십니다.

2) 하나님의 목적에 부응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목적을 위하여 달려가는 자입니다(빌 3:13-14).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거기서 하나님의 하고자 하시는 목적을 알고 자기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의 생각과 맞지 않는 경우가 되었더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롬 12:2). 바울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갈 1:10). 자기의 사명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거기에다 자기의 명줄을 걸게 됩니다. 빌립보서 1:20에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하였습니다.

3)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계시와 환상을 주신 것은 그로 하여금 죽어가는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그 배에는 276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항구에서 출항 하고 나면 선장과 선원이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됩니다. 그렇지만 예기치 못한 풍랑을 만났을 때 손을 쓰지 못했습니다. 재난 앞에서 인간능력의 한계를 드러낸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배가 표류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렀을 때 자기들만 살려고 도망갈 궁리를 하였습니다(27:30).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람 바울은 승객들을 향하여 생명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22절에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고 하였습니다. 

3. 되어질 결과를 아는 자입니다.

24-26에 보면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였습니다.

1) 배가 파선할 것을 알았습니다.

22절에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에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고 하였습니다. 배가 파선하게 되면 선원과 승객이 모두 다 죽게 되는데 이것은 여간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선지자는 계시를 통하여 보고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해야 됩니다. 예레미야 1:10에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자랑스러운 인간의 문명이나 업적이 뽑히고 파멸된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고 심어지게 되는 것입니다(단 2:45). 사도 바울은 땅위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안다고 하였습니다(고후 5:1).

2) 모두가 다 살아나게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너희 중에 아무도 생명에 손상이 없을 것이라고 한 그 말씀대로 모두가 살아났습니다. 얼마 후 물이 합하는 곳에 이르자 배가 깨어져 침몰하게 되는데 사람들은 가까운 섬으로 헤엄치거나 널조각을 타고 나와 모든 사람이 다 구조되었습니다(41-44절). 자기의 기술과 재물과 권력을 의존하던 선장과 선주와 백부장의 계획은 다 무산되었지만 하나님의 계시와 환상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 바울과 함께 그 배에 탄 사람들의 생명을 다 관리하고 계셨습니다. 24절에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42-43절에 보면 배가 깨어질 때 죄수가 도망갈까 봐 군인들은 이들을 먼저 죽이자고 했으나 백부장은 바울을 생각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결국 바울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다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될 것을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부름을 받았고 또한 파송을 받은 사람입니다(행 9:15). 따라서 하나님의 눈은 바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붙잡히고, 가이사랴에서 총독에게 재판을 받고, 백부장에게 호송되어 로마로 가는 배를 타게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밤에 그의 곁에 서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다.”고 하신 것도 하나님의 목적을 명시해 주신 말씀입니다. 이후부터 백부장은 바울을 무사히 로마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지켜주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옥중에 있었지만 복음을 전파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거기서 주옥같은 옥중서신의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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