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내가 한가지 아는것은 (요 9:1-12)

  • 잡초 잡초
  • 242
  • 0

첨부 1


내가 한가지 아는것은 (요 9:1-12)


I. 인간의 고통, 하나님의 기회 

본문에는 날 때부터 소경된 한 사람과 예수님의 만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길 가에서 구걸하고 있던 그의 모습은 제자들이 그냥 지나가기에는 너무 비참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입니까? 그 부모입니까?”
제자들이 던졌던 이 질문은, 자신의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고통에 직면할 때마다 우리 마음에 흔히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 이런 고통이 찾아왔을까? 분명 누군가가 잘못을 범했기 때문이야. 
그러면 누가 잘못했지? 나의 잘못인가? 부모의 잘못인가? 구조 악으로 대표되는 세상의 잘못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명확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인간의 불행에 대해 전혀 새로운 이해를 우리에게 제시해줍니다.
인간의 불행과 고통이 자신 또는 가까운 누군가의 잘못에 의해 일어났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고통은 하나님이 자신의 일을 그 사람에게 나타낼 기회가 됩니다.

이 깨달음은 먼저 저 자신이 여러 가지 고난에 부딪힐 때마다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제공해주었습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저 역시도 타인에 대한 원망, 세상에 대한 분노,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탄식과 후회에 쉽게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이 말씀을 기억하게 해주십니다. 
‘이 어려움은 하나님이 네 속에 일하실 놀라운 기회다. 낙심 말고, 하나님을 기대해라.’ 
그러면 사람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사라지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회복되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저에게 성도들이 당하는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제 자신이 가난해서 그랬는지, 저는 청년 때부터 고통당하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84년 3월에 선배의 손에 이끌려 당시 서울시의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도를 처음 방문했던 순간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저 역시 대구 변두리에서 자랐지만, 내 눈 앞에 펼쳐진 난지도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이었습니다. 쓰레기 더미에 세워진 집들, 희망을 상실한 사람들, 버려진 아이들, 코를 찌르는 냄새. 같은 하늘 아래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부담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기에, 91년 여름부터 3년 6개월 동안 저는 난지도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때 저의 가장 큰 고민은 ‘이들이 처한 고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젊은 기분에, 악한 세상이 그들을 고통으로 몰고 가는 것이라 생각해서 독재 정권에 대항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게으름과 무능력을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노력했지만 열매가 보이지 않았을 때, 저도 남들처럼 팔자타령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혼란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은 본문 말씀을 기억하게 도와주셨습니다. 
‘그들이 처한 고통의 상황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역사하실 기회가 된다.’ 
다시금 이 깨달음을 붙잡게 되자, 난지도에서 저의 사역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그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게으르고 악한 사람들에 대한 실망을 내려놓고, 그들 
가운데 일하실 능력과 사랑의 하나님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혹시 고통 중에 있는 성도님들 있다면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하나님이 성도님들 속에 일하실 놀라운 기회가 됩니다. 
자신에 대한 후회와 타인에 대한 원망과 세상에 대한 분노를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 가운데 일하시기를 간절히 구하시고 기대하십시오. 

II.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역사를 우리에게 나타내십니다. 

인간의 고통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 마음에 새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일하십니까?’
본문은 이 질문에 대해 두 가지 명확한 답변을 제시해줍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의 영혼 속에 초자연적인 믿음의 빛을 창조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신 후, 이 소경된 사람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행하셨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지만, 예수님께서 먼저 그에게 다가가셨습니다.
그리고 땅에 침을 뱉고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실로암 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예루살렘성 밖에 있는 기혼 샘물을 지하를 통해 끌어올려 만든 유명한 인공 못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 마음속에 서로 연관된 두 가지 질문을 일으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예수님과 관련된 것입니다. ‘말씀 한 마디로 단 번에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실 수 있는 분이 왜 이 사람에게는 이런 명령을 주셨을까?’ 성도님들, 이 사람이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려면 
어떤 일을 겪어야 되는지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진흙을 눈에 바른 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실로암 못을 찾아갑니다. 얼마나 가관입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힘든 사람에게 왜 이런 어려운 명령을 주셨습니까? 

두 번째 질문은 이 소경된 사람과 관련된 것인데, ‘무엇이 이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질문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채 저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씨름하던 어느 날 철야 예배에서 하나님은 저에게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예배 중에 본문을 배경으로 지어진 실로암 이라는 복음 성가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종이 울리고 닭이 울어도 내 눈에는 오직 밤이었소.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때는 차가운 새벽이었소. 주님 맘속에 여명 있음을 나는 느낄 수가 있었소.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나에게 영원한 사랑 속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찬양을 하던 중 갑자기 이 가사가 저의 마음에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주님 맘속에 여명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 희망의 빛) 있음을 나는 느낄 수가 있었소.” 
그러면서 한 깨달음이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말씀으로 이 소경의 영혼 속에 
초자연적인 믿음의 빛을 창조하셨구나. 그리고 바로 이 빛이 그로 하여금 어떤 장애물에도 굴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였구나.’ 

그 때 저는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절망 중에 있는 영혼 속에 ‘초자연적인 믿음의 빛’을 창조하십니다. 
이 빛이 우리에게 주어지면 고통의 상황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고통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빛’을 받았던 바울은 고후 4:6-9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혹시 고통 중에 있는 성도님들 계십니까? 그 고통은 하나님이 일하실 기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무엇보다 말씀을 통해 성도님들에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고,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하나님! 저에게 초자연적인 믿음의 빛을 창조해주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성도님들 속에 비추어지면, 어떤 상황에도 낙심하지 않고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고 다시금 일어나게 됩니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려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통해 창조하신 ‘초자연적인 빛’에 이끌려 이 사람은 실로암 못에 도착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거기서 눈을 씻었을 때, 평생 동안 보이지 않았던 그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십니다. 
이것이 고통 중에 있는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 그들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창조하시고, 이 빛에 이끌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해주십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많은 경우 순종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그 이유는 순종할 때 자신이 지불해야 할 대가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려면, 지금까지 우리가 좋아했던 것들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물질적 손실을 감수해야 하고, 어떤 경우는 가까이 지냈던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통해 비추어진 ‘믿음의 빛’을 따라 순종하면 우리 삶 속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들이 펼쳐집니다. 

열왕기상 17:8-16에는 아합 왕을 피해 시돈에 갔던 엘리야 선지자와 한 과부의 만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야는 나뭇가지를 줍고 있던 그 여인에게 물 조금과 떡 한 조각을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떡이 없었고, 이제 주운 나뭇가지로 자기와 아들을 위해 마지막 떡을 만들어 먹고 죽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 때 엘리야는 이 여인에게 너무도 뻔뻔하게 들리는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먼저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 오고 그 후에 당신과 아들을 위하여 만드십시오.’ 여인은 힘들었지만 그 말씀에 순종하였고, 그 때 그 가정에 있는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비슷한 순간들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가장 가난하고 무력했을 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저에게 더 많은 헌신을 요구하셨습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말씀을 통해 제가 가진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드셨습니다. 시간과 물질을 포함해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드리면 큰 고통이 저의 삶에 주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순종하고 나면, 제 삶이 무너지기는커녕 하나님의 방법으로 제 삶이 새롭게 회복되어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성도님들에게도 동일한 간증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안타까울 때는, 순종 때문에 겪게 될 아픔이 두려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거나 순종을 미루는 성도들을 볼 때입니다. 오늘 본문의 소경된 사람과 사르밧 과부를 보십시오.
순종은 그들에게 일시적 아픔을 주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놀라운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 
어떤 고통 중에 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님들이 되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구원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II. 불신의 세상을 향한 강력한 무기: 성도의 체험적인 고백 

마지막으로, 고통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성도들의 고백이 불신의 세상을 향해 얼마나 강력한 하나님의 무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려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눈을 뜨게 된 소경에게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바리새인들의 압력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사람에게 질문하였습니다.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소경이었던 사람은 답변합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명한 대로 했을 때에 내가 보게 되었다’ 
그러면 여러 가지를 빌미로 삼아 ‘예수는 죄인이요 나쁜 사람이라’ 주장하였습니다. 
나아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생각하느냐?’
이 때 소경이었던 사람은 그 사회에서 쫓겨날 위험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내가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입니다.(25) 이 일을 내게 행한 이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분명합니다.(33)’

성도님들 기억하십시오. 불신의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체험적인 고백입니다. 무엇보다 이 체험적인 고백은 소경의 경우에서 보듯이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고, 믿더라도 적당히 믿어야 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강한 압력이라도, 순종을 통한 우리의
체험은 능히 이기게 만들어줍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가정과 직장과 친구들로부터 강한 압력에 시달리는 성도님들 있다면, 차분히 자기 삶 속에 주어졌던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해보십시오. 

우리의 체험적인 고백은 어떤 세상의 압력에도 우리로 당당히 맞서게 도와줍니다. 
나아가 우리의 체험적인 고백은 복음 전파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성도님들께서 아시는 대로, 전도는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좋은 관계만으로는 그들을 주님께 인도하지 못합니다. 적당한 때 그들에게 ‘우리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로 들려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백을 사용하셔서, 듣는 자의 영혼 속에 초자연적인 믿음의 불꽃을 일으킬 것입니다. 

Bill Hybels 목사님에 의하면 이 고백은 1분 안에 이루어질 수 있는 간결 명확한 것이어야 합니다. 
저의 고백은 이렇습니다. ‘저는 능력도 있고 다른 사람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저는 함께 가질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려고 결심한 후, 저는 갑자기 무능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고 다가오는 미래는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 때 저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저의 모든 것을 아시지만 저를 부끄러워하시지 않고 사랑해주셨습니다. 이 사랑을 맛보았을 때, 외로움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맛보지 못했던 기쁨이 제 속에 솟아났습니다.’ 

성도님들에게 분명 아름다운 체험과 간증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한 주간 동안 한 번 정리해보시고, 그 이야기를 예친 식구들과 나아가 전도 대상자들에게 한 번 나누어 보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성도님들의 체험적인 고백은 이 불신의 땅을 뒤흔들 수 있는 하나님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성도님들 세 가지를 가슴에 새기십시오. 
첫 번째, 인간의 고통은 하나님의 기회가 됩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고통 중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 두 가지로 역사하십니다. 말씀을 통해 ‘초자연적인 믿음의 빛’을 창조하시고, 순종을 통해 구원을 베푸십니다.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고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세 번째, 성도님들의 체험적인 고백은 불신의 세상을 깨뜨리는 하나님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 고백을 통해 세상의 압력을 깨뜨리고, 불신의 영혼 속에 하나님의 거룩한 불꽃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