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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창립] 오늘과 같이 살게하신 하나님 (신 6:24-25, 히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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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같이 살게하신 하나님 (신 6:24-25, 히 4:6-8)


오늘은 우리교회 창립 116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오늘과 같이 살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이 있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영광과 감사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안 우리교회를 위하여 수고하신 모든 분들의 수고가 하나님께 상급이 되고 그들의 눈물과 기도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역사의 질곡과 함께 자랐습니다. 근대화의 물결이 한반도를 넘실거릴 때 우리교회가 태어났습니다. 1894년은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 갑오개혁이 시작된 해입니다. 개화기를 거쳐 일제강점시대와 한국전쟁 시대에는 많은 애국지사와 전쟁 희생자를 낸 교회입니다. 그 후 민주화의 소용돌이 가운데서 우리교회는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민주화에 앞장  섰고 통일을 위해 분투했습니다. 최근에는 급진적 시대변화에 따라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로서 한국교회에 한 획을 그은 교회입니다. 이런 사회변화 속에서 교회의 자리매김을 하였습니다. 
  
지리적으로 볼 때도 우리교회는 종로 5가라는 한국교회의 지리적 중심에 있습니다. 어떤 이는 종로 5가를 ‘종교 1번지’라고 부릅니다. 이런 지리적 조건도 우리교회가 한국교회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중요한 요인이기고 합니다. 116년 동안 우리교회는 이 지역을 멀리 떠난 적이 없습니다. 예배당이 화제로 전소되어 지금의 예배당을 건축하고 시대에 따른 여러 가지 변화를 모색하는 교회입니다. 
  
이런 민족의 역사를 거치면서 오늘과 같은 교회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오늘과 같은 교회가 된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교회가 지금까지 다 잘 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과 같다면 과거의 역사를 반복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입니다. 
  
지난 주간 세계의 눈이 칠레 산호세의 광산에 집중되었습니다. 33인의 광부가 69일 만에 한 사람의 낙오도 없이 전원 구출되었습니다. 19세에서 63세까지 다양한 연령과 배경을 가진 광부들이 지하 622미터에서 두 달 이상을 버티다가 건강하게 구출된 것은 경이로운 일입니다. 이번 일로 칠레는 국가 신임도가 상당히 높아진 것 같습니다. 지하 622미터인데 평균 온도가  32-33도였고, 습도가 90%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한 여름의 불쾌지수가 높은 찜통더위입니다. 그런데 제한된 공간에서 협동하고 동료애를 발휘하여 전원이 구출된 것입니다. 

그들의 인내와 낙관과 희망으로 건진 구출작전은 문자 그대로 휴먼드라마였습니다. 33명을 구출하기 위한 경비가 2200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2500억 원입니다. 구출하는데 든 비용이 일인당 76억 원입니다. 여기서 돋보인 것은 작업반장인 우르수아의 리더십이었습니다. 그의 리더십과 적절한 업무의 분담이 한 명의 낙오도 없이 스스로를 구해낸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의 고귀함과 끈질김을 다시 한 번 보았습니다. 그들의 신념과 정부의 포기하지 않는 노력이 오늘과 같이 살게 하신 것입니다. 
  
지난주에는 황장엽선생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주체사상의 대부라고 하는 분이 우리나라에 망명한지 13년 만에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지난 시대의 이념과 한반도의 분단의 고통을 안은 인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돌아가신 다음에 무궁화장을 추서하고 국립현충원에 안장하였습니다. 지난 3월 주선애교수님의 생신을 황장엽선생께서 호스트가 되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저도 초청을 받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황장엽선생께서는 주선애교수님을 “대한민국에 내려와서 마음을 세탁해준 스승”이라고 하셨습니다. 한국전쟁이 나자 그는 옳은 길이라고 생각하고 북한으로 갔습니다. 자신은 어느 길이 옳은지 몰랐지만 바른길로 간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자신은 소련을 따라 가면 좋을 것이다고 생각하여 북하늘 갔는데 그것이 잘못됐다고 하였습니다. 미국을 따라가서 잘 된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을 따라가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어 오늘과 같이 잘 살게 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고백은 모든 개인에게 누구나 다 있을 것입니다. 저도 실패와 낙심도 있었습니다. 대학도 떨어져 재수도 해보았습니다. 우리교단의 부총회장 선거에서도 낙마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하나님의 복이 있다면 그런 정도의 실패는 얼마든지 다시 하겠습니다. 오늘과 같은 은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신명기 1:31에는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50;20에는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합니다. 이곳과 오늘은 신앙인의 한결같은 감사요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입니다. 우리에게도 오늘과 같이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 오늘과 같이 살게 하십니다. 

24절 상반절에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라고 합니다. 오늘과 같이 살게 된 원인은 말씀입니다. 오늘과 같이 복을 받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민족, 말씀 따라 사는 개인은 다 잘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가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미래가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말씀이 언제부터 있었습니까? 태초부터 있었습니다. 성경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빛보다 먼저 있었고, 물보다 먼저 있었고, 동물이 있기 전에 있었고, 식물이 창조되기 전에 있었고, 해와 달과 별 보다 먼저 있었습니다. 말씀과 성령은 창조 때부터 짝이 되어 일했습니다. 
  
말씀은 태초부터 있었고, 말씀은 천지를 만드신 도구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말씀으로 만드셨는데 그 말씀의 힘이 얼마나 큽니까? 태초부터 있는 그 말씀을 잘 지키면 잘 삽니다. 창조의 힘이 말씀인데 그 말씀을 잘 지키면 큰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이”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잘 지키면 오늘과 같이 잘 삽니다. 예수님을 잘 보존하면 오늘과 같이 잘 삽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면 오늘과 같이 잘 삽니다. 예수 믿어 못 사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집안도 예수를 믿어 잘 되었습니다. 우리 집안에서 우리 집이 제일 먼저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지금도 보면 우리 집에 제일 나은 것 같습니다. 
  
수도자 요한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의 본성은 부드럽고 돌의 본성은 단단합니다. 하지만 돌 위에 물병을 매달아 한 방울 두 방울 물을 떨어뜨리면 마침내 부드러운 물이 단단한 돌을 마모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부드럽고 인간의 마음은 단단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자주 들으면 그것이 그 사람의 마음을 활짝 열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꾸 떨어져 마음 밭을 부드럽게 하고 갈아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을 지키고 오늘같이 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같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음 밭이 부드러워야 합니다. 마음 밭이 경직되고 굳어 있으면 말씀이 자라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씨를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도 돌밭에 떨어진 씨는 해가 나면 뿌리가 없어 말라버립니다. 말라버리므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단단한 마음이 부드러워져야 비로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6:12에는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행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조상에게 하신 약속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수많은 약속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에 하나도 어김없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의 주제는 말씀입니다. 시편 119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율례, 규례, 법, 법도, 계명 등으로 해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규례이며 법도입니다. 사회를 살아가는 기본 상식이 규례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사회적 규례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는 사회가 하나님의 공동체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교회와 사회가 다 하나님의 공동체이며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 사회질서, 규범, 법을 잘 지키는 것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일본이 개화하면서 사회규범을 바르게 세웠습니다. ‘메이지유신’ 당시에 일본은 사회규범을 독일에서 배워왔다고 합니다. 요즘 말로 독일에서 벤치마킹했기에 일본은 예수 믿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사회규범은 성경적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질서가 있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남을 배려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잘 사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런 사회규범 때문이라고 봅니다. 
  
‘눈 떠!’의 세계 공용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멘’이랍니다. 아멘이란 말이나, 할렐루야라는 말이나, 임마누엘이나 에벤에셀 등은 성경의 말씀들입니다. 이런 말들은 세계 공용어입니다. 어느 나라나 말은 다르지만 이런 말들은 같습니다. 세계 모든 사람이 복 받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세계 공용어가 될 때입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복을 받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습니다. 
  
말씀 안에 길이 있습니다. 말씀 안에 진리가 있습니다. 말씀 안에 진정한 평안이 있습니다. 말씀 안에 무한한 은혜가 있습니다. 말씀 안에 온갖 축복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읽지 않는 사람보다 더 유식하고 축복을 받고 풍성한 삶을 삽니다. 저의 할머니, 어머니도 다 예수를 믿고 성경을 읽었기 때문에 유식하게 잘 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은 ‘규례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 오늘 같이 잘 사는 우리들, 우리가정, 우리교회, 우리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오늘과 같이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24절 하반절에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여호와는 복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그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교부 포이멘은 “인간에게는 코로 내쉬는 숨처럼 신에 대한 겸손과 경외심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인간의 의무이며 본능입니다. 경외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경외란 공경하고 두려워하다는 뜻입니다. 좋은 감정으로 섬기면서 동시에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를 좋아하면 우습게 생각하고, 존경심이 없어지고, 마구 대하기가 쉽습니다. 이건 경외가 아닙니다. 가까우면서도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 경외입니다. 
  
시편 34:9에는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부족함이 없으니 풍족하고 항상 복 있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오늘과 같이 복을 누리게 하시는 것도 이 까닭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복이 얼마나 많은지 보세요. 성경에 무수히 많지만 몇 구절만 뽑았습니다. 
  
잠언 1:7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합니다. 

잠언 10:27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수명은 짧아지느니라”고 합니다. 

잠언 14:27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고 합니다. 

잠언 19:23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고 합니다. 

전도서 8:12에는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라고 합니다. 

시편 128:1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고 합니다. 

시편 115:13에는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오늘과 같이 살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입고도 경외하지 않은 가정을 꼽으라면 엘리 제사장의 가정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가정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서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다시 말한다.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거두어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무서운 저주입니다. 

사무엘상 2:30에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경외하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경외하지 않는 자를 경멸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엘리의 집에 말씀하십니다.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다”. “네 집에 출산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라”. “너 대신 다른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라”. 보세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크신지 아시겠지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오늘과 같이 복을 주시리라고 하십니다. 오늘은 어제의 결과입니다. 오늘 우리가 잘 살고 있다면 어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의 결과입니다. 중국 속담에는 “내일의 모든 꽃은 오늘의 씨앗에 근거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의 꽃은 어제의 씨에 근거합니다. 지난날의 우리의 믿음, 우리 조상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성이 오늘과 같이 우리가 풍성하게 살게 하셨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오늘이란 하루는 내일의 이틀 분의 가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내일은 복을 받겠다는 사람은 평생 복을 못 받습니다. 오늘 받을 복을 위하여 어제 하나님을 경외해야 했습니다. 내일 복을 받기 위해서는 오늘 열심히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어니 젤린스키는 그의 책에서 “어제는 역사, 내일은 신비, 그리고 오늘은 선물이다”(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mystery, today is a gift)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영어로 ‘프레즌트’(present)라고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축복하십니다. 어제 우리가,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을 경외한 대가를 우리가 받고 있습니다. 

  
결론 

세계 제2차 대전 때에 이오지마전투는 대단했습니다. 오래 전 ‘유황도의 모래’라는 영화가 바로 이 전투 이야기입니다. 1945년 2월 19일에 전투가 시작되어 3월 26일에 끝난 전투지만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이오지마에는 일본군 22,000명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2만 여명이 전사하였고, 미군은 7,000여명이 전사하였습니다. 미군이 승리하고 일본군이 전멸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오지마에는 태평양에는 가장 큰 전사자의 무덤을 남겼습니다. 누군가 공동묘지 앞에 이런 글을 새겨 놓았습니다. “그대가 집에 가거든, 그들에게 우리에 대해 말해 주오. 그대들의 내일을 위해, 우리의 오늘을 바쳤다는 것을”. 오늘은 어제의 결과입니다. 오늘은 내일의 시작입니다. 
  
오늘이 좋아야 합니다. 오늘이 잘 돼야 합니다. 오늘이 복 돼야 합니다. 어제 우리 교회를 세우고 일구어주신 그 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오늘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훗날 우리 후손들이 잘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 삽시다. 그래야 오늘과 같이 복되게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이 됩시다. 그래야 오늘과 같이 잘 살게 하십니다. 우리교회에 베푸신 지난 역사에 감사하며, 믿음의 선조들에게 감사하며, 오늘 우리가 힘써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내일도 그리고 116주년 이후도 하나님의 은혜로 잘 되는 우리와 우리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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