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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를 지십시오 (고후 5: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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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지십시오 (고후 5:14-21)


요즘은 버섯의 계절입니다. 먹는 버섯으로는 송이버섯, 능이버섯, 싸리버섯, 표고버섯, 느타리버섯등 종류가 많습니다. 버섯이 식용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버섯은 면역효과가 있고 항암효과가 있는데다 그 맛도 향이 있고, 또 깊은 맛이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식품으로 최고인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매일 3시간만 자고도 지치지 않고 전쟁에 참여하고 알프스를 넘었던 것은 매일 버섯을 끓어먹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기록도 있습니다. 

제가 작년에 방송을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제일 장수하는 마을이 있는데 방송국에서 취재를 했습니다. 왜 ‘이 마을이 장수할까’ 여러 가지로 조사를 했는데 그 마을이 버섯을 재배하는 마을로 밝혀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방송을 보면서 ‘버섯을 먹으니까 정말 오래 사는 구나.’ 했습니다. 버섯이 몸에 이로운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버섯은 의약품으로도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영지버섯은 진시황이 구했던 불로초라고 말합니다. 뽕나무에서 나옵니다. 차가버섯은 자작나무에서 나오고 상황버섯은 전나무, 단풍나무, 그 외 여러 종류 나무에서 나오는 버섯, 그것을 상황버섯이라고 말을 합니다. 버섯은 항암효과에 뛰어난 최고의 식품이라고 합니다. 아마 전에나 앞으로도 항암효과에
제일 좋은 식품이 뭐냐고 묻는다면 모두 다 버섯이라고 말을 할 겁니다.

저는 지난주에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곳에 선교하러 갔습니다. 밴쿠버에서부터 빅토리아 성까지 배를 타고 가서 거기에서 6시간 차를 타고 가서 거기서 또 배를 타고 한 시간 반을 가야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원시입니다. 아주 버려져 있는 그런 곳입니다. 문화세계에 그런 마을들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수천년, 수만년 동안 정글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나무를 베어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컸다가 넘어지고 몇 아름드리나무들이 다 산에서 겹겹이 넘어지고 그 나무 위에 또 나무가 자라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제가 버섯을 따왔습니다. 차가버섯과 상황버섯을 따 왔습니다.

버섯이 뭐냐 하면, 여러분이 아셔야 합니다. 버섯은 나무의 암입니다. 나무의 종양입니다. 큰 나무, 그 곳에 있는 나무에 버섯이 나오면 그 나무는 죽습니다. 그 안에 있다가 자작나무 버섯 같은 것은 몸 안에서 5년 동안 있다가 밖으로 나오는데 그러면 이미 나무는 죽은 색깔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나무를 제가 보는데 이 나무는 3년 내에 죽을 것이라고 거기에 있는 분이 말했습니다. 죽습니다. 암에 걸렸습니다. 나무의 암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무가 죽은 다음에도 끝까지 남아서 계속 그 안에 있는 영양분을 다 빼먹는 것이 버섯인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다음에도 마지막 썩기까지는 버섯은 남아서 영양분을 채취하고, 영양분이 없어지면 버섯도 죽는 것입니다. 참으로 신비한 것입니다. 나무를 죽인 버섯, 나무의 독인 것입니다. 나무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이 버섯을 먹으면 사람은 또 사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약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신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죄의 십자가지만 우리가 이 십자가를 믿으면 우리는 사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죽였지만 우리는 그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 십자가의 죽음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내게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독이 되었습니다. 저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무에 달린 저주를 받으시고 죽으셨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내가 영접하고 믿고 나의 구주로 맞이하면 나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죽지 않고 생명을 얻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한마디로 십자가의 종교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 세상 모두에게 있어도 십자가의 종교는 기독교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국기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자랑입니다. 교회마다 십자가 오직 하나를 세웁니다. 두 가지로 표현하는 교회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십자가, 바로 그게 교회요, 교회, 바로 그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성도요, 성도가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교회는 우리의 자랑이요, 기쁨이요, 능력인 것입니다. 죄를 이기는 능력, 마귀를 이기는 능력, 우리의 모든 죄의 짐을 다 져주시는, 우리의 모든 염려 인간의 모든 문제를 다 져주시는 능력이 십자가 아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때문에 우리에게는 하늘 문이 열렸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십자가 때문에 우리는 저주와 죄악과 멸망과 마귀에서 해방되어 참 자유인의, 영적인 자유를, 영원한 자유를, 참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여기까지 온 것도 십자가 때문입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십자가가 있는 한 교회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잘 지키는 군대가 있어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고 재물이 많아서 여기까지 온 것도 아니고 권력의 보호를 받아서 교회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는 어떤 보호든지 받으면 안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십자가로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에 십자가가 교회를 지켜주고 십자가가 교회를 보호해 줘야지 교회와 교인은 이 세상 어디에도 기대면 안 되는것입니다. 우리가 기댈 곳은, 의지할 곳은 십자가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는, 암을 건강하게 바꾸는,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변화시키는 은혜가, 신비로움이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저희가 아주 어렸을 때입니다. 지금부터 50년 전입니다. 저희 마을은 깊은 산골이어서 좁은 냇물이 흘러갑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에서는 큰물고기를 본 일이 없습니다. 메기도 조그마한 메기가 올라오지, 큰메기는 본 일이 없습니다. 저희 마을에는 붕어도 오지 않습니다. 전부다 잔잔한 고기를 잡습니다. 우리 마을에 제일 큰 고기도 작습니다. 크지 않습니다. 냇물이 적으니까 고기가 더 이상 올라오지 않습니다.

그 아랫마을은 물이 합하는 곳입니다. 낙동강 상류의 물이 내려오고 우리 마을의 물이 내려가면서 여기는 큰 물이 흐르는 것입니다. 거기는 ‘소’라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 마을에는 목욕을 해도 물이 가슴 밖에는 안 오지만 거기는 몇 길 되는 큰 ‘소’들이 많습니다. 하루는 갔더니 그 위에서 고기를 잡기 위해서 약을 쳤습니다. 옛날 원시인들의 방법입니다. 그랬더니 그 밑에는 고기가 다 죽는 겁니다. 너무나 보지 못한 큰 고기들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 겁니다. 메기들이 수백마리가 나오는 겁니다. 수많은 종류의 고기들을 가마니로 잡아가는 겁니다.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다 죽는 겁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고기일지라도 그 독물이 흐르는 거기에 살아남을 고기가 한 마리도 없는 겁니다. 적든 크든 다 죽는 겁니다.

죄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하므로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죄가 역사에 독극물을 흘려보낸 것입니다. 흘러가는 이 모든 역사는 죄악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인류의 역사가 대단한 역사가 없습니다. 모두 다 전쟁의 역사든지, 너무나 무서운 역사만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죄의 독극물이 역사 속에 흘러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죄에서 벗어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능력 있고 지식이 있고 권세가 있어도 다 죄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고 이 세상에서 불행과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후삼국시대, 이조, 그리고 조선, 오늘까지 그 많고 많은 최고의 영광을 누린 임금들도 어느 누구 한사람 만족하게 살아간 사람을 연속극에서도 볼 수가 없습니다. 최고의 자리가 최고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에는 죄악의 물이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죄악의 역사 속에, 죄악에 빠져 있는 지구라는 별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주셔서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그 아들을 죽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 위에 높이 달리시면서 그 십자가의 보혈이 강위에 흐르게 된 것입니다. 

한번 흘렸던 독극물이 전체를 죽이는 것처럼 한분의 보혈의 피가 한분 하나님의 아들이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이 그 강에 떨어지면서 이 강의 독극물이 생명으로 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바뀌는 것입니다. 저주가 다 떠나가고 죽음이 떠나가고 이 강물이 생명을 주는 강물로 되는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하나님이 지신, 아들이 지신 십자가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사람의 죽음으로 한사람의 범죄가 저질러놓은 이모든 죄악을 한사람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이 죄의 짐을 다 벗겨주시고 죄의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7절을 찾아보겠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한 사람이 죄를 지어서 여러분이 죄인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씨 성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조상이 이씨를 만듦으로 여러분이 이씨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하므로 우리 모두가 죄인이 되고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 지구라는 문에 사망이 찾아들어 오게 된 것입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저주를 받게 되고 아담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죄인이 되었는데 똑같은 공식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분이 저질러놓은 이 깨Em린 그릇을 한분이 오셔서 복원시키는 것입니다. 한분이 오셔서 새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17절에 말씀하듯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된 것입니다. 죄인을 의인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한사람의 아담이 불순종하므로 모두 죄인 된 것을 한분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므로 모두 의인으로 만든 것입니다.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사망이 찾아왔는데 이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길이열린 것입니다. 생명의 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던 저주가 한분으로 말미암아 축복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선한 일도 해야 됩니다. 교육도 해야 되고 친교도 해야 됩니다. 물론 다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생명, 바로 그것은 기독교의 본질, 핵심은 바로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와 멸망과 저주에서 구원해 내는 것입니다.

아담에게 물려받은 모든 저주는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새것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으면 누구든지 이전 것은 지나가서 전에는 안 되던 사람도 이제는 될 수 있고, 전에는 죄의 길을 걸어가던 사람이 이제는 의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전에는 멸망의, 마귀의 종노릇을 하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된 우리니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 지음을 받는 것입니다.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변화는 위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속해 있고, 하늘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새롭게 해야 새로운 것이지 땅에서 새롭게 해서는 새로움이 올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명일동에서 우리 교회를 30년 전에 개척했지만 제가 여기 있기 전에는 황산이라는 곳 옆에 미사리라는 데서 10년을 목회했습니다. 거기서 제가 장로회신학대학을 3년을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이 지역을 잘 압니다. 여기는 다 논이었습니다. 그린벨트입니다. 여기 길동, 둔촌동, 암사동 다 논이었습니다. 그런 것이 이제는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개척할 때 강동아파트가 지금은 롯데캐슬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삼익, 현대, 한양, 얼마나 좋은 아파트들이 이렇게 많이 들어섰습니다. 정말 새로운 지역이 됐습니다. 

새로운 도시, 새집에 삽니다. 우리가 얼마나 더 좋은 집, 더 좋은 자동차, 더 좋은 의식주의 혜택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러나 새로워집디까? 새롭습디까? 이 지역이 변했다고 새로 되는 것입니까? 대학생이 되면 새롭고 대학교수가 되면 새롭습디까? 결혼하면 새롭습디까? 출세하면 새로워지는 겁니까? 제가 여기에서 40년 지났지만 엄청나게 새롭게 새롭게, 또 새로워져도 우리는 새로운 것이 아닌 것은 사람을 새롭게 하는 것은 위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씻어야 새사람이요, 새 생명이요, 새로운 하나님의 피조물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고 구원받고 교회 나와야 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유일한 단하나의 길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주시고 아들이 지신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위로부터 십자가 보고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사다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다리를 타고 천군천사와 함께 성령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노의 대상인 우리인간, 범죄한 우리인간을 이제는 사랑의 눈으로 보고 축복의 손을 잡아주시고, 은혜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 우리에게 십자가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멀고 먼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열어놓은, 하늘 문을 열어주시는 영적인 통로요, 축복의 통로인 것입니다.

10월 1일 국군의 날의 클라이맥스가 베레모를 쓰고 낙하산을 타고 오색연기를 뿜으면서 점프를 하는 것인데 이것이 얼마나 멋이 있는지 모릅니다. 정한 장소에 사뿐히 내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십자가가 있는 곳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모든 저주를 다 없이 하는 능력이 바로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전염병이나 질병은 백신이 개발되면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 백신으로 말미암아 저항력을 가져다주고 몸에 있는 바이러스를 다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서 우리 몸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신만 개발되면 이 세상에 못 고칠 병이 없습니다. 백신이 개발돼야 합니다. 우리의 몸에 있는 저주, 인간에게 있는 어떤 저주든지, 많고 많은 저주라도 하나님의 아들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는, 죄에서 우리를 건지는 영원한 생명의 백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사람은,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는 사람은 모든 저주가 그에게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입니다. 떠나가는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왜 나옵니까? 십자가가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는 십자가로 세워진 것입니다. 돈으로 세운 게 아닙니다. 주님은 교회를 피 흘려 사셨습니다. 여러분을 피 흘려 사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피가 있는 피의 백성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피의 종교입니다. 너희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로 양털같이, 눈같이 희게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십자가는 우리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게 할뿐만 아니라 화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멀리 떠난 우리가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창조주 하나님이 좋으신 하나님이 되고 사랑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의 하나님과 하나가 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고 십자가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하는 길이 열리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보기에는 볼 모양이 없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형틀이니까 무시무시하고 보기도 싫고 무서운 것이 십자가입니다. 영지버섯, 상황버섯처럼 모양이 형편없습니다. 시커멓고 울룩불룩 튀어 나오고 정말 암 덩어리와 같습니다. 사람의 암 덩어리와 버섯이 똑같이 생겼습니다. 또 다려서 먹어보면 구역질이 날 정도로 메스껍고 또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먹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먹으면 능력이 있습니다. 기적이 있습니다. 보기에 좋은 것을 먹는 것이 아닌데 십자가는 보기는 그런데 먹으면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슬픔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어둠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죄악이 다 사라지는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가 우리에게 평안을 주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 고난 받아 이 평화 누리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우리에게 평화를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사탄의 저격수입니다. 사탄의 킬러라고 합니다. 우리인간을 괴롭히는 사탄이 가지가지로 환난과 질병과 사고와 재난과 눈물과 슬픔으로 우리에게 고통을 주지만 십자가는 사탄의 세력을 멸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십자가를 보기만 해도 물러갑니다. 여름마다 나오는 영화중에 드라큘라가 있습니다. 서양의 모든 귀신들이 피를 먹다가도 십자가 보면 물러갑니다. 유일한 십자가입니다. 마귀가 두려워하는 것은 십자가인 것입니다. 몸에 십자가가 있으면 마귀는 여러분의 몸을 공격할 수 없고 여러분의 가정에 십자가가 있으면 여러분의 가정을 공격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는 축복입니다. 승리인 것입니다.

A.D.312년 10월 28일입니다. 밀비오 다리 밑에서 막센티우스와 콘스탄틴이 그 다음 날 다리 밑에서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를 바꿔놓는 최고의 전쟁이고 최고의 순간입니다. 콘스탄틴은 지방 출신입니다. 지방의 부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입해 오고 막센티우스는 전 로마를 다 통치하는 최고의 사령관입니다. 이것은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다윗과 골리앗과 같습니다. 그러나 10월 27일 날 저녁에 잠을 잘 때 우리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몸으로 콘스탄틴에게 나타났습니다. 콘스탄틴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이것으로 이겨라. 이것을 가지고 승리해라.” 헬라어로 “엔 투토 니카” 글씨가 새겨졌습니다. “이것으로 이겨라” 콘스탄틴은 일어나서 그다음 날 아침에 모든 수많은 깃발을 십자가로 바꿨습니다.

십자가 하나만 달고, 십자가는 그리기도 쉽습니다. 십자가 하나만 달았습니다. 모든 군인들이 사용하는 군복에도 십자가를 달았습니다. 십자가는 로마사람이 지는 게 아닙니다. 로마사람은 그렇게 안 죽입니다. 이방인들, 로마가 지배하는 미개한 사람들을 잡아다 잔인하게 죽이는 형틀이 십자가인데 이 사령관이 십자가로 이기라고 하니까 십자가를 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수 믿는 사람을 날마다 데려다가 죽이던 로마가 이 막센티우스와 10월 28일 전쟁에서 이기면서 콘스탄틴은 온 나라를 기독교국으로 만들고 본인이 세례를 받고 하루아침에 한순간에 로마는 완전히 기독교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기독교 국가가 돼서 이 황제가 십자가를 자랑하고 십자가를 높이고 십자가 앞에 무릎 꿇는 황제로 2천년을 내려온 것입니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세계를 지배하는 모든 곳에 십자가를 달게 해서 유럽천지가 다 십자가 아래서 복을 받는 국가로 만든 것입니다. 

십자가에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 달고 가면 승리합니다. 십자가는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십자가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이후로 영국도 국기를 아예 십자가로 만듭니다. 영국 국기에 십자가가 세 개입니다. 그리스, 덴마크, 스위스,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십자가입니다. 얼마나 많습니까? 18개국 국기가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초일류국가가 다 됐습니다. 이들은 원래 미개한 나라들이었습니다. 문명인이 아닙니다. 비참한 바이킹족들입니다. 이족속들이 최고의 족속이 된 것은 십자가 달면서입니다. 이분들은 십자가의 종교를 받아들이고 이분들의 정치, 교육, 문화, 가정 모든 것이 십자가에 맞춰서 살면서 오늘 인류역사에 찬란한 문명을, 최고의 복지국가를 만들고 최고의 번영과 안녕을 가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능력이 어디에 있느냐?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능력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외롭습니까? 괴롭습니까? 십자가 보세요. 십자가를 의지 해 보세요. 십자가를 사랑하세요. 십자가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말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라고 했습니다. 

지혜와 표적과 기적과 능력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한다 라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능력이 없으면 십자가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낙심하고 좌절하고 온갖 시험에 드는 것은 십자가 없는 크리스천입니다. 십자가 없으면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능력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물은 H2O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산소와 수소가 합해서 물입니다. 그러나 산소와 수소는 따로 두면 불입니다. 뜨겁습니다. 산소는 용접하는 데 쓰입니다. 그런데 합하면 물이 되는 겁니다. 소금이 뭡니까? 소금은 나트륨과 염소가 합하는 겁니다. 나트륨과 염소는 독극물입니다. 죽이는 겁니다. 그러나 나트륨과 염소를 같이 합하면 아주 몸에 이로운, 우리가 먹으면 영양을 주는 소금이 됩니다. 여러분을 따로 두면 여러분은 독극물입니다. 죄인입니다. 불입니다. 사고덩어리입니다. 문제덩어리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죽
음과 합해 지면 주님과 하나 되면 생명으로 바뀌는 겁니다.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는 겁니다.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이지 않습니까? 어디에서 변화가 오느냐? 그 핵심을 알아야 됩니다. 도대체 자기 스스로 노력해서 변화가 오냐? 아닙니다. 세상에 아무리 수양하고 고행을 해도 사람을 바꿔놓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합하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 4절에도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예수님과 합하고 예수님과 하나 되면 이것은 생명으로 변화되고 하나님의 생명이 거기에서 역사하는 겁니다. 여러분,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여 주님과 자녀가 되고 주님과 하나가 되어 세례를 받아 예수님은 나의 구주, 예수님은 나의 기쁨이 되면 여러분은 독극물에서 축복으로 변화된다라는 것입니다. 생수로 바뀐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놀라운 축복이 오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인간을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어 주셔서 하나님이 엄청나게 희생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그 아들을 죽이시고 우리를 건지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제 주님과 하나 되면 무거운 짐을 벗는 것입니다.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모든 열매는 희생에 의해서 열매가 맺어집니다. 농부가 곡식을 거두는 것은 농부의 희생입니다. 땀과 수고와 열심을 다할 때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자녀를 잘 기르는 것도 부모님의 희생입니다. 그 희생이 들어가지 않으면 자녀를 잘 기를 수 없을 들으면서 능력을,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면서 한없는 축복이 있게 하옵소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구속해 주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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