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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반드시 가리라 (롬 15: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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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작가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주인공은 40대의 런던의 증권회사의 중견간부이고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있는 부족할 것이 없는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회사에도 나오지 않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없어져 버린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있었다. 낡은 하숙집의 좁은 방에 살면서 고생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젊을 때 자신이 가졌던 미술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안정된 생활을 팽개치고 뛰쳐나온 것이다. 나중에 그는 타히티라는 작은 섬에 가서 오두막집을 하나 사서 벽 전체에 그림을 그린 후에 그 집을 불태워 버린다. 진정한 예술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나 돈을 받고 팔거나 남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가? 젊을 때에 어떤 꿈을 가졌었는가? 지금 그 꿈을 이루며 살고 있는가? 혹 이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모든 것을 팽개치고 집을 뛰쳐나가는 사람은 없기를 바란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살고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가? 여러분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려고 생각하고 있는가?  

어떤 50대 후반의 한 남자는 정년퇴직을 한 다음에 어떻게 남은 인생을 소일하며 보낼 것인가를 놓고 한참을 막막하게 상상을 했다고 한다. 여행을 다니며 산에 다니며 낚시를 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어떤 새로운 일을 시작해볼 것인가? 그러다가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다.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복음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감격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정년퇴직을 한 후에 태국의 촌부리라는 곳에 가서 청소를 해주면서 남은 인생을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헌신했다. 60대가 되어서야 새로운 꿈에 사로잡히고 하나님 나라의 꿈 때문에 남은 인생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사는 사람이 된 것이다.

우리가 자신이 가진 꿈을 따라 살 수 있다면 가장 행복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꿈대로 인생을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보내실 때 계획하셨던 대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죄악에서 건져내시고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셨을 때의 그 목적대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군으로 불러 세우셨을 때의 그 부르심을 따라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장 행복한 인생이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가슴에 여전히 남아 있는 꿈과 비전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그는 30대에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신의 개인적인 꿈과 인생의 계획을 모두 포기하고 30여 년을 오로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했다. 그는 그동안 3번의 전도여행을 통해서 주로 소아시아 지방에 복음을 전했다. 그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편지를 쓴 것은 로마에 가고 싶은 간절한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인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1세기는 로마가 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하던 때였기에 모든 것이 로마가 중심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에 가기를 간절히 원했고 가기 전에 먼저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바울이 로마에 가려고 한 것은 오직 복음이 온 세계로 전파되게 하기 원하는 간절히 소원 때문이었다. 로마에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로마를 통해서 서바나로 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는 이미 30년 동안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쳐서 복음을 위해 일했지만 이제는 그만하고 쉬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가보지 않았던 로마로 가려는 꿈을 가졌다. 그곳을 통해서 서바나까지도 가보고 그래서 복음을 전 세계로 전하려는 꿈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 꿈을 다른 말로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복음을 전 세계에 전해서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게 하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비전과 같은 것이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바울 역시 땅 끝까지 나가서 복음의 증인이 되기를 원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그 꿈과 비전을 버리거나 놓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 드리기를 힘써야 한다.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이루려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서바나에 가겠다”는 말을 세 번이나 하고 있다.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24 이는 ```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그곳에 반드시 가겠다는 것이다.

왜 바울은 계속해서 서바나로 가겠다고 하는가? 이 서바나는 오늘의 스페인이다. 그리고 그 당시는 스페인을 땅 끝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30년 동안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고 이제 나이도 60을 넘어선 때에 여전히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는 꿈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은 여러해 전부터 로마를 거쳐 서바나로 가려고 계획했었다고 말하고 있다. 

왜인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꿈과 비전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자신의 사명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9:15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전하는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그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준 꿈이나 자신이 세운 비전은 조금만 어려움이 있어도 쉽게 흔들린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나를 부르셨다. 나를 통해서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 이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붙들라.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달려가라. 사도 바울이 “반드시 서바나로 가리라”고 했듯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꿈과 비전을 반드시 이루어 드리겠다”고 결심하고 선언하고 끝까지 달려가라.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후원이 필요하다.
“23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24 이는 ```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꿈과 비전을 이루는 것은 나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서바나로 가기 전에 먼저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로 가서 그곳에 있는 성도들을 만나기를 원했다. 그들과 교제하고 사랑을 나눈 후에 그들이 자신을 서바나로 보내주기를 원했다. 바울은 혼자서 그 일을 하려 하지 않고 로마교회 성도들의 후원을 받기를 원한 것이다.

하나님이 거룩하고 원대한 꿈과 비전을 주셨어도 나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 반드시 동역자와 협력자와 후원자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 중 뛰어난 한 두 사람 또는 믿을만한 한 두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맡기시지 않았다. 열두 제자 모두에게 세계 복음화의 사명을 맡기시고 그들 모두에게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꿈과 비전을 주셨다. 3년 동안 데리고 다니시면서 서로 협력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가르치시고 훈련하셨다. 

다른 사람의 후원과 협력을 받으려면 먼저 그들과의 만남과 사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서로를 잘 알고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도와주고 협력하고 후원할 수 있겠는가? 만남과 교제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다른 사람과 사랑을 베풀고 복을 나누어주어야 한다. “29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이 자신을 서바나로 보내주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로마에 갈 때에 그들에게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가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물질적인 복이나 세상적인 복이나 현실적인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을 의미한다. 그들의 믿음에 필요한 신령한 복을 전해주겠다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무조건 후원을 요청한 것이 아니다. 먼저 그들에게 신령한 복을 나누어 주겠다고 한 후에 후원을 요청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위한 후원은 일방적으로 도와주고 또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믿음 안에서 섬기고 나누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자신 있게 다른 사람들에게 후원과 협력을 구하라.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위해 일하고 있다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과 협력을 요청해서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라.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일하는 일군들을 진심으로 후원하고 도와주라. 그들이 마음껏 복음을 위해서 일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나누고 그것을 공동의 비전으로 삼으라.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교제를 통해서 서로 사랑하고 기쁨으로 도와주라.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다.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바울은 로마를 통해서 서바나로 가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하면서도 지금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고 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쓰고 있는 고린도는 예루살렘과 로마의 중간지점이다. 로마는 고린도의 동쪽에 있고 예루살렘은 고린도의 서쪽에 있는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그가 가려고 하는 로마와는 정반대의 방향에 있다. 그는 지금 자신의 계획과 반대쪽으로 가려고 하고 있다. 그가 서바나로 가려는 계획을 중단하고 반대쪽인 예루살렘으로 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예루살렘 지역에 흉년과 기근이 들어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고난을 겪고 있을 때에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의 교회의 성도들이 그들을 위해서 헌금을 했다.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교회의 모교회였기에 바울은 다른 지방의 교회들에게 모교회의 어려움을 위해서 헌금할 것을 요구했고 지금 그들이 헌금한 것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겠다는 것이다. “25 그러나 이제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그에게는 분명히 로마에 가서 거기서 서바나로 가려는 확실한 계획과 목표가 있었다. 그렇지만 예루살렘 교회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에 그 모든 계획을 미루고 예루살렘 교회를 도울 헌금을 모아서 그리로 가겠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삶의 어려운 문제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고 급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복음은 빵과 함께 또는 쌀과 함께 가야 한다. 물론 빵이 복음은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빵 또는 쌀이 없이는 복음을 전해줄 수 없다. 영혼구원을 위해서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어야 하지만 먹을 것이 없어서 굶고 있는 사람들에는 우선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 가난하고 어려워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렇게 우리가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섬길 때에 가져야 할 두 가지 자세가 있다. 하나는 기쁨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 교회의 성도들은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일을 기쁨으로 했다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8: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그들은 자신들도 엄청난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기쁨으로 헌금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빚진 자의 심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27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마게도냐와 아가야 교회 성도들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 빚을 졌다는 것이다. 그들이 무슨 빚을 졌는가? “27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예루살렘 교회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서 영적인 복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므로 마게도냐와 아가야 성도들이 영적인 빚을 진 예루살렘 교회에게 물질을 보내서 육적인 것을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사랑을 기쁨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을 섬김으로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도의 후원이 필요하다.
“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사람이 아무리 꿈과 비전을 가지고 열정을 가지고 애쓰고 수고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그것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아무리 믿음이 좋고 기도를 많이 해도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기도를 부탁하는 제목을 세 가지이다. 첫째, 핍박에서 건짐 받기를 기도해 달라고 했다. “31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데 거기서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기독교를 핍박하는 유대인들의 손에서 건짐 받기 위해 구하라고 했다.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반드시 핍박과 반대와 방해가 있게 마련이다. 이런 어려움에서 건짐 받고 끝까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복음의 일군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한다.

둘째, 예루살렘 교회에 가는 일이 잘되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다. “31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지금 마게도냐와 아가야 교회의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로 가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이 그 구제헌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 중에는 이방인을 싫어하고 이방인 교회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이 혹 그들의 사랑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진심을 몰라주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이 사랑의 헌금을 기쁘게 받아들이게 되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사랑으로 나누고 섬기는 일을 하면서도 반드시 기도하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의 방해로 선한 일에도 어려움이 올 수 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자신의 봉사와 섬김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봉사가 되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간혹 나는 잘한다고 한 일에 저쪽에 가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내 수고가 헛되고 만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주의 일을 할 때에 힘써 수고하면서 이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힘써 수고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해달라고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한다. 

셋째, 무사히 로마로 돌아가서 그들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다. “32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핍박과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또 사랑의 헌금을 잘 전달한 후에 기쁨으로 돌아와서 로마에서 쉬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모든 일에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맡겨진 일을 잘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일은 기도 없이는 감당할 수 없다. 특별히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고 또한 복음의 일군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이루기 위해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하나님의 일군들을 위해 기도의 후원자가 되라.

오늘 본문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나는 반드시 가리라”고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자신이 세 지역에 반드시 가겠다고 말하고 있다. 로마에 반드시 갈 것이고, 예루살렘에 반드시 갈 것이고, 서바나로 반드시 가겠다고 했다. 특별히 그는 서바나로 가겠다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가겠다는 뜻이다. 당시 땅 끝이라고 알고 있던 그곳에 반드시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목적이요 그것이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꿈과 비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해도, 목숨을 잃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가겠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무엇에 이렇게 목숨을 거는가? 어떤 일을 반드시 하겠다고 단단히 결심하고 있는가? 어디에 반드시 가겠다고 결심하고 있는가? 무엇이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렇게 확신하는 일이 있는가? 그렇게 확신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인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자신의 이름 때문에 수십 년 동안 고민을 한 사람이다. 그는 황금에 미친 인간이었다. 새로운 세계를 향해 항해를 떠난 것도 그곳에 황금이 많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 이름을 버릴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하는 고민을 계속했다. ‘크리스토퍼'(christopher)란 이름은 ’그리스도를 업고 다니는 사람‘란 뜻이다. 그의 고민은 예수를 업고 사는 사람이 될 것인가, 황금을 업고 사는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수도원에 들어가서 며칠을 기도한 그는 신부에게 자신의 이름을 회복하겠다는 고백을 하고 죽기까지 14년 동안 하나님을 위해 살았다. 그는 평화스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숨을 거두었는데 죽기 며칠 전에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주님의 제자가 되었던 지난 14년간이다”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꿈과 비전이 있는가?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인생을 사는가? 잠언 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 KJV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 NIV “ Where there is no revelation, the people cast off restraint.” 꿈이 없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산다. 바랄 것이 없고 기대할 것이 없고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망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은 인생을 헛되게 살지 않고 의미 있게 산다. 사도 바울은 평생을 복음을 위해 살고도, 복음 때문에 수많은 고통과 위험 속에서 살았으면서도, 그만 쉬거나 편하게 살려 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위해 계속 앞으로 나가기를 원했다.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반드시 이루어 드리겠다고 결심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향해 계속 달려가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위해 서로 후원하고 협력하라. 가진 것을 기쁨으로 내놓아서 나누고 섬김으로 사랑의 빚을 갚으라. 기도의 후원을 요청하고 또 서로 기도의 후원자가 되라.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반드시 이루라.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위해 인생을 바치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나의 인생의 목표로 삼으라. 하나님의 나라를 나의 꿈과 비전으로 삼으라. 나의 남은 인생을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드리고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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