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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이상한 계산법 (마 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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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상한 계산법 (마 20:1-16) 

  

성경을 읽다 보면 종종 이해가 안 되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경에 오류가 있어서 그럴까요? 그건 절대 아니죠.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 나오면 하나님과 인간의 생각 차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런 말이 있죠. “뱁새가 어찌 황새의 뜻을 알리요?” 뱁새와 황새 사이에도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데, 하물며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겠습니까? 

사55: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차이가 나는데 한 마디로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우리 생각과 달라도 열린 마음으로 겸손히 대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말씀 속에 담겨진 오묘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런 유의 말씀이 나옵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말씀 속에 하나님의 진리가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은 ‘포도원의 품꾼’ 비유입니다. 

[1] 포도원의 품꾼 비유 : 이상한 주인의 이야기 

이스라엘이 위치한 팔레스틴 지방의 포도 수확기는 9월경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품꾼을 구하러 나갑니다. 장터에 있는 사람들을 포도원 품꾼으로 데려갑니다. 여기서 포도원은 천국 혹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품꾼은 천국 혹은 교회로 인도된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장터는 세상을 가리킵니다. 

1절 보면, 포도원 주인이 이른 아침 품꾼을 구하러 나갑니다. 오전 6시경일 겁니다. 당시 시간법은 이랬습니다. 오전 6시부터 오후6시까지 낮 시간을 1시간단위로 계산합니다. 하루의 출발 시간이 오전6시이고, 오전7시를 제1시, 오전 8시는 제2시, ... 이런 식으로 불렀습니다. 

2절 보면, 주인이 사람들을 품꾼으로 데려가면서 1데나리온씩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잘 아시는 대로, 데나리온은 로마의 은화로 노동자 하루 품삯 해당되는 액수입니다. 그런데 한참 후 제3시 즉 오전 9시에 주인이 나가서 또 품꾼을 데려옵니다. 이때는 품삯을 정하지 않고 ‘상당하게’ 약속합니다. 알아서 주겠다는 겁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아마 1데나리온에서 깎고 주겠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었습니다. 또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6시 즉 정오에도, 제9시 즉 오후3시에도 주인이 나가서 놀고 장터에 나가 놀고 있는 사람들을 데려옵니다. 심지어 제11시 즉 오후5시에도 그렇게 합니다. 6절~7절. “6 제십일시(=오후5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7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참 이상한 주인입니다. 그 시간에 데려가서 뭐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해질 때까지 1시간밖에 남지 않았는데, 얼마나 일한다고 데려가는지! 

잘 생각해 보면, 포도원 주인의 이런 행동은 일손이 딸려서 그랬다기보다 놀고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차원에서 그런 것 같습니다. 놀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을 불쌍히 여겨 일부러 고용해 준 겁니다. 참 이상한 주인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보면 이 주인이 정말, 정말 이상한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침내 해가 저물어 마감시간이 됐습니다. 8절 보면, ‘저물매’ 그랬는데 오후 6시를 가리킵니다. 하루 일과의 마감시간입니다. 품꾼들이 줄을 서서 품삯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중 온 사람들부터 줍니다. 이것도 이상하죠. 처음에 온 사람부터 줘야 하는데 말입니다. 9절.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맨 마지막 제11시에 온 사람들에게 1 데나리온씩 줍니다. 아마 그들은 매우 감격스러웠을 것입니다. 겨우 1시간 남겨두고 고용된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예상치 않게 하루 품삯을 다 받은 것입니다. 

그들보다 일찍 들어온 사람들은 내심 더 많은 품삯을 받으리라 기대하고 부푼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그런데 웬걸 일찍 온 사람들도 모두 다 1데나리온씩 줍니다. 그러자 그들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주인을 원망하고 난리입니다. 10절~11절.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아마 우리라도 그랬을 겁니다. 정말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이게 무슨 계산법인지! 정말 이상한 계산법입니다. 이건 세상의 계산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상한 계산법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불평하는 그들을 책망합니다. 14절.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이렇게 1데나리온씩 똑같이 주는 게 주인의 뜻이라는 겁니다. 주인 마음대로입니다. 오전6시부터 온 사람에게 1데나리온을 약속하고 그대로 줬습니다. 문제없습니다.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도 주인 마음대로 1데나리온씩 줬는데 역시 문제없습니다. 인간들끼리 서로 비교해서 배가 아파서 그렇지 주인의 행동 자체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탕자의 비유에 나옵니다.(눅15:11~32) 둘째 아들이 아버지 재산을 받아갖고 나가 탕진합니다. 알거지가 되어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반갑게 맞이합니다. 잔치까지 베풀어줍니다. 큰 아들이 아버지에게 성질을 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럴 만하죠. 그러나 그게 바로 아버지의 마음이에요. 살아 돌아온 것만도 좋은 겁니다. 큰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모를 뿐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가 캐치해야 되는 게 뭡니까? 주인의 마음 즉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자비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장터에서 놀고 있는 게 불쌍했던 겁니다. 그 날 먹을 게 없어요. 딸린 가족들도 굶을 수밖에 없어요. 불쌍해서 고용해 준 겁니다. 품꾼이 꼭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이게 바로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인간에게 아무런 공로가 없지만, 잘 한 게 없고 죄만 지었더라도 예수 십자가 대속을 믿기만 하면 그냥 용서하시고 구원해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는 겁니다. 인간끼리 비교하면 내가 저 사람보다 좀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거기서 거기입니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나 마지막에 와서 일한 사람이나 주인의 입장에서는 별 게 아니고, 다만 불쌍해서 써 주고 돈을 챙겨 주는 겁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자비가 극명하게 나타난 게 강도의 구원이죠.(눅23:39~43)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옆에 있던 한 강도가 구원 받았잖아요. 평생 죄만 짓다가 막판에 회개하고 예수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보증해 주셨어요.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아슬아슬한 구원, 턱걸이 구원이죠. 목회하면서 이런 경우를 종종 봅니다. 평생 예수님을 믿지 않다가 임종 직전에 예수님을 믿음을 영접하고 숨을 거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목사로서 한 영혼을 구원했다는 짜릿한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너무 쉽게 구원받는 거 아닌가? 누구는 평생 신앙생활 하고 천국 가는데 이런 사람은 심지어 세례를 받지 않고도(십자가에 달린 강도처럼) 천국에 가다니! 인간적으로 불공평하다는 생각조차 들어요. 이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사항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셨기에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모두 구원해 주십니다. 엡1:4~5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없지만, 내가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남이 쉽게 구원받았다고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해 보면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100점이에요. 커트라인이 100점이란 말입니다. 90점짜리도 50점짜리도 떨어지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그런데 불쌍해서 다 붙여 준 거에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이 바로 그겁니다. 그런데 90점짜리가 50점짜리 가리키면서 “쟤는 나보다 훨씬 못한데 왜 붙여줘?” 이렇게 항의하면 안 되죠. 자기도 붙여줬는데 말입니다. 인간은 잘 나도 못 나도 다 죄인이고 그 죄를 따라 엄격하게 처리하면 다 멸망합니다. 하나님의 자비 때문에 구원받은 것을 감사할 뿐입니다. 시103:10~11 “10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11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2]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의 자세 : 감사, 순종, 충성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불평하는 사람들처럼 주인의 마음을 모르는 철부지가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섭섭해 하십니다. 책망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① 감사 :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전적으로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엡2:8~9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인간 조건을 구원을 위해 눈곱만큼도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것 갖고 자랑하면 안 됩니다. 거기서 실족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시편 기자의 고백을 해야 됩니다. 시116: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고 한경직 목사님을 잘 아시죠. 그는 한국교회에서 대표적으로 훌륭한 분입니다. 왜 그분이 그렇게 훌륭한가요? 큰 교회를 이루어서 그런가요? 많은 업적을 남겨서 그런가요? 아닙니다! 그의 겸손과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마음이 훌륭한 겁니다. 그가 템플턴 상을 수상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상은 종교의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큰 상입니다. 

수상을 여러 번 거절했던 겨우 수상을 수락하셨는데, 수상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고백했답니다. “여러분, 저는 이 상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일제 시대에 신사참배를 한 죄인입니다.” 한국교회가 과거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신사참배한 죄가 있죠. 그것을 제대로 회개하지 못했는데, 목사님은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걸렸던 겁니다. 그는 평생 죄인을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 감격한 분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평생 이런 감격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그저 감사, 만만 감사, 평생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② 순종 :

우리는 부족한 죄인입니다. 구원받고 의인이 되었다고 해도 그것만 법적인 차원일 뿐, 실제로는 아주 무지한 자들입니다. 그럼로 겸손히 하나님이 말씀마시는 대로 겸손히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구원받은 성도라도 순종하지 않으면 축복이 없습니다. 똑같이 구원을 받아도 개인별로 축복의 차이가 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무조건적이지만, 축복은 조건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범사가 잘 됩니다. 잠3:5~6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저의 중학교 시절 이야기입니다. 당시는 중학교 시험을 보고 들어갔어요. 입학해서 1학년이 됐는데, 교실에서 아이들이 수군거려요. “쟤 보결생이야. 쟤도 보결생이야.” 처음에는 그게 뭔지 몰랐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실력이 모자란데 사이드로 들어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 아이는 자기가 모자란 줄 알고 선생님 말씀 순종하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나중에 졸업할 때는 성적이 쭉 올라가서, 고등학교도 잘 가고 대학에도 잘 갔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아이는 일류 중학교 들어왔다고(자기 실력으로 들어 온 것도 아니면서) 으쓱거리며 놀러만 다니더니 결국 고등학교 입시에 낙방하고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신앙생활에 교훈이 됩니다. 우리는 다 보결생입니다. 우리의 실력이나 공로로 구원받은 게 아닙니다. 그 뿐인가요? 아무리 오래 신앙생활을 해도 늘 부족하고 모자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대로 살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만 큰 축복이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③ 충성 :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가 아무리 충성해도 시원치 않습니다. 그렇게 한들 우리가 자력으로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충성할 수박에 없습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은 누구보다도 충성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절실하게 느끼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충성하고 또 하고 ... 그런 겁니다. 그러고도 그렇게 충성한 것조차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의 또 다른 고백이 고후5:14에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 ”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하면 저절로 마음이 끌리고 충성하게 된다는 겁니다. 

찬양 가수 조지 베버리 쉐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황금의 바리톤 목소리를 소유한 사람으로 일커어졌습니다. 그는 본래 돈이 없어 대학 중퇴하고 보험회사 세일즈맨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방송국 공개홀에서 노래한 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 NBC 방송국의 전속가수 제의를 받게 됩니다. 그 때 그의 나이 23세였는데, 그 앞에는 돈과 인기가 펼쳐지게 된 겁니다. 그런데 어쩐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회가 사라져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하며 기도합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평소 애송하던 신앙 시 한 편을 발견합니다. 그 시를 읽어 내려가던 그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고,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의 목소리, 저의 젊음, 저의 인생을 모두 주를 위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마음속에 솟아오르는 멜로디를 그 시에 맞춰 작곡을 했고, 바로 그 날 탄생한 찬양이 찬송가 94장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입니다. 그 후 그는 빌리 그래함 목사를 만나 평생 동역하며 찬양과 간증으로 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했습니다. 이처럼 충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저절로 하는 겁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저절로 하는 충성이지만 하나님은 일일이 기억해 두셨다가 천국에서 상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계2:10 “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여러분, 기왕 신앙생활 하는 것인데 누구나 받는 구원 외에 이런 상급을 받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먼 훗날 주님 앞에 설 때 아무런 상급이 벗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고전3:14~15 “14 만일 누구든지 그(터=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본문 16절 예수님께서 비유를 끝내면서 덧붙이신 말씀 보세요!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먼저 믿은 자의 장점, 나중 믿은 자의 장점이 있습니다. 먼저이든 나중이든 구원받는 것은 동일하지만, 축복과 상급은 차이날 수 있습니다. 구원의 평등성, 축복과 상급의 차등성입니다. 그리고 이런 공식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구원, 순종으로 축복, 충성으로 상급”

늦게 믿은 게 자랑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이점이 있습니다. 늦게 믿은 게 너무 안타까워서 남은 시간 더 열심히 충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유에 나온 사람 중 제11시에 온 사람들 중 그런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너무 황송하고 고마워서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충성을 다했다면 주인이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그런데 늦게 믿고도 대충 신앙생활 하면 곤란하겠죠. 

먼저 믿은 사람의 이점이 있습니다. 일찍 믿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모태 신앙인이 제일 부럽습니다. 더욱 성숙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더욱 주의 일에 충성할 기회가 많은 겁니다. 금상첨화입니다.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먼저 믿었는데 오히려 잘못하는 경우도 이따금 봅니다. 교만하고 자랑합니다. 되지도 못하고 된 줄 압니다. 별 것도 안 하고 많이 한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일찍 믿었으면 일찍 믿은 대로, 늦게 믿었으면 늦게 믿은 대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숨지는 그 순간까지 부족해도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이런 말이 있죠. 한 사람의 평가는 관 뚜껑 닫을 때 안다! 개관사정(蓋棺事定)입니다. 숨지는 그 순간까지 겸손히 감사하고 순종하고 충성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처럼! 

딤후4:7~8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여러분, 세월이 신속하게 지나갑니다. 남은 날을 계수하며 더욱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 감사하고, 말씀대로 순종해서 풍성한 축복을 누리고, 맡겨주신 일에 충성함으로 천국의 상을 예비하는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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