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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의 영광스러운 본질 (딤전 3: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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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영광스러운 본질 (딤전 3:14-15)
 

오늘은 우리 교회의 창립 14주년 감사예배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지난 1996년도 6월 9일에 아파트 거실에서 5가정이 모여서 교회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창립 14주년이 되었습니다.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이 이제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 동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부흥하고 성장하여 오늘과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열네 살의 청소년이 된 것입니다. 그런 만큼 아직은 미숙한 면이 없지 않지만, 반면에 순수하고 생동감이 있고 가족적인 분위기 등은 나이가 어린 교회의 장점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여타 사회단체들과는 본질이 다릅니다. 따라서 세상적인 잣대로 교회를 평가하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교회의 평가 기준은 성경이어야 합니다. 흔히, 교인수로 교회를 평가합니다 마는,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배당 건물의 규모를 가지고 교회를 평가하는 것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또는 교회의 재정 규모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교회를 평가하는 그런 기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교인수가 많건 적건, 건물이 크건 작건, 우리는 그런 것으로 교회를 평가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식으로 평가 받아야 할 만큼 무가치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소아시아의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질적으로 부요했습니다. 아마도 교인수가 많고 대체로 형편이 넉넉해서 헌금을 많이 했나 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대리석으로 크고 아름다운 예배당을 짓고 많은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인들은 자기들의 교회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에 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평가는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하여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권면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지금 저는 작은 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상관없이 주님께서 보실 때 교회다운 교회로 인정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칭찬을 받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 속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첫째로, 신앙의 열심이 있는 교회라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신자들의 신앙이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미지근한 상태였습니다. 신앙생활은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을 싫어하십니다. 아니, 싫어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역겨워하십니다. 그래서 토하여 내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교회 창립 14주년 감사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에 우리 자신의 신앙 상태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혹시라도 차지도 덥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상태거든 회개하고 신앙의 열심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열심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할 때 열심은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신앙의 열심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하나님 보다 세상을 더 사랑한 데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에 이르기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모든 신자들이 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므로 신앙생활에 열심내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둘째로. 세속에 물들지 않은 교회라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당시 라오디게아 교회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교회였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물질적으로 넉넉하면 그만큼 선한 사업을 많이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제점은 물질적인 부요를 영적 부요로 혼동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교회가 세속화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현대에도 라오디게아 교회와 닮은 교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혹 우리 교회가 그렇지는 않은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현대인들은 아주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다 물질적인 성공 욕구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릴 것을 요구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씀합니다. 

그 대신 자족하는 법과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한 줄 알면서 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진정한 부요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임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가 세속화되는 이유는, 목회자를 비롯해서 신자들이 세속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답이 나온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세속에 물들지 않으려면 우리 각 사람이 세속적인 가치관을 거부하고 성경적인 가치관을 갖는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을 모신 교회라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하여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을 문밖에 세워두고는 사람들이 주인 노릇을 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교회는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이고 큰일을 많이 할지라도 주님과는 상관없는 집단에 불과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목사도, 제직들도, 그 누구도 교회의 주인 노릇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주님께서 이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주님을 교회의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 좌정해 계시면서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면 그 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수도물을 정수해서 마시고, 가게에서 돈을 주고 페트병에 든 물을 사서 마십니다. 물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물이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도처에 물이 넘치지만 마실 물이 귀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많은데 교회다운 교회가 귀한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복음의 진리로 인해 욕을 먹고 핍박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세상에 본이 되지 못해서 욕을 먹는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리에 가로등이 많은 것을 보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밤을 대낮처럼 밝힐 정도로 가로등을 많이 설치한다고 하면 환영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신자 개개인을 의미하는 것뿐 아니라 교회의 구성원 전부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땅의 교회들은 빛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여 우리 사회에서 칭찬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교회답게 되려면 기독교인들이 교회가 무엇인지, 그리고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올바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설교 제목처럼 “교회의 영광스러운 본질”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올바로 인식하고 영광스러운 교회의 구성원이 된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의 영광스러운 본질이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14)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15)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첫 번째로,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일컬어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사용한 ‘집’은 건물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가족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서, 가정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가족들이 모여 있는 신령한 가정입니다. 당연히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장으로서 집을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다 함께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깁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인종에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 하나같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깁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형제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방인이라도 “예수 그리스도” “할렐루야!” “아멘”만 알면 한 가족으로 통합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가족들 사이에 가장 필수적인 것이 사랑입니다. 신자들은 누구나 한 분 하나님 아버지를 모신 가족입니다. 나이가 많이 드신 분은 친 부모님처럼 여기고, 그렇지 않은 신자들은 서로 형제처럼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이 서로 형제로서 사랑하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요한일서 3장에 이 같이 말씀합니다.

“11)우리가 서로 사랑할찌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12)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13)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15)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18)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간혹 보면, 시험에 들어서 교회가 사랑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담임 목사로서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교회가 사랑이 없다면 교회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랑은 목사만 하는 것이 아니고, 장로님이나 권사님만 하는 것이 아니고 구역장님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이 된 사람은 누구나 사랑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친한 사람들만 사랑할 것이 아니고 모든 믿음의 형제를 골고루 사랑해야 합니다. 내 구역식구만 사랑하지 말고 다른 구역 식구에게도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교회가 사랑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나는 믿음의 형제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교회에 사랑이 없다고 느껴지거든, 그렇게 감지한 내가 먼저 형제 사랑을 힘써 나타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하나님의 파격적인 사랑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본문에 이르기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한 것입니다. 독생자를 보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선한 목자로서 양들을 사랑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랑을 나타내는 데 서투른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하는 훈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나타내는 연습을 많이 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해야 합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워서 익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서로의 인격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숙한 사랑의 관계를 지속해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교회는 사람들만 모인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이요 성도들은 다 하나님의 가족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온 성도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 앞에 순복하고, 가정의 질서를 존중하고, 형제 사랑에 힘쓸 때,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집으로서 주님의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언급하시면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면 교회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한 근거는 무엇일까요? 고린도전서 3장 23절에 그 답이 나와 있는데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속해 있으므로 당연히 교회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교회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교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지옥의 권세가 우리 교회를 이길 수 없습니다. 교회를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이는 ‘불러낸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의 회원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죄악 세상에서 불러내시어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8)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고 하셨습니다. 

마귀가 온갖 수단 방법을 다해서 교회를 공격할지라도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지켜 보호해 주시므로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행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니 하나님을 일컬어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신이신데 새삼스럽게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언급한 것은 교회를 지켜주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언제나 유효함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악한 세력이 교회를 대적하고 핍박해 왔지만 교회를 적대하던 세력들은 다 망하여 사라졌지만 교회는 여전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날로 더 흥왕해 왔습니다.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교회를 지켜주셨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역시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이므로 하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지켜 주실 줄 믿습니다. 

세 번째로,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습니다.

고대 로마 세계의 건물을 보면 크고 아름다운 대리석 기둥을 세웠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기둥들을 보면 예술품으로 만들려고 화려한 조각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마 황제의 상을 높은 기둥 위에 세웠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지으면서 성전 앞에 놋 기둥 둘을 만들었는데 그 높이가 16미터이고 각 기둥 머리의 높이도 2.3미터나 되었으며, 그 기둥머리를 사슬로 두르고 석류 일백 개를 만들어 사슬에 달아서 장식했습니다(대하 3:15-17). 이처럼 기둥은 자랑하고 과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교회를 가리켜 “진리의 기둥”이라고 했습니다. 곧 교회가 진리를 널리 드러내는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는 복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교회는 복음을 널리 드러내고 전파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곧 성도들이 열심히 전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르기를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것은 구원 받은 우리로 하여금 교회 안에서 안주하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널리 전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사는 불신 이웃들을 전도할 뿐 아니라, 외국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들을 후원하는데도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린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을 전도하는데도 힘써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오늘의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이 내일의 한국 교회의 주역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가리켜 진리의 터라고 했습니다.

이는 교회가 진리 위에 견고히 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진리를 파수함으로써  진리의 터로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단 사이비들은 아무리 추종자들이 많더라도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외쳐댈지라도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단, 사이비들은 복음의 진리 위에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부인하고 거짓을 추종하는 자들입니다. 참된 교회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지만, 이단, 사이비들은 거짓의 아비인 마귀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교회가 존귀한 이유는 진리의 터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복음을 열심히 전함으로 그리고 진리 위에 굳게 섬으로써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 사명을 다해야 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우리 교회 창립 14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아울러 우리 교회가 안고 있는 약점이 무엇인지, 미흡한 것이 무엇인지, 또한 잘한 점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교회였지만, 완전무결한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구제 문제로 말썽이 생긴 적도 있었고,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말세가 가까운 이 때 교회들이 세속의 거센 도전 앞에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건물도 크고 화려하고, 성가대의 음악성도 높고, 설교도 유창하고, 흥미로운 프로그램도 많지만, 초대교회가 가졌던 성령의 능력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형식주의, 기복주의, 성공지상주의를 벗어버리고 오직 성령과 말씀을 힘입어 교회의 영광스러운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교회,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교회,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 주님의 인정을 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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