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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첫 제사의 교훈 (레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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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제사의 교훈 (레 9:1-7)


사회학에서는 인간을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은 다른 모든 생명체와 달리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성찰을 통해 자신을 초월하는 존재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것을 “거룩” 또는 “성”(聖)이라고 개념화합니다. 그리고 이 거룩한 존재 앞에 설 때 나름대로 예를 표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제사 또는 예배라고 정의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인간은 어느 시대, 어느 문화를 살펴봐도 종교가 있고, 제사 또는 예배가 있어왔습니다. 성전을 지어놓고 제사를 드리기도 하고, 대자연 앞에서 제사를 드리기도 하고, 때로는 가정에서 제사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 형식도 다양하고 또 제사 때 바치는 제물도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심마니들이 산삼을 캐러 산에 들어가며 나름대로 제사를 드립니다. 등산가들이 고산에 오르며 나름대로 제사를 드립니다.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나가며 나름대로 제사를 드립니다. 새해를 맞으며 떠오르는 첫 태양을 바라보며 소원을 빕니다. 정월 대보름 휘영청 둥근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빕니다. 이런 현상들은 인간 저 깊은 곳에 예배드리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안의 저 깊은 심성 속에 하나님께 예배드리고자 하는 갈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예배가 하나의 습관이 되어 그 갈망이 잊혀 지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세상사는 것이 바빠 그 갈망을 외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배 드리고자하는 그 갈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불타오르는 갈망을 안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 42:1-2를 보면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이 시인의 뜨거운 마음처럼 예배드리고자 하는 갈망을 안고 주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다 이런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하나님의 갈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자 하는 우리의 갈망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예배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요 4:23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예배다운 예배를 받으시고자 하는 갈망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자 하는 우리의 갈망만 생각하고 예배드리면 안 됩니다. 우리의 갈망만 만족하기 위해 예배드리면 심리적 위안을 받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갈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예배의 기쁨은 맛볼 수 없습니다.

실제로 수많은 제사와 예배가 드려지지만 거의 대부분의 제사와 예배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합니다. 대부분이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아닌 우상 앞에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번지수가 잘못된 편지가 제대로 배달 될 수 없듯이 그 모든 제사와 예배는 폐기되고 맙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해도 하나님의 갈망을 이해하지 못하고 드리는 예배는 결코 하나님께서 열납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예배드리고자 하는 우리의 갈망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참된 예배를 받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갈망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갈망을 만족시켜드리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참된 예배를 받으시려는 하나님의 갈망을 만족시켜드리려면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답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제사장으로 위임 받은 아론이 그 아들들과 함께 명실 공히 제사장으로서 첫 제사를 드리는 이야기입니다. 1-7절에서는 모세가 제사장으로 위임받은 아론과 그 아들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로를 불러놓고, 아론이 제사장으로 첫 제사를 드릴 것을 명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8절 이하에서는 아론의 그 명을 받들어 첫 제사를 집전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움을 받은 뒤 공식적으로 하나님께 첫 번째로 제사 드리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사에 관한 본격적인 훈련을 받은 뒤 하나님께 명하신 대로 첫 번째로 제사 드리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참된 예배를 받으시려는 하나님의 갈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갈망한 합당한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할 지 그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준비하고 예배를 드리라

본문 2-4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론에게 이르되 속죄제를 위하여 흠 없는 송아지를 가져오고, 번제를 위하여 흠 없는 숫양을 여호와 앞에 가져다 드리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속죄제를 위하여 숫염소를 가져오고 또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되고 흠 없는 송아지와 어린 양을 가져오고 또 화목제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드릴 수소와 숫양을 가져오고 또 기름 섞은 소제물을 가져오라 하라” 모세가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사를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우선 저들은 자기들이 드려야 할 제사가 어떤 제사인지 분명히 확인해야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속죄제인지 번제인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죄제인지, 번제인지, 화목제인지 분명히 확인해야 했습니다. 

다음으로 제사에 맞는 제물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속죄제를 위해 흠 없는 송아지를 준비해야 했고, 번제를 위해서는 흠 없는 숫양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죄제를 위하여 숫염소를 준비해야 했고, 번제를 위해 1년 되고 흠 없는 송아지와 어린 양을 준비해야 했고, 화목제를 위해서는 수소와 숫양 그리고 기름 섞은 소제물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예배를 받으십니다.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예배는 받지 않으십니다. 물론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부끄러운 고백을 드려보겠습니다. 제가 청년들을 지도할 때였습니다. 청년부 집회는 토요일에 모였습니다. 한 번은 토요 집회 후 친교행사로 청년들과 영화를 보러갔습니다. 토요일 늦은 시간이 돼서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마침 주일에 제가 설교를 하게 됐습니다. 행사가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설교 준비는 미리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토요일 밤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영화의 몇 몇 장면들이 제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일 아침이 됐는데도 여전히 그 장면들이 제 마음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설교하기 위해 강단에 올랐는데도 여전히 제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새삼 예배 준비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예배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니까 예배에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준비하고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예배다운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오래 전 제가 교육전도사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연세가 70이 넘으신 은퇴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키도 작으시고 허리도 약간 구부정 하셨습니다. 늘 저를 만날 때마다 반갑게 손을 잡아주시며 얼마나 수고가 많으시냐고 격려해주시고, 늘 기도하고 있다고 힘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은 토요일 오후면 꼭 교회에 오십니다. 한 시간 기도하신 뒤 주보와 헌금 봉투를 미리 챙기십니다. 왜 그렇게 하시냐고 여쭈었습니다. 권사님 답변이 내일 주일 예배를 위해 준비 기도를 하신답니다. 그리고 주보를 미리 가져가셔서 성경 본문도 미리 찾아놓고 찬송도 미리 부르고, 설교하시는 목사님과 담당자들을 위해 기도하신답니다. 또한 내일 하나님께 드릴 헌금도 미리 준비해서 챙겨놓으신답니다. 그리고 빼놓지 않는 것이 있는데, 꼭 목욕을 하고 주일 입을 옷을 미리 준비해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평생을 이렇게 준비하고 예배를 드리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예배 준비를 생각할 때면 늘 이 권사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준비된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2. 예배를 보지 말고, 예배를 드리라   

본문 7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제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되 여호와의 명령대로 하라” 모세가 제사장인 아론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백성들이 준비해 온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백성들은 제물을 가져다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는 제사장이 드리고 백성들을 그저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레위기 1:3 이하를 보면 제사를 드리는 구체적인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놓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한 마디로 제사는 제사장과 제사를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물 머리에 안수하고, 제물을 직접 잡고, 그리고 잡은 제물의 각을 떠야 했습니다. 제사장은 제물의 피를 뿌리고 제단의 불을 피우고 각을 뜬 제물을 제단 위에서 불 살라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할 역할이 있고, 제사장이 할 역할이 따로 있어서 제사는 함께 더불어 드려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직접 참여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단지 제물을 가져다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이 다 알아서 제사를 드려주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저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 두 권의 책을 읽으며 우리 시대의 예배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하나는 A.W. 토저가 지은 [예배인가 쇼인가]라는 책입니다. 이 책 내의 소제목들 가운데 눈에 띠는 것이 있습니다. “종교적 쇼를 중단하라”, “예배는 연예오락이 아니다” 한 마디로 오늘의 예배가 점점 볼 거리, 들을 거리, 즐길 거리로 채워지고 있고 그래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문희곤이 지은 [예배는 콘서트가 아닙니다]라는 책입니다. 예수전도단 한국대표인 저자는 소위 “열린예배”의 문제를 신랄하게 파헤치며, 젊은이들의 예배 행태를 비판합니다. 스타화되어가는 설교자들과 실력 있는 세션으로 포진된 찬양 인도자들의 화려하고 차별된 설교와 연주를 찾아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배가 점점 콘서트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예배가 드리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시대의 가장 큰 예배의 위기는 단지 예배를 보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자가 아니라 예배 구경꾼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자가 되려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예배 안에서 우리가 마음을 찢으며 회개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뜨거운 간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선포되는 말씀을 듣고 결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성껏 준비해 온 헌금을 드리고 감사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라

본문 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나타나실 것임이니라” 그리고 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배를 드리면 그 예배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약속입니다. 이 첫 번째 제사 뿐 아니라 앞으로 오고 오는 모든 예배에서 참된 예배자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고, 또한 그 안에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는 약속인 것입니다.

사실 오늘의 참 많은 교회들이 공허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정말 멋이 있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인테리어, 예배학적으로 잘 짜여진 예배 프로그램들, 전문가들이 동원되고 철저히 연습된 예배 진행... 어디하나 나무랄 것이 없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배자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지 못하는 예배가 정말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예배 가운데 임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임재를 체험하게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오늘 이 예배에도 유효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을까요?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임재는 사람마다 다른 형태로 체험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뜨거운 감정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합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뜨거운 가슴으로 감격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체험했던 것처럼 세미한 음성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합니다. 그래서 차분하고 냉철하게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처럼 체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 큰 위로를 얻고 알 수 없는 평안을 얻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시고, 내가 드리는 이 예배를 받으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보다 분명하게 체험하시려면 이렇게 해 보십시오.

첫째,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임재해 계시다고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성령의 도우심을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영으로 임재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임재를 체험하려면 성령의 도우심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마음 문을 열고 하나님께 집중하십시오. 예민하게 마음의 눈을 하나님께 집중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예배 드리고자 하는 갈망이 있습니다. 그 갈망으로 지금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도 참된 예배를 받으시려는 갈망이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참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갈망을 만족시켜드리게 되고, 우리의 갈망도 온전히 만족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우선 준비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보려고 하지 말고 드리려 해야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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