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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라! (겔 36: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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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라!  (겔 36:16-31)
 
 
1. 성도의 사명

교회 안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그 의미가 혼동이 되는 것 중에 “사명, 소명, 비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인터넷 사이트http://www.mokaholic.com)가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그 개념을 정리하고 있어서 소개해 봅니다. 소명은 하나님께서 성도를 부르셨다는 것과 그에 따라 성도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즉, 소명이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그 부르심에 걸맞게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 다음으로 사명이란 성도가 삶을 살아가는 목적을 뜻하는 말입니다. 즉 ‘무엇을 위하여 사느냐?’ 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 무엇이냐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사명은 현실과 생활, 즉 Here and Now의 삶과 연결됩니다. ‘지금 여기서 나는 어떤 목적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비전은 꿈이고, 소망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기를’이나 ‘북한 방방곡곡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기를’하는 것처럼 사명보다는 범위가 넓다고 할까요, 그리고 시간적으로 멀다고 할까요? 이 세 가지가 다 중요하지만,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살아가는 삶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목적과 부합하냐’는 것, 즉 여러분에게 주어진 ‘사명에 부합하냐’ 하는 것입니다. 

미국 ‘알펜스’라고 하는 곳에 반신불수가 되어 오랫동안 그저 침대에만 누워 있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생활을 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반신불수로 신음하다가 죽어야만 하는가? 이 병든 몸으로도 할 일이 있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스스로 깨우친 것이 지금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하고 그리 그리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그리다가, 제법 세월이 흐른 후 유명한 화가가 된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주(州)에 있는 모든 들꽃, 즉 야생화들을 전부 다 모아 오라고 해서 야생화를 전부 그려 500여 종류를 그렸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다 놀랐습니다. 그림을 얼마나 잘 그렸던지 하버드 대학에서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주 당국은 ‘이런 보배를 다른데 보낼 수 없다’하여 그 주의 보배로서 예술품으로 잘 보관한다고 합니다. 

불치의 병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신의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는 것, 즉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세상을 위하여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도 자신이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대로 사는 사람을 우리는 使命者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도 성도의 사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의 아들인 에스겔은 주전 722년 경, 북 이스라엘은 이미 망하여 없어졌으나, 남 유다는 아직까지 남아있던 주전 597년경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가 포로로 있던 중, 그러니까 유다가 망하기 약 7년 전 쯤부터 선지자로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포로로 끌려온 자들과 아직 남아있는 자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이스라엘이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멸망할 것’, 그리고 ‘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 두로 시돈 애굽 등도 망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진작에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에게는 아주 절망적인 메시지였습니다. 아직 유다가 남아있기에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의 예언적 메시지는 ‘멸망’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회복’에 관한 말씀도 주셨고, 에스겔은 그 역시 증거했습니다. 그 회복의 말씀이 기록된 것이 에스겔서 34장 이후입니다. 34장에는 “목자”라는 개념을 통하여 ‘참 목자는 양을 버리지 않으며 생명의 길로 이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참 목자이시기에 이스라엘은 영원히 망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36장은 이스라엘을 망하게 한 열방에 대한 심판과 더불어 이스라엘 땅의 회복과 그 백성의 회복을 예언했습니다. 그 후에 우리가 잘 아는 에스겔 37장의 예언은 ‘골짜기의 마른 뼈들의 살아나는 환상’ 예언으로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눈으로 보고 그릴 수 있게 주신 메시지였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회복이 확실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궁금한 것은 왜 하나님은 그 죄로 인하여 완전히 멸망해 마땅한 이스라엘에게 회복을 약속하시는 것일까요?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와 관련하여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22절,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36:22).” 즉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징계를 받아 멸망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져도 변명할 것이 없는 이스라엘인데, 그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시는 이유가 하나님의 이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이름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사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이름과 관련하여 어떤 일이 있었기에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과 관련하여 이러한 말씀을 주시는 것일까요? 

2. 누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는가? 

오늘 본문에 “더러워졌다”, 혹은 “하나님의 이름이 더러워졌다”는 표현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한 번 보실까요? 17절,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고국 땅에 거주할 때에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18절,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더럽혔으므로.” 20절,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21절,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 22절,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 23절,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 25절, “너희 모든 더러운 것.” 29절,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에서 구원하고.” 여기서 ‘더럽히다’는 말은 ‘거룩에 반대된다’는 개념보다는 ‘거룩을 의도적으로 훼손한다’는 뜻입니다. 즉 누군가로부터 하나님의 이름 혹은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 훼손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관련하여 훼손된 것, 즉 더럽혀진 것은 무엇입니까?

1) 첫째로 더럽혀진 것은 이스라엘 땅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7절은 현재 바벨론 포로 중인 이스라엘이 고국 땅에 거주할 때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7).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고국 땅에 거주할 때에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이스라엘 땅은 일찍이 아브라함이 가나안 지경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가 밟는 곳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제단을 쌓았던 거룩하고 구별된 땅이었습니다.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 땅이 거룩한 곳이기에 신발을 벗어야 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땅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셨고 그 아들 솔로몬이 감히 하늘의 하늘이라도 거하게 할 수 없는 하나님의 거하시는 곳 성전이 세워진 곳이었습니다. 그 땅이 단순한 땅이 아니라는 말이고, 그 땅의 주인은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신 곳,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워진 나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백성들이 거주하는 곳이 다름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서 더럽혀진 것입니다. 17절 하반절과 18절을 볼 때, 그들의 죄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범죄이고, 정치적인 압제와 경제적인 착취 등과 살인 행위 등의 죄였습니다. 결국 그 땅을 더럽힌 것은 그 땅의 주인이자 그 땅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더럽힌 것이었습니다. 

2) 이스라엘의 범죄로 더럽혀진 것은 이스라엘 땅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신들도 더럽혀졌습니다. 특히 그들은 우상으로 인하여 스스로를 더럽혔습니다. 18절,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더럽혔으므로….”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불륜을 저지른 것과 같게 봅니다. 음란과 우상숭배는 같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긴 것을 여인이 불륜을 저지른 것으로 설명하는 예들이 정말 많습니다. 

즉 남편이든 아내든 불륜을 저지르는 것이 돌이킬 수 없는 배신행위이자 자신과 배우자를 더럽히는 행위인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배신행위일 뿐 아니라 그 행위는 곧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특히 18절에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라는 말은 자녀들을 우상의 제물로 드려서 피를 흘리게 한 악행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구별된 백성이 그 구별을 버리고 더러운데 스스로를 던져 오물을 묻히는 행동이 우상숭배인 것이죠.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자신의 명예에 똥칠을 한 것이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한 짓이었습니다.

3) 세 번째로 더럽혀지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당연한 결론이지요!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존재의 됨됨이를 표현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구약과 이스라엘의 전통은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 자신과 同一視했습니다. 성경의 이 같은 ‘이름 사상’은 우리 문화권에서는 이해가 잘 됩니다. 우리 문화에서 본인이나 손아래 사람들의 이름일 경우에는 ‘이름’이라고 부르나, 손위 사람이나 예절을 갖춰야 할 사이에서는 ‘성함’, ‘존함’, 혹은 ‘함자’ 등의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 신앙도 바로 이와 같습니다. 

물론 절대자이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이 인간 때문에, 혹은 인간의 죄악 때문에 더럽혀지거나 불명예를 받거나 영광을 빼앗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 속에는 그렇다고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입니다. 즉 누군가에 의해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당하거나 무시당하거나 웃음거리가 되면 진짜 그렇게 된다고 보는 것이죠. 바로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한 민족과 나라에 당신의 이름을 두셨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에 역행하고 그 이름을 부끄럽게 만들면, 세상 사람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비난하고 제 마음대로 그 입에 담아 욕되게 만드는 일이 현실적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본문 20절 말씀이 바로 그 뜻입니다.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간 주변 이방 국가들에서 그 나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욕일까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선민이라던 이스라엘이 포로 신세가 되어 끌려가 있는 모습이 이방인들이 볼 때는 하나님이라는 분이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구원할 능력도 없는 무능한 신으로 비쳐져 멸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대의 신(神) 개념에 따르면, 어느 민족이 자기 땅을 떠난다는 것은 곧 그 땅의 신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란 점에서 약속의 땅에서 추방되어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는 이방인들의 시각으로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망하고 본토에서 추방된 것은 그들의 신 여호와의 무능함 때문이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자는 이방인들이지만 그 이름을 욕되게 한 궁극적 주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망령되이 일컫지 말아야 할 이름이요(출20:7),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할 이름입니다(마6:9). 그런데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이 이스라엘이 흩어져 거하는 열국에서 이방인들에게 더럽힘을 받고 있습니다. 자기 백성도 지켜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신이라고 무시하고 멸시합니다. 설사 이스라엘은 그렇게 살았을지라도 여러분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이름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행동 하나, 여러분의 말 하나가 하나님의 명예와 연관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여러분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일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3. 누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가?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름, 그리고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이 더럽혀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하반부는 놀라운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의해서 그렇게 더럽혀진 것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거룩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23절,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 그러면서 하나님은 먼저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고 하십니다(21). 즉 이스라엘이 함부로 여기고, 그에 따라 이방인들까지 함부로 막 불렀던 그 이름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겨 회복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름의 가치를 하나님께서 스스로 회복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 그리고 그 이름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도 거룩하게 하실 것이라고 오늘 본문 24절 이하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29절,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에서 구원하고.” 여기서 “모든 더러운 것”은 17, 18, 20, 21절 등에 나타난 대로 이스라엘의 모든 종교적, 도덕적 범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구원하고”는 문자적으로 '완전하다', '돕다', '보전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 구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깨끗하게 씻어 그 죄를 사하시며, 나아가 다시는 그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보호하시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3)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새 영, 새 마음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셔서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더 완전하고 거룩한 성도로 만드시는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가치 있고 훌륭하고 아름다운 성도로 만들어 주십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임하셔서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이나 외모가 고상하고 신령해지도록 만들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거룩한 땅을 더럽히고 자신을 더럽히며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짓을 저지르지 않도록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4)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새로운 언약, 새로운 관계를 맺을 것입니다(28~31). 28절이 새로운 언약과 새로운 관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그 어떤 경우에도 변치 않을 언약, 흔들리지 않을 새로운 관계를 맺어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요? 이스라엘에 무슨 변화가 있었습니까? 그동안 죄 지은 것을 회개했습니까? 하나님께 죄송함을 표현했습니까? 다시는 옛날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까? 그런 것 일절 없는 그들인데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놀라운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없습니다. 오직 사랑하시기 때문이죠! 이것은 다시는 변치 않는 확고한 것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나 이스라엘이 잘 나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한 것이라고는 온통 죄밖에 없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그 이름을 모독한 것뿐인데, 하나님께서 친히 나서서 우리가 어지럽히고 우리가 망가트리고 우리가 더럽힌 것들을 정돈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만드는 분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4.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 받은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보답하는 삶은 어떻게 사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1) 먼저 여러분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에 의해서, 우리들에 의해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친히 거룩하게 하시옵소서!’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이 이것 아닙니까? 이미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은 인간이 그 이름을 높인다고 해서 높아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낮춘다고 해서 낮아지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원래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거룩”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본래부터 거룩하고, 하나님의 이름은 본래부터 높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거룩’이 인간의 잘못으로 가려졌습니다. 그것을 원 위치로 회복하는 것 역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인간들에 의해서 더럽혀지고 짓밟힌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 자신이 회복하옵소서! 거룩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라는 사명을 받은 성도의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삶은 어떻게 사는 것입니까? 하늘과 땅이 서로 닿을 수 없는 것처럼 결코 죄인의 입에 함부로 오르내릴 수 없는 그 이름이 사람의 입에 함부로 오르내리도록 만든 것이 우리 자신임을 인정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피조물의 “차이, 구별”, 혹은 피조물과는 다른 “초월성”을 뜻하는 “거룩”이라는 말처럼, 하나님이 우리 인간이나 다른 피조물들과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는 것, 때 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흠이 없는 정결함, 완전이 없는 이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의 온전하심, 그리고 그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이 함부로 굴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위엄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일단 여러분 자신이, 교회가,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부터 하십시오!

성도 여러분, 우리들에 의해서,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더렵혀질 수도 있고 반대로 거룩히 여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착하고 훌륭한 아이들을 보면 ‘누구의 집 자녀인가? 부모가 애 잘 키웠구나!’ 하고 부모에게 영광이 돌아갑니다. 행실이 나쁘고 고약한 아이들을 바라보면 “저놈이 누구 집 새끼냐?” 그렇게 말하면서 그 자녀에게 뿐만이 아니라 부모에게까지 욕이 돌아갑니다. 자녀의 행실이 부모의 영광이 되기도 하고, 욕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의 행실과 우리의 삶 때문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수도 있고 하나님의 이름이 짓밟힐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라”는 말에는 ‘우리가 우리의 착한 행실, 깨끗한 삶을 통해서 우리의 소금과 빛의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겠습니다’ 하는 서약이 들어있습니다. 

지금까지 ‘나’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높임 받았습니까? 혹시 짓밟히지는 않았습니까?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 나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았습니까? 우리의 가정 때문에 우리의 이웃들에게 하나님 이름이 높임 받았습니까? 내 자녀에 의해서 하나님 이름이 높임 받고 있습니까? 내 사업으로 인하여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를 통해서, 우리 성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진실하게 살겠습니다. 참되게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해 드리겠습니다.’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도록 해야 되겠다’, ‘나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해야 되겠다’ 그렇게 결단하고,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한 번 소개해 드린 적이 있는 오늘 주제와 관련된 어느 분의 기도문입니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나의 말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나의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나의 계획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나의 인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나의 걸음걸이 속에서라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내가 입는 옷, 머리 스타일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으시옵소서.” 
“내가 먹는 음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내가 마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내가 무슨 일을 할지라도, 

내가 차를 탈 찌라도, 
잠을 자도, 
먹을 때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그런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자녀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내 자녀의 행실을 통해서, 
내 자녀의 앞날을 통해서, 
내 자녀의 신앙을 통해서, 
내 자녀의 봉사를 통해서, 
직장이나 사업이나 이웃이나 나라나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우리 가정의 가족끼리 사랑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가정의 경제생활을 통해서, 우리 가정의 건강을 통해서, 
우리 부부 사이의 사랑을 통해서,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아 주시옵소서.” 

3)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은 이 세상과 불신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의중(意中)이 숨어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이 세상이나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기를 바라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세상과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세계 열방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양하게 되기를 소원하고 거기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의 소명으로, 비전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5.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만드는 성도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의 신앙과 삶은 하나님의 이름과 결탁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인하여 구원받았고, 그 이름을 힘입어 살며, 그 이름이 높아지기를 갈망하며, 그 이름을 위하여 죽도록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목표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살 뿐 아니라,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경배하게 되는 것을 사명으로 아는 것이죠. 성도 여러분, 바로 이것이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들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이 땅에 살아가는 인생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생명을 다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는 그런 목표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일이 여러분의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그 사람을 존경하고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뛸 것입니다. 그 사람이 너무 좋고 존경스러워서 그 사람이 내 눈에 안보여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누군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욕을 하면 못 참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그를 사랑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만드십시오.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이름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일에 여러분의 전부를 바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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