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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 루터에게 길을 묻다 (합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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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에게 길을 묻다 (합 2:1-4)


길을 묻는 그대에게 

요즈음의 화두는 ‘길’ 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아서 인 것 같습니다. 나라도, 교회도 개인도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는 듯합니다. 

중년의 한 교우가 저를 찾아와서 말합니다. “목사님, 신간 내신 것 축하합니다. 책 제목이 ‘비로소 나의 길을 가다’ 로 제 마음에 닿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길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길 찾은 목사님께 길을 물으러 왔습니다.” 저는 이 분과 긴 대화를 했습니다. 저는 주로 들었습니다. 사실, 이 분은 길을 잃은 것은 아니고, 자신이 지금껏 걸어 온 길이 바른 길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지금껏 믿고 왔는데, 요즈음 소외와 배신감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계속 그 길을 가야하는지 아닌지를 듣고 담임목사에게 격려 받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요지의 말로 위로 격려하였습니다. “주어진 환경에는 자족하십시오. 그러나 나 자신에 대해서는 거룩한 불만족을 가지십시오. 사람과 현실을 너무 좋게만 믿지 말고, 냉철하게 분석하십시오.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고 기도로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러나 태도는 믿음으로 끝까지 사랑으로 행하십시오.” 그러자 이분이 묻습니다.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된 사람들을 보셨습니까?” 제가 확신을 주었습니다. “믿음으로 끝까지 사랑의 그 길을 간 사람은 다 잘 되었습니다. 그 길로 죽 가십시오.” 그분은 알았다고 대답하고 조금은 밝은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묻습니다. 당신은 불안, 허무감 없이 평생 걸어갈 ‘나의 길’을 찾았습니까? 


루터에게 길을 묻다 

길을 묻는 당신에게 종교개혁주일을 맞아 루터에게 길을 물어봅니다. 루터가 간 길은 성경에 근거한 예수의 길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14:6).” 루터에게 길을 묻는 이유는 교회역사상 루터가 예수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장 잘 따른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루터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루터 안에 있는 예수를 따르는 것이요, 예수님에게 길을 묻는 것입니다.

루터에게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세 번 있었습니다. 천둥번개사건, 95개 논제사건, 제국회의사건입니다. 우리는 이 세 사건에서 중요한 인생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Stotternheim의 ‘천둥벼락사건(1505. 7.2)’에서 

루터는 그의 아버지의 희망대로 법률을 공부하기 위하여 에르푸르트대학교에 법학부에 입학을 합니다(17세). 그러나 루터의 관심은 법학이 아니라 신학에 있었습니다. 그는 방학 중에 친구와 함께 고향에 다녀오다가 스토터른하임이라는 마을 근처에서 심한 천둥번개를 동반한 벼락을 맞습니다. 그 벼락으로 친구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습니다. 너무 놀란 그는 죽을힘을 다해 소리쳐 기도합니다. “성자, 앤이여 나를 도와주소서.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이틀 후 루터는 그는 고민 끝에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어거스틴 교단에 속한 에르푸르트 수도원에 수도사로 들어가 신학을 하고, 1507년에 사제가 되었습니다.

루터에게 배우는 첫 번째 길, “성공보다‘소명’을 따라 살라” 흔히들 성공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불안하거나 불만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성공하려면 불가피하게 경쟁하게 되고, 경쟁은 인간관계를 친구가 아니라 다 적으로 만듭니다. 자연 열등감 우월감에 빠지고 되고, 결국은 모두를 실패자로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당신은 소명을 따라 살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최후의 복음은 내 천직을 알고 그것을 하는 것이다. 내 천직을 알고 천직에 헌신하는 것이 이 세상최후의 복음이다.” - 칼 히티 

둘째, Wittenberg의 ‘95개 논제사건(1517. 10. 31)’에서 

루터는 뷔텐부르크대학에서 박시학위를 받고 교수(Professer 1512. 24세)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에게 교회고위직으로의 출세는 보장되어있습니다. 당시 신학적인 이슈는 교황의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는 면죄부에 관한 것입니다. 루터는 심사숙고 기도한 끝에 면죄부의 부당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95개 조항을 대학교회 문에 붙였습니다. “21조. 사람이 모든 형벌에서 면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거나 교황의 면죄부를 통해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62조. 교회의 참된 보물은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로부터 가장 거룩한 복음이다.” 이 95개 논조사건은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톨릭교회를 근본부터 흔드는 지각변동의 진원이 되었고, 종교개혁이라는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루터에게 배우는 두 번째 길, “자아실현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 내가 무엇을 이루고 성취하는 것, 그것은 나의 자긍심이고, 보람이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에게 있어 자아실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뜻은 무엇일까요? 거룩(진실)하게 사는 것, 아가페 사랑으로 사는 것, 복음전도자로 사는 것, 기쁨(감사)으로 사는 것,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비텐부르크 루터박물관 정문상단에 있는 글귀가 큰 깨달음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부여 하신 ‘큰일(eine Grosse Tat)'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이 큰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합니다. 물론 루터에게 부여한 큰 일은 당시 교회의 개혁이지만, 오늘 나에게 큰일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옵니다. 거룩(진실)하게 사는 것, 아가페사랑으로 사는 것, 복음전도자 사는 것, 기쁨(감사)로 사는 것,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주여, 믿는 자에게 부여하신 큰 일, 주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믿음을 더하소서!”

셋째, Worms의 ‘제국회의(1521.4. 18)’사건에서 

루터는 95개 논조사건으로 당시 보름스에서 열린 제국회의에 소환을 당합니다. 카를 5세 황제를 비롯한 선제후 주교들 앞에서 그의 논제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취소할 것을 강요당합니다. 루터는 하루의 시간을 요청합니다. 아마도 그날은 그의 일생 중 가장 긴 번민과 고통의 밤이었을 것입니다. 1521년 4월18일 루터 개인 뿐 아니라 교회개혁에 있어 역사적 기로의 날입니다. 이날 루터는 황제 앞에서 종교개혁의 승리를 쟁취하는 위대한 말을 남깁니다. 

“여기에 나는 서 있습니다. 나는 달리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루터에게 배우는 세 번째 길, 비전보다 ‘오늘의 구원’을 구하라. 아무리 뜻이 좋고, 인생목적을 분명하다 할지라도 오늘 구원을 이루지 않으면 꿈으로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인생목적을 세우고, 뜻을 정하십시오. 동시에 매일 오늘의 구원을 이루어 가십시오. 오늘 악에 빠지지 않고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입니다. 오늘 거짓을 행치 아니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오늘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열정이 식지 않고, 전도자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낙심하지 않고 소망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오늘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오늘 무슨 억울한 일을 당하든지 사랑으로 견디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때로는 길을 잃는 것이 길을 찾는 것이다. 

몇 년 전에 루터순례의 길을 떠났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하여 루터와 연관이 있는 도시들을 둘러 루터도시 비텐베르크에서 일박할 예정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그만 길을 잘못 들어 이름 모를 작은 마을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거기 아~하고 탄성이 나올만한 아름다운 마을이 나타난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 마을 입구에 기막힌 예수십자가상이 서있는 것입니다(사진참조). 아, 이토록 가슴 저리도록 십자가가 아름다울 수 있다니… 십자가 밑에 새겨진 성경을 읽는 순간 온몸이 전율합니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벧전2:21).” 루터신학을 십자가신학이라고 합니다. 내가 지금 루터순례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루터 안에 있는 본질, 곧 예수십자가 발자취를 따르는 것임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런 깨달음이 왔습니다. “때로는 길을 잘못 든 것이 오히려 길을 찾은 것이다.”

혹시 당신도 길을 잃어나요? 길을 잃고 불안하고 방황하고 있나요? 오히려 길을 잘못 든 것이 길을 찾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루터에게서 길을 묻고 배웁니다. 성공보다 소명을 따라 사십시오. 자아실현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비전보다 오늘의 구원을 구하십시오. 이 길은 예수십자가의 길입니다. 

이 예수십자가의 길은 내 결단 힘으로만 갈 수 없습니다. 예수를 나의 주 하나님으로 믿으십시오. 내 안에 내 주 예수께서 계심을 믿으십시오. 날마다 기도로 주님과 임재, 친밀을 느끼십시오. 이제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주님이 사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사모하며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십자가사랑이 나를 감싸고 있음을 느끼십시오. 성령께서 십자가사랑으로 소명을 따라 살게 하시고, 하나님 뜻을 따르도록 인도하시며 오늘의 구원을 이루게 하십니다. 이제 그 십자가사랑의 길, 그 좁은 길을 죽 따라 가십시오. 그 좁은 길이 곧 부활 승리 영광의 길입니다. (김석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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