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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 깨어 자기 옷을 지키는 자 (요 16: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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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자기 옷을 지키는 자 (요 16:12-16)  


한 일 년 전쯤 어느 주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목양실 앞 복도로 주일학교 4, 5학년 쯤 되어 보이는 어떤 남자 아이가 지나가는데 한쪽 뺨에 꽤 널찍한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너 어쩌다가 이렇게 됐니?"하고 물어 보았더니, 함께 있던 그 아이의 어머니가 대신 자초지종을 말씀해 주셨는데 정말 기가 찰 사건이 벌어졌던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어떤 음악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같은 학원에 다니던 또래의 다른 아이가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무슨 무슨 교회에 다닌다."라고 자랑하듯이 말을 했는데 그 교회는 공교롭게도 바로 우리 교회 근처에 있는 어떤 이단 교회였습니다.
그러자 그 우리 교회 주일학생이 별다른 생각 없이 그 말을 받으면서 "나는 경향교회에 다닌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그 이단교회에 다닌다는 아이가 갑자기 앞발차기로 우리 주일학생의 뺨을 차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발차기를 한 아이가 평소에 무슨 무술도장에 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 불의의 한 방에 우리 교회 주일학생은 쓰러졌고, 또 그 뺨에 생긴 찰과상이 꽤 심했던 까닭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은 후에 그처럼 피부재생을 돕는 반창고까지 붙이고 다니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그래, 초등학생에 불과한 어린이까지도 순전히 경향교회에 다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단 교회로부터 핍박을 당하는구나.'라고, 애처롭고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주일학생은 친구들끼리 놀다가 사고로 다친 것도 아니고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서 싸우다가 맞은 것도 아니라, 그 '발차기를 한 아이'와는 '다른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해서 그처럼 상처까지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 이단 교회에서는 평소에 자기네 교회의 어린이들에게조차 특히 우리 경향교회에 대하여 그 무언가 적개심이 생기도록 가르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직 초등학교 학생에 불과한 어린이가 어떻게 그저 '나는 경향교회에 다닌다.'라는 말만 듣고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같은 학원을 다니면서 안면이 있던 친구의 얼굴을 순간적으로 가격할 수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그저 '애들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 넘겨 버릴 수 있는 흔한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의 지상교회가 엄연히 직면하고 있는 영적 현실의 한 단면을 잘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곧 이 세상에 있는 교회들은 분명히 '참된 교회'와 '이단 교회'로 나누어지며, 그 둘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영적 전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주후 1517년에 일어났던 '종교개혁'은 바로 그처럼 '참된 교회'가 '이단 교회'로부터 나누어진 최대의 사건인 동시에 그런 '영적 전쟁'이 역사상에 본격적으로 표면화된 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즉 마틴 루터나 존 칼빈은 로마천주교를 분명히 '이단'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그들과 분리되는 '성별운동'으로서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것이며, 그 이후에도 종교개혁자들은 그 로마천주교를 대적하는 '영적 전투'를 목숨을 내걸고 평생을 다 바쳐서 싸웠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5백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그처럼 치열했던 전투 의식은 점점 사라져 버리고 그 대신에 아주 '요상한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으며, 그처럼 서로 '이단'이라고 첨예하게 대립했던 기독교(개신교)와 천주교가 이제는 '같은 기독교이지만 나누어진 형제'라고 피차 인정해 주는 '기묘하게 훈훈한 관계'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처럼 '종교개혁의 정신'이라는 것은 이미 간 곳 없이 사라져 버린 가운데 그저 '종교개혁 기념일'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기막힐 현실인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은 이 인류 역사가 종말을 향해 가까이 가면 갈수록 참된 교회와 이단 사이의 영적 전투는 더욱 첨예하고도 치열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명백히 선포합니다.
오늘 종교개혁 기념주일을 맞이하게 된 저와 여러분은 지금으로부터 493년 전부터 시작되었던 '기독교와 천주교 사이의 영전(靈戰)'이 앞으로도 어떻게 계속될 수밖에 없는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말세가 될수록 로마천주교는 '이단과 불신의 세력을 더 많이 모을 것'이지만, 참된 기독교는 끝까지 '예수님 재림 준비에 깨어 있고 순결한 신행일치의 옷을 입고서' 이 영적 전투에서 승리해야만 합니다.

본문 12절부터 16절 말씀에 "12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13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4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15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16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요한계시록 16장에서는 앞서 15장에서 준비되고 있던 '일곱 대접'을 통한 '일곱 재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재앙, 즉 '여섯 번째 대접'을 쏟아 부었을 때 일어나게 되는 재앙은 예수님 재림 직전에 있을 소위 '아마겟돈 전쟁'이라 불리는 큰 환난을 불러오게 됩니다.
이 아마겟돈 전쟁은 세상의 불신 세력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벌이게 될 전 세계적이고도 또한 역사상 최종적인 대전쟁이 될 것이라고 본문에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천사가 그 여섯 번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을 때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다"고 했습니다.
유브라데강은 창세기 15장 18절에서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동쪽 국경에 해당되었는데, 이 천연의 국경선이 말라 버림으로써 외적이 마음대로 침범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적그리스도의 대세력이 기독교의 영역을 전면적으로 침범할 모든 사회적 환경, 국제적 분위기 등이 조성될 것을 가리킵니다.

13절에 보면 그때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나온다고 했는데, 이것은 아주 시끄럽고도 추악한 악령을 상징합니다.
이것들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다는 말은,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사상과 말들의 근본적인 출처가 바로 '사단'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인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4절에 보면 이런 악령들이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런 사단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조종하는 사상과 말들이 결국 이 세상의 불신 권력자들을 충동하여 교회와 신자를 대적할 큰 세력을 형성하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날을 두고 "전능하신 이의 큰 날"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적그리스도 세력이 하나님을 대적하려는 날이 결국에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날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16절에 보면 "아마겟돈" 즉 므깃도 부근에 있는 이스라엘의 전략 요충지에 이 악령들이 "왕들을 모으더라"고, 즉 모든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집결시킬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실로 사단이 조종하는 '불신 권력과 이단 세력의 연합군'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 성도들'을 대적하는 "전쟁을 위하여" 그네들의 모든 세력을 규합시킬 것이 바로 말세의 뚜렷한 현상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이처럼 '귀신의 영'으로써 모든 '불신앙적인 세력'을 '하나로 통일'시키려 하는 것이 바로 로마천주교가 줄기차게 진행시키고 있는 대표적인 작전 중에 하나입니다.
우선 로마천주교는 엄격한 '국교분리'(국가와 교회의 분리) 원칙을 주장하는 기독교와는 달리 그 어느 종교보다도 '정치적'인 종교이며 또한 실제로 정치에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해도 과거 좌파 정권 시절에 얼마나 많은 천주교 사제들이 무슨 '역사 바로 세우기 위원회' 따위를 비롯해서 온갖 정치 활동에 직접 나섰습니까?
중세 때에 '카놋사의 굴욕'과 같은 유명한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로마천주교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세속 권력을 스스로 손아귀에 쥐든지 아니면 세속 권력과 손을 잡고 동조해 온 종교인 것입니다.

또한 로마천주교는 소위 '종교일치운동'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주동자이기도 합니다.
우선 천주교는 무슨 미개척지에 '선교'라는 것을 할 때에도 그 원주민들이 '고유 종교'를 그대로 인정해 줍니다.
즉 그들이 믿던 '토속신'이나 로마천주교의 '천주'나 '같은 신'이라고 얼버무려 줌으로써 그 원주민들로 하여금 아무 갈등이나 거부감 없이 천주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개종'이며 '선교'이겠습니까?
문자 그대로 '모든 종교는 어차피 다 같다.'라는 사상을 확장시키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월 초파일이나 성탄절에 성당과 절에서 서로 '축하 현수막'을 걸어 주는 것 역시 똑같은 맥락입니다.

이런 로마천주교의 '종교일치운동'은 물론 기독교를 향하여서도 어김없이 추파를 보냅니다.
우리 기독교인을 향하여 소위 '나누어진 형제들'이라고 그야말로 '만면에 웃음을 활짝 지으면서' 접근해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뒤에서는 교황이 '참된 교회는 오직 로마천주교뿐이다.'라고 일침을 박아 놓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기독교와 천주교가 하나가 되어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누어져 나갔던 너희 기독교'가 '참된 교회인 우리 천주교로 돌아와서' 다시 합쳐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표현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만, 너무나 '얼빠지고 배알도 없는' 목사들이 이런 천주교의 미소작전에 도매금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은 실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로마천주교는 소위 '하나 되자'는, 그냥 듣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귀신의 영'의 말로 미혹하여 불신 세속 권력과 모든 우상 종교와 이단 기독교를 부지런히 '모아서' 참된 기독교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이 시대의 '거짓 선지자'의 괴수인 것을 똑바로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중간에 보면 이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친히 선포하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불신 권력과 우상 종교의 연합군에 대하여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일러 주고 계십니다.
 
바로 15절에서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그런 대대적인 결전을 앞두고 교회의 참된 성도들이 각각 자기 자신에게 되새겨야 할 임전 태세를 다져 주는 말씀입니다.
대환난, 대재앙, 대전쟁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불안과 혼란과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들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야말로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말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바로 "누구든지 깨어서 자기 옷을 지키고 살아라."는 말씀으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먼저 '깨어'라는 말씀은 바로 앞에 나오는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라는 말씀과 직결됩니다.
아무리 불신 세력과 적그리스도의 공세가 거세어지고 세상은 혼란의 와중에 휩쓸리게 되어도 그럴 때일수록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끝까지 확신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전 세계의 종교가 하나로 뭉쳐진다 하더라도, 아무리 전 세계의 국가들이 단 하나의 '세계 정부'를 중심으로 모이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절대로 이 세계와 인류에게 평화와 행복의 이상향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의 입'에서 똑같이 나오는 '더러운 영의 미혹'일 따름입니다.
즉 이 세상이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란 결코 '유토피아'로 가는 길이 아니라 오직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아마겟돈 전쟁'으로 가는 길일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소위 '세련된 목사'들은 교인들로 하여금 필연적이면서도 임박한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예비하도록 가르치지 않고 그 대신에 '교단을 통합하고 종교만 일치시켜' 놓으면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처럼 '꾀는 용의 말'을 고스란히 강단에서 설교해 주고 있으니, 그야말로 '거짓 선지자'의 대변자 노릇을 하는 '졸고 있는 목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어지는 15절 하반절의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라는 말씀은 바른 진리에 근거한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그 생활에 있어서도 순결함을 지키고 옳은 행실을 보이면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신행일치'의 옷, 이것만이 '도적같이 임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제대로 예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동시에 마지막 대환난 중에 적그리스도의 대공세를 당하더라도 끝내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승리 비결인 것입니다.
  
반면에 이 옷을 지키지 못하여 '벌거벗고 다니는' 자는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기독신자라 하면서도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옷 벗고 다니는 사람처럼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교인이요 장로요 목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 신행일치의 옷을 가리켜 '자기 옷'이라고 했습니다.
즉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반드시 끝까지 '지켜' 내야 할 필수 기본장비인 것입니다.

하지만 로마천주교는 이 '옷'부터 아예 기독교와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까?
제발 천주교가 얼굴에 쓰고 있는 '양의 탈'만 보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오는 '용의 말'을 잘 들어 보세요.
기독교는 하나님만을 절대주권자로 믿지만, 천주교는 하나님께만 해당되는 속성인 '무오성'을 교황에게도 감히 갖다 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당신의 이름으로만 기도하면 다 시행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천주교는 얼토당토않게 마리아를 '중보자'의 자리에 앉혀 놓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고 선포하고 있는데도, 천주교는 성자의 유물에 입 맞추고 성녀의 해골 앞에 절하는 것도 구원의 공로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도 '그런 사소한 교리의 차이는 불문에 붙이고 일단 무조건 합치자.'고요?
기독교의 교리란 곧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요 '기독신자가 고백하는 신앙'인데 이 '옷'을 벗고서라도 천주교와 화목해야 한다고요? 

찬송가 387장의 가사처럼 '큰 싸움은 (이미) 시작되어 용사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엡 6:11-17) 완전무장한 용사들이 전선으로 나와야 할 전시 상태에 이미 돌입한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얼마나 많은 목사들이 그런 "전신갑주"를 입고 앞장서서 그리스도의 군사들을 이끌어가기는커녕 '자기 옷'조차 벗어버리고서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영적 나체족'의 모습으로 교계를 휘젓고 돌아다니고 있습니까?
  
'아마겟돈'의 마지막 대환난을 우리 시대에 당하게 될지 아닐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벌써부터 시작되고 있는 이 로마천주교와의 영적 전투의 현장에서 오직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깨어 있고' 바른 신앙과 거룩한 생활의 '자기 옷을 지킴'으로써 끝까지 승리하는 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제가 두어 달 전에 좀 충격적인 연락을 하나 받았습니다.
매주일 제 설교를 방송해 주고 있는 모 기독교 방송국에서 '앞으로 천주교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으면 PD가 임의로 편집해서 방송하겠다.'는 통고를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천주교인들의 항의 전화 때문에 직원들이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사실은 그보다 더 기가 막히는 일을 몇 년 전에 다른 방송국으로부터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종교개혁기념주일을 전후하여 두 차례에 걸쳐서 '왜 천주교가 이단인지'에 대해서 설교를 했었는데, 그 두 편의 설교가 '방송불가'의 판정을 받게 되어 두 주간 동안 제 설교 방영시간에 아예 다른 프로가 나가게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 분명히 언론의 자유가 있고 이것은 대한민국 안에 있는 공산주의자들까지도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다른 종교를 비방하는 내용'은 방송할 수 없다는 법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방송국의 직원들에게 원망은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진리 선포'의 사명을 받은 사람이 아니고 그저 방송국 운영만 잘 되도록 해야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마찬가지로 저는 당시 좌파정권을 등에 업은 천주교 세력이 무슨 '방송 위원회'라는 것을 통해서 그 기독교 방송국에 압력을 넣었던 것에 대해서도 별로 항의할 마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저 같은 목사는 '나누어진 형제'로 쳐 주지 않는 천주교인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정말 이해가 되지 않고 원망스럽기까지 한 대상은 바로 겉으로는 저와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장로교의 목사님들, 그 중에서도 그래도 보수 교단에 속해 계시는 목사님들, 그 중에서도 특히 목회에 크게 성공하신 '대형교회'의 목사로서 텔레비전 방송을 통하여 일천 만이 넘는다는 우리나라 기독교 평신도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계시는 선배 목사님들 중에서 이 천주교에 대하여 색깔이 분명하지 못하거나 아예 대놓고 '사이좋게' 지내시는 목사님들입니다.
정말 그 분들의 발등에도 미치지 못할 새까만 후배 목사가 외람되게 여쭙는 질문이지만, 우리 선배 목사님들과 동역자 목사님들께서는 도대체 천주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천주교가 이단인 것은 알지만 괜히 입 밖에 내어서 흙탕물 묻힐 필요가 뭐가 있나?'라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죄송합니다만, 여러분은 "어떤 핍박이나 반대를 당할지라도 인내하고 충심으로 복음의 진리를 보호하며 교회의 성결을 지키겠다."라고 목사 안수를 받을 때에 하나님 앞에서 서약했던 것을 어기고 계십니다. 어쩌면 그저 '내 양들이나 예수 잘 믿고 천당 구원 받게 만들면 되지.'라고 여러분의 그 '평온한 목장' 안에서 행복에 겨워 '졸고' 계시느라고 '전투하는 지상교회'의 사명은 까맣게 잊어먹고 계시는 것은 아닙니까? 

반면에 '나는 천주교가 이단이 아니고 우리와 같은 기독교라고 생각한다.'라는 목사님들도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개인 양심으로 그렇게 믿으신다면 그거야 제가 관여할 일이 조금도 못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 역시 장로교의 목사로 안수를 받으셨다면 "장로회의 신조는 신․구약 성경에 교훈한 도리를 총괄한 것으로 알고 성실한 마음으로 받아 신종할 것"과 "장로회의 정치와 권징조례와 예배 모범을 정당한 것으로 승낙하는 것"을 분명히 서약하셨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지만, 설마 여러분께서 장로교회라는 것이 그저 '장로만 세우면' 절로 되는 줄로 알고 계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장로교의 목사로 안수를 받고 장로교 교회에서 사역한다는 것은 곧 '신구약 성경에 교훈한 도리'를 구석구석 뒤지고 찾아서 그 '장로회의 신조와 정치와 권징조례와 예배모범'을 만들어 놓은 우리 종교개혁자들의 신앙 전통을 '성실한 마음으로 받아 신종하면서'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가르치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서약하고 시작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장로교를 칼빈주의가 망쳤다.'라고요?
여러분이 '장로를 세워서 장로교회를 잘 만들어' 놓았는데 '나중에 칼빈주의가 들어와서' 그 장로교회를 망쳤다는 말입니까?

제발 교회사 한 페이지부터 똑바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칼빈이 '성경을 떠난 로마천주교'와는 달리 '오직 성경 중심의 교회'를 세우고자 '신구약 성경에 교훈한 도리'를 한 절 한 절 빠짐없이 연구하여 이 장로교회의 모든 기초를 세웠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성당의 신부'가 아닌 '교회의 목사'라는 직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가 '브롬스 의회당 지붕 위에 촘촘히 깔려 있는 기왓장처럼 많은 원수'인 천주교를 상대로 혈혈단신 '옳은 일을 위해 싸웠기' 때문에 지금 저와 여러분은 '로마천주교'가 아니라 '기독교'라는 이름을 되찾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그 종교개혁의 선배들 때문에 지금 '목사의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천주교는 우리 기독교의 어머니 교회'라고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그런 '교회 분열꾼'의 후예인 목사라는 부끄러운 직분을 당장 사면을 내고, 지금 저토록 자애롭게 '나누어진 형제'가 '유일한 참된 교회인 천주교'로 돌아오는 것을 기다려 주고 있는 '어머니 교회'의 품으로 당장 가서 신부 서품을 받으셔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주일학교 어린이도 이단 교회에 다니는 아이에게 뺨을 맞는데, 목사들은 그저 기독교 신자나 천주교 신자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 앞에 '성품 좋은 성직자, 마음 넓은 평화의 사도'로 보이기에만 연연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사단은 지금 '왕들을 모으면서 어린 양을 대적할 전쟁 준비'를 하고 있는 마당에,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서약을 하고 안수를 받았다는 목사들이 강단에서 천주교를 '거짓 선지자'라고 한 마디 설교도 못한다는 것은 정말 비겁한 이적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옛날 우리 선배 종교개혁자들이 그 압도적인 천주교 세력을 상대로 느낄 수밖에 없었던 '영적 고독감'이 이제 오늘날 그들의 종교개혁을 진심으로 기념하며 지키는 목사나 신자들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래도 그 종교개혁 시절에는 기독교면 기독교, 로마천주교면 로마천주교라고 편만큼은 피차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기독교 목사라는 사람들 안에서부터 천주교 편에 서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를 지경이니, 그 '영적 고독감'은 오히려 더욱 괴로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까닭에, 오늘날의 진정한 개혁주의 기독신자라면 우리의 선배들이 그 무서운 '고독' 중에도 끝까지 보여 주었던 '용기' 역시 배우고 발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또 마틴 루터는 그야말로 '1대 나머지 모두'의 싸움을 했어야 했던 반면에 저와 여러분에게는 '남아 있는 7천 명'의 우군이 분명히 있을 것이니 훨씬 더 든든하지 않겠습니까?
  
521장 찬송은 '비겁한 자 물러서나 용감한 자 굳세게' 서서 오히려 '낙심한 자 돌아오는 그날까지' 싸울 것이라고, 이 '소수의 진리 편'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고 있습니다.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며 아니 갈수록 더욱 치열해질 것이 분명한 이 '영적 전투'의 현장에서 '깨어 자기 옷을 지키는' 개혁주의 신앙인으로서 끝까지 싸우고 끝내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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