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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의 (롬 3: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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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의 (롬 3:19-28)


사도 바울은 롬1:17에서 이미 쓰기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한 바 있습니다. 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사람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의 뜻에 순종으로 응답할 때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셔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관한 지식을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백성에게는 말씀으로 자신을 더 분명하게 알게 하셨습니다. 유대인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는 특권을 받았습니다(롬3: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특별히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언약의 백성의 표지로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 율법은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다 알려줍니다. 그들에게서 의는 하나님과의 언약에 성실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잘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롬2:13). 그런데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이 하나님께 온전한 믿음의 응답을 하지 못했습니다(롬2:17-24, 3:3). 

이스라엘 밖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하신 만물에서 분명히 보아야 할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서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피조물들의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고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겼습니다(롬1:19-25).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함으로 모든 악한 일을 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롬1:28-32).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롬1:18).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의 표지로 할례를 받았지만 그 할례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백성의 그 많은 유익이 다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롬3: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음이 선언되었습니다(롬3:9). 의인은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롬3:10). 그들의 길에는 파멸과 고생이 있을 뿐입니다(롬3:16). 이것이 오늘 본문에 앞선 부분에서의 상황의 요약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실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하지 못하여 바른 믿음의 응답을 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변함이 없습니다(롬3:3). 사람은 다 거짓되어도 오직 하나님은 참되십니다(롬3:4).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의를 세우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율법의 의가 아닌 복음의 의고 믿음의 의입니다(롬1:17).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새로운 의를 세우신 사실을 전하며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결단, 한없이 놀랍고 은혜로운 결정을 우리에게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하신 언약의 백성에게 은혜의 선물로 주신 것인데 그의 백성은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고 오직 죄를 깨달을 뿐이며 핑계할 수 없이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 본문 19-20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새 의를 세우신 이유입니다. 또 본문 23절에서 보듯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의를 제시하신 이유입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율법이 아닌 한 새로운 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이 새 의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 미리 알리신 것인데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차별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본문 21-22절을 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서 얻게 되는 의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게 되는 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새 의입니다. 놀랍기 그지없는 은혜입니다. 

이 하나님의 새 의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본문 24-26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먼저 24절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값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값이 없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싸구려라는 뜻에서 값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값을 매길 수가 없다는 뜻에서 값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파괴한 죄의 값은 우리의 힘으로는 지불할래야 지불할 수 없이 무한히 비싼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당신과의 관계 회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기 위해 참으로 아무런 값도 지불하게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공짜로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죄 값을 지불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죄 값이 지불되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값을 지불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면 누가 지불했습니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당신의 유일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지불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우리의 죄를 속량하셨다고 합니까? 25절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우리 사이의 화목한 관계를 복원하시기 위해 그 제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대신하게 하시고 우리와의 관계를 복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가 하나님께 지었는데 죄 값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 자신이 지불하신 것입니다. 역시 값을 매길 수 없는 하나님의 존귀하시고 유일하신 아들의 몸으로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면 됩니까? 우리는 그저 믿기만 하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이것보다 더 놀라운 은혜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우리와의 화해를 위한 제물로 삼으시고는 당신께서 참으시는 동안 우리가 저지른 모든 죄를 보아 넘기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봐주시기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하나하나 따지고 그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요구를 다 충족시키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입니다. 첫 번째 요구는 하나님 자신의 의의 요구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불의와 죄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셔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마땅히 죄 값이 지불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죄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단 사람이 지불할 수 없는 값이기에 당신 자신이 당신의 아들의 몸으로 대신 지불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우리를 당신과의 파괴된 관계 속에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그 관계를 회복시키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요구가 또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바른 관계가 회복되려면 우리가 의로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의로운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의로운 존재가 되려면 죄를 다 청산해야 하는데 사람은 스스로 그것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우리의 죄를 청산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의 죄를 씻는 화목제물로 세우시고 당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며 동시에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누가 지불했던 우리의 죄 값이 지불되었으므로 이제는 우리의 죄가 청산되었고 우리는 다시 의로운 존재로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 본문 26절입니다. 다시 봅니다: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이루어진 일을 놓고 사도 바울은 물음을 던집니다.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되었음을 자랑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되는 것이 무슨 법에 따라서인가? 율법을 잘 지키면 된다는 법인가? 그것이 아니라 오직 믿기만 하면 의롭다고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법 때문이 아닌가? 본문 27절을 봅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여기서 사도 바울은 결론을 내립니다. 

본문 28절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제시하신 새 의를 요약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493년 전 부패의 극에 달했던 로마 천주교를 개혁하시고자 마틴 루터에게 깨우쳐주신 종교개혁운동의 근본사상을 이룬 복음의 진리입니다. 그리고 오늘 제2의 종교개혁을 필요로 하는 한국교회를 위해서도 깊이 되새겨야 할 말씀일 것입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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