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핵심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딤후 4:6-8)

  • 잡초 잡초
  • 281
  • 0

첨부 1


핵심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딤후 4:6-8)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6-8)

무슨 일이든지 어디든지 핵심이 있습니다.

양파를 벗기면 다른 양파가 있습니다. 벗기고 또 벗기고 계속 벗기면 마침내 핵심이 나오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일에도 핵심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핵심을 이탈하지 않고 하여야 그 일을 이루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말씀을 열겠습니다.

몽골을 통일한 징기스칸은 자기 나라를 완전 통일한 후에 세계 정복에 나섰습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지배하였던 이가 징기스칸입니다. 그 때 몽골 인구는 겨우 200만명이었습니다. 동원할 수 있는 군사는 총동원하여 겨우 13만명 정도였습니다.

13만 군사로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지배할 수 있었던 비결은 전쟁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었기 때문입니다. 징기스칸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핵심을 세 가지로 보았습니다.

1. 군사수보다 군사 훈련이었습니다.

훈련받지 못 한 군대는 오합지졸이라고 여겼습니다. 아무리 까마귀가 수 천마리 모여 있어도 조그만 어린 아이가 장대 하나를 가지고 가서 휘두르면 모두 도망치고 맙니다. 그러나 훈련받은 군사 한 명은 100 명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2. 무기입니다.

아무리 군대가 훈련을 잘 받았어도 무기가 형편없으면 나약한 군대가 됩니다. 무기가 좋아야 합니다.

3.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동력입니다.

몽골 민족은 말을 타고 넓은 광야를 달리며 목축하던 민족입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말타는 데 익숙하였습니다. 징기스칸은 기동력이 두 배 빠르면 전력은 9배나 늘어나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말위에 말젓을 가공한 흰 음식과 붉은 음식 말린 고기를 얹어 놓고 반달칼을 주면 군사 한 명은 며칠 동안도 말에서 내리지 않고 종횡부진 달리면서 싸웠습니다. 재빠른 기동력을 적은 추격할 수가 없었습니다.

말위에서 먹고 자며 달릴 수 있는 기동력이 전쟁의 핵심이라고 징기스칸은 여겼습니다. 이런 장점을 가지고 있는 13만 군대를 가지고 세계를 정복한 것입니다.

반면에 징기스칸과 싸우는 군대는 싸우는 군대보다 보급품을 공급하는 후방 군대수가 더 많았습니다.

징기스칸이 제일 좋아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한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이길 수 있다.>
몽골족의 조상이자 장군인 동유쿠트가 한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무덤 묘비에 기록되어 있는 말입니다.
기동력이 최고 중요한 핵심임을 간파하고 온 세계를 지배한 징기스칸은 끊임없이 성을 쌓지 말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자 후손들은 궁궐을 화려하게 지었습니다. 그 곳에 금은보화를 채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미녀들을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징기스칸이 이루어놓은 왕국을 100도 유지시키지 못 하고 망하게 하고 말았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핵심에서 이탈하면 안 됩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사형당할 날이 얼마 안 남았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때 디모데를 향하여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가 오늘 우리가 들여다 보고 있는 디모데후서입니다. 바울이 이 땅에 마지막 남겨 놓은 글입니다. 바울이 쓴 성경 13권중에 마지막 성경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관제란 제사를 드릴 때 포도주를 붓는 제사를 말합니다. 전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사의 마지막 순서입니다. 이제 인생의 마지막 순서가 되었습니다.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이렇게 말할 때에 바울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착찹하였을 것입니다. 이 때 바울은 자기 일생을 돌아보면서 선한 싸움을 싸운 일생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 말씀속에서 3가지 단어가 보이고 있습니다.

1. 싸우고
2. 마치고
3. 지켰으니

성공적인 전쟁의 핵심은 훈련과 무기와 기동력입니다. 그러면 성공적인 인생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이 세 단어입니다.

1. 싸우고

선한 싸움을 싸웠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고나>라고 되어 있는 데 이는 격투기 선수들이 혼신을 다 하여 싸우는 모습을 그리는 말입니다. 로마 원형 경지장은 2000년전에 세워진 운동장입니다. 그런데 5만명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그 운동장 가운데 사자같은 맹수와 사형수를 싸움을 시킵니다. 그러면 사자밥이 되느냐 살아남느냐 둘 중에 하나였습니다. 맹수와 싸워서 이기면 살려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을 건 결사적인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5만명의 군중들은 그런 실제적이고 잔인한 싸움을 보면서 즐겼습니다. 이 때 사형수는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이라 그야말로 필사적인 싸움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에서 지냈으니까 이런 경기를 보았거나 들어서 알고 있거나 둘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생각하며 감옥에서 자기는 선한 싸움을 일생 싸워 왔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싸움은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내가 가장 이기기 힘든 상대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작가 최 인호와 김 수한 추기경이 이런 대화를 나눈 이야기가 잡지에 실렸습니다.
추기경이 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긴 여행이 무엇인지 아세요?>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자 김 추기경은 손을 들어 머리부터 가슴까지 만지면서 말했습니다.

<바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지요. 나 역시 평생 이 짧은 것처럼 보이는 여행을 떠났지만 아직도 도착하기엔 멀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항상 자기반성과 회개를 통해 조금씩 조금씩 우리 마음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하느님께 나아가고 예수를 닮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과오가 있다 하더라도 그나마 종교인들이 소금 역할을 해줌으로써 이 나라가 굳건히 지탱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와 싸움이 얼마나 어려웠는 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자기와 싸워 이기는 것은 승리의 핵심입니다. 이 싸움에서 지면 모든 것에서 지게 됩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가장 승리하는 동물은 낙타라고 합니다.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은 모든 것이 신비롭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 낙카는 더욱 신비롭기만 합니다. 낙타를 사막에 살기에 적합하게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비밀입니다.

낙타의 머리는 사막의 모래바람을 견딜 수 있도록 눈썹과 눈두덩이 길고 두껍게 되어 있습니다.
허파를 보호하기 위하여 코에 예민한 근육이 있어 모래가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두꺼운 가죽과 털이 있어 낮의 태양과 밤의 추위를 견디게 합니다.
넓은 발굽은 뜨거운 모래 위를 걸을 수 있도록 합니다.
낙타 등의 육봉은 지방을 저장하는 곳입니다. 낙타 한 마리가 평균 45킬로그램의 지방을 육봉에 가지고 있어서 오랫 동안 먹지 않아도 육봉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습니다.
낙타의 소변은 농도를 높여 수분의 배출을 최대한 줄입니다.

물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물을 되새김질합니다. 낙타 곁에 가보면 끄르륵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물을 되새김질하는 소리입니다.
사막의 밤낮의 일교차를 쉽게 견디게 하기 위하여 체온이 가변적입니다. 낮에는 41도로 올라가고 밤에는 34도로 내려옵니다. 물이 부족하면 주위의 조직으로부터 수분을 공급받아 체중의 25퍼센트까지 수분을 혈액에 빼앗기고도 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물도 음식도 항상 되새김질하기에 두 번 먹고 마시는 것이 됩니다. 항상 내장 운동을 시켜서 건강하게 합니다. 낙타는 사막에서 자기와의 싸움에서 철저히 승리하게 만듭니다. 자기를 철저히 이기는 동물이 낙타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는 이가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2. 마치고

<마치고>라는 말은 목표가 분명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산 정상에 오르려는 이는 정상에 도착하면 <다 왔다>라고 말합니다.
목표가 없으면 마침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 마쳤는 지 못 맞쳤는 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반드시 그렇습니다.

예수님도 목표가 분명하였습니다. 온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목표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바울은 이방인의 선교사로서 최종 목표가 있었습니다. 로마에 복음을 심는 것입니다. 당시 온 세계를 지배한 나라가 로마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온 세계를 지배하기 위하여 온 세계를 향하여 길을 닦았습니다.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복음이 그 길을 타고 온 세계를 향하여 뻗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바울의 생각은 그대로 맞았습니다.
로마 복음화는 온 세계 복음화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복음을 심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여러분은 금년 두 달 남았는 데 <금년에 할 일을 다 마쳤다>라고 고백할 만한 목표가 있습니까? 나는 금년 12월 31일 <금년 할 일을 다 마쳤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12월 25일까지 1225시간 기도를 마치고, 성탄절에 300명 전도를 마치면 바울 처럼, 예수님처럼 외칠 것입니다.
<금년 목표를 다 이루었다.> 
그리고 평생 다음의 것을 이루고 나면 다 마쳤다고 자신있게 하나님앞에 가고 싶습니다.

1. 우리 교회를 10,000 성도 교회를 이루고 나면 우리 교회를 향하여 할 일을 다 마쳤다고 외칠 것입니다.

2. 그리고 개인적으로 성막 쎄미나에 목사님을 5만명을 돌파 하고 나면 성막의 할일을 다 마쳤다고 선언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36,000명 공부를 하셨습니다.
핵심을 잃으면 안 됩니다.
성공적으로 인생을 바울처럼 마치려면 세 가지 핵심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1. 싸우고
2. 마치고
3. 지켰으니

3. 지켰으니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믿음을 지켰으니
이는 오직 한 길을 걸어 왔다는 것입니다. 믿음 하나 지키려고 지금까지 헐벗고 굶주리고 매맞고 고생을 하여 왔습니다.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도 믿음을 지키고 죽기까지 걸어가는 삶은 아름다운 삶입니다.
요즈음에 나온 새로운 법칙 하나가 있습니다.
<1만 시간의 법칙>
무엇에 전문가가 되려면 그 분야에 1만 시간 투자 원칙을 지키면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3시간씩 투자 하면다면 10년 정도 그 일에 전념하여야 합니다. 하루 5시간이면 5년, 하루 10시간씩 투자하면 3년이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을 지킨 이들이 큰 일을 하여냈다는 것입니다.
2009년 1월 16일 허드슨강의 기적이 있었습니다.

새벽이었습니다. 승객 155명을 태운 US air 비행기가 이륙후 4분만에 허드슨 강으로 추락하였습니다. 추락하는 그 당황한 순간에도 침착하게 지상으로 연락을 하였습니다. 강으로 추락하는 것을 알렸습니다. 지상에서는 대형 풍선을 실고 추럭이 달렸습니다. 조정사는 비행기를 물위로 미끄러지듯이 마치 활주로처럼 달리게 하였습니다. 모든 비행기 문을 철저히 닫았습니다. 온 세계가 집중하였습니다. 한 명도 죽지 않고 구출되었습니다. 조정사는 1만 9천 시간을 비행한 슬렌버거였습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이 적용되어 해석되었습니다.
만일 1만 시간 이하로 비행한 조정사였다면 155명을 다 죽였을 것이라는 것이 해설이었습니다.

나는 이 설교를 준비하며 놀란 것이 있습니다.
지난 번까지 성막 쎄미나 240기를 끝냈습니다. 성막 쎄미나는 언제나 월요일 3시에 시작합니다. 언제나 수요일 1시에 끝납니다. 그러면 모두 46시간입니다. 240기면 나는 성막 쎄미나 한 시간만 10,040 시간입니다.

꼭 1만 시간을 돌파한 것이 지난 쎄미나였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국 초교파 기독교 협의회 회장님이 나를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팔레스 호텔에서 만났습니다.

<강 목사님! 일년에 한번 시상하는 기독교 대상이 있습니다. 목회자 부분에서 한 명, 부흥사 부분에서 한 명, 선교사 부분에서 한 명, 남자 평신도 한 명, 여자 평신도 한 명 5명을 뽑아 일년에 한번씩 표창하는 한국에 기독교 노벨상입니다. 목회자 부분에 대상이 목사님으로 뽑혔습니다. 모두가 목사님을 추천하였습니다.> 나는 왜 내가 그 상을 받게 되었는 지 모릅니다. 꿈에도 생각하여 본 적이 없습니다. 단 한번도 생각하여 본 적이 없습니다.

금년이 19회입니다. 1회에 한 경직 목사님이 받으셨습니다. 두 번째 조 용기 목사님이 받으셨습니다. 신현균 목사님, 나겸일 목사님도 받으셨습니다. 그런 반열에 저를 넣어 주셨습니다. 나는 돌아 와서 안 받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직 자격이 안 된다.>

이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서 만류하여 받기로 작정하고 세 주 지난 지금 처음으로 말씀드립니다.
성막 쎄미나를 21년 동안 지켰습니다. 36000명 목사님들이 공부하셨습니다. 10,040시간을 성막만을 위하여 지내고 받은 결과입니다.

날치라는 고기가 있습니다.
날치는 수면 위로 뛰어올라 가슴과 배의 지느러미를 펴서 공중을 활주하는 물고기입니다. 놀랄 이야기입니다. 한번 나르는 데 4. 5KM를 날기도 합니다. 어떤 때에 그런 힘이 생기는 것인가요? 두 경우에 그렇게 멀리 나른답니다. 하나는 다른 큰 물고기가 잡아 먹으려고 따라 올 때 그런 능력이 나옵니다. 또 한 경우가 있습니다. 즐거울 때 떼를 지어 자유롭게 공중을 비행하며 그렇게 멀리 나른다고 합니다.

우리도 핵심을 잃어버리지 않고 전진할 때에는 그런 능력이 나올 수 있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을 지키고 핵심을 잃지 않고 나갈 때 멀리 나를 수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말리브에 있는 페퍼다임 대학교 졸업식에 나는 가본 적이 있습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이가 꼭 와 달라고 초청하여 일부러 갔었습니다. 그 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1천명 학생들이 학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평균연령이 40세 가까웠습니다. 고령의 졸업자 가운데 67세의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는 10명의 자녀와 27명의 손자 손녀를 가진 할머니였습니다. 그 할머니가 학사 학위를 받으려고 단상에 올라 갔습니다. 환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드디어 해내셨군요.>
<할머니, 잘하셨어요. 드디어 성공하셨어요.> 

졸업식이 끝났습니다. 그 할머니는 자기 목사님을 만나 격정에 못 이겨 눈물을 흘리면서 목사님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습니다. 
<목사님, 나에게 만약 믿음을 심어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내가 좌절할 때마다 나에게 새 힘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시작하자마자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핵심을 잃지 않고 믿음을 굳게 지킨 이들에게 하나님은 성취의 축복을 주십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간 바울은 핵심을 벗어나지 않고 일하였습니다. 핵심을 벗어나지 않는 비결을 바울은 분명히 세 가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런 이야기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아프리카 정글에 표범같이 생긴 치이타가 있습니다. 동물중에 가장 빠르게 달리는 동물입니다. 한 시간에 70 키로미터를 달릴 수 있습니다. 차와 경주할 수 있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치이타가 먹일 구할 다니다가 수 십마리 사슴들이 풀을 뜯고 있는 것을 멀리서 봅니다. 그러면 한 마리를 목표로 정합니다. 그리고 그 동물만 보고 맹추격을 합니다. 바로 옆에 다른 사슴이 있어도 멈추지 않습니다. 쉽게 잡아 먹을 수 있는 다른 동물이 옆에 가만히 있어도 관심도 없습니다. 오직 처음에 정한 그 목표물만 바라 보고 달립니다. 그리고 기어코 그 동물을 잡아 먹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직 전도만을 위하여 일생을 달려 왔습니다. 그리고 로마에서 사형당하기 직전에 이렇게 고백하고 죽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6-8)

한 마디로 말합니다.

바울은 평생을 핵심에서 이탈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