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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오라 (겔 3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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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오라 (겔 37:1-10)


에스겔서 37장은 에스겔서 전체 중 가장 많이 설교가 되는 장(chapter)입니다. 가장 유명한 장입니다. 에스겔서가 성경 가운데 무시되고 있는 책(the most neglected book)이라고 말을 하지만 에스겔 37장만큼은 많은 목사님들이 설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른 뼈 골짜기가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서 37장은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를 3차에 걸쳐 침공했습니다. 1차 침공은 B. C. 605년이며 다니엘과 세 친구를 잡아갔습니다. 그 당시에 여호야김이 왕이었습니다. 2차 침공은 B. C. 598년 입니다. 여호야김이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과 동맹했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여호야김이 폐위되고 여호야긴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훌륭한 모든 일꾼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B. C. 598년 이후로는 예루살렘 땅에는 조금 부족한 사람들만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땅을 차지하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이곳에 집을 짓고 살자! 여기에는 여호와의 성전이 있는데 감히 누가 우리를 멸망시키겠느냐? 우리가 복 받은 사람이로다.” 하나님은 이들을 보고 도리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복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예루살렘에 있다가 바벨론으로 옮겨 간 것입니다. “너희는 극히 나쁜 무화과이고, 바벨론에 끌려간 사람들이 좋은 무화과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B. C. 587년에 느부갓네살 왕이 3차 침공하여 예루살렘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은 돌아갈 고향이 망해버려 소망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절망이 이들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유다 백성이 한 말이 에스겔 37장 11절에 기록되었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이런 절망적인 상태에 대해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겔 37:11) 

에스겔이 답변합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겔 37:11)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절망적인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죽은 뼈라도 살리시면 살리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하실 수 있습니다. 에스겔 37장 5절을 보면 소망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의 생기가 사방에서 불어 와서 우리가 살아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Ⅰ. 골짜기의 마른 뼈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에스겔은 하나님의 신의 인도를 받아 골짜기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 골짜기를 사람들은 에스골 골짜기라고 하는데 성경에는 에스골이라는 말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그 골짜기에서는 극심한 전투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이 골짜기에는 뼈들이 가득합니다. 이 뼈들이 지표면 위에 있습니다. 원래 뼈들은 지표면에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땅속에 묻기 때문입니다. 뼈가 나와도 땅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즉 이들은 죽었어도 누군가 장사 지내 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뼈들은 햇볕을 오랫동안 쬐어 바짝 말라 버렸습니다. 이 골짜기는 사망의 골짜기요, 적막의 골짜기요, 패망의 골짜기입니다. 이 뼈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역사적으로 생각해 보면, 열방에 포로가 되어 돌아올 소망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의미보다는 영적인 의미가 더 중요합니다. 
 
영적인 면에서는 두 가지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 뼈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불신자들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입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불신자들의 상태를 그림 같이 표현한 것이 골짜기의 마른 뼈입니다. 구원받기 이전의 인간의 영혼이 죽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단절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신자들이 극도로 악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신자들도 착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불신자들이 동일하게 악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조그만 덕도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망이 없고, 진리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불신자들은 모태에서 나올 때에도 하나님과 분리되어서 나오고, 살아갈 때에도 분리된 채로 살다가 죽으면 하나님과 분리된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그곳을 가리켜 지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영적으로 사망한 것은 억울한 피해자(victim)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모든 자유와 특권과 생명과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을 반역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는 범죄자(culprit)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은 듣고도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으면 너는 정녕 죽으리라” 아담과 하와가 영적으로 사망하고, 그 후손들도 영적으로 사망한 채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이 골짜기의 마른 뼈는 영적으로 죽어 있는 불신자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둘째, 영적으로 피폐한 교회의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겔 37:11) 바벨론에 끌려간 유다 백성뿐만 아니라 B. C. 721년에 앗수르에 끌려간 북왕국 이스라엘까지 포함해서 이스라엘의 온 족속의 상태가 마른 뼈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20세기에 다섯 번에 걸쳐 큰 부흥을 주셨습니다. 20년마다 부흥되게 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그 부흥의 열매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의 교회 상황을 보게 되면 부흥기가 아닙니다. 

터키를 가보면 알 수 있듯이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돌무더기로 바뀌어 있습니다. 유럽의 교회들은 관광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기둥만 높습니다. 예배당이 하루아침에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는 예도 있습니다. 또 선술집으로 바뀌는 예도 있습니다. 골짜기의 마른 뼈와 같은 상황이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1세기 하나님의 교회는 다시 하나님의 생기가 필요합니다. 


Ⅱ. 마른 뼈가 살아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역사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B. C. 539년에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칙령을 발표해서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의미가 더 중요합니다. 영적으로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영적으로 죽어 있는 불신자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면 구원받고,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영적으로 죽어 있는 피폐한 교회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으시면 큰 부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의합니다. 큰 부흥에는 불신자들이 구원받는 것도 포함되고, 이미 믿은 신자의 영혼이 소생되는 것도 함께 나타나기 때문에 이 두 가지 현상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Ⅲ. 마른 뼈가 살아나기 위해서 에스겔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대언(prophesy)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것인데, 그 대언하는 대상이 희한합니다. 마른 뼈(겔 37:4)와 바람(겔 37:9)에게 대언하라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설교하는데 마른 뼈만 있으면 남들이 보고 미쳤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또 바람을 향해 소리를 지르면 재정신이 아니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첫째, 마른 뼈를 향해서 대언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죽은 불신자들이나 피폐하게 된 성도들을 향해서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는 이와 같습니다. 복음 전도는 비록 자신이 말을 못할지라도, 상대가 마른 뼈와 같을지라도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생명을 얻습니다!”라고 전하는 것입니다. 이 골짜기에 에스겔과 뼈만 있으면 에스겔은 미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골짜기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뼈들에게 “생기야 들어가라! 뼈들아 살아나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뼈들에게 생명을 주셔서 무질서하던 뼈들이 맞고, 생기가 들어가 근육이 살아나서 큰 군대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마른 뼈와 같은 불신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미친 짓이 아닌 이유는 들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셔서 듣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은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 37:4-6) 
 
제가 목사 안수를 받자 대흥침례교회 안종만 목사님이 설교하라고 하셨습니다. 35세 때에 처음 설교를 하게 된 것입니다. 설교 전날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 원고를 잔뜩 써서 자정에 강대상에 올라가서 의자를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설교가 소리를 지르는 건지, 속삭이는 건지, 웃기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 날 강대상에 서니 사람들 눈이 반짝거렸습니다. 설교 원고 10장을 써 갔는데 20분 만에 설교가 모두 끝나버렸습니다. 1시간 설교해야 하는데 20분 만에 끝나버린 것입니다. 

주 전도사님 어머니가 그 당시 전도사님이셨는데 광고 30분으로 그 시간을 채웠습니다. 목사들이 처음 설교를 시작할 때에는 소나무 앞에서 소리 질러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발음이 부정확한 사람들은 연필을 물고 발음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발음이 자꾸 틀리는 사람은 입을 크게 벌려 소리 내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마른 뼈를 놓고 “뼈들아, 여호와의 생기가 들어가니 살아나라!” 큰 소리로 외치자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전도자는 마른 뼈 같은 불신자를 향해서 “예수 믿으세요! 그리하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영생을 얻습니다.”라고 외쳐야 합니다. 듣거나 안 듣거나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들을 귀를 주시면 듣게 되리라는 것을 믿고 외쳐야 합니다. 설교자는 죽어 있는 교회를 향해서도 외쳐야 합니다. “생기야, 사방에서 몰려와라! 그리하면 우리 교회가 부흥일 일어날 것이다!” 교회가 피폐할지라도 성령의 생기만 불어오면 부흥이 일어난다는 것을 확신하고 외쳐야 합니다. 
 
둘째, 바람을 향해서 대언하는 것은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람은 히브리어로 ‘루아흐’입니다. 생기, 영, 성령을 의미합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바람을 향해서 명령합니다. 기도는 명령입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을 향해서 명령할 수 있는 것은 기도입니다. 성령의 바람은 좋은 바람입니다. 이 바람이 불면 잃어버린 영혼들이 살아나고, 교회가 부흥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강하고 급한 바람이 불더니 제자들이 성령 충만을 받아 나가서 전도해 삼천 명이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8절에서도 예수님이 성령을 바람에 비유하셨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민수기 1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텐트 속에서 울고 있습니다. 모세가 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백성이 답변하기를 고기가 먹고 싶어서 운다고 말합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합니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찐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니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일 고기를 주겠다고 합니다. 고기를 주는데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1개월간 먹을 고기를 주겠다고 합니다. 믿음 좋은 모세라도 어떻게 1개월간 먹게 하실 건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하나님이 응답해 주십니다.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곁 이편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바람이 불자 메추라기 떼가 날아와서 200만 명이 한 달 동안 실컷 먹게 된 것입니다. 교회 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의 구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바람이 함께 만나면 마른 뼈가 변하여 큰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부흥입니다. 저는 다시 부흥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 21세기 한국 교회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의 대 사명이 있습니다. 사업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 제가 선교 할 테니 사업 잘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를 위해서 기도할 때에도 “우리 자녀가 선교 사명을 감당하는 큰 인물이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시고, 교회를 위해서도 “하나님, 우리 교회가 선교 많이 하는 교회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세계를 향한 선교의 사명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선교의 대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령이 강한 바람이 다시 불어와야 합니다. 
 

 결 론 

설교자는 마른 뼈를 향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신시대가 되었다고 신신학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신학이 어디 있습니까? 복음은 바울 복음, 어거스틴 복음, 루터, 칼빈이 찾은 복음이 복음입니다. 사도들이 증거한 케리그마, 순수한 복음을 그대로 증거하고 성도들은 다시 기도의 불을 붙여야 합니다. “성령이여, 사방에서 불어오소서. 우리에게 생기를 넣어주소서.” 교회와 가정에 생기가 들어가고 우리 영혼에도 생기가 들어와야 합니다. 생명 없는 곳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도 생기요, 질서없는 곳에 질서가 있게 하는 것도 생기요, 소리 없는 곳에 삶의 소리를 불어넣는 것도 생기요, 힘이 없는 곳에 힘을 불어넣는 것도 생기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성령의 생기가 필요한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왜 부흥을 주시는 것입니까?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겔 37:6,13,14) 부흥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부흥은 인간이 영광을 받는 순간 사라집니다. 부흥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하는 그 한 가지 목적을 기억할 때에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기도해야 합니다. “사방에서 불어와 생기를 주시고, 죽은 영혼을 살리시고, 낙심한 영혼에게 생명을 주어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나타나게 하시고, 세계 선교의 사명을 이루게 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우리 기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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