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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 성찬 참여자의 사명 (고전 11: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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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 참여자의 사명 (고전 11:23-26)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오늘은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지 493주년 되는 종교개혁 기념 주일이자, 우리 교회가 성례주일로 지키는 아주 뜻 깊은 주일입니다. 안소니 드멜로의 ‘종교박람회’라는 책에 나오는 성자의 기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젊은 시절에 나는 혁명가였고 하나님께 드리는 나의 기도는 이것이 모두였다. “주여, 내게 세상을 개혁할 힘을 주소서” 중년에 이르러 한 사람의 영혼도 고쳐 놓지 못한 채 내 반생이 흘렀음을 깨닫자 내 기도는 이렇게 달라졌다. 

“주여, 나와 접촉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킬 은총을 주소서. 그저 가족과 친지들만 개종시켜도 만족하겠나이다.” 이제 노인이 되어 죽을 날도 오늘 내일로 다가오니 이제야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알게 되었다. 이제 나의 유일한 기도는 이것이다. “주여, 나 자신을 고칠 은총을 주소서.” 처음부터 이렇게 빌었던들 일생을 허비하지 않았으련만> 오늘날 국가도 사회도 교회도 개혁해야할 부분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자신을 고치고 자신을 개혁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성자의 기도문을 제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설교 바인더 표지에 넣고 다닙니다. 어느 해 첫 주일 설교를 ‘한 가지라도 고칩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한 적이 있는데, 우리 각자가 자신의 신앙생활이나 인격이나 행동에서 가장 약한 부분을 1년에 한 가지 씩만 고치고 개혁해도, 5년 후가 되고 10년 후가 되면 거의 성자의 수준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선결 문제는 우리 자신들인 것입니다. 

로마 천주교와 우리 개신교회는 신학적인 면에서 도저히 그 간격을 좁힐 수 없는 문제들이 많지만, 성례에 대한 견해도 판이하게 다릅니다. 로마 천주교는 칠성레를 주장합니다. 성례에는 1)세례와 2)성찬 외에도 3)견진성사 4)고해성사 5)종부성사 6)신품성사 7)혼배성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세례와 성찬 외에 다른 성례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을 가감하면 이단인데 이렇게 천주교는 성례만 하더라도 성경에 없는 일곱 성례를 주장하므로 우리가 배격을 하는 것입니다.

성찬 예식은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세례 예식은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친히 제정하신 거룩한 예식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거행하려고 하는 성례식은 인간인 목사나 신부, 혹은 교회에서 만들어 낸 종교 의식이 아니라, 이처럼 우리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직접적으로 명령하신 그 분부를 받들어 거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예식을 거행하기 전 먼저 성례식의 의미와, 다음으로 성례전에 참여하는 자의 결심은 어떠한 것이 되어야 마땅한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세례의 의미

세례는 우리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화되고, 성령의 새롭게 하심에 의해 깨끗해진다는 진리를 표시하는 싸인 혹은 표호입니다. 더 쉽게 말씀드리면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죄씻음 받았다, 죄사함 받았다는 표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또한 세례는 주님의 구원의 약속에 대한 상징적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 세상을 다시 홍수로 심판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실 때에, 하늘의 무지개를 그 약속의 보증으로 세웠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실 때에, 할례를 그 약속의 보증으로 정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실 때에, 세례를 보증으로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막16:16에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세례는 우리가 예수 믿어 죄사함 받고 구원받았다는 표시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 성도들이, 그 자신을 주님께 거룩히 드리기로 하는 약조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또한 세례는 우리의 공적인 신앙고백이기도 하며, 세상으로부터 구별되고 교회에 입회하여 동료 신자들과 연합한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세례 받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신앙의 고백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고, 그 주님께 절대적인 충성과 헌신의 다짐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성찬의 의미

성찬은 ‘주의 만찬’ 곧 ‘최후의 만찬’을 의미합니다. 이 성찬은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그 비장한 순간에 제정하신 참으로 의미 깊은 예식인 것입니다. 그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주님은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면서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식후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성찬의 떡은, 우리를 위하여 상하고 찢기신 주님의 몸을 기념하는 것이고, 성찬의 잔은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주님의 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뜻을 갖고 있는 성찬의 의미를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성찬은 1)주의 죽으심의 상징적 표시입니다. 곧 성찬은 주님의 속죄의 죽음, 구속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살을 먹으며 주님의 피를 마시는 비유적 행동에서, 주님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축복을 받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영적 양육과 성장을 의미합니다. 

떡과 포도즙이 사람의 신체적 생명을 양육하여 자라게 함과 같이, 성찬의 떡과 포도즙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과 힘을 얻는다는 뜻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4)신자들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성찬식을 행할 때 동일한 떡과 포도즙을 먹고 마시므로, 우리 신자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들임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5)마지막으로 장차 천국에서 맛보게 될 메시아의 식탁 즉 부활한 성도가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며 영원히 사는 천국잔치를 오늘 미리 연습하는 것이 곧 성찬식인 것입니다. 

이 같은 성찬의 진리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성도들은, 성찬 예식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우리 주님께 대한 신앙과 말씀에 대한 순종과 헌신과 봉사를 다짐하고 약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신앙과 충성과 헌신과 봉사의 다짐 중에서,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이 가장 굳게 다짐하고 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26절에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찬의 떡을 먹고, 성찬의 잔을 마실 때마다, 나 같이 추하고 더러운 죄인 괴수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구원해 주신 주님의 구속의 사랑, 속죄의 사랑에 뜨겁게 감사하면서, 내가 이같이 큰 은혜를 입었으니, 무엇으로 그 은혜에 보답할 것인가? 그 사랑, 그 은혜를 도저히 보답할 길이 없지만, 그래도 말로만 할 수는 없고, 무엇인가 감사드리는 행동이 꼭 있긴 있어야 하겠는데, 그것이 곧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성찬 참여자의 사명은 전도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전도해야 합니까? 전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딤전 2: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전도는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면 반드시 전도에 동참하셔야 합니다. 왜 우리가 왜 전도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유언이고 최후명령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왜 전도해야 합니까? 예수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주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외에 다른 길을 통해서, 석가를 통해서, 공자를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면 굳이 전도할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예수님 이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일이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예수님의 이름 자체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곧 구주이신 것입니다.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전도해야 합니까? 전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고전 10: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란 말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그러나 정말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전도하는 일입니다. 요 15:8절에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어떤 열매입니까? 전도의 열매, 생명의 열매를 많이 맺으면 우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왜 전도해야 합니까? 전도는 형제와 이웃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운 사람 도와줄 수 있습니다. 물질을 나눌 수 있고 옷가지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사랑이 있는데, 그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겁니다. 그가 떨어질 지옥의 운명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이것이 가장 위대한 사랑입니다. 부모에게 최고의 효도는 무엇입니까? 용돈 드리는 것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더 귀한 일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중한 부모님을 영원한 천국에 가시게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효도요 부모님에 대한 최고의 사랑입니다.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 죄악의 길 파멸의 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을, 바른 길로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그리고 죄악의 길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을, 바른 길 구원의 길로 인도한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상급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단 12:3절에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했습니다. 

왜 전도해야 합니까? 전도하지 않는 것은 범죄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존 스타트 목사님의 저서 가운데 ‘전도하지 않는 죄’ 라는 책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전도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 것이지, 전도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죄가 됩니까? 죄가 됩니다. 왜 죄가 됩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도하지 않으면 그 명령을 불순종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행 5:42절에 보면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말하기를 “그리스도인은 모두 전도자다. 전도자가 아닌 사람은 없다. 단지 전도하는 전도자와 전도하지 않는 전도자가 있을 뿐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다수의 신자들은 전도하지 않는 전도자로 지내고 있으면서 교회의 부흥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에서 지난 2005년 한국 갤럽과 공동으로 한국 교회 교인들의 신앙생활의 실태를 조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조사에 의하면 “나는 지난 1년간 누군가를 전도하여 교회에 출석하게 한 적이 있습니까?” 라는 설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개신교인이 26.4%였고 “그런 일이 없다”고 대답한 교인들이 무려 73.6%에 달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 가운데 전도하는 이들은 4사람 중 1사람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4분의 3의 교인들은 소위 전도의 열매를 전혀 맺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는 11월 28일 주일은 ‘영혼 추수주일’입니다. 잠 10:5절에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고 했습니다. 농번기 때는 부엌의 부지깽이도 한 몫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바쁜 추수 때에 자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게으르고 악한 사람입니까? 농사의 추수는 이제 거의 끝이 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은 지금부터 영혼의 추수를 서둘러야 하겠습니다. 영혼 추수주일을 앞에 두고서도 자고 있는 부끄러운 성도들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열린 모임마다 구역마다 성도들마다 베스트와 태신자의 영혼을 추수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찾아가서 관계도 맺고, 선물도 하고, 식사도 하면서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찬에 참예하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귀하고 복된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인중의 괴수와 같은 나를 살리기 위해 흠도 티도 없으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대신 죽어주신 은혜를 다시 한 번 깨닫고 뜨겁게 감사하는 시간이요,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 때문에 내가 죄 용서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확신하는 순간이요, 이 고마운 예수님을 증거하고 전하는 것이, 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명임을 깨닫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이 사명을 깨닫고, 합당하게 성찬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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