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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심을 극복하고 확신에 서려면 (요 20: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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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을 극복하고 확신에 서려면 (요 20:24-29)


인류 최초의 부부 아담과 하와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늘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왔던 아담이 하루는 밖에서 아주 밤늦게 돌아왔습니다. 하와는 매우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 "당신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죠!"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세상에 여자라고는 당신뿐이잖아?" 하지만 한 번 의심한 하와의 의심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와는 의심의 병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와가 의심하든 말든 아담은 잠을 잤는데 누군가 가슴을 콕콕 찌르는 바람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하와였습니다.  "당신 뭐하는 거야? 자지 않고."
"말시키지 말아요! 지금 갈비뼈 숫자를 세고 있으니까!" 

의처증이나 의부증이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하면 결혼하는 날부터 신혼이 아니라 감옥이 됩니다. 의처증이 지나친 남편은  이웃 아저씨를 만나 인사하면 "저 남자 몇 번 만났느냐?"고 따집니다. 의부증이 심한 아내는 매사에 남편을 의심하고 추궁합니다. 그러면 결국 가정이 지옥같이 될 것입니다.  인생이 지옥같이 불행합니다.

공자의 수제자인 자공이 어느 날 공자에게 질문했답니다. "나라가 잘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공자는 "족식(足食), 족병(足兵), 신(信)이니라."라고 대답했답니다. 생활의 안정, 자주국방, 정부의 공신력을 말합니다.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리시겠습니까?"라고 하자 "병을 버리겠다"라고 했고 "남은 두 가지 중 하나를 더 버려야 하신다면 무엇을 버리시겠습니까?"라고 하자 "식을 버리겠다."라고 하였답니다. 나라는 경제력이 없어도 살고 군대가 없어도 살 수 있으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나라의 경제가 튼튼하고 강력한 군대가 있어도 백성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으면 나라는 흔들리고 불안해집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심각한 위기가 이것입니다. 국민이 매사에 정부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자료를 공개해도 의심을 풀지 않습니다. 권위가 있고 책임 있는 이가 나서서 해명을 해도 끝까지 의심하기에 혼란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병중에 의심병이 가장 무섭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똑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도 의심스럽고, 하나님의 말씀도 의심스럽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도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의 의심을 벗겨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의심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가로막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의심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처음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물론이요, 믿음이 있는 것 같은 사람들도 위기를 만나면 의심합니다. 갑자기 질병을 만나거나 환경이 어려워지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고 의심합니다. 시험에 떨어지거나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실까?' 하고 의심합니다. 크고 작은 문제를 만나 잘 풀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정말 약속이 이루어질까?' 하는 의심이 밀려옵니다. 이렇게 수많은 의심이 밀려오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의심을 극복하고 믿음이 견고하여져서 담대해 질 수 있을까요? 믿음의 여정에서 만나는 회의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1. 의심을 표현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의심의 표현을 하면 믿음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아예 의심을 마음속에만 담아두지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에 대한 의심은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속으로 누르고 있다가 어느날 그대로 터져버리면 매우 불행하게 될 수 있습니다. 아예 불신으로 굳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과정에서 겪는 모든 의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참된 믿음을 찾는 지름길입니다.  
  
진지하게 의심을 표현하는 사람들은 결국 믿음의 해답을 얻고 믿음의 진보를 경험합니다.  저도 스무살을 전후하여 하나님에 관하여 많은 의심을 풀고자 열심히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물론 그런 의심에 가득찬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답변이 의심의 구름을 한순간에 거두워주지는 못했습니다. 의심을 앞세우는 질문이 신앙의 선배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의심스런 성경의 문제들을 시원하게 답변하지도 못하면 믿음 좋은채 하는 그들이 답답하게 느껴졌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의문점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몸부림쳤기에 하나님께서 어느날 모든 의심을 풀어주시고 오늘의 저를 만드신 것이라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제자중 의심이 가장 많았던 도마가 등장합니다. 도마는 3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말씀을 직접 듣고 수많은 기적의 현장에서 목격했지만 중요한 순간에 의심의 말을 쏟아내었습니다. 25절에 다른 제자들이 도마를 만나 "우리가 주를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도마는 그 말을 받아 "내가 그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노라." 했습니다. 

어떻게 십자가에 달려 죽었고 장사까지 지낸 예수님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경험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이치적으로 말도 안되는 허황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말도 안되는 것을 나보고 믿으라고? 어림도 없지? 그래서 도마는 철저히 의심했습니다. 자신의 의심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다른 제자들에게 표현했습니다.
  
이런 도마의 의심으로 가득찬 표현에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예수님이 사단이라고 책망하셨나요? 왜 믿지 못하느냐?고 비난하셨습니까?  아니지요. 27절을 보십시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주님은 네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검증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한 후 네 안에 있는 의심을 극복하라고 격려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책망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고 격려하셨습니다. 

우리는 의심이나 신앙의 회의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믿고 있는 것이라면 무엇을 두려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의심이 생기면 다시 한번 확인하십시다. 의심에 대한 정직한 표현은 진리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러므로 믿어지지 않고 의심이 솟아나면 셀모임에 가셔서 표현하십시오. 성경공부시간에 그외에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표현하십시오.  주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여러분이 안고 잇는 의심을 풀어주는 분이십니다.

결국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영적인 거장이 되어 인도까지 가서 선교하여 인도 선교의 문을 열게 됩니다. 결국 확신에 서서 사역하다가 영광스럽게 순교하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의심이 계속 꼬리를 문다면 그것은 믿음 없음의 증거가 아니라, 도마같이 아주 유능한 전도자가 될 징조입니다.


2. 예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대개 회의를 창조적으로 극복하고 믿음에 이르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구체적인 신앙 체험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본문에는 도마가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가락을 실제로 넣어 보았다는 말슴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옆구리에 손을 넣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실 때 도마가 보인 반응이 28절입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결국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고 주님 앞에 신앙을 고백하며 엎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니까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도 믿어지는 것입니다. 과학적인 증거를 찾지 않아도 믿어집니다. 도마가 의심꾸러기가 아니라 다른 제자들보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사건이 늦었을 뿐입니다. 누구든지 살아계신 예수님과의 직접 만남의 사건이 없으면 의심하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예배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이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찬송중에 눈물이 흐르게하여 예수님이 여러분의 상한 마음을 만지시고, 여러분에게 말씀하셔서 안고 잇는 문제를 풀어주시고, 질병이 치료되는 등 특별한 경험을 하도록 인도하셔서 기쁨이 충만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또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29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 말씀은 아무 증거를 보지 못해도 무조건 믿으라는 뜻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사람들의 축복됨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도마는 처음 신앙의 증거와 체험을 요구하는 제자였습니다. 그리고 확신에 이르게 되고  믿음의 용사로 다시 일어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회의를 극복하고 싶습니까? 그러면 무엇보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명확한 체험을 하면 쉽게 극복됩니다.
  
저는 요즘 다섯명의 지체들과 함께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라는 제자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반원들이 모두 흥미있게 과정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이전에 해본 어떤 성경공부와는 아주 달라요, 너무 좋아요."라는 고백을 매주 듣습니다.  교재에서 요구하는대로 매일 30분 정도 공부하고서 매주 목요일 저녁에 만나 두 시간정도 삶을 나눕니다. 저는 그 주간에 공부한 내용을 중심으로 몇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아주 간단하고 쉬운 질문을 매주 던집니다. 이번 주에 기도응답받은 것 있습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신 사건이 있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개인적으로 들은 말씀이 있습니까?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러면 이야기가 끝이 없이 이어집니다. 매주 풍성한 나눔이 있습니다. 한 주간동안 나눌만한 놀라운 일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면 의심이 다 사라져 버립니다. 회의에 빠질 틈이 없습니다. 삶이 너무 감사하고 감격스럽습니다. 

무디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목사님, 성경을 읽다가 잘 깨달아지지 않고 의심이 생기면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보통사람 같으면 "기도하시오."라고 대답할 텐데 무디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의심이 생기고 깨달아지지 않으면 뛰쳐 나가 전도하십시오. 성경책을 놔 두고 나가서 전도하고 지나가는 손수레라도 밀어 주십시오. 무슨 일이든지 찾아서 봉사하고 전도하십시오. 그러고 돌아와서 성경을 읽으면 깨달아질 것입니다. 행하지 않고 읽기 때문에 깨달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날마다 살아게신 하나님을 만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의심의 구름은 다 사라집니다. 확신이 밀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의심많은 도마, 이성적인 사람 도마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주님의 말슴을 듣고 부활의 몸을 보았을때 의심의 구름이 한순간에 물러 갔습니다. 저역시 이성적으로 깨달아보려고 노력하다가 살아계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성령 체험을 통하여 성경의 모든 의문이 다 풀리고 다 믿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동정녀 탄생도, 부활도, 천국도, 십자가 사랑도, 재림의 약속도, 다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으면서 이 믿음의 항해를 계속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의심의 파도가 넘실대고 믿음이 약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의심에 그대로 주저앉으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한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귀하게 쓰임받을 수 없습니다. 의심을 극복해야만 합니다. 

여러분 혼자만 의심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용기를 내어 목장모임에 참석하여 의심을 말하십시오. '내가 의심이 들어 힘들다 극복하도록 도와달라.' 말하십시오. 그리고 직접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예수님이 찾아 오실만한 자리로 나아 오십시오. 반드시 살아계신 예수님이 여러분을 만나 주실 것입니다. 부활의 증거를 보여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의심을 극복하고 믿음이 견고하여져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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