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종교개혁] 근원부터 (눅 1:1-4)

  • 잡초 잡초
  • 324
  • 0

첨부 1


근원부터 (눅 1:1-4) 
 
  
오늘(10월 31일)은 종교개혁 493주년을 기념하는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종교개혁운동은  교회의 암흑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중세에 기독교가 그 본질을 잃어버리고 겉길로 가고 있을 때 기독교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영적각성운동이며 교회혁명운동이었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교회가 어두울 때는 예외없이 본질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상실하고, 본질이 아닌 비본질적인 것을 이슈화하여 논쟁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테면,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승인하고 교회당 건축을 한 후 제일 먼저 일어난 교회 내 논쟁 가운데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회를 어떤 그림으로 장식할 것인가? 그 그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였습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나누게 된 것도 대단한 것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성상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중세 암흑기 카토릭교회 내 논쟁 가운데 하나도 바늘 위에 얼마나 많은 천사들이 올라설 수 있는가?였습니다. 웃기지도 않는 일에 매달린 것입니다. 또 러시아 정교회가 망하기 직전에도 성직자가 입는 가운의 길이가 얼마가 되어야 적당한가?가 이슈였습니다. 그것이 길면 뭐하고 짧으면 뭐하겠습니까? 그럴 시간에 기도 한 번 더 하고, 말씀 한 번 더 보고, 전도 한 번 더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이처럼 괜히 쓸데없는 것 가지고 고집부리고 주장을 굽히지 않고 패거리를 만들어 교회를 분란에 빠뜨리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이런 힘을 모아 주님을 위해서 써야할 것입니다. 

한 때는 우리 한국기독교가 한국사회에 변혁의 주도적 변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사회를 향해 영적 사자후를 발하고 회개를 외쳐야 할 한국교회는 거꾸로 사회로부터 개혁을 요구받는 참담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의식이 있는 한국인이라면 한국교회에 대해서 쓴소리 한마디쯤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적대적인 세력이나, 잘못된 편견과 오해와 무지에서 기인한 일면도 있겠지만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안팎으로 '만신창이'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지구상에 어떤 교회보다도 한국교회가 금번 종교개혁주일을 의미있게 받아들이고 변화있는 행동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컴퓨터로 비유하면 '리부팅(리스타트)'이 필요합니다.   

한국교회를 자주 방문했던 영국이 낳은 훌륭한 강해설교가 데니스 레인 목사님은 한국교회를 향하여 뼈있는 충고를 남겼습니다.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자랑만하지는 마십시오. 한국교회도 이제 변하지 않으면 시대속에 버려진 창고나 박물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야 합니다. 100년전 영국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교회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끄러나 그 화려하고 자랑스럽던 영국교회는 지금 텅텅 비어있고 박물관처럼 전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50년 100년후 한국교회가 지금의 영국교회와 같이 되지 않는다는 어떤 보장도 없습니다." 라고 충고했습니다. 이런 충고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누가복음의 서문입니다.       
누가는 복음서를 쓰면서 누가복음서의 서문격인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라는 말과 "근원부터"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 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2-3절)했습니다.
우리 말 성경에 "근원부터"라고 번역된 '아노센'이란 헬라말은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처음부터"라는 의미고 다른 하나는 "위로부터"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말 성경은 이 "아노센"을 "처음부터, 근원부터"로 번역하였습니다. 

어쨌든 누가는 이전에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한 내용을 받아들이는데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는 자신이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아주 근원부터 미루어 살폈다고 했습니다. 증인들이 해준 말을 그냥 적은 것이 아니라 그가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조사하고 증인들을 만나서 사실여부를 확인하고서 복음서를 기록하는 치밀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초발심이 중요합니다. 처음이 중요하고 근원과 근본과 기본이 중요합니다. 뿌리를 두고 기초 놓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세상살이나 신앙생활이나 근본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시루에 밀려가는 사람은 언제나 요동치고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을 바르게 하고 살려는 사람들은 흔들리거나 요동치지 않습니다. 

중국의 동부 지방에만 서식하는 희귀한 대나무의 일종인 모소대나무가 있습니다. 이 지방에서는 독특한 재배 방법으로 모소 대나무를 재배하고 있는데 외지에서 그 지방을 방문 하는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바로 모소 대나무 재배 방법입니다. 
  
농부들은 대나무를 심어놓고 자라지도 않고 죽순도 나지 않는 대나무밭에 매일 매일 물을 주면서 한 해를 보내고 그 다음해에도 별다른 변화는 커녕 대나무순이 돋아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고 4년이 지나는 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어도 농부들은 한결같이 물을 주고 정성을 다해 키웁니다. 보통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그 대나무가 죽었다고 여기고 농부들이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핀잔을 주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5년째 되는 해에 모소 대나무의 연한 순이 돋아나고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 5년 동안 모소 대나무가 하는 일은 깊이 뿌리를 내리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단 5년이 되어 죽순이 나오기 시작하면 하루에 30cm가 넘게 자라기 시작해서 한달이 지나면 15m 이상을 자라 빽빽한 대나무 숲을 이룬다고 합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 입니다. 농부들은 그때서야 죽순을 따고 대나무를 베어 낸다고 합니다. 어떤 식물이 갑자기 키가 15미터나 자라면, 급속한 성장에 뿌리가 튼튼하지 못해서, 약간만 바람만 불어도 금방 쓰러질 것입니다. 그러나 모소 대나무는 그런 급속한 성장에도 조금도 요동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견고한 뿌리라는 기초공사가 잘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소 대나무는 순을 내기전에 먼저 뿌리가 땅속 깊숙히 그리고 멀리 뻗어 나가서 일단 순이 돋아나면 깊고 넓게 자리 잡은 뿌리로 부터 엄청난 영양분을 공급받아 순식간에 자라는 대나무 입니다. 화려한 외적 성장보다, 먼저 깊이 뿌리내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 대나무는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살기 위해서는 본질(기본)로 돌아가는 것, 즉 '백 투 더 베이직(Back to the Basic)'이 필요합니다.

1. 성도의 세상살이나 신앙생활의 근본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사는 것입니다. 

교회가 말씀운동과 기도운동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 복음적이고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것이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습관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아야 합니다. 

적어도 한국교회 안에서 성공적으로 목회하고 있다는 분들이 하는 목회세미나를 참석하면 레파토리가 거의 같습니다.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말씀과 기도에 빠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성령의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은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승천하시면서 보혜사 성령을 언급하셨습니다. 자신이 떠나가면 자신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께서 너희 가운데서 항상 계셔서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라고 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도와주시는 영"을 말하며 "진리의 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은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며, 성령을 소멸치 말고, 성령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3. 교회입니다. 
 
한국 땅에만 5만개가 넘는 교회가 있고 광주시내에만도 1,100여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매도 불구하고 교회를 바로 알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교회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바로 새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께서 함께 역사하는 곳이 바로 주님의 교회입니다. 교회야 말로 주의 영이 거하시는 유일한 전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신앙생활은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소홀리 하고서도 신앙생활이 잘 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인간들의 사심과 욕심과 정치로 무너진 교회를 재건하고 교회를 건강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교회를 사랑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을 어떻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한국교회, 그리고 모든 성도들은 근본을 바르게 하고 근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처음과 근원과 뿌리와 본질을 찾아서 그것을 기초로 다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튼튼하고 장구하며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있고 교회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가 우리 한글성경 3절에서 "나도 '''' 알았느니"하는 말은 원래 "나도 결심했다"는 말입니다. 사실 누가복음서는 초기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뿌리가 없이 교회가 자라고 있을 때 뿌리없는 나무가 쉽게 말라버릴 것을 알았기에 뿌리와 근본과 근원을 초대교회에 제공하여 주기 위해서 마가와 마태 다음으로 누가가 기록을 한 것입니다. 이러한 각오와 결심으로 누가는 누가복음을 완성했습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누가의 그 첫 심정과도 같은 결심으로 근본에 충실하고 기본과 근원과 기초와 뿌리를 튼튼히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부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교회 되기 위해서는 근본, 근원, 기초가 중요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교회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때에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우리 다시 한 번 기본으로 돌아갑시다. 그리고 힘을 모아 교회다운 교회를 세워갑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