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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 (롬 1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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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 (롬 12:4-11)

     
여러분 모두에게, 특히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한 가족 일곱 명이 아파트 14층에서 투신하였습니다. 그런데 모두 살아나서 장안의 화제가 되었답니다. 기자가 알아보니, 할아버지는 제비여서 살았고, 할머니는 촉새라서 살았대요. 아버지는 기러기 아빠라서 살았고, 엄마는 바람이 나서 살았답니다. 큰딸은 날라리라서, 둘째는 비행청소년이라서, 막내는 덜 떨어진 녀석이라서 살았답니다.
     
옆집에 사는 노총각이 이를 보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유행인가 보다 하고 자기도 뛰어 내렸는데 역시 살았답니다. 알아보니 그 노총각은 맨 날 뜬구름만 잡고 다녔대요.
     
참으로 씁쓸한 이야기입니다. 가족의 해체를 꾸짖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유행이라도 높은데서 뛰어내리면 안 됩니다. 우리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가는 사람들이지 높은데서 내리뛰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아름답게 가꾸어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가정을 지키고 가족을 축복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 우리는 하나님의 첫 번째 목적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더 잘 알고, 더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지음 받은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예배’라고 합니다. 이제, 그 두 번째 목적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은 먼저 예배하여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함께 하나님의 가족 된 형제와 자매들을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고 하신 것이 첫째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 22:39)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된 이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교제”라고 합니다. ‘예배’가 첫 번째 목적이라면 ‘교제’는 두 번째 목적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예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가족인 형제와 자매들과 사랑을 나누는 교제를 하여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함께 교제하여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까?

I. 한 몸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서로 교제하여야 할 사람들입니다. 오늘 말씀은 교회를 설명하기 위하여 독특한 비유를 사용합니다. 
     
4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 4a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여기에 ‘한 몸’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땅에 있는 교회를 설명하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비유로 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친밀하고 같은 생명을 가진 존재인가를 설명하는 탁월한 비유입니다.
     
1. 교회는 한 몸입니다.
     
교회를 한 몸이라고 하는 것은 가족이라는 표현보다 훨씬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몸에는 입도 있고, 눈도 있고, 코도 있습니다. 손도 있고, 발도 있습니다. 서로 함께 의지하여 한 몸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지 눈도 코도, 손도 발도 입을 싫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눈이 보고 코가 냄새를 맡아도 야금야금 먹는 것은 입이었습니다. 또 입이 예하고 대답을 하면 손과 발이 피곤하게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두 입을 싫어하였습니다.
     
그래서 입을 골탕 먹이기로 하였습니다. 눈이 썩은 사과를 발견하였습니다. 코는 일부러 코를 막았습니다. 발이 썩은 사과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손이 썩은 사과를 입에 강제로 넣었습니다. 썩은 사과를 먹는 입을 꼬습게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썩은 사과를 먹고 배탈이 나자 먼저 손에 힘이 빠지지 시작하였습니다. 발이 후들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눈이 풀리고 코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온 몸이 배탈 설사로 홍역을 치렀습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의 몸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몸은 운명공동체입니다. 장기를 이식하여 어떤 장기는 다른 사람의 몸에 가서 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몸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교회를 하나의 몸이라고 할 때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5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 5a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각각의 몸을 가지고 있는 여러 사람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수를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을 단 하나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2.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엡 1:22). 예수님이 머리이시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머리에 붙어 있는 몸입니다. 머리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지 않는 사람은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마음에 모셔 들인 사람들은 바로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아주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머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사람의 머리가 될 때라야만 우리는 한 몸입니다. 몸이 예배당에 함께 있어도 머리가 다른 사람은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의 지시를 받고 행동하는 사람은 교회가 아닙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머리이신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가기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머리로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 것입니까?


II. 지체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하였다는 공동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몸에 속하여 있는 서로 다른 지체들의 독특성이 있습니다.
     
4절 말씀입니다.
 :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그 지체들이 다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몸에는 여러 가지 지체가 있고 그 지체의 기능도 각각 다릅니다. 
     
1.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이것은 다양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에는 아주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우리의 몸에는 눈, 코, 입, 귀, 팔, 다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않는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교회에도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교회를 이루고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에는 의학적인 전문 지식이 있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내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은 한 몸이듯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디에 있어도 한 몸입니다. 더 다양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함께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몸의 지체는 다양성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5절 말씀입니다.
 :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여기에서 주목하여야 할 말은 서로 지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지체들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각각 서로를 돕는 지체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2. 한 몸에 서로 지체가 됩니다.
     
이것은 연관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배탈이 나면 팔 다리에 힘이 빠집니다. 입이 맛있게 먹은 음식은 팔 다리에 힘을 공급해줍니다.
     
누군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향해서 이런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제의 가장 깊은 단계는 ‘형제자매들을 정말 가족과 같이 사랑하기’입니다. 온전히 우리의 형제자매를 위해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교제(fellowship)’라는 말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koinonia)’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서로에게 온전히 헌신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교제에서 가장 깊은 단계입니다. 이것이 친척관계(kinship)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는 단계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 단계에 이를 수 있을까요? 우선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의 편에 서서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남의 일이라며 발을 뺄 때, 우리만큼은 손을 걷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 말입니다. 인생은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관계들로 엮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라고 보내졌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을 알고, 그들을 사랑하라고 보내졌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함께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몸은 다양성과 연관성뿐만 아니라 또 다른 특성이 있습니다.
     
6절 전반절입니다.
: 6a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몸에는 다양한 기능을 가진 지체들이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독특성을 발휘하여야 합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저마다 다른 은사를 사용하여야 합니다. 
     
3. 한 몸에 각각 지체가 됩니다.
     
이것은 독특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몸에서 눈은 보는 역할을 하고, 귀는 듣는 역할을 하고, 코는 냄새 맡는 역할을 합니다. 교회에서 여러 사람이 자신의 은사를 가지고 각각의 독특한 역할을 합니다. 가령,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의 정도에 맞게 예언해야 합니다.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나누어 주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지도하는 사람은 열성으로 지도하여야 합니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교회에 와서 그냥 앉아서 무언가를 잘 받고 가기만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이 자리에 와 계신 이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이곳에서 섬기고 봉사하도록 하기 위해 여러분을 이 자리에 부르셨습니다. 모든 가족들이 그렇듯 영적 가족들에게는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기의 영역에서 가족의 한 일원으로서 할 일들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큰일에 우리가 각각 맡아서 감당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자기의 일을 함으로 전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여러 지체가 서로 연결되어 자기 역할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진정한 공동체, 한 몸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있는 교회의 지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한 몸을 이루고 각각 자신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 교회의 역할을 바로하기 위하여 한 몸에 속하여 있는 지체로써 실천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III. 실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을 머리로 한 교회의 몸입니다. 우리가 하나 되려고 하기 전에 성령님께서 이미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켜야 합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조심하며, 우리가 순종하여야 것이 있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악한 것을 미워하고, 선한 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친밀함을 쌓아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시간만 흐르면 저절로 친밀감이 쌓이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기대로 시작하였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미움이 쌓여 실망하고 때로는 증오를 쌓아갈 수도 있습니다.
     
1. 우리는 신실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한 몸의 지체로써 친밀감을 유지하기 위하여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는 말씀을 반드시 기억하여야 합니다. 거짓을 바탕으로 하는 관계는 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몇 주 전, 저는 한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자기 남편과 바람을 피우는 여자가 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저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외도를 하며 자기 자신도 망가뜨리고 남의 가정도 파괴하는 그 사람을 용서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의 이름을 정확히 알아서 더 괴롭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있는 여자가 다른 가정이 있는 남자와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더욱이 그리스도인으로써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아내로써 남편으로써 신실성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마땅하지 않은 일입니다. 빨리 정리를 하셔야 합니다. 자신의 가정에 신실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교회에 신실할 수 있겠습니까?
     
신실함, 이것은 오늘의 사회에서 점차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것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신실함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신실하시기를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합니다.

또 우리는 무엇을 조심스럽게 지켜야 합니까?
     
10절 말씀입니다.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오늘 성경은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다정하게 대하며,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서로 먼저 하라는 말은 ‘다투어 뒤지지 말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오늘 관심을 가지려는 말은 ‘서로’[ajllhvlwn/알렐론]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서로 상호간에’라는 말입니다. 가족 간에는 오고 가는 상호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2. 우리는 소통하여야 합니다.
     
소통(疏通)이란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하는 것입니다.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 몸의 건강도는 소통입니다. 혈관이 막히지 말아야 합니다. 신경도 뭉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건강도도 성도 사이에 소통입니다.
     
한 달여 전쯤,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래 전에 목회하던 교회에 계셨던 권사님이셨습니다. 아주 반갑게 옛날이야기를 한참 나누었습니다. 거의 20년 가까이 되었는데 잊지 않고 전화를 해 주어서 고마웠습니다. 더욱이 저를 잊지 않고 기도해 주신다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 돈을 좀 빌려달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급하셨으면 저에게까지 전화를 하셨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게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주 후, 그 교회의 60주년 행사가 있어서 방문을 하셨다가 그곳에서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분은 오래전에 그 교회를 떠났고, 아는 사람들과 돈 문제로 모두 관계를 끊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우리말에 돈 잃고 사람 잃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관계로 시작합니다. 정말로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믿고 차용증도 없이 빌려줍니다. 그러다가 막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로 소통이 막히게 되면 영적인 장애까지 입게 됩니다. 우리는 보다 더 정직해 져야 합니다. 돈 문제에 있어서 정직하여야 합니다. 돈은 선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닙니다. 돈은 선한 일도 할 수 있게 하지만 돈 때문에 더러운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성경은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 6:5)하였습니다. 돈 문제로 신앙을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친밀함을 유지하기 위하여 서로의 소통을 방해하는 것을 제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의 관계와 교제의 초점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11절 말씀입니다.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바울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열심을 내어서 부지런히 일하며, 성령으로 뜨거워진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십시오.”[새번역].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열렬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라고. 우리의 관점은 주님이어야 합니다.
     
3. 우리는 주께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한다는 마음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 하는 일을 건성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쓰레기 청소를 하면서도 늘 환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할아버지 청소부가 있었습니다. 무엇이 좋아서 저리도 싱글거리는 것인지 궁금해 하던 청년이 그 이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청소부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한 모퉁이를 청소하고 있는 거라네. 그러니 즐겁지 아니한가!”
     
우리의 자세가 바로 우리의 인생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그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신앙입니다. 마태복음 25:40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일을 하나님을 위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예배도 자기를 위하여 이기적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하여 하는 것이 바로 목적에 이끌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리는 생활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체로써 한 몸 안에서 각각의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서로에게 신실하여야 합니다. 서로와 소통하여야 합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하는 마음으로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특권을 생활 속에서 경험해 가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완벽한 교제를 이루지는 못한다고 해도 소속감을 가지고 우정을 나누며 함께 동역하고 가족 관계를 경험해 가야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하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서로 사랑하고 섬김으로 하나님의 가족 됨을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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