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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의 사귐 (요일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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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사귐 (요일 1:1-10)


1. 영국의 대표적인 컨트리, 포크송의 가수 찰리 랜드보로(Charlie Landsborough)는 어려서 학교를 일찍 그만두고 전화수리공, 철도공, 제분공장 등에서 일하며 어렵게 살아갔음에도 그의 노래는 서민들의 마음을 잘 파고드는 순수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래마다 사람의 마음을 밝게 만들어주는 힘, ‘빛’이 있습니다. 그의 나이 지금 70세이지만 60세부터 더욱 더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노래 중 <구세주의 노래>(Saviour's Song), <나의 영원한 친구>(My Forever Friend) 등은 특히 자신의 삶에 함께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사람들에게 ‘영원한 친구’로 소개하는 감동적인 것입니다. 복음성가 이상의 감동을 받아 여러분에게 잠간 <나의 영원한 친구> 가사를 소개합니다. 

<누구든지 때로는 자그마한 도움이 필요하게 되죠. 누구도 홀로 견뎌낼 수는 없으니까요. 누구나 친구가 필요하죠. 제 친구 이야기 해드리죠. 어두운 밤으로부터 무지개가 끝날 때까지, 결코 내 곁을 떠나지 않을 내 영원한 친구랍니다. 심지어는 내가 외면할 때에도 나를 돌보아 주셨죠. 그의 사랑은 아무도 꺾을 수 없답니다. 심지어 내가 멀리 떠날 때에도. 내가 숨쉬는 매 순간마다 나와 함께 한답니다. 이젠 당신도 알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당신이 그를 만나길 원한다면. 그런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진심 어린 마음으로 제 친구에게 물어보세요. 그가 역시 당신의 친구가 되어 줄 겁니다. 그는 내 영원한 친구죠. 결코 내 곁을 떠나지 않을 친구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죠.>

여러분, ‘어두운 밤으로부터 무지개가 끝날 때까지, 결코 내 곁을 떠나지 않을 영원한 친구’가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여러분과 사귀기를 원하십니다. 친구로 사귀기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하나님과 친구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와 함께 하는 친구가 되려면 깨끗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친구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세상에 온 것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말씀하셨습니다.

(눅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켜 자신의 영원한 친구로 삼으시는 분이 세상 어디에 계십니까? 어느 날, 들것에 누인 한 중풍병자가 예수님 앞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몰려 있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들것에 메인 채 지붕 기와를 벗겨내고 예수님 앞에 달아내려졌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눅5:20)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하나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라며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눅5:24)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고 말씀하시며 그 중풍병자에게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중풍병자가 곧 일어나 들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죄 사하는 권세를 보여 주시자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두려워하며 감탄했습니다. 바로 그 후 예수께서 나가셔서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를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자 그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마태는 자기를 불러주신 예수님께 너무나 감사해서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 잔치에 여러 많은 세무원들이 참석했습니다. 

이 광경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목격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비방합니다.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세리(세무원)를 죄인으로 취급해서 절대로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들과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을 죄악으로 간주해서 처벌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비방에 대해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5:31-32)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그러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며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눅 7:34)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죄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예수께서는 그 누구든지 자신을 영접하는 사람을 친구로 삼으십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스스로 깨끗하다며 가장 하나님과 가까운 채 했지만, 회개할 줄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 했고(마3: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들을 경계해야할 ‘위선자들’(마23장), 가까이 해서는 안될 요주의 인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앞에 나와 죄 사함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2.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으로 교제하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이듯, 서로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거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을 때, 예수께서 함께 하시는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요 17: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다윗과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은 그 믿음이 같았습니다. 사무엘 14장을 보면, 요나단이 블레셋과 전투하는 기사가 있습니다. 중무장한 대군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요나단은 소수의 소년병에 쇠붙이 하나 없는 나무 막대기로 만든 무기가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의 임전태세를 잘 보여주는 말씀, 사무엘 상 14:6을 보겠습니다. 

(삼상14:6) 우리가 이 할례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과연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니라.”는 믿음을 가진 요나단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러면 다윗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다윗도 마찬가지로 블레셋 장수 거인 골리앗과 맞붙게 되었습니다. 사울 왕 당시 양치는 소년에 지나지 않은 다윗과 거인 골리앗과의 싸움은 전력상 전혀 승산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양을 칠 때 사용하는 도구인 물매와 돌맹이 5개가 고작인 다윗과 거인에다 각종 무기로 중무장한 골리앗과의 싸움은 누가봐도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거인 골리앗이 감히 자신을 대항에서 나온 양치기 소년 다윗을 향해 “(삼상17:43-44)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왔느냐?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며 비아냥거리며 협박합니다. 소년 다윗은 전혀 굴하지 않고 이렇게 당당하게 외칩니다.

(삼상17:45-47)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소년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 싸웠습니다.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양치기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돌맹이 하나로 무너트렸습니다. 다윗의 믿음이 승리한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과 요나단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한 믿음, 그리고 다윗과 요나단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싸우는 믿음이 같은 소년들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싸운다는 삶의 목표가 통하는 소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같은 승리를 계기로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는”(삼상18:1) 진정한 친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언약을 맺고 그 증표로 “요나단은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벗어 주었습니다.”(삼상18:4) 

당시 남에게 자기 옷을 입혀주고, 군복과 칼과 활과 띠까지도 벗어준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상대방에게 내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은 단순한 우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혈연관계 이상의 우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훗날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 사울 왕이 다윗을 시기하여 살해하고자 하는 음모를 알았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왕을 찾아가 나라 민족을 위해 세운 다윗의 공로를 들어 다윗을 죽이지 말 것을 탄원합니다. 

다윗은 참으로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며 나라 민족을 위해 싸웠건만 어찌하여 그러한 충신을 죽여 무고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느냐며 아버지를 설득합니다. 이러한 아들이 못마땅한 사울 왕은 요나단에게 욕설과 저주를 퍼부으며 심지어 단창을 던져 죽이려고까지 합니다.(삼상20:30-31) 그러나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왕으로부터 욕을 먹어가며 죽음을 무릎쓰고 아버지를 거역하면서까지 다윗의 생명을 구원하고자 합니다. 그 이유를 사무엘 상 23:17에서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상23:17)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하니라 

여기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이 비록 황태자이지만 왕의 자리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신앙에서 탈선하여 다윗을 죽이려는 아버지를 배신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삶에 있어서 혈연관계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비중이 컸던 것입니다. 믿음이 서로 통하는 친구관계가 신앙에서 일탈한 부모자식의 혈연관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과연 요나단은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다윗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요나단은 다윗을 심히 기뻐했던 것입니다.(삼상19: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친구, 서로가 예수께서 함께 하시는 진정한 친구가 되시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혈연관계나 인간사회의 이해관계는 세상에서 뿐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영원합니다. 잠시뿐인 이 세상의 혈연관계나 이해관계에 얽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마음에서 멀어지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한 친구관계를 생명처럼 여기는 지혜롭고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나단과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서로 통하는 사이였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마음들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피차에 서로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했던 것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그 뜻에 순종하기 원했기 때문에 다윗에게 자기 자리를 양보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마음들이 되셔서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처럼 마음과 마음이 하나 되어 하나님 앞에 영원한 친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 하나님의 영원한 친구가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품은 뜻과 마음이 모두 예수님의 뜻과 마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상숭배의 죄악으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B.C. 872년경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다윗 왕처럼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며 그 계명대로 행하여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철저하게 우상을 타파하고 제사장 지파인 레위 지파를 전국에 보내 하나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주변 모든 나라들로 하여금 남 유다와 여호사밧 왕을 두려워하게 만들었고, 여호사밧 왕은 그 나라들로부터 예물을 받고 나라는 조공을 받아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치게 되었습니다.(대하17장) 

반면 북 이스라엘은 아합 왕이 통치했는데 우상숭배하는 이세벨을 왕비로 맞아 나라 전체가 우상숭배로 물들었습니다. 아합은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치자 자기 딸 아달랴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의 결혼을 제의합니다. 여호사밧은 그 제의를 받아들여 결국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은 결혼동맹을 맺게 되었습니다. 아합과 여호사밧은 이렇게 해서 사돈지간이 되었습니다. 아합은 이를 빌미로 여호사밧 군대와 동맹군 결성을 제의하고 여호사밧은 어쩔 수 없이 아람과의 전쟁에 동맹군으로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뒷맛이 찜찜하여 미가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게 되었습니다. 미가야 선지자는 우상숭배의 악행을 서슴지 아니한 아합을 죽이기로 작정하셨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합니다. 이미 전쟁을 선포한 마당에 아합은 아람과의 전쟁을 밀어붙였습니다. 아합은 아무래도 미가야 선지자의 말씀이 두려워 자신은 갑옷 위에 병사로 변장하고 여호사밧으로 하여금 왕복을 입고 전장으로 나가게 합니다. 그러나 적병 하나가 무심코 쏜 화살이 병사로 변장한 아합의 갑옷을 뚫고 명중했습니다. 아합이 잔꾀를 부려 미가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 말씀을 피하고자 했지만 결국 비참한 죽임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 전쟁에서 여호사밧 왕은 겨우 살아 돌아왔습니다. 여호사밧이 왕궁에 들어오자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후를 통해 이렇게 준엄하게 책망하십니다. 

(대하19:2-3)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애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보다 혈연관계를 더 앞세웠던 여호사밧을 진노하사 죽이고자 하셨지만, 그래도 우상을 타파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믿음으로 보시고 살려주셨다는 것입니다. 세상 어떠한 혈연관계나 이해관계보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삶으로 하나님과의 사귐이 가장 지혜롭고 복된 것입니다. 


3. 다음으로 오늘 본문 5절에서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귐을 가진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면 누구든지 밝아집니다. 어두웠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어두웠던 생활이 밝아집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제자들은 깊은 좌절과 절망의 어두움에 빠졌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신 지 사흘 되던 안식 후 첫날 저녁 때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은밀히 한 곳에 모여 방문을 굳게 닫고 있었습니다. 그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며 못자국이 있는 그의 손과 창 자국이 있는 그의 옆구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의 부활에 놀라움과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어두움이 짙게 배였던 방안이 순간 밝은 빛으로 채워졌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못자국을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부활을 믿지 않겠다던 도마에게도 나타나셔서 그의 손과 옆구리를 내보이시며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십자가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장난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예수의 부활은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당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도 그것으로 예수의 역사는 모두 끝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는 그 기나긴 사흘 밤낮의 <어두움>이 <빛>으로 바뀌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아니 이전보다 더 깊은 <어두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예수 부활을 경험하고 예수 부활을 믿게 된 사람들은 확실히 달라진 모습의 삶을 보여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어떠한 환난과 핍박과 고난을 당해도 현실에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주어진 자신의 삶이 어떠하든지 원망 불평하거나 절망하며 어두워지지 않고 항상 밝고 기쁜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먹고 사는 일로 어두워지지 마시고 항상 밝게 사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빛으로 사는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병들었다는 이유로 어두워지지 마시고 항상 밝게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실패했다는 이유로 어두워지지 마시고 항상 밝게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여호와 닛시, 여러분의 삶을 승리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돈 없다는 이유로 어두워지지 마시고 밝게 삽시다.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만유(萬有)의 주, 즉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만유의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여러분의 것입니다. TV 프로그램 중 <동물의 세계>을 보면 대부분 악한 동물들은 다 밤을 좋아합니다. 사람도 악하면 밤을 좋아하게 되어 있고, 악한 마음은 밤이 제일 편하고 즐겁습니다. 그래서 맹수들이 다 밤에 움직입니다. 밤에 움직이는 선한 동물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선한 동물은 낮에 활동하고 밤에는 쉽니다. 악한 동물은 반대입니다. 사자나 하이애나를 보십시오. 낮에는 쉬고 밤이 어수룩하기를 기다립니다. 나쁜 짓 하는 사람, 모든 악한 문명, 악한 자의 발걸음은 밤에 활동하고 밤에 움직이는 야행성입니다. 새들까지도 그렇습니다. 독수리나 부엉이나 고양이과에 속하는 동물들이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마음은 어두움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모두가 다 어두움이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예수 없이는 어두움입니다. 아무리 권세가 높아도, 배운 것이 많아도 예수 없이는 모두가 다 어두움입니다. 그것들은 잠시 인간을 밝게 해주는 것같은 거짓된 빛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생을 영원히 밝고 행복하게 해주는 참 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너희는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그 어떠한 것을 누리고 있다 해도 인생의 참된 빛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빛이 되시는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신앙생활로 여러분의 삶에 어두움이 조금도 없는 항상, 그리고 범사에 밝고 기쁨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과 사귐을 가진 사람은 진리,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요일1:6)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요15: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친구처럼 대면하여 말씀하셨습니다.(출 33:11) 모세는 친구처럼 대면(對面)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수종들던 여호수아를 그 후계자로 세우셨습니다.(수1:1-9)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1:5-9을 보겠습니다. 

(수1:5-9)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친구 모세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여호수아에게도 함께 하리라는 약속입니다. 모세에게 명한대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다 지켜 행하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친구처럼 항상 함께 하여 형통하게 하고 평탄하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모세와 마찬가지로 평생 함께 하는 친구가 되어 주리라는 약속입니다. ‘진리대로 행하여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는 사람은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고 했습니다.’(3절) 진리대로 행하여 하나님의 친구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더불어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말씀대로 행하여 하나님과 사귀는 삶에는 하나님의 기쁨과 사랑을 더불어 누리게 됩니다. 말씀대로 행하여 하나님과 사귀는 삶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더불어 누리게 됩니다. 말씀대로 행하여 하나님과 사귀는 삶에는 하나님의 승리와 풍성함을 더불어 누리게 됩니다. 세상은 결국 하나님 말씀대로 됩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마 5:18)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복되며 형통한 삶이 됩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사시므로 여러분의 하나님과의 사귐에 항상 빛이 충만하며 하나님의 평탄케 하심과 형통케 하심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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