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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승부처, 있다 (창 4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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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승부처, 있다 (창 42:1-10)


그야말로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입니다. 이 가을에 어떤 책들이 주목을 받고 있을까요?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책이 ‘믿음사용설명서’란 책입니다. 어떤 인터넷몰에서는 이 책을 가을에 읽어야 할 책으로 선정하여 독후감을 쓰게 하는 행사를 열고, 서평단까지 모집하고 있습니다. 이 책 다음으로 눈길을 끄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닉 부이치치(Nick Vujicic)의 ‘허그(Hug)’란 책입니다. 

올해 28살인 저자(著者)는 태어날 때부터 팔과 다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살을 결심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희망전도사가 되었을까요? 그 나이, 그 몸으로 어떻게 38개국을 방문하여, 370만 명에게 강연을 하고, 네 명의 대통령을 만나며, 다섯 나라의 국회에서 연설까지 하는 유명인사가 되었을까요? 그의 인생 승부처는 언제였을까요? 

어떤 인생이든 승부처가 있습니다. 그 승부처를 어떻게 돌파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가 어떻게 달려왔는가, 무엇을 가졌는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승부처, 결정적인 순간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인생전체의 승패를 결정짓습니다. 

창세기 43장을 펼치니 갑자기 유다가 등장합니다. 지금 전체 흐름은 요셉에 대한 스토리입니다. 아니 그러고 보니, 그가 이렇게 갑자기 등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창세기 38장입니다. 그는 이방여인과의 사이에서 아들 셋을 둡니다. 그 다음 스토리는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할 정도입니다. 그는 창녀로 변장한 며느리 다말과 잠자리를 같이하여 며느리는 쌍둥이를 낳습니다. 

그런 유다가 창세기 43장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그는 지난번에 애굽에서 있었던 일을 아버지에게 소상히 아룁니다. 애굽의 총리 그 사람이 아우를 꼭 데리고 오라고 말입니다. 아버지는 베냐민을 놓고 고민합니다. 도리어 아들들을 나무랍니다. 그러자 아들들은 이런 저런 자기변명들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바로 그때 유다가 나서서 대단히 중요한 말을 합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창 43:9). 

그는 아버지를 위하여, 그리고 가족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던지겠다는 결심입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주저주저하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가 요셉 앞에 세웁니다(창 43:15). 

그런데 애굽에서 어떤 사건이 터집니까? 요셉이 일부러 저들의 곡식자루 속에 곡식 값으로 받은 돈을 다시 넣고, 특별히 베냐민의 자루 속에는 요셉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은잔을 넣어 보냅니다. 그리고선 얼마 뒤 부하들로 하여금 뒤쫓아 가게 하여 저들을 도둑질한 사람들로 내몹니다. 확실한 물증 앞에 더 이상 그 어떤 변명이 통할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유다가 나섭니다.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창 44:33). 자기가 베냐민 대신 볼모로 잡혀있겠다는 것입니다. 부모, 그리고 형제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유다의 희생적 태도로 말미암아 전화위복의 계기가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창세기 42장부터는 요셉 한 개인의 스토리에서 야곱패밀리의 스토리로, 육적인 복에서 영적인 복으로 주제가 바뀌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육적인 복의 주인공은 두 말할 필요 없이 요셉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복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요? 믿음의 계보가 어떻게 이어집니까? 아브라함, 이삭, 야곱까지는 특별한 일 없이 잘 이어져왔습니다. 그런데 야곱에 이르러 하나님은 분명 고민이 깊으셨을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저들을 테스트하기 시작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칠년흉년, 그리고 그 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테스트 앞에서 먼저 장자 르우벤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문제 앞에서 다른 형제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습니다(창 42:22).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의 행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자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자기가 사랑하고 아끼는 두 아들까지 희생시키겠다는 것입니다(창 42:37). 그는 장자로서 가장 유력한 위치에 있었지만 결국 믿음의 계보에서 탈락하고 맙니다. 다른 형제들도 모두 문제 앞에서 몸을 사리고 있습니다. 적극적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어떠했습니까? 그는 지금 승부수를 던지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 자신의 온 몸을 던져 희생하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 사건으로 유다는 일약 이스라엘의 영적 장자가 됩니다. 야곱이 죽기 전에 자식들을 축복합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창 49:8).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 49:10). 

열두 아들들 중 가장 길게, 많은 축복을 받습니다. 믿음의 계보가 르우벤도, 요셉도 아닌, 유다에게로 이어져 그를 통해 다윗 왕이, 그리고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실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그는 지난 날 요셉을 팔 때도 함께 있었고, 한때 타락하여 이방여인과 살았으며, 며느리와 관계하여 자식을 낳기까지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승부처에서 그야말로 승부수를 던졌고, 그것이 이런 복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룻 4:12). 

룻기에서 다윗의 계보가 놀랍게도 ‘베레스’로부터 시작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룻 4:18이하). 베레스, 그는 부끄러움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가장 앞자리에 놔주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유다를 이렇게 높여주고 계십니다. 그의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승부처는 스포츠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생활하는 우리에게도 승부처가 있습니다. 그 승부처에서 ‘믿음’을 붙잡고 스퍼트(spurt)하여 나아가느냐, 주저앉아 있느냐가 인생전체를 결정짓습니다. 유다에게 믿음의 승부처는 부모형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바로 그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눈에, 그리고 내 마음에 다른 사람을 도와줘야 되겠다는 마음을 심어주십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이 마음에 유다처럼 반응하십시오. 믿음의 승부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회복의 기회를 주십니다. 이 승부처에서 유다처럼 승리하는 주의 자녀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옥성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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