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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을 아는 사람 (삼하 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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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아는 사람  (삼하 9:1-13)
 

<너희가 사랑을 알아?>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로서 유명한 기독교 신학자 C. S. 루이스는 8세 때 어머니를 잃고 절대로 엄마 생각도 하지 않고 울지도 않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는 슬픔이 찾아올 때 외통수로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했습니다. 60세가 넘도록 루이스는 철저히 감정의 벽을 쌓은 채 학문에만 전념해서 그야말로 사랑도 눈물도 모르는 냉철한 이성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루이스가 60세가 넘어서야 조이 데이비드맨이라는 여성을 만났습니다. 대개 사람들이 루이스와 같은 대학자를 만날 때 책에 사인을 부탁한다든지 하면서 경탄하는 것이 보통인데 조이는 달랐습니다. “당신은 왜 그 모양으로 사십니까? 당신은 사랑이 뭔지나 압니까? 당신처럼 사는 것이 인생입니까?” 자기에게 이렇게 당돌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조이가 처음이었기에 루이스는 놀라서 반문했습니다. “그래요.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사랑을 모릅니다. 혹시 당신이 사랑에 대해 안다면 나에게 가르쳐주십시오.” 

이런 인연으로 두 사람은 결혼했습니다. 결혼 당시 조이는 골수암으로 1년 밖에 못 산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후 3년 2개월을 살았습니다. 사랑의 힘으로 가능했던 것이지요. 나중에 루이스는 “내 평생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조이 데이비드맨과 산 3년 2개월이었다.” 

사랑을 아는 것은 생명을 아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사랑 받을 때 사람은 살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언제나 사랑할 대상을 찾아 헤매는 분입니다.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만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랑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까지 사랑하십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 드리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과 원수된 사람을 찾아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이런 사랑이 가장 잘 표현된 사건이 다윗의 원수의 손자 므비보셋을 보살펴 준 일입니다. 

사무엘하에 보면 므비보셋의 이름은 모두 다섯 군데에 걸쳐 나옵니다. 

므비보셋에 관한 삽화 I(삼하 4: 4) 

먼저 삼하 4: 4절을 보세요.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 저는 아들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할 때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로, 므비보셋은 대단히 곤란한 환경에 처한 사람이었습니다. 므비보셋은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이었습니다. 지금 므비보셋에 관한 이야기는 사울왕가가 망하고 다윗왕조가 들어 선 다음에 나옵니다. 그런데 새로운 군주 다윗과 관련해서 므비보셋은 참 난처하고 미묘한 처지에 있습니다. 할아버지 사울은 다윗과 숙적이요 피맺힌 원수였습니다. 여러 차례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가 블레셋 군대에 의해 그의 아들 요나단과 함께 길보아 산에서 전사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이 된 다윗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사울왕가의 잔존 세력들을 차례로 제거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므비보셋은 그 할아버지와 다윗과의 관계를 놓고 볼 때에는 서로 원수관계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요나단은 다윗과 목숨을 건 친구였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편을 들지 않고 친구인 다윗 편을 들어서 자기의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요나단이 죽더라도 요나단의 후손들을 돌보아 주기로 서약을 맺었습니다(삼상 20: 14-17). 그러나 할아버지 사울을 생각하면 다윗이 언제 어떻게 죽일지 알 수 없는 위험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둘째로, 므비보셋은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므비보셋은 겨우 다섯 살이었습니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 유모가 그를 업고 황급하게 도망을 치다가 그만 발을 헛디디고 말았습니다. 넘어지는 와중에 어린 므비보셋의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가 났습니다. 그 때부터 그는 두 다리를 다 쓰지 못하는 하반신 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참 불운한 사람이지요. 그런데 이 장애인이라고 하는 사실 때문에 므비보셋은 거꾸로 피비린내 나는 숙청과 학살 한 가운데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부끄러워하고 불편해 하는 약점을 통하여 우리를 도우시고 축복하십니다. 

므비보셋에 관한 삽화 II(삼하 9: 1-13) 

므비보셋에 관한 이야기는 오늘 봉독한 삼하 9: 1-13절에서 또 나옵니다. 여기에서 므비보셋의 종이요 과거 사울왕가에서 종노릇하던 시바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시바를 통하여 므비보셋의 소재를 파악한 다윗은 요나단과의 우정을 생각해서 므비보셋에게 두 가지 특전을 베풉니다. 먼저 과거 사울왕에게 속했던 일체의 토지를 므비보셋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므비보셋은 다윗의 다른 왕자들과 마찬가지로 궁전 왕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다윗 임금이 므비보셋을 자기의 친아들처럼 대했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참 흥미롭게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소개하는 삼하 9장은 끝을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 므비보셋이 언제나 다윗왕의 식탁에서 먹었으며 궁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만 살았다는 말까지는 좋은데 두 다리를 다 절었다는 말을 사족(蛇足)같이 덧붙이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반신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이유는 므비보셋이 다윗의 왕권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요? 

므비보셋에 관한 삽화 III(삼하 16: 1-4) 

그 다음에 므비보셋의 이야기는 삼하 16: 1-4절에서 또 나오는데 그 종인 시바의 모함을 소개합니다.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다윗은 정처 없이 유랑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시바가 큰 선물꾸러미를 들고 다윗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곳저곳 망명을 다닐 때 제일 긴요한 것은 식량이지요. 식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꼼짝없이 죽어야만 합니다. 그런 처지를 정확히 간파한 시바가 다윗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뇌물 공세를 펼친 것입니다. 먼저 다량의 음식을 다윗에게 바쳤던 것이지요. 

이제 다윗은 자연스레 시바에게 므비보셋의 행방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 때 시바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므비보셋이 압살롬이 일으킨 모반 사건이 자기 할아버지 사울왕가를 복권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믿어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시바의 말을 듣자마자 다윗은 그 말을 믿었습니다. 므비보셋을 반역자로 간주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내린 단안이 므비보셋에게 준 일체의 재산을 몰수해서 시바에게 준 것입니다. 이렇게 므비보셋은 자기의 종인 시바에게 배신과 모략을 당해서 재산을 다 빼앗겨버리고 맙니다. 

므비보셋에 관한 삽화 IV(삼하 19: 24-30) 

그런 다음에 삼하 19: 24-30절에 므비보셋에 관한 이야기가 또 나옵니다. 마침내 압살롬의 난이 평정되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환궁하기 위하여 요단강을 건너려고 할 때 므비보셋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이미 시바가 므비보셋을 모함해서 역모자로 몰아세운 뒤였기 때문에 다윗은 므비보셋을 고운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당연히 다윗이 므비보셋을 심문합니다. 26절을 보면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자기와 함께 피신을 하지 않은 이유를 다그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므비보셋의 대답을 살펴보기 전에 다윗을 영접하러 나온 므비보셋의 몰골을 주목해봐야 합니다. 24절을 보세요.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피하여 망명의 길을 떠난 그 날부터 발도 씻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아 입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초췌한 몰골이 되어서 다윗의 고난과 슬픔을 함께 했다는 말이지요. 므비보셋의 초라한 모습은 다윗의 왕권을 찬탈할 모습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이제 므비보셋은 자신의 억울한 모습을 하나 둘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26-28절을 보세요.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므비보셋이 다윗과 함께 움직이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다윗과 함께 떠나기 위해 시바에게 자신이 탈 나귀에 안장을 얹으라고 했지만 시바가 속였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다윗왕가에 대해서 역모를 꾀하려 했다는 것은 모조리 시바의 모략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왕이 자기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주었는지를 상기하면서 어떤 처분이든지 달게 받겠다고 말합니다. 적어도 이와 같이 겸손한 므비보셋의 모습에는 추호의 거짓도 없어 보입니다. 시바가 거짓말을 하는지 므비보셋이 거짓말을 하는지 성경은 분명히 밝히지 않지만 아무래도 시바가 더 간교해 보이고 므비보셋이 더 순진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윗은 일전에 므비보셋을 고발한 시바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므비보셋의 재산을 몰수해서 시바에게 주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므비보셋의 말도 들어보았기에 즉각 두 사람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뜻밖의 반응을 봅니다. 다윗은 두 사람 중 누가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는지 시시비비를 가리려 하지 않습니다. 반대신문도 하지 않았고 증인을 불러오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를 다시 받아들일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포용력을 보게 됩니다. 거짓과 위선, 배신과 음모까지도 다 포용할 수 있을 만큼 넓은 대인의 풍모를 보게 됩니다. 

29절을 보면 아직 므비보셋의 모반 가능성에 대해서 반신반의하는 다윗은 시바에게 주었던 재산의 절반만 므비보셋에게 환속시키라는 결정을 내립니다. 지난 며칠 동안 다윗은 너무나 가슴 아픈 변절과 배신을 당했습니다. 친아들에게도 배신을 당했는데 사울왕가의 합법적인 왕위 계승자인 므비보셋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므비보셋의 역모 혐의는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고 봐야 하겠지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므비보셋은 빼앗긴 재산의 절반만 되돌려 받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절에서 므비보셋은 다윗 임금께서 안전하게 환궁하신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시바가 자기 땅을 다 차지한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대수겠느냐고 대꾸합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시바가 간교를 부린 것처럼 보이지만, 므비보셋은 또 한 차례의 급박한 위기를 무사히 넘깁니다! 

므비보셋에 관한 삽화 V(삼하 21: 7) 

므비보셋에 관한 이야기는 삼하 21: 7절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납니다. 사울왕가에 대해서 원한과 복수심으로 가득 찬 기브온 사람들의 소원을 다윗이 들어주었습니다. 사울과 그 집안사람들이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했기 때문에 이제 다윗을 통하여 복수를 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사울의 후손 가운데 남자 일곱 명을 자기들에게 넘겨주어서 교수형에 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때 다윗은 므비보셋의 이름을 명단에서 뺐습니다. 

삼하 21: 7절을 보세요.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두고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요나단과의 언약을 생각해서 므비보셋의 이름을 살생부에서 뺐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해서 므비보셋은 또 한 번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참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지요! 

<다윗의 므비보셋 사랑 = 하나님 사랑의 예표> 

지금까지 므비보셋에 관한 성경의 이야기를 자세히 말씀 드렸습니다. 므비보셋은 그 누구보다도 TRAUMA, 정신적 충격과 상처가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므비보셋'이란 이름의 뜻은 '지독한 치욕'입니다. 므비보셋은 이름 그대로 육신은 물론이고 영혼까지 지독한 치욕 속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철없는 나이 다섯에 두 다리를 못 쓰는 중중 장애인이 되었으며 그 후 성인이 되기까지 자신이 왕족이라는 사실을 꽁꽁 숨기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할아버지 사울과 아버지 요나단이 모두 목숨을 잃은 마당에 자신의 목숨조차 백척간두에 달려 있었습니다. 

사울과 철천지원수였던 다윗이 왕권을 잡았습니다. 역성혁명이 일어날 경우 지난 정권의 왕족은 삼족을 멸해서 씨를 말리는 것이 상례가 아닙니까? 실제로 사울왕가는 거의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시는 다윗왕조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싹을 잘라버린 것이지요. 이제 딱 한 사람, 하지만 법통으로 볼 때 합법적인 왕위 계승자 0순위, 므비보셋이 아직 살아 있습니다. 다윗왕권의 중신들이 제일 먼저 제거해야 할 원수가 있다면 므비보셋입니다. 므비보셋은 사울과 요나단을 잇는 직계 후손이요 적자였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므비보셋은 살아남았습니다. 압살롬과 같은 정변이 일어날 때마다 므비보셋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모반을 일으킨 세력들과 손을 잡고 다윗왕조를 넘어뜨리려 한다는 의구심을 살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바가 이런 기회를 틈타서 므비보셋을 역모죄로 엮어 넣으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므비보셋은 이 모든 위기를 잘 넘겼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상처와 약점이 큰 득이 될 수 있습니다. 므비보셋은 다섯 살 때 두 다리를 못 쓰는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에게는 일생동안 씻기 어려운 상처가 되었겠지만 오히려 이 장애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두 다리를 다 쓰지 못하니까 다윗이 역모를 일으킬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수시로 므비보셋이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의 약점이 오히려 그를 살렸던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과거에 우리를 충격과 공포로 몰고 갔던 큰 상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것 때문에 우리는 더 대성할 수 있습니다. 작고한 소설가 이문구씨는 부친이 남로당에 관계해서 집안이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이문구씨만 간신히 살아남아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났습니다. 아직 연좌제가 시퍼렇게 살아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숨죽여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과 상처 때문에 이문구씨는 더욱 더 훌륭한 작품을 쓸 수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출신성분과는 정반대인 보수 우익을 대표하는 문인 김동리씨 문하에 들어가 문단의 총아로서 발돋움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문열씨 역시 아버지가 좌익 활동을 하다가 월북했기 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았는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아픈 상처와 충격적인 기억이 더 좋은 것으로서 승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지요! 

둘째로,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아버지 덕을 톡톡히 본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다윗과 둘도 없는 친구였을 뿐 아니라 둘 사이에 아름다운 언약이 있었기 때문에 다윗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다윗은 일찍이 사랑했던 친구 요나단과 맺었던 사랑의 언약, 헤세드를 잊지 않았습니다. 헤세드는 변함없는 사랑, 충성된 사랑, 한결 같은 신뢰의 사랑으로서 환경이나 감정의 변화에 구애 받지 않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했을 때의 그 사랑이지요. 

므비보셋은 억울한 모함도 당했고 여러 차례 죽을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다윗이 하나님 앞에 세운 사랑의 언약, 헤세드 때문에 살아납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이 지켜주신 사람입니다. 므비보셋 자신도 이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죽은 개'(삼하 9: 8)만도 못한 자기를 거두어준 다윗의 은혜를 한결 같이 기억했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그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나 사고도 하나님께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므비보셋에게 다윗을 붙이셔서 보살펴주신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 주변에도 많은 좋은 사람들을 붙여주셔서 여러분이 상처를 잊고 새 힘을 얻도록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에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셔서 지난날의 아픔과 상처를 잊게 만드십니다. 극복하기 어려운 TRAUMA가 있었던 므비보셋에게는 다윗이라는 방패막이가 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어떤 아픈 상처와 괴로운 기억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실 것입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했던 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을 미리 보여줍니다. 

다윗이 왕이 된 다음 제일 먼저 한 일은 자기의 왕권을 위협할 원수를 찾아 사랑을 베푸는 일이었습니다. 칼을 휘두르는 힘자랑이 아니었습니다. 뜨거운 인간애에서 우러나온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이 사랑은 일시적 감정이나 동정심 때문에 나온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므비보셋의 아버지 요나단과 나눈 언약의 사랑, 헤세드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참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의심과 조건과 장애를 뛰어넘어 므비보셋을 끈질기게 사랑했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하나님의 힘과 사랑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무서운 힘을 휘둘러서 우리를 책망하시고 벌주시는 하나님이 아닐까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염려하지 마십시오. 적어도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보여준 사랑에서 예표(豫表)된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힘보다 앞섭니다. 삼하 9: 7절 말씀처럼 우리가 어떤 두려운 처지에 있든지 간에 "무서워하지 말라"고 다독이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셔서 그동안 우리의 죄로 인해 잃어버렸던 천국의 영토를 되찾아 돌려주십니다. 그리고 왕이신 하나님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시는 사랑입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 이런 사랑을 체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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