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믿지 아니할 수 없는 사람 (마 21:28-32)

  • 잡초 잡초
  • 282
  • 0

첨부 1


믿지 아니할 수 없는 사람 (마 21:28-32)


제 아이가 아기였을 때 제일 먼저 배운 말이 ‘엄마’라는 말이었고 그 다음에 배운 말이 ‘아빠’라는 말이었고 그 다음에 배운 말이 ‘시여’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은 ‘싫어’라는 뜻이지요. 어디서 그 말을 배웠는지 아주 신기합니다. 분명히 제가 가르치지 않았는데 어디선가 그 말을 배워서 써먹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저의 아이만 그런 줄 알았더니 남의 집 아이들도 그렇더라구요. 그리고 우리나라만 그런 줄 알았더니 외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대학교 룸메이트가 전화해서 물어보기를 ‘너의 아이도 노라는 말을 자주 하느냐''고 물어보는 것을 보면 외국 아이들도 제일 먼저 배우는 말 중의 하나가 no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왜 전 세계에 걸쳐서 아이들이 no라는 말을 자주 하느냐. 그것은 아담과 하와, 못된 조상을 두었기 때문이고 조상의 못된 습성을 배워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기 위한 것입니다. 남의 의사와는 다른 자기의 의사를 밝힘으로써 자신의 주체성․ 독립성․ 독립된 자아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이들이 독립된 자아로써 성장하는 과정에서 no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몇 년 전에 ’미국에 no라고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책이 나온 적이 있는데 대한민국이 주권국가라면 미국 뿐만이 아니고 어느 나라에게도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만일 no라고 말할 수 없다면 그건 주권국가가 아니고 속국이라는 얘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식이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으려면 때로는 부모에게도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며느리들이 신랑에게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시부모님에게 가끔은 no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지니라’고 했으니 부모를 심리적으로 좀 떠나라는 요구에요. 그건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하나님에게 no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인간이 비로소 자유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게 비록 왜곡되기는 했지만 이론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아담과 하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언제 인간다운 모습을 갖게 되었느냐. 하나님과는 별도로 자기의 독립적인 의사를 갖게 되었을 때 비록 그것이 타락이라는 결과를 낳기는 했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이 인간이 인간되기 위한 과정에서 불가피한 요소였다고 말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서 성경이 끝나지 않고 그 이후에 계속됐다는 말은, 오히려 거기서 성경이 시작됐다는 말은 아담과 하와가 no라고 말했을 때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만일 그 시점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포기하셨다면 성경은 굉장히 짧은 책이 되었을 것입니다. 석장. 그러나 그 시점에서 성경이 시작됐다는 말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간 후에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것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돌아오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한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부흥사였던 한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니까 그분이 젊은 목사님이었을 때 교회 부임을 하루 앞둔 토요일이었는데 사모님과 대판 싸우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기 좋게 집을 나와서 문을 박차고 집을 나왔어요. 거기까지는 멋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집을 나와 보니까 갈 데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두 편이나 보고 극장에서 나오니까 벌써 어둑어둑해졌어요. 내일 교회에 부임해야 되는데 목사가 토요일에 영화나 보고, 자기가 보기에도 한심하더랍니다. 그래서 친구 목사님 집을 찾아갔어요. 그 친구 목사님이 이 분을 반갑게 맞이하더니 자기가 최근에 성령을 받았다면서 자네도 성령을 받아야 된다고 같이 기도하자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영문도 모르고 같이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았어요. 집으로 돌아왔더니 사모님이 문 밖에서 ‘돌아와, 돌아와’ 찬송가를 부르면서 기다리고 계시더랍니다. 전화위복이 되었지요.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후에 갈 데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이 인간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하나님에게 돌아오게 돼 있습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시간이 하나님 쪽에 있습니다. 시간이라는 요소는 인간에게 가장 적대적인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살같이 흐릅니다. ‘세월이 살같이 빠르게 지나 쾌락이 끝이 나고 사망의 그늘이 너와 내 앞에 둘리어 가리우네’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은 하나님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결국 시간의 흐름 앞에 인간은 손을 들게 돼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옳고 사람이 틀립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었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옳았어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갈 데가 없습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출구는 없다’라는 책을 썼는데 하나님에 대해서 현대인이 no라고 말한 그 결과로써 인간의 실존이 출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갈 길이 없어요. 자식이 집을 나가면 처음에는 마음껏 놀 수 있어서 좋지만 해가 지기 시작하면 어두워서 놀 수가 없습니다. 해가 지면 어두워집니다.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배가 고픕니다. 졸립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겠습니까. 집을 나간 자식이 부모가 그리워서 돌아오는 건 아니지만 배가 고프고 피곤하기 때문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가 집으로 돌아온 이유도 아버지가 그리워서는 아니에요. 배가 고파서 돌아온 것입니다마는 배가 고파서라도 사람은 집으로 돌아오게 돼 있어요. 

그리고 셋째로 하나님과 겨루어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끼리는 버티고 줄다리기해서 얻을 것이 있기 때문에 협상이라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노조 간에, 사람끼리 밀고 당기는 이유는 얻을 것이 있기 때문인데 그런데 한쪽이 전혀 협상할 의지가 없다면 그렇다면 줄다리기 하면 손해입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미국의 대통령이었을 때 항공 관제사들이 파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정부가 타협을 할 줄로 알았어요. 그런데 레이건이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항공 관제사들을 일제히 다 파면시켰어요. 파업하던 항공 관제사들이 다 잘렸어요. 대통령이 그렇게 나올 줄 몰랐어요. 만약에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면 파업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강한 리더십입니다. 하나님도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가 손을 들게 돼 있느냐. 인간이 손을 들게 돼 있습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면 사람 손해입니다. 하나님이 타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계명의 기준이든 하나님의 섭리든 하나님이 그걸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손을 들게 돼 있느냐. 사람이 손을 들게 돼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과 겨루어 하나님이 이기셨다고 하나님이 즐거워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녀와 다퉈서 이겼다고 즐거워하는 거 보셨어요? 그건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사람이 뉘우치는 것입니다. 뉘우친다는 말은 사람이 궁시렁 대면서, 퉁퉁대면서 ,불평하면서, 그게 아니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신실한 마음으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둘째 아들이 처음에는 싫다고 말했다가 포도원에 들어가 일할 때 어떻게 했다고 했습니까. 퉁퉁대면서 들어갔다고 하지 않았어요. 투덜대면서, 중얼중얼 욕을 해가면서, 불평해가면서, 내가 정말 못살아 하나님이 이겼어, 이러면서 포도원에 들어간 게 아니고 뉘우치면서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뉘우치는 사람은 불평하지 않습니다. 뉘우치는 사람은 대결 구도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보다 힘이 세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없이 굴복한다’ 이런 대결 구도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뉘우치는 사람은 정말 뉘우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내가 틀렸습니다. 그것이 진짜 회개입니다. 

만일 교회를 나오긴 나오는데 퉁퉁대면서 마지못해 끌려서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회심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사람은 아직 뉘우치지 않은 것입니다.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나 뉘우치는 눈물로 이제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 그것이 진짜 회심이요 진짜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둘째 아들이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할 수 있는 이유는 아직 포도원에 들어갈 길이 열려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만약 아버지가 그 문을 닫아버렸다면, 그 아들이 싫다고 말했을 때 문 닫아걸어라, 이래서 문을 닫아걸었다면 아무리 뉘우쳐도 돌아갈 길이 없어요. 아무리 뉘우치더라도 문이 닫혀 있으면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뉘우치기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를 다시 받아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뉘우쳐야 되지만 그것이 자동적으로 구원을 이루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이 받아주셔야 구원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좀 고지식하게 보여도 하나님이 고지식하게 보이기 때문에 문을 닫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faithful,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증거를 거기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떠난 지 오래됐는데 문이 아직 열려있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빠끔 내밀어서 가끔 쳐다보면 할렐루야, 아직 문이 열려있어요. 하나님이 신실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첫 반응만을 가지고 그 사람의 나중의 결국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원리입니다. 사람의 첫 반응을 가지고 그 사람의 결국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첫 아들은 처음에 가겠다고 반응했어요. 그런데 안 갔어요. 반대로 둘째 아들은 처음에 안 가겠다고 했는데 뉘우치고 갔어요. 첫 반응이 나중의 반응을 단정 짓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경험상, 성경 말씀 상, 누가 위험하냐. 큰아들 같은 사람이 오히려 위험합니다. 처음에 큰소리치는 사람이 위험합니다. 처음에 가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위험한 거예요.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이 그렇게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에요. 처음부터 큰소리치는 것은 그 일이 어렵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큰소리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위험한 것입니다. 아버지 말을 잘 들을 것처럼 보였던 사람이 오히려 위험한 존재에요. 

예수님 말씀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와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 그러니까 하나님을 떠나서 인간이 갈 데가 없고 돌아올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돌아오는 건 아니에요. 모든 사람이 돌아와야 되지만 모든 사람이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모든 사람이 돌아올 거라면 첫째 아들도 돌아와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첫째 아들은 처음에 가겠다고 하고 안 갔어요. 그리고 결국 거절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돌아오는 건 아니에요. 다만 모든 사람이 초청을 받고 믿을만한 기회를 받는다는 얘기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복음을 몰라서 못 믿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이제는 기독교 복음을 거의 다 알아요. 믿지 않아도 알아요. 들어본 적이 없어서 믿지 않는 게 아니에요. 들었는데도 안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겠다고 말해 놓고도 안 들어가는 사람이 있어요. 모든 사람이 돌아오는 건 아니에요. 

여기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여러분의 시작이 어떠했든 지나간 과거가 어떠했든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결국입니다. 처음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중이에요. 처음은 어떠했든 과거는 어떠했든 간에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할렐루야. 지금부터가 중요한 것입니다. 처음에 잘못 시작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지금부터 잘하면 됩니다. 처음에는 거절했을지라도 이제부터 순종할 수 있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