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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취 중심보다 가치 중심으로 (빌 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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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중심보다 가치 중심으로 (빌 3:12-15)


관점에 따라서 달라짐 

동일한 사건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집니다. 출애굽을 예를 들어서 말씀드리면 히브리인들에게는 출애굽이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는 날입니다. 당연히 이스라엘은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감격스럽게 경축할 날입니다. 그러나 애굽은 노예 수 백 만 명을 잃어버린 슬픈 날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와 직접 상관없는 출애굽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할까요? 당연히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도, 더 나아가서 성경말씀도 어떻게 해석해야 우리에게 유익하느냐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이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이 땅의 불교나 유교가 샤머니즘에 물들어 퇴색되었듯이 기독교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성취중심과 가치 중심 

오늘 말씀드릴 본문도 많은 신앙인들이 잘 못 해석하기 쉬운 성경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정확하게 해석해서 바른 신앙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인이 좋아하는 (막9:23)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는 말씀도 원래의 의미와 다르게 잘못 사용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는 말씀도 원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잘못 사용되어 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좋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 다음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말씀으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성취 지향적으로 살라는 의미가  아니라 가치 중심적으로 살라는 뜻을 가진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님께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 자신이 자랑스러워했던 모든 삶을 버렸습니다. 태어난 지 팔 일만에 할례 받은 것이다, 이스라엘 중에서 베냐민 지파라는 것이나, 바리새인인 것이나, 대단한 학자라는 것이나, 대단히 열정적으로 살아왔다는 자랑스러운 삶을 버렸다는 말씀입니다. 그 후에 주님께서 이 세상 넘어 천국에서 상을 주실 것을 바라보면 살겠다고 말했습니다. 

(빌3:13-15)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눈에 보이는 세상의 업적이 아니라, 추상적이라고 생각될지언정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위해서 달려가겠다는 간증입니다. 바울사도님이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성취 지향적으로 살지 않고, 가치 중심적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서도 역역하게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열심히 따랐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자 제자들은 다 흩어졌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믿어서 세상적인 성공을 얻으려고 하면 실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치 중심적으로 사는 사람에 비해서 늘 불안하고 감사가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청교도(puritans) 102명은 신앙의 자유라는 가치를 찾아서 메이플라워를 타고 영국을 떠나 신대륙으로 출발하여 나라를 세웠습니다. 가치 있는 목적을 위해서 목숨을 건 행동을 해서 미국을 세우고 미국수정헌법 제1조 국교금지와 종교의 자유행사를 금지하는 입법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영향력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현대국가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이라는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멕시코로 간 사람들은 금도 많이 얻지 못하고 건강한 삶도 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성취중심이 아니라 가치 중심적으로 살라고 지금도 명령하십니다. 우리 모두 그 명령 앞에 세상이 주는 유혹을 뿌리치고 순종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부활과 십자가와 재림 

세상을 이기고 싶습니까? 모든 문제를 뛰어넘고 싶습니까? 힘을 얻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업적이나 성취중심보다 가치 중심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 계속에서 등장하는 바알은 풍요를 가져다주는 우상입니다. 풍요를 소원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버리지 못하는 바알을 우리도 우리의 힘만으로는 절대 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가능합니다. 


가치 중심으로 바꾸는 길 

사울도 다메섹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던 베드로 사도님도, 다른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바뀌었습니다. 이들은 모여서 부활하신 예수님께 찬양하면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런 신앙 속에 십자가는 행복의 길이었습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생겨난 것이 이 세상은 영원한 곳이 아니고 단지 스쳐가는 곳이라는 종말론적인 신앙입니다. 

종말론적인 신앙으로 모여서 말씀을 가르치면서 서로서로를 세워주고, 은사를 개발해 주고, 도와주면서 신앙생활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슴으로 삶속에 들어가서 살았습니다. 그 결과 세상을 변화 시키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런 신앙이 로마를 넘었고 이런 신앙이 헬라 철학을 넘었던 것입니다. 

이분들이 정당을 만든 것도 아니고 혁명을 일으킨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신앙을 가지고 집에서 살고, 직장을 다니고, 사업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더 이상 성취중심이 아닌, 힘들지라도 주께서 기뻐하실 일에 순종하며 살면 세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것은 증명된 진리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성취중심에서 가치 중심으로 바뀔 때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가치 중심적입니까? 

시간이 좀 지난 일이지만 우리교회를 옮기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이전을 추진하다가 제가 스스로 그만두었습니다. 그 이유는 기도 하는 중에 사업하시는 분들이 사업을 확장하는 것과 제가 교회를 옮기는 것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또 15년쯤 전까지 제 운전 습관은 고속도로에 진입한 뒤 처음 보이는 차를 추월하고, 또 그 다음 보이는 차를 추월하며 분당에서 천안까지 계속 앞 차를 따라잡으며 운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앞에 있는 목표물을 끊임없이 따라 잡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과속하는 것이 위험하기도 하고, 기름도 많이 들뿐만 아니라 운전하는 제 자신이 상당히 피로하다는 것을 깨닫고 정한 속도로만 운전하는 습관을 새로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엔 물론 운전이 편안해 지게 되었습니다.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눈앞에 보이는 목표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으십니까? 또 그것을 잡으면 성취의 기쁨에 행복하시리라 생각이 드십니까? 인간의 성취는 또 다른 욕심을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치에 초점을 맞추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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