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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도심(盜心) (삼하 1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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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盜心) (삼하 15;1-13)


“그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 2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 이르되 너는 어느 성읍 사람이냐 하니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3압살롬이 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4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5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 6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7사 년 만에 압살롬이 왕께 아뢰되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청하건대 내가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하소서 8당신의 종이 아람 그술에 있을 때에 서원하기를 만일 여호와께서 반드시 나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내가 여호와를 섬기리이다 하였나이다 9왕이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하니 그가 일어나 헤브론으로 가니라 10이에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 두루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곧 말하기를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 하니라 11그 때 청함을 받은 이백 명이 압살롬과 함께 예루살렘에서부터 헤브론으로 내려갔으니 그들은 압살롬이 꾸민 그 모든 일을 알지 못하고 그저 따라가기만 한 사람들이라 12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의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13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삼하15;1-13)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압살롬이 아니라 다윗입니다. 
우리가 아는 다윗은 참으로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칭찬한 사람이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할 정도로 존귀한 사람입니다. 또한 정치인으로서도 성군다윗이라고 부르면서 지금도 이스라엘사람들은 ‘다시 한 번 다윗의 시대로’를 부르짖고 있을 정도로 시대를 넘어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믿어도 다윗처럼 믿고, 우리의 자녀들이 되어도 다윗처럼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시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 다윗의 신앙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아멘. 
 
그러면 인간 다윗, 특히 부모로서의 다윗은 어떨까요?  부모가 자녀에게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좋은 것을 자녀가 배우지만... 부족한 인격이나 나쁜 습관조차도 자녀가 그대로 본받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 앞에서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믿는 가정의 자녀가 잘되는 데도 분명 이유가 있고, 잘 못 되는 데도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의 큰 부분을 부모가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다윗 집안을 통해 성경이 보여주시는 몇 가지 진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가정이 불행해질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는 집이 망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오 늘 성경에 참으로 불행하고 비극적인 집안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름 아닌 다윗 집안입니다. 놀랍지요?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닌 다윗 집안에 그런 일이 생긴다는 말인가? 그렇게 하나님 잘 믿고 성경에 나온 믿음의 조상 중에 가장 훌륭한 사람 집안에 도대체 어떤 일이 생긴 거냐?" 할 것입니다. 
  
사무엘하 3장에 보면 다윗은 여섯 아들이 있었습니다. 맏아들 *암논은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둘째 아들 *길르압과 셋째 *압살롬, 넷째 *아도니야, 다섯 째 *스바댜, 여섯째 *이드르암이 모두 어머니가 다릅니다. 특히 셋째 아들 압살롬의 어머니는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라고 되어있는데 그술은 갈릴리 호수 북동쪽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경쟁자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견제하기 위해, 북쪽 지역에 사는 족속의 공주와 정략결혼을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보면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전국에 흩어져있는 호족세력의 도움도 받고, 동시에 호족들을 견제하기 위해 정략결혼을 하는데 자그마치 29명의 부인을 두고, 25명의 왕자와 9명의 공주를 두었다고 합니다.  다윗은 왕건에게는 못 미치지만 이런저런 이유와 특히 정치적 이유 때문에 정략결혼을 통해 자녀를 많이 낳았는데 여기서 다윗 집안의 비극이 잉태됩니다. 나중에 다윗은 부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여 아들을 하나 낳는데 그 아이는 범죄에 대한 심판으로 태어나자마자 죽고, 그 다음에 밧세바가 또 낳은 아들이 바로 *솔로몬입니다.  

뭔가 이 집안에 심각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지 않습니까? 다윗은 신앙은 매우 좋았지만 육신의 성욕이 너무 강한 사람이었고, 좋은 신앙인은 되지만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결혼은 숭고한 것이요 성경에서는 한 아내를 두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그토록 강조하는데 정치적인 목적과 자신의 성욕 때문에 이렇게 많은 아내를 두고 자녀들을 낳았으니 나중에 이 집안이 어떻게 조용하겠습니까?  

사실 다윗은 좋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요 왕으로도 기준이 되는 인물이긴 하지만 가정에서는 실패한 것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그의 마음은 너무 순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이 부족한 사람을 얼마나 귀하게 쓰신지 모릅니다. 이것이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이제 그의 집안을 살펴봅니다. 비극의 시작은 맏아들 암논입니다. 암논은 이복누이인 다말에게 깊은 연정을 느낍니다.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2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삼하13;1,2) 

혹 어떤 사람은 ‘암논이 다말을 얼마나 사랑했기에 병이 들었을까? 정말 부러운 사랑이다. 나도 이런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랑일까요?  첫째 왕자인 암논에게 어떤 사람이 ‘아픈체 하십시오. 그러면 아버지 다윗이 찾아 올 것이고 그때 아버지에게 다말을 보내 간호해 달라고 부탁을 하십시오’ 라고 꾀를 넣어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지시를 받은 다말이 와서 과자를 구웠습니다. “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 음식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 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 하니 다말이 자기가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그의 오라버니 암논에게 이르러 11그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이르되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하는지라 12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삼하13;10-12)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 하였지만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그와 동침하니라”(14절)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렇게 막무가네였을까? 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계속 기록을 합니다.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16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 17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삼하13;15-17)   

사랑은 상대방을 위하는 감정입니다. 자기 욕심을 강제로 채우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정욕입니다. 그리고 정욕의 특징이 뭔지 아시지요? 욕심을 채우면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병이 들 만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이복누이라서 함부로 할 수 없어서 병이 든 것입니다. 그런데 강제로라도 욕심을 채우니...이제는 별 볼일 없어집니다. ‘다른 여자하고 똑 같네 에이 보기 싫어’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정욕을 구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윗의 맏아들부터가 인간의 정욕에 사로잡혀 끔찍한 범죄를 아무 죄책감 없이 저지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성격이 어디서 왔겠습니까? 과연 아버지 다윗이 "그건 자기가 타고 난 성격이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시작이 됩니다. 아버지 다윗은 암논과 다말의 이 잘못된 사건을 그냥 방관합니다.   아들인 암논의 잘못을 유야 무야 그냥 넘어 갑니다. 왕으로서는 분명한 판결을 내려야 하지만... 아버지로서는 없는 일로 넘어가버립니다. 다말만이 처량한 신세가 됩니다. 

그래서 다말의 친 오빠인 압살롬은 반드시 여동생의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고 만반의 준비를 하다가 결국 2년 후에 암논을 유인해 죽여버립니다. 형제간의 살인(殺人)이 일어난 것입니다.  姦淫이 殺人을 부른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도 아버지인 다윗은 압살롬을 크게 처벌하지 않고 또 유야 무야 넘어갑니다.  성도여러분. 어떻게 한 집안이 이렇게 복잡할 수 있습니까? 한번 사무엘하를 읽어보십시오. 소설도 이렇게 쓰기 어려울 것입니다. 근친상간과 형제살인의 이 모습이 누구네 집안 이야기란 말입니까?  다름 아닌 다윗입니다. 성군(聖君)이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다윗 말입니다. 

다윗 집안에 일어난 모든 비극의 한 가운데는 셋째 아들 압살롬이 있습니다. 다윗의 모든 아들 중에서 가장 잘난 아들을 뽑으라면 단연 압살롬입니다.  사무엘하14 에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는 완소남(완전 소중한 남자, 완전 소심한, 소름끼치는...)이고 특히 그의 길고 치렁치렁한 머리털이 가장 매력 포인트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외모나 머리나 모든 조건이 뛰어난 압살롬이 아버지의 왕위를 빼앗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는 패륜아가 된 것일까요?  그 이유는 딱 두 마디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저는 다 알고 있습니다"고,  또 하나는 "아버지나 잘하세요"입니다.  첫째로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이 처음의 그 순수함과 순결함이 날이 갈수록 점점 사라지고 나이 들면서 욕망과 권력지상주의에 사로잡히는 것을 다 알았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권력욕과 성적 욕망, 물질적 욕망에 더 약해지기 쉽습니다. 젊을 때는 순수했지만, 세월이 가면서 더욱더 집착을 하게 됩니다. 가진 것을 놓으면 죽는 줄 알게 됩니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결혼을 하면서 수많은 자식을 낳았고 자신도 그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가 한 여인에게 음욕을 품고 간음하고 그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야’를 죽이는 것을 다 보았습니다.  이복 형 암논이 자기 누이동생 다말을 범한 사실을 알고도 아버지가 그저 화만 버럭 내고 넘어간 것을 다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들 압살롬은 이런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나 잘하세요" 하는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아니, 그런 아버지를 욕하고 원망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아버지와 똑같은 욕망과 욕정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 자녀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비리를 다 압니다.  어떤 비리입니까? 부모가 교회에서와 가정에서가 다른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부모에게서 받는 차별을 다 압니다.  장자와 차자, 아들과 딸, 능력별 공부별로 차별 당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어려서 모르는 것 같지요? 아니요. 어려도 다 압니다. 너무 잘 압니다.  그래서 부모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와 영향이 결국 비뚤어진 욕망과 권력욕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부모가 뭐라고 하면 "아버지나 잘하세요. 어머니나 잘하세요."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다윗의 그 잘난 아들 압살롬이 비뚤어지게 된 이유입니다. 즉 한마디로 다윗이 모범이 되지 못했고, 다윗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구세군의 창시자인 윌리엄 부스에게 그의 사역의 성공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때, 부스는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보다 더 훌륭한 두뇌와 더 좋은 기회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지요, 그러나 저는 저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마음의 결심을 했습니다.”-다른 사람은 헌신을 하지 않았지만 자기는 헌신(獻身)했다는 것입니다. 

수년이 지난 후, 부스의 딸이 자기 아버지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였다고 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은 그것이 비결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비결은, 헌신하신 것을 결코 되돌려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딸이 바라본 아버지 윌리엄 부스의 성공 비결은, 한번 드려진 헌신을 되돌리지 않았다는 것, 즉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헌신에 대한, 수많은 설교를 들었고, 매 주일마다 새롭게 헌신을 다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헌신이 힘을 잃고, 우리의 사역에 결실을 맺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변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헌신의 마음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심이 지속되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모든 것은 마음의 결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같은 환경이라고 해도, 어떤 사람은 믿음을 굳게 지키고 말씀에 순종하는데,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부터 떠나고 말씀에 순종하기를 포기합니다.  무엇이 문제냐? 결국은 그 사람의 마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마귀는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훔치고, 빼앗으려합니다.  

물론 마귀는 우리의 영혼(靈魂)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이미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으며, 우리의 몸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빼앗아서 인생을 낭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마귀의 수법을 그대로 보여준 한 사람이 압살롬입니다. 
  
첫째로, 마음을 빼앗긴 압살롬은 다윗 왕을 위해 일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의 모든 행동들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주의해야합니다. 내가 열심히 하고 있는 일과 행동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만일 하나님을 위한 일들이 아니라면, 그 일은 자기를 위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잘못입니다. 왜 자기를 위해 일하는 것이 잘못입니까?  다윗 왕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 왕을 위해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압살롬처럼 자기를 위하여 일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위해 살거나, 자기를 일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아마도 정상적이고, 평범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 말씀에 “아멘”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이러한 정상적이고,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마음을 빼앗아, 자기 자신을 위해 살도록 부추기는 것입니다.  압살롬이 처음부터 자기를 위하는 마음을 품었겠습니까? 마귀가 그에게 충성하는 마음이 변하여 반역하는 마음을 심어준 것입니다.  반역의 배후에는 ‘자기를 위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압살롬이 그랬습니다. “그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압살롬의 죄악에 동참하는 것임을 주의해야 합니다. 마음을 지키십시오. 마음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마음을 빼앗긴 압살롬은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자신을 위한 일들을 할 때, 철저히 준비하고 다가옵니다.  인간을 6천년이나 다루어 온 마귀는, 인간의 어떤 부분을 공략하면 잘 넘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마귀가 쳐 놓은 덫에 걸려 쓰러지고, 넘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귀는 결코 엉성하게 일 처리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을 만나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자신들의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단들이 자신들의 교리와 가르침을 입증할 자신들의 자료들을 철저하게 준비합니다. 이처럼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와 계획을 이미 다 세워 놓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마귀의 그 철저함과 집요함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다.’ 이런 말도 하더군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마귀가 진돗개보다 더 끈질길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진리의 지식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주님을 위한 일들을 위해 준비하고 예비되어야 합니다. 교회 출석만이 아니라 진리의 훈련이 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준비 된 사람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 째로, 마음을 빼앗긴 압살롬은 일찍 일어났습니다. 
압살롬은 게으르거나, 대충 대충 살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2절)  일찍 일어나서 서 있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죄악이 준비되고, 실행되는 4년 동안 내내 이루어졌던 부지런함 입니다.  압살롬은 너무나도 부지런하게 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선을 행하는 것도 부지런해야 하지만, 죄악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부지런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마귀는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들지만, 마귀 자신은 결코 게으르지 않습니다. 마귀는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는 부지런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또 마귀에게 장악된 사람들은 게을러지지만, 마귀가 사용하는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열심입니다.  압살롬이 4년 동안 아침 일찍부터, 왕에게 재판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부지런히 도둑질 하였듯이,  마귀에게 사용되는 사람들도 정상적으로 하나님에게 가야할 마음들을 자신들에게 돌려놓기 위해, 부지런히 찾아다니고, 전화하고, 온갖 말과 행동으로 마음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도둑질 한다는 6절의 말씀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마음을 지키십시오. 마음을 지켜야 하나님을 섬기는 일들에 신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압살롬이 어떻게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는 겸손한 것 같은 태도와 사랑스런 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다윗 왕으로부터 도둑질 했습니다. 압살롬은 아주 부드럽고,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말로, 다가섰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인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말하고, 진리에 대해 타협하지 않으며, 조금은 거친 말을 하면 그런 사람은 싫어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고 취급해 버립니다.  

물론 지혜롭게 말해야 할 필요는 있지만, 진리를 포장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의식해서 타협하거나 수정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8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16;17-18)   

압살롬은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행동을 했습니다. 아마도 그의 인기가 다윗을 능가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압살롬의 죄악입니다. 다윗 왕에게 있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자신에게로 빼앗아 온 것, 이것이 바로 압살롬의 잘못입니다. 하나님께 가야 할 마음을 빼앗는 것, 그것은 분명히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상적인 마음은, 교회의 질서와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질서와 권위로부터 마음을 빼앗아 버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정상적인 마음에서, 반역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은 죄악인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저에게, 저와 같은 부목사들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많은 교회에서 부목사들이 담임목사님에게로 향해야 하는 교인들의 마음을 도둑질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너무 많아져서 총회에서는 부목사가 바로 담임목사가 될 수 없고, 그 교회를 사임하고 최소한 6개월이 지나서야 담임으로 올 수 있도록 법을 만들었습니다. 부목사들이 담임목사에게로 향해야 할 마음을 도둑질 하지 못하도록 법을 만든 것입니다. 부목사는 담임목사님의 사역을 돕도록 부른 사람이므로 그 반대의 일을 하는 것은 마귀의 일입니다. 성도여러분,  마음을 지키십시오. 마음을 지켜야만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판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자녀의 대부분은 부모에게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정말 좋은 부모가 되기를 애써야 하겠습니다. 자녀는 다 압니다. 그러므로 어리다고 무시하거나 힘으로 누르면 안 됩니다. 그것조차 배울 것입니다. 세상에 완전한 부모는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 넘어지고 깨어지더라도 진실하게 살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이 평안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또 마음을 빼앗는 것은 죄악입니다. 또한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우둔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항상 주님께서 주장해야 합니다. 마귀와 세상이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여, 열정적으로, 거짓 겸손과 거짓 사랑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마귀는 헌신된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빼앗으려 합니다. 그래야 지속적으로 헌신하지 않고, 그래야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그래야 성경의 권위가 무너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와 목자의 권위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내가 내 마음을 다른 무엇인가에게 내어주고 있다면, 나 자신이, 하나님께 드려져야할 마음을 도둑질하는 범죄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도둑질 당하지 마십시오. 마음을 주님께서 주장하시도록 드리십시오. 

잠언 4;23말씀을 드리면서 말씀을 맺습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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