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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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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빌 4:6)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오늘 우리 사회는 수많은 사건들로 인하여 흔들리고 있습니다. 정치는 불안하고, 경제는 가 안정되지 못하여 여기저기서 근심과 걱정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들어야 하는 소리는 바로 염려하지 말라고 권면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권면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메덴 메림나테)는 금지를 나타내는 현재 명령법으로 '염려를 중단하라'는 뜻입니다(Robertson).

이는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 걱정하거나 초조해 하거나 불필요한 관심을 쏟지 말라는 것 입니다(Kent).
예수님께서도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마 6:25)하시고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2-33) 하셨습니다.

의사들은 여러 가지 질병을 초래하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염려, 즉 스트레스라고 말합니다. 염려하지 않는 방법을 배운 사람은 결코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염려는 우리 안에서 작용하는 매우 고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염려하면 지치고 신경이 예민하게 되는 것입니다. 염려 속에는 우리를 기만하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행하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합니다.
특히 과거에 대한 집착과 염려가 있습니다.

어느 대학 졸업식에서 축하객인 한 사람이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나무를 톱으로 켜 본 사람은 손들어 보십시오." 거의 모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톱밥을 켜 본 사람은 있습니까?" 아무도 없었습니다. "톱밥은 이미 켜졌기 때문에 켤 수 없습니다. 과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로 걱정하는 것은 톱밥을 켜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따금 과거의 일로 괴로워하거나 용기를 잃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톱밥을 켜는 것처럼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문필가 칼라일에 대하여 이런 일화가 있다합니다. 그는 항상 생각하고 글을 쓰는 분이며, 자연히 조용한 것을 좋아하였다 합니다. 그런데 그 옆집에서 닭을 몇 마리 기르는데 새벽마다 우는 소리로 잠을 잘 자지 못하다가 한번은 그 주인을 만나 사정을 말하였다합니다. 그때 그 주인이 "하룻밤에 세 번밖에 울지 않는 것을 뭐 그러시오" 대답하니 칼라일이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 닭 울음소리를 기다리느라고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습니다"고 했다합니다.

얼른 납득이 가지 않지만 그것이 인간의 현실인 듯 합니다. 우리는 염려하지 않아도 될 일을 흔히 염려하는 때가 많습니다. 일 보다도 염려가 건강을 해칩니다. 염려는 아무 쓸데가 없습니다.
성경의 말씀과 같이 염려하므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없습니다"
염려의 대부분은 그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염려로 오는 피해는 막대합니다. 
  
염려로 가득 찬 삶은 결코 성공적인 삶일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일로 인한 근심과 걱정이 우리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으면 우리의 삶은 활력을 잃게 되고, 우리 속에 내주하는 성령은 제대로 활동할 수 없게 되므로 마음의 평강을 얻을 수 없음은 물론 성공적인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옛날 오래된 학교에서 종을 치는 종치기 한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종을 치다가 노이로제 걸렸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당신은 왜 그렇게 행복하지 못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종치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저는 이종을 삼만 육천 번을 쳐야합니다. 매일 이 학교에서 열 번씩은 종을 칩니다. 일주일이면 칠십번, 한 달이면 삼백번, 일년이면 삼천육백번, 내가 이 일을 끝내기까지는 앞으로 10년이 더 남았습니다." 한 사람이 보다 못해서 이런 지혜로운 충고를 했다고 합니다.  "형제여! 하루에 열 번씩만 종을 치시고 한번에 한번씩만 종을 치시면 되지 않습니까!"

하루를 하루답게 살아가는 이 지혜를 배우는 것은 얼마나 자주 어제와 내일을 오늘의 현장에 갖다 놓고 염려를 더해 가면서 염려의 닻줄에 매여 오늘을 버리는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충고를 들어 보십시오. "

염려에 대한 해결책은 '기도'와 '간구'입니다.
'기도'(프로슈케)는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가 하나님을 향해 있음을 나타냅니다.
'간구'(데에세이)는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을 뜻합니다.
'펜테코스트'(J. Dwight Pentecost)는 부적절감을 염려의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즉 어떤 주어진 상황을 제대로 처리할 능력이 없다고 느낄 때 사람은 염려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이러한 일을 수도 없이 경험하게 됩니다. 이에 대한 대처 방안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기도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으로 하여금 문제를 해결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시라는 사실을 믿고 그에게 문제를 아뢰고 맡겨야 합니다.

어떤 젊은 여자가 홀로 되었습니다. 남편이 자녀 여섯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호로됭 젊은 여인은 너무 기가 막혀서 얼마 동안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몇 달 후 많은 울음 끝에 결정했습니다. 자기는 남자들처럼 노동은 못하겠고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 취직도 못하겠고 할 수 있는 것은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고 기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 없는 어린이들을 맡아 기르는 양어머니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 후 20년 동안 이 여인은 자기 집을 양육하는 가정을 만들고 부모 없는 어린이들을 맡아 길러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양육하는 가정에 정부에서 한 아이에게 400불 정도씩 지급합니다. 이 과부는 자기의 6남매 이외에 1백여 명의 어린이들을 맡아 길러내었습니다. 신문기자가 와서 그 부인을 인터뷰하면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슨 비결로 그 많은 아이들을 맡아서 훌륭하게 길러내었습니까?" 

"함께 일한 것입니다." 
"함께 일하다니요? 누구와 함께 일했다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과 일했습니다. 네가 이 일을 시작할 때 저는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제 근심 걱정을 맡아주십시오. 그러시면 저는 일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20여 년 동안 저는 근심걱정은 하나님께 맡겨두고 일만 했습니다. 내가 약속한 대로 일만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제 부탁을 받으시고 근심걱정을 맡아주셨습니다. 그것이 제 비결입니다." 

모든 근심걱정을 하나님께 맡겨두고 우리는 일만 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약한 청년이 어느 해 봄 심장을 수술해야 했습니다. 사실 그가 10살을 넘겼다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 이제 그가 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1년 이내에 몸져눕게 되고 육체적 불구가 되어 평생을 지내야 하고 수명도 짧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수술을 받은 때는 31세였습니다. 그는 결혼해서 3살 난 딸과 해야 할 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수술을 하지 않는 것보다 40%의 위험부담을 가진 수술을 받기로 했습니다. 병원에 들어가기 전날, 그는 성경책을 넘기던 중 시편 27편 14절이 눈에 띄었습니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그는 이 말씀에 매달렸다. 그러자 염려는 되었지만 두려움은 없어졌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극적으로 성공했습니다. 수술 후 그는 정상적으로 활동하는데 지장이 없었고, 여행도 하고 사업도 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자기 심장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염려를 그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해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십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합니다
'감사함으로'(메타 유카리스티아스)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기도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요소로서 기도하는 자가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나타냅니다(Meyer).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들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공급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몸을 주신 분이라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과 몸이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부탁하고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인생들의 생사화복 국가의 흥망성쇠가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신 30:15-16)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친히 돌보시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철저히 신뢰하는 자들을 돌보실 수 있는 능력뿐 아니라 의지도 갖고 계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그것들은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기르십니다.
들의 백합화를 누가 자라게 합니까? 그것들은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아니하나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기르십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입히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닮은 우리들을 어찌 그대로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별로 가치도 없는 것들을 그렇게 아끼고 돌보신다면, 그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들인 우리들을 더욱 아끼고 돌보아 주실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항상 바라보고 계시며, 우리들을 모든 환난과 어려움에서 건져내기를 즐겨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처리하셔야 할 문제를 우리가 맡아서 처리하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기고 염려가 생기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를 놓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그때에 지각에 뛰어난 평강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고, 또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우리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활동 영역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통치하시고 지배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오히려 감사하여야 합니다.
염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돌보심을 굳게 믿고 오히려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결국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감사는 쉬운일이 아닌 것도 사실입니다
영국 크랜취 감독의 시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덩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추어도 하나님의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이리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게딱지같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늘 아버지와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합니다. 

똑같은 은혜를 받은 자 중에도 감사하는 자는 실로 얼마 되지 않는 것입니다. 불평 원망은 쉽고 감사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돌아 보면 모든 일이 감사 할 일입니다.

1981년 흑인 가운데 가장 장수한 찰리 스미스가 130세의 나이로 플로리다 주 바토우에서 세상을 떠났다합니다. 그에게 130년의 세월은 고통의 전시장과도 같았습니다. 그는 노예로 태어나 갓난아이 때부터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미국의 남부와 서부를 헤매며 매맞고 모욕을 당하며, 굶주리고 병들어, 죽을 고비를 스무 번도 넘게 경험했습니다. 한때는 서부 최고의 총잡이 제시 제임스의 마구간에서 일한 적도 있었습니다. 130년 간 고생만 하다가 죽은 스미스씨는 임종하기 며칠 전 자신을 방문한 스티븐스 목사 앞에서 이렇게 기도했다합니다. "하나님 내가 흑인으로 태어나게 했음에 감사드립니다. 고통스러운 노동 생활도 감사합니다. 130년 간 언제나 내 곁에 계셔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스티븐스 목사는 이 기도를 들으며 "이런 신앙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라고 말했다합니다.

착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 농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몸이 불편하여 병원에 갔는데,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동안 남보다 깨끗이 살려고 노력했고 경건하게 살아왔는데, 왜 내가 이런 몹쓸 병에 걸리게 되었나 하는 생각에 처음에는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심령 속에“하나님께서는 원망의 기도는 듣지 않으시고 감사의 기도만 들으신다.”는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개하고 감사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늘까지 건강한 것, 오늘까지 농사지은 것, 그가 죄를 지을 때 하나님께서 참아 주신 것, 그의 가정에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 그의 자녀들을 건강하게 지켜 주신 것 등에 대해서 계속해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자 그의 마음속에는 감사할 일이 계속해서 생각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원망과 근심과 염려를 다 잊어버리고 계속해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가 그렇게 계속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어느 순간 그의 온몸과 마음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더니 결국 암세포가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근심 걱정과 염려 대신에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하는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역사가 임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수능을 앞두고 추수 감사 주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정시를 준비하는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의 염려가 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염려하지 말고 기도 하라고 합니다.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합니다. 이 말씀 믿고 염려 대신 감사함으로 아뢸 때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리라(눅 6:38)하신 복이 함께 할 줄 믿고 영광돌리며 사명 감당합시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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