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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사람들 (빌 1: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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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사람들 (빌 1:19-21)
   

오늘 우리 교회를 찾아오신 평양노회 여러 장로님들과 전국장로회의 여러 임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평양노회 장로회 총회로 모인 자리이기에 노회장이 오셔서 설교하셔야 하는데, 어느 교회 임직식에 설교하시는 관계로 오시지 못하고, 본교회의 담임목사가 대신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1980년도 목사 안수를 받았는데, 목사안수를 받을 때의 우리나라는 정말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위기상황이었습니다.  목사 안수는 서울노회로 모이는 안동교회에서 받았는데 80년 5월16일이었습니다.  

이틀 후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지금이나 하니 좋은 이름을 붙여주어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했지, 당시에는 ‘광주사태’였습니다.  5월에 접어들면서 매일 같이 긴급조치 1호, 2호, 3호, 그러다가 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합동수사본부의 긴급 기자회견에 또 다시 긴급 기자회견, 온 국민들을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이런 어려운 때에 목사안수를 받아야 하는 저는 국가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많은 번민의 시간과 기도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예수님의 제자’라는 생각을 잊어본 적이 없고, 또 잊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힘써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제자도”라는 이름이 들어간 책들을 모두 사서 읽어보았고, 몇 권은 지금도 읽고 있습니다.  

그 중의 두 책이 아주 감명 깊었고, 제자도를 잘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한 책은 ‘21세기 제자도’라는 책인데, ‘스티브’라는 분과 ‘로이스 레이비’라는 분이 제자도에 관한 여러 책을 참고하면서 편집한 책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이 이 책 ‘21세기 제자도’라는 책의 서문을 써주셨는데, 그는 서문에서 “그리스도인의 성숙”에 대하여 심각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숙을 말할 때 성숙한 제자로 산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장성한 것 같은데, 장성한 어른 속에도 여전히 어린아이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적으로 성숙, 도덕적으로 성숙, 정서적으로 성숙, 그리고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균형 잡힌 성숙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적성숙이 있어야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숙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가 보통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을 합니다.  이것은 주님과 살아있는 생생한 관계, 유기적인 관계, 생명을 공유하는 그런 관계로, 주님의 삶이 우리 안에 흘러들어오므로 내가 사는 것 같지만,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삶을 내 안에서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 사는 것입니다.  

존 스토트는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난쟁이 그리스도인이다.   난쟁이 그리스도를 모셨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슈퍼마켓에 가면 수없는 회사의 다양한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선호하는 제품, 자기의 돈에 알맞은 상품을 골라 사게 됩니다. 

그런데 보면 신약성경에서 보여주시는 참예수가 아닌 서투른 모방으로, 거짓된 그리스도, 왜곡된 그리스도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호주머니에 들어갈 만한 아주 작은 예수, 주님과는 거리가 먼 예수를 사려고 합니다.  어릿광대 예수, 인기스타 예수, 정치적인 메시아 예수, 혁명가 예수, 보수주의자 예수, 이런 시시한 난쟁이 예수를 사고 있으니, 우리가 난쟁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전하신 주님을 그대로 모셔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버리신 예수님, 우리의 억만 죄악을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력이 흐려질수록 그의 제자도는 초라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보는 시력이 밝고 선명할수록 그 사람의 제자도는 풍부해질 수 있습니다.  

제가 제자도를 깊이 생각하는 것은 저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를 지도한다는 것은 다음 문제이고, 내가 목회를 하는 것도 다음 문제이고, 내가 사회를 이끌어가는 기독교 지도자라는 것도 후차적인 문제이고,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다.  내가 성경보아야 하고, 내가 먼저 기도해야 하고, 내가 변화되지 않는데, 누구보고 변화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도자라고 생각하십니까? 남을 돌아보기 전에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존 스토트목사님은 현대 기독교 지성을 대표하는 복음주의자, 신약신학자, 저술가, 설교가로 20세기의 최고의 설교가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높이는 분입니다.  1921년생이시니 우리 나이로 90세이십니다.  현재도 살아계시며 영국 성공회의 사제로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시고, 복음주의의 교황, 개신교회의 교황이라고 불리시는 목사님이십니다.    이 분은 많은 책을 쓰셨고, 위대한 설교가라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현재 90세의 목사님이 88세 때에 마지막으로 쓰신다고 선언하고 쓰신 책이 이 ‘제자도’라는 책입니다. 정말 좋은 책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제자들입니까?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철저한 제자도는 외면하고, 적당히 헌신할 수 있는 분야와 영역을 고르면서 대가를 치르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철저한 헌신, 죽음의 자리는 잘 피해나가고 있습니다.  도망 다니는데 선수가 되었습니다.  요리저리 피할 궁리만 하고 있습니다.  힘이 부치지 않는 자리, 적당히 헌신하고 이름나는 자리, 족보에 기록될만한 자리, 후손에게 자랑스럽게 보일 자리는 눈에 들어오고, 돈을 내야만 하고, 몸을 바쳐야 하는데, 이름도 없는 자리는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내가 누군데’, ‘나를 무엇으로 알고 그래’, ‘사람 만만히 보지 말라고’, ‘내가 그래도 이 교회 30년 다녔다고’ 모두가 알아달라고 합니다.  이 가부장적인 문화가 교회 성장을 가로막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데, 주님 앞에 가서 보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목사 잘 해야 합니다.  역시 장로도 잘 해야 합니다.

존 스토트가 말하는 제자도의 8가지 특성은 불순응, 닮음, 성숙, 창조세계를 돌봄, 단순한 삶, 균형, 의존, 죽음 이렇게 8가지 특성을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8가지 특성 중에 두 가지만 말씀드려봅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첫 번째 특성은 ‘불순응’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고, 세상을 섬기며, 세상에서 증인이 되어야 하지만, 한편 세상에 오염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도피하므로 거룩함을 보존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또 세상에 순응하므로 거룩함을 희생시켜도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도피주의자가 되어도 안 되고, 순응하는 사람이 되어도 안 됩니다.   세상을 성실하게 살면서 거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두 번째 특성은 ‘닮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처럼 되기를 바라시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뜻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성육신하신 것을 닮아가고, 섬김의 생애를 닮아가고, 사랑의 삶을 닮아가고, 오래 참으신 것을 닮아가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신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모든 특징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현재 세계적인 구약신학자이시며, 선교학자인 크리스토퍼 라이트박사가 있습니다. 라이트박사는 영국 사람으로 캠브리지 대학 출신의 목사이며 열방기독교대학 총장을 지냈고, 현재는 영국 All Nations Christian College의 구약 담당 교수로 있습니다.   

이 분은 국제랭함파트너십의 대표로 있으면서, 금년 2010년 10월 11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제3차 로잔대회를 주도적으로 세계적인 지도자이십니다.  로잔대회는 전 세계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모든 교회들이 모여 신학과 선교의 방향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대회였습니다. 

1974년에 열렸던 제1차 로잔대회의 주역은 존 스토트와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었습니다. 존 스토트가 세계 선교의 방향과 전략을 담은 로잔언약의 기초를 잡아놓은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제 제3차 로잔대회는 크리스토퍼 라이트박사가 이끌어가며, 로잔서약의 기초를 작성하였습니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우리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HIS를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향한 부르심”이라는 주제 강연에서 라이트 박사는 오늘의 교회와 영적 지도자들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세 가지 덕목은 HIS라고 했습니다.    라이트박사는 많은 지도자들이 쉽게 빠지는 우상을 영문으로 GPS라고 했습니다.  탐욕 G(Greed), 권력 P(Power), 성공 S(Success)라고 하면서 이를 타파할 덕목으로 HIS를 강조한 것입니다.    겸손(Humility), 정직(Integrity), 단순함(Simplicity)의 영문자 이니셜을 따서 HIS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Integrity를 정직이란 말로 번역하지만 온전함, 무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탐욕과 권력과 성공을 지향하는 많은 지도자들을 보면서 겸손과 정직, 그리고 단순함으로 제자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오늘 많은 목회자들이나 기독교 지도자들을 보면서 탐욕과 권력과 성공의 관점에서 평가하지 말고, 겸손과 정직과 단순함에서 지도력을 보라고 합니다.  오늘 많은 교계에서 명성을 얻고 누리던 정상에 올라와 있던 사람들이 GPS, 즉 탐욕, 권력, 성공을 버리고, HIS-겸손 정직 단순함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온갖 부정적인 소문으로 한국교회를 망치게 될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좋은 목회자로 살려고 힘쓰는 중에 “목회는 경계선 긋기”라는 말을 썼습니다.   우리 지도자들은 탐욕, 권력, 성공의 GPS와 겸손과 정직 단순함의 HIS의 경계선 긋기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아닌 것은 분명히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것은 옳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경계선이 모호하게 넘나들면 지도자가 아닙니다.    어제는 지도자 같았는데, 오늘 보니 형편이 없는 것입니다.  도덕성이 없어요.  그래서 빈축을 사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행복은 “살얼음판을 걷는 행복”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목사와 장로들, 한 순간 삐끗하면 그동안 쌓아올린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한 주일 한 주일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의 영원한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19절입니다.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바울은 지금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교회는 그의 석방을 위하여 힘써 간구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기도의 응답받기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로 믿었습니다.  여기 19절에서 말씀하는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말은 영적구원을 포함하지만, 구체적으로는 감옥으로부터의 석방이라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바울은 온 교회가 주의 종, 바울의 석방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주시어 바울을 안보하시고 인도해주시고 구원하였습니다.  

20절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에게 주어질 재판의 결과가 어떠하든지 간에 그동안 최선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위하여 살아왔으며, 장차 우리 주님 앞에 서게 될 몸이기에 거리낌 없이 재판을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감옥안에서 죽어도 좋고, 석방되어 복음을 전파할 수 있어도 좋습니다.  아무 일에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다.  부끄러울 것이 없으면 담대해지는 법입니다.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만을 존귀하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리스도만 존귀케 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리스도만을 존귀케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담대해집니다.    주님을 위하여, 주님과 함께 죽겠다고 하는 마음인데, 무엇이 두려울 것입니까?  정말 죄인으로 재판을 받는 것이라면 부끄럽고, 초라해질 것이지만, 예수님을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인데, 주님을 위하여 박해를 받는다면 그것으로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내 몸에서 그리스도만이 존귀하게 된다면 나는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고, 주님의 이름을 높일 수 있다면 나는 없어져도 좋고, 발에 밟혀도 상관이 없습니다.  죽은 몸에게 침을 뱉으면 더러워질 것도 없고, 창피한 것도 없습니다.  

갈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사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였습니다. 

21절입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잘 이해해야 합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말을 깊이 새겨들어야 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삶이나,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구원해주었다는 말을 넘어서, 바울 안에 그리스도가 현존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바울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바울 안에 들어와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산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바울이 곧 예수요, 예수님이 바울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사신다는 말을 잘 이해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완전히 연합된 삶인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치하시고, 격려하시고,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내가 얼마나 주님의 제자로 살겠다고 각오하고 결단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계2:10에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모두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되었습니다.   이제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존귀케 하시는 남은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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