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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모의 지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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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명진 목사(수원중앙침례교회)

사람이 둘 이상 모이면 그 중에서 누군가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남녀가 부부로 만나서도 둘 중에 누군가 한 사람은 리더가 되어야 하고, 한 사람은 적당히 뒤를 받쳐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이 원칙이 결코 변할 수 없는 철칙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때에 따라서는 아내가 주도권을 행사하고 남편이 후원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부모 자식 사이에서는 최소한 자녀가 성장하기까지는 부모가 주도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작금 한국의 가정은 이러한 질서가 해체된 듯하다. 거실에서의 TV 채널 선택권을 자녀들에게 빼앗기면서 시작된 가정의 위계질서 해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면서까지 종래의 가부장적 권위를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란 고집으로 자녀들과 충돌을 빚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적당히 방임하다가 “내 자식이 이럴 줄은 몰랐다”고 탄식하는 부모들을 만나게 될 때마다 안타깝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부모의 지도력은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다. 부모가 잠시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다. 언제까지인가? 대체적으로 사춘기까지로 본다. 자녀들이 부모에 대해 무조건적 존경과 추종은 사춘기까지이기 때문이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자녀들은 자기 부모가 사회적 평균의 수준에 있는 성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곧 이어서 자신들도 사회적 평균치의 성인이 된다. 이 시기까지 자녀들의 가슴에 쌓여온 부모에 대한 의지와 존경, 그리고 사랑은 서서히 객관화되기 때문에 부모라는 커다란 우산이 벗겨짐으로 인한 공백이 생긴다. 사람들은 이 허전함을 그냥 공백으로 둔 채 살아갈 수 없기에 주변에서 자기의 빈 가슴을 채우기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

지도력을 갖춘 부모들은 바로 이 시점에서 서서히 자신들이 물러서기 시작하면서 그 자리에 적격인 대상을 찾아 대체해줘야 한다. 그 자리가 아쉬워서 “너를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하면서 연연하다가는 자식 그르치기에 알맞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부모 자식의 연을 끊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부모 자식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하고 축복의 관계인데 그럴 수는 없다. 자식의 가슴에는 이제 부모의 권위에서 하나님의 권위로 복원되어야 한다.

- 출처 : 쿠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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