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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양육은 일관성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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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환(서울신학대학교 상담대학원장)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 3:21)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한 그루 나무를 잘 키우면 그 나무 그늘에서 사람들이 쉬기도 하고, 열매로 생명을 얻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이처럼 멋지고 건강한 나무로 잘 양육하자고 다짐하는 날입니다.

‘격노케 말지니’는 ‘그네 밀어주기’에서 나온 말입니다. 양육자들이 대부분 정성껏 그네를 사뿐사뿐 밀어줄 것입니다만, 때로는 자기도 모르게 그네를 휙 밀어버리면 아이는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심리학자 N 마이어의 고전적인 실험이 있습니다. 마이어는 문이 두 개 달린 ‘상벌 상자’에 실험용 쥐들을 넣어 살게 했습니다. 4각형 문에 들어오면 먹을 것을 주고, 3각형 문에 들어오면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상과 벌의 문입니다. 쥐들은 미물이지만 3각형 문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배가 고프면 4각형 문으로 들어가 밥을 먹고 3각형 문은 피하면서 불편한 상자 속이지만 잘 적응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4각형 문에 들어오면 사정없이 때리고, 3각형 문에 들어오면 오히려 먹이를 주도록 바꿨습니다. 흔히 많은 부모님이 그런 것처럼, 쥐에게도 상과 벌의 일관성이 없어진 셈입니다. 그러자 쥐들은 난폭해지거나 구석에 처박혀 넋이 빠져 있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식욕을 잃고 이상행동을 했습니다. 며칠 후 쥐들은 한 마리씩 죽기 시작했습니다. 일관성 없는 환경에 쥐들은 적응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상과 벌의 일관성을 상실할 때 아이는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상과 벌의 경계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양육자의 눈치를 살피게 됩니다. 나의 가치가 나 자신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 상태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양육자의 일관성 없는 상과 벌은 며칠 사이에 털이 빠지고 죽게 된 쥐 실험에 버금가는 치명적 상처를 자아상에 남기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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