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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게 속한 자들을 이끌어 내라 (창 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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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속한 자들을 이끌어 내라 (창 19:12-17)

오늘도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길 축원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 얼굴과 낙하산은 /펴져야 산다/ 

여러분 얼굴 좀 펴시길 바랍니다. 근심 걱정이 가득한 얼굴입니다. 활짝 펴고 옆 사람과 인사합시다. /오늘도 은혜 받으시길 바랍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장난감이 없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나 게임기로 놀지만 우리 시대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있었다면 나무로 만든 ‘팽이’가 있었고 손으로 만든 것이 대부분입니다. 남자들은 주로 구술치기, 딱지치기, 이런 놀이를 했습니다. 여자들은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같은 것을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놀이 중에 제일 재미있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땅따먹기’였습니다. 큰 마당에 큰 사각형 줄을 그어놓습니다. 그리고는 양쪽 구석에 작은 원을 그어서 자기 영역으로 삼습니다. 

거기서 병뚜껑이나 사금파리를 손가락으로 튀겨 나갔다가 다시 원 안으로 돌아오면 그만큼이 내 땅이 되었던 게임입니다. 대개 추운 늦가을에 하다 보니까 손은 얼고 손등은 갈라집니다. 그러면서도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학교 다녀와 오후 내내 피곤한 줄도 모르고 놀았습니다. 땅에 엎드려 땅을 넓혀가기도 하고 상대에게 빼앗기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해가 저물고 어두워지면 집에서 엄마가 “일환아 밥 먹으라” 부르면 애써 따놓은 땅을 미련 없이 버리고 집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도 비슷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땅따먹기 하면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아등바등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어느 날 하나님 아버지가 오라 부르시면 다 내버리고 가야 합니다.   

얼마 전 퇴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경제 영토’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우리 나라가 여러 나라와 맺은 FTA를 통해서 우리 국토는 비록 작지만, 경제 영토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나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GDP의 82%를 무역이 차지하는 무역 의존 국가입니다. 

그래서 세계를 상대로 수출을 해야만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50년 전 만해도 꿈도 못 꿀 일을 이룬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땅을 얼마나 갖고 있습니까? 
세상의 여러분의 땅이 한 평 없어도 영적인 영토는 얼마나 되나 살펴봐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적 영토는 얼마나 넓습니까?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아브라함과 헤어져 소돔 성 땅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집도 마련하고 많은 재산도 벌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땅이 하나님의 진노로 불 심판을 받게 됩니다. 원래 그 땅은 물이 넉넉하여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고 성경은 기록했습니다. 

롯은 그 땅을 선택할 때 그 외적 환경만을 보고 선택했습니다. 당장 살기 좋은 땅,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땅, 그래서 그 땅을 선택하여 이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땅에는 그가 보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 땅은 겉보기에는 살기 좋은 땅이었으나 죄악이 가득한 땅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 들어가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전쟁에 휘말려 포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땅 사람들의 텃세로 많은 차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곳은 성적으로 타락하여 자식 교육하기도 어려운 땅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의인 열사람을 찾을 수 없어서 망한 땅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살기 어려운 땅이었겠습니까? 

그 땅은 롯에게 허락된 육적인 땅이긴 했으나 롯의 영적 영토는 아니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세요. 천사들이 롯과 그의 아내 그리고 두 딸 앞에서 말합니다. 
12~13절을 보세요. 

12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13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오늘 저는 이 구절이 맘에 걸립니다.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여기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네게 속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은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몇 가지 하고자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은 내게 속한 자를 찾고 계십니다. 

12절을 다시 보세요. 

12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천사가 롯에게 요구하는 것은 ‘네게 속한 사람들을 이끌어 내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네게 속한 자들”은 누굽니까? 

단순히 가족만을 말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가족도 내게 속한 자들이지만 내가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내게 속한 자들입니다. 구원받은 義人(의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언급했던 그 의인입니다.  

여러분! 이것 생각해 보셨나요? 
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롯을 위해 기도할 때 의인 50명부터 시작했을까요? 

아마도 소돔성에 “의인 50명은 되겠지” 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롯의 가족이 네 명이지만 그가 식솔들과 함께 갔으니 최소한 50인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롯이 그렇게 믿음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숫자를 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50에서 45인, 45에서 40인, 그리고 30인, 20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10명까지 내렸습니다. 거기까지 입니다.   

왜 거기서 멈추었을까요? 왜 아브라함은 한 번 더 기도를 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이여 의인 한명이라면 어찌하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10명에서 멈추었습니다. 그 이유는 최소 의인 10명은 있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期待値(기대치)였습니다.   

그런데 소돔성의 상황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10명이 아닌 4명이었습니다. 그것도 롯과 부인 그리고 두 딸, 모두 4명이었습니다. 그 성에 들어와 산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성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믿는 자로서의 영향력을 전혀 미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최소 열 명은 될 것이라 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속한 자는 몇 명입니까? 
가족은 다 믿습니까? 

여러분 가족 식구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인정 받을만한 믿음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네게 속한 자는 몇 명이냐” 물으실 때 어떻게 대답하실 수 있나요? 

한 집에 같이 산다고 내게 속한 자가 아닙니다. 내가 낳았다고 내게 속한 자가 아닙니다. 내 남편이라고, 내 아내라고 내게 속한 자가 아닐 수 있단 말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라야 내게 속한 자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 나서 지금까지 전도하여 구원받은 사람이 몇 명인가요? 
그들이 여러분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롯의 가족이 4명이니 그들이 6명만 전도했어도 소돔과 고모라 성은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롯은 아내와 두 딸은 주를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딸과 약혼한 사위들이 있었습니다. 롯이 그 사위들에게 달려가서 말했습니다. 

14절을 보세요. 

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그 사위들은 장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아니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그의 믿음이 먹히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롯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다음 달에 사위를 얻습니다. 다행히 예수님을 잘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에게 속한 자는 몇 명인가요? 

여러분을 통해 예수를 구주로 믿은 사람이 몇 명이냐는 것입니다. 그 숫자를 부지런히 넓혀 가셔야 합니다. 그 범위를 내 가족에 만족하지 말고 세계로 넓혀 가야 합니다.   

선교! 그것 영적인 땅을 넓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사를 후원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를 통해 구원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땅을 넓히는 것입니다. 선교사가 혼자 힘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후원과 헌신으로 동역을 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Z국에 신학교를 세워 운영합니다. 그것도 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헌금과 여러 목사님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 또한 여러분의 영적 영토를 넓혀 가는 것입니다. 비록 물질만이 아니라 기도로도 넓혀 가야 합니다. 
  

2. 아브라함처럼 영적 책임을 갖고 기도하길 요구하십니다. 

왜 소돔성이 망했지요? 죄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닙니다.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망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소돔성에는 의인 10명이 없었을까요? 그것은 롯의 책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복음을 전혀 전하지 않은 지역에서 의인을 찾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떤 방법이든지 믿는 자를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시고 그리고 그 속에서 의인을 찾습니다. 

왜 하나님이 니느웨를 용서하셨나요? 
가고 싶지 않은 요나를 강제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게 하고 듣게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12만 명이 회개합니다. 그러니 어찌 심판을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소돔 성에 롯이 가 있었기에 그곳에서 의인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겨우 가족만이 구원을 얻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소돔성에서의 롯은 한사람도 전도를 못한 것입니다.   

소돔성의 상황은 어떠했나요? 

지난주 설교에 동성애 문제점을 다루었습니다. 이 동성애 문제는 지금 우리 시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성에도 동성애가 심각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봉독한 본문 앞부분을 보세요. 두 천사가 소돔성에 이르렀을 때에 롯은 천사를 자기 집으로 모시게 됩니다. 그것을 본 소돔 백성들은 그날 밤 롯의 집으로 모여듭니다. 그리고는 “너희 집에 들어온 사람을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와 상관하리라” 합니다. 여기 ‘상관’ 이란 말은 성관계를 맺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동성애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색’을 가리키는 영어로 ‘sodomy'라 합니다.   

그런데 이때 롯이 그 무리들에게 한 말은 더 충격적입니다. 

자신에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는데 대신해서 딸들을 내어 주겠다는 말입니다. 두 딸은 이미 정혼한 상태에 있는 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폭도들에게 내주겠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롯이 그들이 누군지 알기에 딸들을 희생해서라도 보호하려는 것일까요? 아니면 성적 순결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이미 롯도 자신도 모르게 그 성의 타락한 문화에 오염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 성을 심판하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성을 심판하려 하시는데 롯을 두고 심판을 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그 성에서 내보내시려 합니다. 

그런데 롯이 지체합니다. 16절을 보세요. 

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결국 강제로 가족식구를 손에 잡아서 이끌어 성 밖으로 내보내십니다. 왜 이렇게 하지요?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 하심이었더라”   

왜 하나님이 롯에게 자비를 베푸시나요? 소돔 성에 살면서 아무에게도 영향력을 주지 못한 그를 왜 빼내시며 자비를 베푸시나요? 그 이유는 아브라함의 기도 때문입니다. 29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롯이 믿음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롯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기도를 생각하셔서 그를 내보내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 가족에게 믿는 자로서 어떤 영향력을 주고 있습니까? 
여러분 주변 사람들에게 영적인 영향력을 주고 계십니까? 
“당신이 믿는 하나님 나도 믿겠다”라고 반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어머님이 믿는 하나님 나도 믿겠습니다” 라는 자식이 있느냔 말입니다. 
없습니까? 그래도 포기하진 마세요.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도 아브라함처럼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그 기도 때문에 롯과 두 딸이 살아났듯이 여러분의 기도로 누군가가 구원을 받을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에게 영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책임을 말로만 행할 것이 아니라 행실로 들어내야 합니다. 
  

3. 나를 세상에 보내신 이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롯을 소돔성에 보내셨나요?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살기 힘들어 동쪽을 선택해서 이주했습니다. 

그런데 그를 그곳에 보낸 것은 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살상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잘 먹고 잘 살라고 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땅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롯은 그를 그곳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전혀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왜 여러분은 많고 많은 나라 중에 이 대한민국 땅에 태어났습니까? 
왜 여러분은 많고 많은 부모 중에 여러분의 부모님 자식을 태어났습니까? 
이것들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왜 여러분은 대한민국 많은 지역 중에 이 수원 땅에 살고 있습니까? 왜 하나님은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우리를 먼저 믿는 사람으로 불러 주셨나요? 

어찌 보면 우연처럼 보이지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를 세상에 보내신 이는 다 뜻이 있어서 우리를 이곳에 보내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뜻이 뭘까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를 통해 당신이 택한 백성들을 부르시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세요. 

우리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무작정 심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성에서 그래도 의인이라고 할 수 있는 롯을 택하셔서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네게 속한 자들을 성 밖으로 다 이끌어 내라’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롯에게 생명 구원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명령, 곧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이것을 우리의 사명으로 여겨야 합니다. 

행20:24절을 아시지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롯은 하나님께 택한 받은 자였기에 이러한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살아가면서 날마다 자신에게 질문해야 할 것입니다.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하나님은 내게 속한 자를 내가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우리 부모님일 수 있고 우리 자식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과 관계를 맺고 사는 모든 사람은 여러분에게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마음을 품길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여러분 주변을 점검해야 합니다. 내 주위에 있으면서 아직도 구원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누군가? 그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복음을 들고 다가가야 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래도 해야 합니다.   

왜요? 우리는 구원이 뭔지를 알지만 그들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지만 그들은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우리에게 속한 사람들을 구하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들을 사람을 우리 주변에 붙여 주십니다. 

어떤 목사님이 비행기를 탔는데 옆 좌석에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부활을 전하며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무척 실망했으나 교회 전도지를 주고 예수 믿으라 하고 헤어 졌습니다. 
집에 돌아온 목사님은 그 청년을 위해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저는 목사님 옆에 앉았던 청년의 아버지입니다. 아들의 바로 뒷좌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제게 전화를 하셨나요?” 
“네 목사님께서 아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제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 더 알기 원합니다.” 

그래서 그 밤에 전화로 그 아버지에게 복음을 전하고 영접 기도를 했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주변을 돌아보세요. 하나님이 붙여주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영혼이 돌아오도록 여러분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에게 속한 자는 누굽니까? 그들을 어찌해야 합니까? 
우리 주님은 그들이 여러분에게 속한자임을 알고 영적인 책임을 갖고 살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내게 속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영혼을 구원해야 할 영적 사명자입니다.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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